2010년 1월 24일 일요일

20세기의 T-Rex와 21세기의 <아바타>







1. <공룡 백만년>은 순 개구라다. 현생 인류는 단 1초도 공룡과 공존했던 적이 없다.

2. 조금은 다른 이유지만 역시 개구라다. 유전학적으로 따지자면 말도 안된다.

3. 공화국은 얼리 어답터들의 천국이다.

4. 가장 훌륭한 과학 이론은 논박할 여지는 많으나 결국 그런 논박들이 오류임을 보여줄 수 있는 이론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과학이론이라 보기 힘들다.

5. Susan Sontag 아줌마의 "Against Translation"은 대단히 유욘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책이지만 출찬사의 마케팅 문구처럼 발칙한 이야기를 담고 있진 않다. 예술철학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한 사람이라면 그 아줌마와 같은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6. T-Rex가 ADHD 환자가 아니라면 나 자신이 집중하기 힘들어 눈을 떼게끔 하는 이야기들은 무언가 허술한 이야기거나 가운데 토막이 떨어져나가도 크게 무리가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티렉스의 집중력이 발군이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7. avatar [ǽvətɑ̀ːr, -̀--́] [US]
n., U, C
【인도신화】 화신(化身), 권화
구현, 구체화
【컴퓨터】 아바타 《인터넷상의 공유 공간에서 유저(user)의 화신이 되는 캐릭터》

이미 이야기했듯 아바타에 대한 리뷰는 없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바타를 보고 난 후의 소회를 적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각설하고 이야기 시작하겠다.

1. 제임스 카메론? 제임스 카메론!
제임스 카메론이란 사람은 자신의 한계라는 것이 대단히 명확한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제임스 카메론에 무조건 열광하는 사람들은 그 한계 때문에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그에 대해 긍정의 메시지를 보내길 주저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바로 그의 한계라는 것 때문에 제임스 카메론의 지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제임스 카메론의 한계란 것은 그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표피에서 뼛속까지 숨길 수 없는 미국인이란 것이다. 그가 가장 보편적인 미국인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감독이라는 것은 그의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모든 악덕의 근원이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후반부에 가다보면 그런 나쁜 미국인들은 극소수이며 "보편적인 상식을 가진 미국인들"이 세상의 구세주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대단히 나이브한 그들의 이야기에 주변의 모든 이들은 너무나 쉽게 감화되고 감ㄴ동의 눈물까지 흘린다. 그기로 그의 영화들은 1930년대의 고전적 공포영화들-<프랑켄슈타인><지킬박사와 하이드씨>등등의 경우처럼-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교훈이라는 것을 너무도 간단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성찰을 통해 자신의 입으로 하는 이야기처럼 만드는 과정도 생략한 채, 답습하고 만다. 그리고 결국 이런 부분들을 ?영화의 스케일과 비주얼리티?라는 부분으로 얼버무린 영화를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I am the king of the world"라는 그의 외침(그렇다. 그는 <타이타닉>에서의 리오의 그 유명한 대사가 바로 자기 자신이 남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였음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이 대단히 공허한 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은 그의 이런 단순하고 순진한 도덕률은 매 영화마다 보여줬던 그의 특수효과나 영화 자체의 스케일에 묻혀버리기 일수지만 어떤 방법이 옳은가 아닌가를 말하기 이전에 그의 단순하고 순진함이 먼저 눈에 띄는 사람들에겐 불편하기 그지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지지자나 반대자들 모두에게 제임스 카메론은 모든 사람이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 편견 자체르 충족시켜오는 방식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갔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비교적 과작의 감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의 영화를 대단히 많이 봤다는 착시를 일으키게 하는 원인도 되는 것이다. 이건 그를 어떤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 옳고 어떤 방법은 그르다는 식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팬들과 바낻자 사이의 간극을 점점 벌여놓는 역할을 하기에 그의 영화가 충분히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영화에서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가치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제임스 카메론에 대한 극과 극의 기대치 역시 영화를 읽는 데에 있어 어떤 것을 더 우위에 둘 것인가?의 문제라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기술발전이라는 것을 척도로 영화를 본다 가정하면 그런 방법은 "영화를 읽는다"혹은 "해석한다"는 단어로 설명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바타에 대해 기술적 발전의 결과물로로서 단순히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일거에 묻혀버리는 작금의 사태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차원의 이야기는 하지 말아라"는 것은 막말로 "닥치고 즐감"보다도 더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상대방의 권리를 애초에 박탈하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카메론 역시 이런 점을 교묘히 잘 이용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으나 자신은 정작 그 논란 속에서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의 반대자들의 미지근한 공격들을 그의 열성적 지지자들이 핵폭탄급의 무기로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야말로 제임스 카메론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웅변해주는 것은 아닐까?

