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님 말고 1000곡
136. Carmina Burana-Carl Orff(1935-36)-
독일의 작곡가인 칼 오르프(Carl Orff)이 이 작품을 쓴 것이 1935년에서 1936년 2년에 걸친 기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혹시 이 음반을 소장하고 계신다거나 구매 의사가 있어 검색을 해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클래시컬 음악 중에서도 고대 음악으로 분류된다. 그에는 당연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당연히 여기서 기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닥치고 감상하라는 이야기는 맨 마지막에나 할 말이니 아무트튼 이 작품에 대해 한참을 떠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일단 카르미나 부라나라는 말이 어떤 것을 지칭하는지부터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시작!
Carmina Burana의 영어 뜻은 Songs from Bueren이라고 한다. Burana라는 말은 이탤리의 Bueren지방의 라틴어식 표기라고 한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중세나 그 이전엔 음악이라는 것 혹은 노래라는 것이 시와 따로 구별되지 않는 시기였고 즉 Bueren 지방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발견된 세속시를 바탕으로 완성된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이들 노래 혹은 시들은 대체적으로 네 가지의 내용 혹은 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것은 1) 도덕적 풍자적 내용의 시, 2) 연애시, 3) 술잔치 혹은 좀 더 큰 의미로 유희에 관한 시, 4)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극시라 한다. 칼 오르프는 부아렌의 베네딕트회 수도원에서 발견된 시들 중 24편을 골라 곡으로 만들었으며 이 것이 오늘소개하려하는 카르미나 부라나이다. 클래식 음악에 정통한 사람들 혹은 음악학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 작품이 가지는 돋보이는 음악적 특징은 이전의 화성이나 대위법 등을 무시하고 단선율과 리듬을 중요시하는 작품으로서 최대한 간결하고 단순하게 만든 작품이라는 점이라 한다.
아마 공화국의 인민들이 카르미나 부라나에 익숙한 이유는 나름의 열렬한 지지자들을 보유했던 1981년도 영화 <엑스칼리버>에 이 작품 중 O'fortuna(이 단어를 영어로 표현하면 Wheel of fortune이라 하는데 "운명의 수레바퀴" 정도로 옮기면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엔 같은 이름의 퀴즈쇼가 있기도 하다.)라는 곡이 장엄하게 삽입되면서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라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사실상 영국의 중세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카르미나 부라나를 통해 공화국에선 아서왕 시절의 영국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예는 굳이 무언가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영화 <불의 전차>의 메인 테마가 메달 시상식을 진행하는 동안 흘러나왔다. 그리고 실제로 이 곡은 영국 영화의 주제곡이긴 하지만, 작곡자인 반겔리스는 그리스인 아니던가?
공화국에선 보기 힘들겠지만, 카르미나 부라나의 전 곡이 무대에 올려지는 광경을 보는 것은 커다란 감동을 준다고도 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요.) 카르미나 부라나를 설명할 때 고전주의나 낭만주의의 탈피라는 설명을 많이 하나 그에 대해선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카르미나 부라나가 기록된 시기엔 고전음악 시대에 고착된 기보법과는 다른 방법으로 기록되던 시대일 것이고, 그 당시의 방법들이 후대에 전해진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 당시의 음악과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 사이엔 그 간극을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이 시대의 음악을 지금까지 내려오는 기보법에 의해 표기된 이후의 음악과의 연속선상에서 보려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본다는 이야기이다. 아무튼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로 울림이 있는 곡이니 잘 들어보시도록
참고:런던 올림픽 드립은 나중에 삽입한 것입니다.
2012년 8월 20일 월요일
2012년 8월 7일 화요일
듣거나 말거나 1000곡(135)
아님 말고 1000곡(135)
So called the Beatles medley-2012런던 올림픽을 기념하여-
(언젠가 이 카테고리의 게시물로 올리기 위해 미리 작성했던 것을 일부 첨삭하여 게시하는 것입니다.)
12년 전에 어딘가에 썼던 이 곡들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 부분을 기억나는 대로 옮기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본다. "1968년 조지 마틴이 아닌 필 스펙터와 Let it be 앨범의 작업을 마친 폴 매카트니는 조지 마틴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했다. 조지! 우리는 한 장의 앨범 작업에 즉시 들어갈거에요. 그리고 그 앨범은 마지막이 될 거에요... 라고 말이다." 그렇다. 공식적으로 시장에 릴리즈된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은 "Let it be"이지만 가장 나중에 스튜디오 작업을 끝낸 앨범을 마지막 앨범으로 한다면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은 바로 "Abbey Road"이 될 것이다. 언어권이 다른-예컨데 같은 언어는 아니지만 일본과 한국은 거의 같은 언어권으로 취급된다.- 문화를 한 단계 걸쳐 받아들이게 될 경우 이른바 중간 기착지의 습성을 답슶하게 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일본을 통해 팝음악을 받아들인 부분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보니 이런 경우도 겪게 된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물론 공화국 인민들도 상당히 좋아하긴 하지만- 순위를 정한다거나3대니 5대니 하는 따위의 클래스를 정하는 경우인데, 일본인들은 비틀스의 앨범에도 그런 짓을 하길 즐겨했다. 이른바 "비틀스의 3대 앨범" 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 것인데, White album이라 흔히 불리는 The Beatles 앨범, 그리고 그 유명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그리고 이 앨범이다. 그냥 참고삼아 이야기하자면, 대중음악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기로 유명한 스웨덴을 위시한 북유럽쪽의 인민들은 Revolver 앨범을 가장 선호한다고 알려져있다.(물론 이 것 역시 스웨덴의 비틀스 팬들을 상대로 한 투표의 결과이긴 하다.) 아무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의 비틀스의 앨범에 대한 선호도의 차이는 영국이나 미국의 영향보다는 일본의 영향을 좀 더 크게 받았다는 이야기다.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엔 조금 더 rock and roll에 가까운 곡들이 많이 수록된 앨범에 대한 선호가 높고 북유럽 쪽에선 상당히 어두운 음악들로 가득한 Revolver이나Rubbersoul에 대한 선호가 대단히 높은 등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일종의 문화적 차이로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굳이 객관적으로 어느 앨범이 더 좋으니 마니 그런 거 따지지 말자는 말씀!
한가지 또 덧붙이자면, 비틀매니아라 자부하는 부류에 속하지 않는 비틀스의 팬이나 혹은 비틀스에 대해 대단히 큰 호감을 가지고 있는 대중음악 팬들이 이 브틀스 메들리라 불리는 시퀀스에 대해 그다지 높은 선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체로 두 가지 정도로 예상해 볼 수 있는데 첫째, 흔히들 비틀스의 "명곡"이라고 이야기되는 곡들에 비해 한 곡 한 곡의 스케일이 대단히 작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두번째는 이 메들리를 접하는 사람이 비틀매니아가 아니라면 비틀매닝나들은 느낄 수 있는 팀의 해체를 기정 사실화하고 시작한 스튜디오 작업에서 멤버간의 불화와 비틀스에 대한 애정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느끼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the end에는 그런 폴의 양가적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고 보는 것이 큰 무리가 없다. 아! 물론 이 역시 사람들마다 느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물론 그런 양가적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이른바 비틀스의 명곡들이나 대곡들에 비하자면 대단히 소품에 가까운 곡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가볍게 보지 않을 필요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우리가 흔히 The Beatles medley라 부르는 것은 최초의 Vynil 음반 버전을 기준으로 Abbey Road 앨범의 Side B의 세번째 트랙-즉, Beacose 다음 트랙인 "You never give me your money"-에서 10번째 트랙-히든 트랙인 11번째 트랙 "Her majesty"앞의 트랙-인 "The end"까지의 곡들을 일컫는다. 이 여덟곡을 메들리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이유는 이 여덟 곡이 Vynil 음반 상에서 커트 없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에 따라서는 "Her Majesty"까지를 포함사키기도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그 트랙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위키백과에선 아주 단호하게 Her Majesty는 메들리에서 빼는 과감함을 보이고 있다. 왜 넌 그 곡을 메들리에 포함시키는 것이 합당하다 보느냐?라는 질문을 듣는다면 분명히 Her Majesty의 경우엔 메들리의 에필로그 혹은 앨범 전체의 에필로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곡으로 어차피 The end이라는 장엄한 내용은 물론 곡목 자체도 장엄한 곡으로 앨범이 끝난 후의 커튼 콜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곡이라면 메들리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물론 아님 말고...
물론 나중에 계관시인의 지위를 주느냐 마느냐 하는 논쟁까지 불러왔을 정도의 폴 매카트니의 다양한 행적은 이미 비틀스 시절에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유명한 페퍼 상사 앨범부터 폴은 꾸준히 자신의 곡들을 통해 내러티브의 확장을 시도했다. 페퍼상사에 수록된 폴의 거의 모든 곡들이 그랬고, 그 뒤의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에서도 더 비틀스 앨범의 Honey pie 등의 곡에서도 "아! 이래서 이 사람이 나중에 오페라까지 쓸 수 있게 되었구나"라는 근거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내러티브에 충실한 곡들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메들리의 폴의 곡들에선 그런 폴의내러티브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존의 곡이나 폴의 곡들은 음악의 모티프를 유럽 지역의 민담이나 전설에까지 그 폭을 넓히는 대단히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한다. 아마 이런 지식이 없는 경우엔 조금 재미없는 곡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 인정한다. 하지만 비틀스 메들리를 단순히 소품들의 이어 붙이기로 보기엔 폴과 존의 음악적인 협력과 경쟁의 마지막 장을 엿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리고 마지막 곡이라 할 수 있는 the end를 들으시면 조지와 존 폴의 네마디씩의 기타 솔로의 연결을 들으실 수 있다. 하하하...
So called the Beatles medley-2012런던 올림픽을 기념하여-
(언젠가 이 카테고리의 게시물로 올리기 위해 미리 작성했던 것을 일부 첨삭하여 게시하는 것입니다.)
12년 전에 어딘가에 썼던 이 곡들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 부분을 기억나는 대로 옮기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본다. "1968년 조지 마틴이 아닌 필 스펙터와 Let it be 앨범의 작업을 마친 폴 매카트니는 조지 마틴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했다. 조지! 우리는 한 장의 앨범 작업에 즉시 들어갈거에요. 그리고 그 앨범은 마지막이 될 거에요... 라고 말이다." 그렇다. 공식적으로 시장에 릴리즈된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은 "Let it be"이지만 가장 나중에 스튜디오 작업을 끝낸 앨범을 마지막 앨범으로 한다면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은 바로 "Abbey Road"이 될 것이다. 언어권이 다른-예컨데 같은 언어는 아니지만 일본과 한국은 거의 같은 언어권으로 취급된다.- 문화를 한 단계 걸쳐 받아들이게 될 경우 이른바 중간 기착지의 습성을 답슶하게 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일본을 통해 팝음악을 받아들인 부분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보니 이런 경우도 겪게 된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물론 공화국 인민들도 상당히 좋아하긴 하지만- 순위를 정한다거나3대니 5대니 하는 따위의 클래스를 정하는 경우인데, 일본인들은 비틀스의 앨범에도 그런 짓을 하길 즐겨했다. 이른바 "비틀스의 3대 앨범" 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 것인데, White album이라 흔히 불리는 The Beatles 앨범, 그리고 그 유명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그리고 이 앨범이다. 그냥 참고삼아 이야기하자면, 대중음악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기로 유명한 스웨덴을 위시한 북유럽쪽의 인민들은 Revolver 앨범을 가장 선호한다고 알려져있다.(물론 이 것 역시 스웨덴의 비틀스 팬들을 상대로 한 투표의 결과이긴 하다.) 아무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의 비틀스의 앨범에 대한 선호도의 차이는 영국이나 미국의 영향보다는 일본의 영향을 좀 더 크게 받았다는 이야기다.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엔 조금 더 rock and roll에 가까운 곡들이 많이 수록된 앨범에 대한 선호가 높고 북유럽 쪽에선 상당히 어두운 음악들로 가득한 Revolver이나Rubbersoul에 대한 선호가 대단히 높은 등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일종의 문화적 차이로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굳이 객관적으로 어느 앨범이 더 좋으니 마니 그런 거 따지지 말자는 말씀!