2. 몇번 졸긴 했지만 소위 <아바타>에 대한 소회
아바타가 가지고 있는 미덕은 3D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대단히 친절한 영화"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핑계일 수도 있겠으나 중간중간 졸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아바타>가 가지고 있는 그 친절함 때문이랄 수 있을 것이다. 그 친절함이란 것은 까놓고 이야기해서 "어쩌면 내가 예상한 그대로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더 심하게 이야기해서 "제임스 카메론이란 사람은 플롯이란 것에 대한 고민이라는 걸 진지하게 3초 이상 해본 적이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고 보니 그런 생각도 든다. 사실 <아바타>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었던 영화라기 보다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 영화에 가까웠"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음악이로 따지자면 인트로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짐작해낼 수 있다.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는 당엲니 그럴 수 없겠지만 대략 어떤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며 그 외의 좀 더 자세한 것들을 짐작할 수도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한 번 해보도록 하자. "당신은 이미 범인을 알고있는 추리소설을 첫장부터 끝장까지 다 넘겨볼 정도의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가?" 단호하게 이야기하건데 난 그렇지 않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아! 저들 중 누군가는 죽게 되겠구나... 아 둘 중 하난데... 조금 후엔 "아! 당연히 저 사람이 죽겠군..." 뭐 이런 등등의 것들이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1mm도 틀리지 않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존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비평자들이 "내러티브의 빈약함"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엔 문제가 없는 것일까? 과연 다른 부분들은 "3D"이라는 하나의 새로움에 묻혀야만 하는 것인가? 과연 영화의 빈약한 내러티브를 이야기하는 것이 "쉰내나는 노인네들의 꼬장"에 불과한 것인가? 그렇다면 "영화라는 것이 가지는 미덕은 오로지 기술적인 새로움외엔 없는 것인가?" 만일 당신이 이런 질문들에 아주 단호한 대답을 할 수 있다면 그저 그대로의 당신을 받아들일 용의는 있다. 하지만 당신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하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아바타의 진정한 문제는 이 영화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이 영화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죄다 적으로 만든다는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도 알아야할 것이 있다. "이 영화는 당신들이 말하는 정도로 내러티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가 가지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착오에 대해서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아무리 단순화시킨 것이 3D이라는 것의 보조도구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이 영화는 줄거리가 하나도 중요하지도 않고 오로지 이미지만을 남기려는 영화도 아니며 아방가드 영화는 더더욱 아니며 아방가드라는 범주를 뛰어 넘고도 남을 정도의 실험적인 영화도 아니며 헐리우드 영화의 해피 엔딩의 공식을 순순히 따르고 있는 "극영화"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인종주의적 편견 등에 대해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빵점짜리 서사"를 가지고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5분이나 6분 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젖ㅇ도가 아니라 영화의 결말까지도 쉽게 짐작할 수 있으며 그 과정 역시 손발이 오글거리기 그지 없는 영화라는 이야기이다.

아바타를 가지고 21세기 영화의 전범(prototype)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면, 그리고 <아바타> 이후의 모든 영화들이 당분간 그를 따라하려는 것이 하나의 트랜드가 되어버린다면 난 당분간 과감히 영화를 외면할 것이다. 시각적 즐거움만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영화라 한다면 굳이 영화가 아닌 다른 컨텐츠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시각적 즐거움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커다란 축인 서사의 허술함을 비판하려는 사람들을 "냄새나는 꼰대"들로 몰아붙일 요량이라면 앞으로 "시각효과의 신기원을 이뤘다"는 평가가 나오는 모든 영화들에 대해 비판적인 언급은 자제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것을 다 인정한다 하더라도 하도 오글거려 휴대용 가스렌지 위의 오징어같은 느낌이 드는 이 불편함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오글거림에 대해선 앞으로 얼마든지 까대야할 것이다.

2010년 1월 13일 수요일

2010년은 또 뭔데? (개소리들)

1. 꼭 빠마를 하고야 말 것이라는...
워낙 날이 춥기도 하지만 지금 머리를 자르지 않은지 두 달이 되었다. 워낙 머리가 잘 자라지 않는 편이라 그리 많이 티가 나지 않지만 이 추세라면 3월 정도면 뒷머리를 묶어 아주 짧은 꽁지가 생길 정도가 될 것이다. 왜 이러느냐고? 당연히 파마를 하기 위해서지... 평소 머리 가운데가 휑하게 된다면 미련 없이 삭발을 하고 다니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될 날이 오기 전에 머리로 할 수 있는 지랄이란 지랄은 죄다 해보고 싶다는 평소의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요즘 가발이 워낙 잘 나오는데 무슨 걱정인가?라 하실 분이 계시겠지만 잘 아는 누군가를 보면 하이모를 착용하고 있는 관계로 이 추운 날씨에 비니는 물론 점퍼에 달린 후드를 쓰는 것도 조심스러워 칼날과 같은 바람을 얼굴로 막아냐야 하는 괴로움을 겪는 것을 목도한 바, 그럴 바에야 차라리 머리를 밀고 모자를 쓰고 다니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난 절대 내 입으로 그 하이모 청년이 꼰민암 베이시스트라고 절대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새끼는 아마 이 블로그를 알지 못할 것이다. 쩝... 아무튼 3월이 될 때까지...