한가지 또 덧붙이자면, 비틀매니아라 자부하는 부류에 속하지 않는 비틀스의 팬이나 혹은 비틀스에 대해 대단히 큰 호감을 가지고 있는 대중음악 팬들이 이 브틀스 메들리라 불리는 시퀀스에 대해 그다지 높은 선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체로 두 가지 정도로 예상해 볼 수 있는데 첫째, 흔히들 비틀스의 "명곡"이라고 이야기되는 곡들에 비해 한 곡 한 곡의 스케일이 대단히 작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두번째는 이 메들리를 접하는 사람이 비틀매니아가 아니라면 비틀매닝나들은 느낄 수 있는 팀의 해체를 기정 사실화하고 시작한 스튜디오 작업에서 멤버간의 불화와 비틀스에 대한 애정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느끼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the end에는 그런 폴의 양가적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고 보는 것이 큰 무리가 없다. 아! 물론 이 역시 사람들마다 느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물론 그런 양가적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이른바 비틀스의 명곡들이나 대곡들에 비하자면 대단히 소품에 가까운 곡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가볍게 보지 않을 필요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우리가 흔히 The Beatles medley라 부르는 것은 최초의 Vynil 음반 버전을 기준으로 Abbey Road 앨범의 Side B의 세번째 트랙-즉, Beacose 다음 트랙인 "You never give me your money"-에서 10번째 트랙-히든 트랙인 11번째 트랙 "Her majesty"앞의 트랙-인 "The end"까지의 곡들을 일컫는다. 이 여덟곡을 메들리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이유는 이 여덟 곡이 Vynil 음반 상에서 커트 없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에 따라서는 "Her Majesty"까지를 포함사키기도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그 트랙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위키백과에선 아주 단호하게 Her Majesty는 메들리에서 빼는 과감함을 보이고 있다. 왜 넌 그 곡을 메들리에 포함시키는 것이 합당하다 보느냐?라는 질문을 듣는다면 분명히 Her Majesty의 경우엔 메들리의 에필로그 혹은 앨범 전체의 에필로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곡으로 어차피 The end이라는 장엄한 내용은 물론 곡목 자체도 장엄한 곡으로 앨범이 끝난 후의 커튼 콜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곡이라면 메들리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물론 아님 말고...
물론 나중에 계관시인의 지위를 주느냐 마느냐 하는 논쟁까지 불러왔을 정도의 폴 매카트니의 다양한 행적은 이미 비틀스 시절에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유명한 페퍼 상사 앨범부터 폴은 꾸준히 자신의 곡들을 통해 내러티브의 확장을 시도했다. 페퍼상사에 수록된 폴의 거의 모든 곡들이 그랬고, 그 뒤의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에서도 더 비틀스 앨범의 Honey pie 등의 곡에서도 "아! 이래서 이 사람이 나중에 오페라까지 쓸 수 있게 되었구나"라는 근거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내러티브에 충실한 곡들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메들리의 폴의 곡들에선 그런 폴의내러티브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존의 곡이나 폴의 곡들은 음악의 모티프를 유럽 지역의 민담이나 전설에까지 그 폭을 넓히는 대단히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한다. 아마 이런 지식이 없는 경우엔 조금 재미없는 곡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 인정한다. 하지만 비틀스 메들리를 단순히 소품들의 이어 붙이기로 보기엔 폴과 존의 음악적인 협력과 경쟁의 마지막 장을 엿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리고 마지막 곡이라 할 수 있는 the end를 들으시면 조지와 존 폴의 네마디씩의 기타 솔로의 연결을 들으실 수 있다. 하하하...
2012년 8월 6일 월요일
우리가 싸이의 성공에 대해 잊어선 안될 것들(Soundless Music)
1. 싸이는 절대적으로 저평가된 아티스트다.
잘 기억할지는 모르지만, 싸이가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린 것은 조PD를 통해서였다. 조PD의 두번째 앨범의 인트로에는 여러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중에 Psycho라는 이름을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가 박재상 혹은 2001년 이후로는 싸이(Psy)으로 알려진 오늘 내가 말하려는 그 사람이다. 당시 휠을 잡고 있던(이제는 이 표현에 대략 익숙해지셨으리라...) 이정현이 보컬로 참여한 것으로 화제가 되었던 Fever이라는 곡이 수록된 바로 그 앨범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대단히 늦은 나이인 스물 다섯에 데뷔한(그 이듬해인 2001년에 싸이가 데뷔하지 않았던가?) 싸이는 이미 전에 조PD와 비슷한 힙합 프로듀서들에게는 이름이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리고 싸이 역시 프로듀서였다. 싸이가 지난 해에 발매한 앨범을 구매하신 분들이라면 싸이가 어떤 상황에서 가수로 데뷔하게 된지는 아실 것이라 믿는다. 아주 짧게 설명하자면, 자신의 곡을 다른 아티스트들이 선호하지 않아 아니면 말고 식으로 자신이 자신의 곡을 발표하고 프로듀싱도 했다는 이야기...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이미 11년 전에 그는 대단한 성공을 거뒀더랬다. 그 것도 그냥 성공 정도가 아니라 당시 싸이의 데뷔와 대중적인 성공은 거의 "사회적인 현상"에 가까웄다. 2001년 당시 서울의-당시에 지방엔 가본 적이 없어서- 서울에서 거리를 향해 스피커를 틀어놓고 영업을 하는 거의 모든 영업장에서 그의 노래가 나왔고 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싸이의 춤을 추지 않는 연예인들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충격적인 데뷔를 했던 싸이에게 붙었던 수식어는 "엽기 가수"였다. 싸이의 성공이 사회적인 현상으로까지 여겨질 정도의 막강한 임팩트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싸이의 그러한 성공의 요인을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 찾으려고 노력했고 결국 그런 시도를 통해 얻어진 결론은 당시 유행하던 "엽기"라는 단어였다. 그리고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11년 전의 싸이의 기록적인 성공에 대해선 음악적 평가 자체를 삼가(?)고 계신 중이다. 과연 그에 대한 이런 평가가 공정한 일일까? 글쎄... 내 생각은 다르다. 내 생각은 이 꼭지의 제목과 같다. 싸이는 음악적으로 절대적으로 저평가되었다.
2. 오빤 강남 스타일
지금 싸이의 비디오 클립이 공화국을 넘어 미국에서까지 화제가 되고있다는 팩트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고... 자꾸 공화국의 언론들은 이 비디오 클립에 나오는 싸이의 춤과 1994년 당시 전 세계를 엿먹였던 "마카레나"를 비교하려고 한다. 일단 한 가지 의문, 과연 마카레나의 세계적인 성공에 음악적인 요인은 없었을까? 자 봅시다. 물론 마카레나가 음악적으로 대단한가?라고 내게 묻는다면 "그런 걸 뭘 굳이 음악적으로 보려고 하냐?"라고 답할테지만, 하나의 단서조항이 붙는다. "대단히 쉽고 보편성을 가진 멜로디의 곡이긴 하다."는 것! 쉽고 보편적이라는 것이 음악적 완성도를 높게 평가학 수 있는 근거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쉽고 보편적인 멜로디라는 것은 당연히 음악적인 요인이다. 마카레나의 성공이 오로지 예의 마카레나 춤외엔 없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사실 대단히 오만할 수 있는, 혹은 무지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멜로디가 귀에 꽂히지 않는데 쉽고 따라하기 쉬운 머리어깨무릎발... 과 같은 동작 때문에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싸이의 비디오 클립이 미국에서 화제가 된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홍철의 새로운 업그레이드된 저질 댄스도 싸이가 줄곧 춰대는 말의 걸음걸이를 모방한 듯한 춤도 싸이의 비디오 클립을 대단히 돋보이게 하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물론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중반부에 포미닛에 현아가 나오는 순간 아저씨들의 환상이 실현된다고 할 수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단히 애석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이 것만으로 싸이의 비디오 클립이 화제가 되고있다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아마, 미국이나 유럽의 댄스 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란 곡이 클럽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주류 댄스 음악"의 틀에 대단히 가까운 음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것은 단지 멜로디의 측면에서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대단히 세련된 멜로디에 덧붙여 단지 MPC만으로 저렇게 대단히 정교한 비트가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리듬 파트도 굉장히 세련된 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결론일아 할만한 것은...
강남 스타일 한 곡에 대해 음악적 분석의 장을 이양기하자는 것이 이 게물의 목적이 이니다. 문제는 이런 것이다. "왜 굳이 싸이와 같은 류의 성공에 대해 음악적 분석은 뒷전이거나 아예 안중에도 없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무리 비디오 클립에 대한 인기가 높다 하더라도 일단 비디오 클립 역시 대중 음악의 컨텐츠인 이상 음악적인 부분에서 요인을 찾고 그래도 정 성공 요인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을 때 다른 것에서 성공의 원인을 찾는 것은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적 요인이 가장 뒤로 밀리고 신 K=Pop 열풍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소리를 한다는 것은 음악이라는 필드에서 음악을 조연으로 혹은 스튜디오의 세트 정도로 만들어버리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도대체 누가 음악을 하고 싶어하겠나 말이다. 물론 컨텐츠가 비평담론을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평담론이 컨텐츠를 견인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카이에 뒤 시네마 출신들이 누벨 바그를 주도하고 주벨 바그가 까이에 뒤 씨네마의 황금기를 견인하고 하는 식의 상호 관계를 가졌던 것이 그 증거다. 롤링 스톤과 대중음악 전반의 관계도 그렇다. 스스로 일하기 귀찮은 비평가가 되려하면 편한가? 그게 사는건가?