2. 약속을 꼭 지킬 필요가 있을까?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Left21이라는 새로운 신문이 누군가들에 의해 창간이 되었다 하고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예컨데 신촌지하철역이라든지 홍대입구역이라든지 하는 곳들-그들은 어김없이 나와 선전전을 해댄다. 솔직히 난 그들이 나와 눈을 마주치게 되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그 매체를 주도하는 사람들에 대해 수년 전부터 엄청난 반감을 넘어서는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러나 일찍이 승환 형아가 노래했던가... "슬플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이승환 형아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는 데에 걸린 시간은 단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들이 아직 오지 않은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내게 말을 건 것이다. 인정한다. 내가 도발적이었다. "난 무슨무슨 단체 소속에 무슨무슨 정당 소속이 주도하는 저널리즘이라면 절대 보지 않겠다. 난 그들의 이중성과 배신에 치르 떤다. 그러니 말시키지 말라." 고 했다. 물론 난 레프트21이라는 저널리즘이 그들이 주도하는 것이라는 점은 미리 알고 있었더랬다.

내가 그들을 왜 싫어하는가? 내가 옳은가? 그들이 옳은가?를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난 절대로 당신들과는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그 사이 약속한 사람들이-정확하게는 술을 같이 처먹기로 약속한 그들-왔다. 그런데 자꾸 말을 시키는 것이다. 난 "당신들과 대화할 생각이 없고 더 이상 이야기하면 심한 이야기 나올테니 그만하자!"고 했다. 내가 결코 그들한테 잘하진 않았으나 일행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은 옆에서 제발 우리 일행을 놔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난 더 이상 거기 잡혀있을 수는 없었다. 결론은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하고야 말았다. "XX당에 붙어 먹으니 그렇게 좋은가요?" 솔직히 100% 그들에 대한 내 진심이긴했다. 그 때 그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무 심한 말씀을 하시는군요"라고 말이다. 난 당근 "더 이야기하면 심한 말 나온다고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나요?"라고 했다. 그렇다. 난 한다면 한다. 물론 그 역시 본질은 아니다.

아무튼 이 사건에서 교훈은 두 가지이다. 우선, 티렉스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라도 상대방에게 약속한 일은 한다. 당근 나쁜 일이면 더욱... 그러니 티렉스는 꺼짐 스위치가 없는 연희동 화염방사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두번째는 이미 대화를 거부한 사람에게 "자신은 이성적인 척"하며 쓸 데없이 대화를 거는 것은 좋은 전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소한 나보다 열살은 어려보인 그가 내가 주사위와 민주노동당에게 가지고 있는 "비이성적 적개심"을 무슨 수로 이해할 것이란 말인가... 흔히들 좌차라 불리는 집단들의 문제점은 (나 역시도 그럴 때가 많지만) 아무 상황에서나 자신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점이었다. 그들 집단이 분당 과정에서 어떤 엯할을 했고 그들이 주사위에게 "붙어 먹으며" 어떤 명분을 이야기했는가에 대해서도 안다. 그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그 것이 배신행위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쉽게 자신에게 넘어가지 않을 사람을 상대로 짧은 시간내에 무언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일행이 없었다라도 그들이 나를 설득할 요량이었다면 결국 날을 넘기거나 실패햇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게다가 그 시간대에 홍대입구에 모이는 사람들을 상대로 진보정론지가 어쩌고 한다면 대부분 짜증을 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처음에 누군가가 관여하고 있는 것이라면 안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그 것은 "난 너희들과 이야기를 하지 않을테니 제발 좀 꺼져달라"의 다른 말이었는데 그 것을 못 알아듣고 왜 쓸 데 없이 싸움을 거느냐는 것이다.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쉽게 잊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싸움을 시작하기 전엔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100전 100패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 때 그 사람이 이 걸 보게 된다면 날 다시 파악하고 싸움을 걸어와주기 바란다. 그 전엔 절대 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3. 안드로메다는 어떨까?
그 외에도 할 말이 많았는데 2번을 쓰다 다시 열받다보니 귀찮아졌다. 아무튼 2010년이라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 많은 이들의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가있고 내 어이는 그들에 의해 안드로메다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개념과 누군가들의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갔으며 그들은 안드로메다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지구 못지 않게 안드로메다도 시끄럽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것은 하던 일 계속 잘하자는 것이다. 숫자가 바뀐다고 실제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그냥 음악 열심히 듣던 대로 듣고 읽지도 않는 책 ㅇ릭는 척하며 들고 다니며 삶면 되지 않을까? 아! 올핸 영화를 좀 봐야 할 것 같다. 이미 아바타는 봤으나 1/3 정도는 수면으로 인해 보지 못한 관계로 리뷰 따위는 없을 것이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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