잘 기억할지는 모르지만, 싸이가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린 것은 조PD를 통해서였다. 조PD의 두번째 앨범의 인트로에는 여러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중에 Psycho라는 이름을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가 박재상 혹은 2001년 이후로는 싸이(Psy)으로 알려진 오늘 내가 말하려는 그 사람이다. 당시 휠을 잡고 있던(이제는 이 표현에 대략 익숙해지셨으리라...) 이정현이 보컬로 참여한 것으로 화제가 되었던 Fever이라는 곡이 수록된 바로 그 앨범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대단히 늦은 나이인 스물 다섯에 데뷔한(그 이듬해인 2001년에 싸이가 데뷔하지 않았던가?) 싸이는 이미 전에 조PD와 비슷한 힙합 프로듀서들에게는 이름이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리고 싸이 역시 프로듀서였다. 싸이가 지난 해에 발매한 앨범을 구매하신 분들이라면 싸이가 어떤 상황에서 가수로 데뷔하게 된지는 아실 것이라 믿는다. 아주 짧게 설명하자면, 자신의 곡을 다른 아티스트들이 선호하지 않아 아니면 말고 식으로 자신이 자신의 곡을 발표하고 프로듀싱도 했다는 이야기...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이미 11년 전에 그는 대단한 성공을 거뒀더랬다. 그 것도 그냥 성공 정도가 아니라 당시 싸이의 데뷔와 대중적인 성공은 거의 "사회적인 현상"에 가까웄다. 2001년 당시 서울의-당시에 지방엔 가본 적이 없어서- 서울에서 거리를 향해 스피커를 틀어놓고 영업을 하는 거의 모든 영업장에서 그의 노래가 나왔고 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싸이의 춤을 추지 않는 연예인들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충격적인 데뷔를 했던 싸이에게 붙었던 수식어는 "엽기 가수"였다. 싸이의 성공이 사회적인 현상으로까지 여겨질 정도의 막강한 임팩트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싸이의 그러한 성공의 요인을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 찾으려고 노력했고 결국 그런 시도를 통해 얻어진 결론은 당시 유행하던 "엽기"라는 단어였다. 그리고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11년 전의 싸이의 기록적인 성공에 대해선 음악적 평가 자체를 삼가(?)고 계신 중이다. 과연 그에 대한 이런 평가가 공정한 일일까? 글쎄... 내 생각은 다르다. 내 생각은 이 꼭지의 제목과 같다. 싸이는 음악적으로 절대적으로 저평가되었다.
2. 오빤 강남 스타일
지금 싸이의 비디오 클립이 공화국을 넘어 미국에서까지 화제가 되고있다는 팩트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고... 자꾸 공화국의 언론들은 이 비디오 클립에 나오는 싸이의 춤과 1994년 당시 전 세계를 엿먹였던 "마카레나"를 비교하려고 한다. 일단 한 가지 의문, 과연 마카레나의 세계적인 성공에 음악적인 요인은 없었을까? 자 봅시다. 물론 마카레나가 음악적으로 대단한가?라고 내게 묻는다면 "그런 걸 뭘 굳이 음악적으로 보려고 하냐?"라고 답할테지만, 하나의 단서조항이 붙는다. "대단히 쉽고 보편성을 가진 멜로디의 곡이긴 하다."는 것! 쉽고 보편적이라는 것이 음악적 완성도를 높게 평가학 수 있는 근거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쉽고 보편적인 멜로디라는 것은 당연히 음악적인 요인이다. 마카레나의 성공이 오로지 예의 마카레나 춤외엔 없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사실 대단히 오만할 수 있는, 혹은 무지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멜로디가 귀에 꽂히지 않는데 쉽고 따라하기 쉬운 머리어깨무릎발... 과 같은 동작 때문에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싸이의 비디오 클립이 미국에서 화제가 된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홍철의 새로운 업그레이드된 저질 댄스도 싸이가 줄곧 춰대는 말의 걸음걸이를 모방한 듯한 춤도 싸이의 비디오 클립을 대단히 돋보이게 하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물론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중반부에 포미닛에 현아가 나오는 순간 아저씨들의 환상이 실현된다고 할 수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단히 애석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이 것만으로 싸이의 비디오 클립이 화제가 되고있다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아마, 미국이나 유럽의 댄스 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란 곡이 클럽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주류 댄스 음악"의 틀에 대단히 가까운 음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것은 단지 멜로디의 측면에서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대단히 세련된 멜로디에 덧붙여 단지 MPC만으로 저렇게 대단히 정교한 비트가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리듬 파트도 굉장히 세련된 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결론일아 할만한 것은...
강남 스타일 한 곡에 대해 음악적 분석의 장을 이양기하자는 것이 이 게물의 목적이 이니다. 문제는 이런 것이다. "왜 굳이 싸이와 같은 류의 성공에 대해 음악적 분석은 뒷전이거나 아예 안중에도 없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무리 비디오 클립에 대한 인기가 높다 하더라도 일단 비디오 클립 역시 대중 음악의 컨텐츠인 이상 음악적인 부분에서 요인을 찾고 그래도 정 성공 요인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을 때 다른 것에서 성공의 원인을 찾는 것은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적 요인이 가장 뒤로 밀리고 신 K=Pop 열풍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소리를 한다는 것은 음악이라는 필드에서 음악을 조연으로 혹은 스튜디오의 세트 정도로 만들어버리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도대체 누가 음악을 하고 싶어하겠나 말이다. 물론 컨텐츠가 비평담론을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평담론이 컨텐츠를 견인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카이에 뒤 시네마 출신들이 누벨 바그를 주도하고 주벨 바그가 까이에 뒤 씨네마의 황금기를 견인하고 하는 식의 상호 관계를 가졌던 것이 그 증거다. 롤링 스톤과 대중음악 전반의 관계도 그렇다. 스스로 일하기 귀찮은 비평가가 되려하면 편한가? 그게 사는건가?
2012년 8월 4일 토요일
아직까지 티아라 사태를 통해 나오지 않은 이야기(Soundless Music)
1. 일단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부터
아직까지 알려진 것만으로도 2004년 SG워너비라는 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이 팀의 앨범이 5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지 못하면 이 바닥을 떠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당시 엠넷 미디어 지금은 코어 콘텐츠 미디어의 김광수는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다. 그 어느 동네보다도 갑과 을의 관계에서 절대적으로 갑의 힘이 대단한 쇼비지니스 계에서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아이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자신의 이야기만을 일방적으로 뿌려대면서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반박성의 이야기가 돌면 그에 대한 사실 반박이 아니라 내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는 전부 자신의 위치나 신분을 속인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들을 필요가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 한 명의 멤버가 자신에게 와서 사과했다는 이야기도 자신의 일방적인 이야기 아니던가? 자신은 티아라라는 이름의 팀에 소속된 아이들이 내분이 있을 때 한 명의 희생양을 찾아 그를 조지는 위치나 권한을 부여받기 이전에 그들 사이에 내분이 있었다면 그에 개입하여 되도록이면 원만하게 해결해야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티아라라는 팀은 그가 언제나 주장하듯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스타" 아니던가? 그들이 자생적으로 결성된 팀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내분 역시 그들의 책임인 동시에 김광수의 책임인 것이다. 일단 누구나 할 수 있고 했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2. 이젠 내 이야기를 좀 합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현재 공화국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자 하는 아이들에게서 "음악을 하는 것은 즐거움이라는 생각" 혹은 "음악 그 자체를 하는 즐거움"을 빼앗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어린 폴 매카트니는 존에게 작곡을 하는 법을 가르쳐주며 "작곡을 하지 못하면 매니저들에게 휘둘릴 수 있다.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곡을 써야 한다."리는 대사를 한다는 것은 이미 두 번 더 이야기하면 대낮에 총을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 되어버렸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너무도 신선한 것인 양 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을 하는 즐거움과 곡을 쓰는 법을 안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이야기다. 물론 공화국의 아이돌들에서도 "이번 앨범엔 우리의 자작곡이 들어가 있다"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요즘 곡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는 일반적이다. 난 이 둘의 차이가 그다지 크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곡을 쓰는 법은 어떤 이에겐 정말 자연스럽지만 어떤 이에겐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배움이 없이는 되지 않는 일이기도 하며 어떤 이에겐 태어나서부터의 재능이지만 어떤 이에겐 그렇지 않으며 곡을 언제부터 쓸 수 있었는가가 음악을 하는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 큰 차이를 제공한다고 보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많은 아이들이 찌질거리듯이 "진정한 가수"니 "진정한 뮤지션"이니 하는 단어를 써서 어떤 음악은 품위가 있고 우아하며 어떤 음악은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지금 공화국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서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아이돌을 만들어내는 에이전트들이 아이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곡을 쓰건 연주를 하건 노래를 하건 기본적으로 그 것이 재미있는 일이 아니라 "대단히 힘드는 일"이 되게 할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슨 일을 하건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을 자조적인 자세와 더불어 대단한 우월감을 가지고도 말하는 공화국의 이중성에 대해서다 시언 급하고 싶진 않다. 물론 남들보다 경쟁이 훨씬 심한 필드에 있으면서 남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노력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씁쓸하긴 하지만 당연한 일이기도 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노력을 해야한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굉장히 재미있는 일"인 음악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그 아이들은 모를 수 있거나 심지어 음악이라는 것이 나를 괴롭히기도 하는 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라는 이야기이다.
사실 아주 간단핟.그토록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 음악이지만 그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음악이 싫어지거나 귀찮고 곁에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자주 생긴다. 이 경우에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럴 경우엔 그저 잠시 음악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으면 된다. 이 것이 음악이 귀찮아지고 싫어진 문제를 자연스레 해결해준다. 하지만, 공화국의 아이돌 시스템에 의해 키워진 아이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 자신들의 에이전시가 정한 스케줄이 있고 그 것이 자신의 사이클과 맞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사이클이 아닌 회사의 스케줄을 따라야 한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음악이라는 대중예술을 하는 아이들에게 회사원의 삶을 강요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과 조직의 일원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같은 패턴의 삶을 강요해선 곤란하다. 예술적인 작업이라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을 때 가장 효율적인 작업을 할 수 있으며 만족스런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이 부러워하지만 항상 힘들 수밖에 없는 예술이라는 작업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일하고 싶을 때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그들의 유일한 특권일 수도 있고 그 특권이 그들의 성과의 바탕이 될 수 있다.
그냥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까지 알려진 것만으로도 2004년 SG워너비라는 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이 팀의 앨범이 5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지 못하면 이 바닥을 떠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당시 엠넷 미디어 지금은 코어 콘텐츠 미디어의 김광수는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다. 그 어느 동네보다도 갑과 을의 관계에서 절대적으로 갑의 힘이 대단한 쇼비지니스 계에서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아이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자신의 이야기만을 일방적으로 뿌려대면서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반박성의 이야기가 돌면 그에 대한 사실 반박이 아니라 내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는 전부 자신의 위치나 신분을 속인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들을 필요가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 한 명의 멤버가 자신에게 와서 사과했다는 이야기도 자신의 일방적인 이야기 아니던가? 자신은 티아라라는 이름의 팀에 소속된 아이들이 내분이 있을 때 한 명의 희생양을 찾아 그를 조지는 위치나 권한을 부여받기 이전에 그들 사이에 내분이 있었다면 그에 개입하여 되도록이면 원만하게 해결해야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티아라라는 팀은 그가 언제나 주장하듯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스타" 아니던가? 그들이 자생적으로 결성된 팀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내분 역시 그들의 책임인 동시에 김광수의 책임인 것이다. 일단 누구나 할 수 있고 했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2. 이젠 내 이야기를 좀 합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현재 공화국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자 하는 아이들에게서 "음악을 하는 것은 즐거움이라는 생각" 혹은 "음악 그 자체를 하는 즐거움"을 빼앗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
인터넷에서 많은 아이들이 찌질거리듯이 "진정한 가수"니 "진정한 뮤지션"이니 하는 단어를 써서 어떤 음악은 품위가 있고 우아하며 어떤 음악은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지금 공화국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서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아이돌을 만들어내는 에이전트들이 아이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곡을 쓰건 연주를 하건 노래를 하건 기본적으로 그 것이 재미있는 일이 아니라 "대단히 힘드는 일"이 되게 할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슨 일을 하건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을 자조적인 자세와 더불어 대단한 우월감을 가지고도 말하는 공화국의 이중성에 대해서다 시언 급하고 싶진 않다. 물론 남들보다 경쟁이 훨씬 심한 필드에 있으면서 남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노력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씁쓸하긴 하지만 당연한 일이기도 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노력을 해야한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굉장히 재미있는 일"인 음악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그 아이들은 모를 수 있거나 심지어 음악이라는 것이 나를 괴롭히기도 하는 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라는 이야기이다.
사실 아주 간단핟.그토록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 음악이지만 그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음악이 싫어지거나 귀찮고 곁에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자주 생긴다. 이 경우에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럴 경우엔 그저 잠시 음악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으면 된다. 이 것이 음악이 귀찮아지고 싫어진 문제를 자연스레 해결해준다. 하지만, 공화국의 아이돌 시스템에 의해 키워진 아이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 자신들의 에이전시가 정한 스케줄이 있고 그 것이 자신의 사이클과 맞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사이클이 아닌 회사의 스케줄을 따라야 한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음악이라는 대중예술을 하는 아이들에게 회사원의 삶을 강요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과 조직의 일원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같은 패턴의 삶을 강요해선 곤란하다. 예술적인 작업이라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을 때 가장 효율적인 작업을 할 수 있으며 만족스런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이 부러워하지만 항상 힘들 수밖에 없는 예술이라는 작업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일하고 싶을 때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그들의 유일한 특권일 수도 있고 그 특권이 그들의 성과의 바탕이 될 수 있다.
그냥 안타까운 일이다.
2012년 8월 1일 수요일
그래도 공화국 내에서 지속되어야 할 것들(개소리들)
1. 항상 들어온 이야기들
1987년에도 그랬다. "지금은 정권을 바꾸는 것이 큰 목표다. 이 대의에 성공하면 너희들의 운신의 폭이 넓어질 공간을 확보해 주겠다." 그 두에 정확하게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때는 정권교체는 실패했고 운신의 폭이 넓어지기는 개뿔...이었다. 1992년엔 "범만주 단일 후보로 대옫 단결"을 하자며 범 만주 단일 후보라 지들이 지치칭하던 김대중에게 모든 것을 올인하지 않는 새끼들은 "미제의 첩자"라고 까지 이야기하는 주둥이 지랄들을 해댔다. 졸지에 나는 김대중에 의해 "주사파"도 되었다가, 주사파들에 의해 "미제의 첩자"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 때도 정권교체라는 그들의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대의"는 이루지 못했고 김대중도 지들도 "좆됐다." 1997년 대선에서 드디어 김대중이 당선되고 과거부터 김대중에게 목을 메던 주사파들이 국회에 나름대로 많은 수가 입성하기도 했는데, 문제는 이미 그들은 무장해제한 상태로 김대중과 그의 당의 일원이 된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을 그 뒤로도 15년 씩이나 지난 지금에도 듣는다. "아! 씨발 일단 박그네 댙총령 되는 것은 저지해야하지 않겠냐?" 그리고 "그리 되기만 한다면 너거들도 활동하기 편해진다. 내 좆을 걸고 맹세한다." 왜 내게 늬들 맹세에 내 정치적 지향을 접어야 하니? 이런 이야기는 소용 없다. 20년 전에 주사위들에 의해 "미제의 첩자"로 몰렸다면 20년 후엔 "박그네 첩자"로 몰면 그만일테니...
2. 진부한 이야기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아니고 잡소리
정말 대단히 힘든 이야기다. 25년간 같은 이야기들을 해대며 발목을 잡으려 노력했던 자들이 있었다면, 그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25년간 독자적인 정치적 행동-즉 독자후보 전술-을 이야기했던 측에도 어떤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진보정당 활동 혹은 진보정당 운동을 하고 있는 김종철 같은 활동가들은 그들이 20년 전 PD의 틀에 머물러 있다고 하지 않는다. 물론 내부적으로 구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PD이라는 단어가 틔미하는 바인 "인민민주주의 혁명"에 의한 정권들이 무너짐과 동시에 더 이상 그 단어는 유효하지 않거나 집착해서는 안되는 단어였다. 하지만, 그 것은 선언적인 의미에 불고할 수도 있다. 과거 민중민주 혹은 인민민주주의 계열의 과거 진학련이나 진정추 혹은 전학특연 출신들이 모여 시작한 정당은 확실히 그들의 과거 활동방식과 무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처음 창당했을 무렵을 회고하자면 학생운동 조직에서 곧바로 학연 등의 인맥으로 민주노동당의 활동가가 된 사람들은 가장 익숙한 방향의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민주당 창당 당시 당원을 모집하뎐-자발적으로 추후에 가입한 사람들이 대거 생기기 전엔- 방법은 주로 대인 면접에 가까운 방법이었다. 차창당 과정에서 활발히 당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자신이 학생운동을 하던 혹은 노동운동을 하던 당시의 지인들에게 입당원서를 내밀고 그 자리에서 사인을 받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파벌"이라는 책을 보게 되면 알겠지만, 애초에 NL 계열의 활동가들이 민조노동당에 참여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들을 대거 받아들이게 된 것 역시 학생운동 시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정당운동에 참여하기로 했던 NL 계열은 그들 중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애초-앞에서의 설명과 연결되는 이야기지만- NL의 주류들은 독자적인 정당도 대선에서의 독자적인 후보도 필요가 없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2002년에서 2003년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NL 주류들이 대거 당에 들어오게 되는데 그 과정이 바로 여러분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경기 동부연합"과 "광주 전남 연합"이 "용맹스럽게(?)" 당에 입성하던 시기였다. 사실 그들이 특정 지역부터 장악하기 시작해 중앙당까지 장악하던 일련의 과정은 이미 학생운동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익숙하게 당하던 과정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지나친 자책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당운동은 과거의 학생운동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면 좀 더 강력하게 그들이 당을 장악하는 것을 저지했어야 한다. 그리고 결국 진보신당으로 갈아탈 것이었다면 분당도 그 당시에 이뤄졌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회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애초부터 진보정당 운동을 기획하고 참여했던 사람들은 "보수정당의 지지자들과 NL주사계열의 진부한 공격"에 당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진보정당 운동의 초창기부터 활동해온 사람들에게 "반성"이 필요하다는 언사는 유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미 90년대 초 더 이상 PD이라는 말을 하지 말자는 그 시간부터 역설적으로 과거 PD의 틀에 갇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강산이 변했을 20년 동안 과거의 이야기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 정돋가 덧붙여진 것이 현실이라면 더 이상 그들의 주장엔 현재성 혹은 동시대성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야말로 대중적인 언어를 사용해 이야기하자면 "더 이상 이념이 유효하지 않은 시대에 이념의 과잉상태"에 있던 집단이 차뤄야할 대가를 치루는 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가를 치루기만 하고 아무런 소득이 없다면 조금 억울하지 않겠나? 위의 세 문단은 그냥 사실 그대로 인정하는 쪽으로 하고 이젠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전술에 대해 생각해 봐야할 시간이 되었다고 본다.
3. 대통령 선거를 어찌하리요?
사실 위에서 한 이야기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라는 편이 옳을 것이다. 주사의들에게 당하고 산 것이 한 두해의 일이며 노빠나 민주당 지지자들이 호구라 생각한 것이 어디 한 두해의 일이었다는 말인가? 그래서 뭐? 뭘 어쩌라고? 갑자기 홍대지하철역 앞에서 다함께의 활동가와 말싸움을 하던 2010년 초의 일이 떠오른다. 그 때 그 친구는 "선거가 다가오는데 선거연합을 하지 않을거냐?"라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걸 왜 꼭 해야 하는건데?"라는 내 대답은 당연히 언쟁을 2라운드에 이르게 만드는 도화선이 되었고... 그러나 일행에 의해 내 전의는 한풀 꺾였고 술처먹으러 가느라 그 활동가와 더 이상 논쟁은 붙지 못했다는 전설이 있다. 항상 그렇지만, 선거가 있기 때문에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기 위해" 선거연대를 해야한다는 그들의 논리엔 그다지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선거연대를 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연대의 상대로 생각하는 집단 혹은 정치세력과 공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접점이 있는가? 있다면 그 것은 무엇인가? 그 최소한의 접점이라는 것이 다른 많은 차이점들을 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선에서 어느 정도 덮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따져 연대의 득이 실보다 크다는 정세분석의 도출이다.
그 후의 문제는 전술적인 문제인 관계로 연대를 성사시킨 혹은 합의한 후에 구체화할 수 있는 것이라 본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문제는 선결 조건이다. 그리고 어느 선까지를 양보할 것이고 어느 선 이상은 양보할 수 없는가를 정할 기준이다.만일 민주당의 후보가 되든 안철수가 되든 그 쪽의 후보의 선거운동을 해주러 다니면서 "아! 니미! 이번엔 제발 새누리당 찍지 마삼!"이런 소리나 하고 다닐거라면 선거연대라든지 좀 더 거창한 단어로 범야권 단일후보라든지 하는 정치적 수사 자체가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노동부 장관 자리를 달라든지, 혹은 복지 관계 부처의 장관 자리를 달라든지 하는 식의 구체적인 약속이라도 없는데 머릿수나 채워주고 자빠질 일이라면 그런 빌어먹을 선거연대를 하는 것은 과거 전국체전할 때 고등학생들이 매스게임에 동원되던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 새악이긴 하나 선거라는 정치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타협의 최하선이 정리되지 않는다면 연대라는 말 자체를 쓰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미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무원칙적이고 탈이념적인 선거연대에 목을 멘 나머지 지금의 통합 진보당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더라도 절대다수의 반이명박 주의자-그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말이다.-들에게 독자후보를 내는 것조차 "시건방을 떠는 일" 정도로 보이기에 딱 좋은 환경을 알아저 조성했다 .물론 통합진보당의 주류라 할 수 있는 구 민주노동당의 당권파들을 보면 이런 상황이 조성된 것 자체가 그다지 이상하진 않겠지만, 문제는 지금의 통합진보당이 과연 독자적인 정당으로서 대통령 선거에서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단히 부정적인 대답 자체가 좌파들이 대선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지 자체를 축소시켰다는 점이다. 사싱상 지금 상황에서 현재의 통합진보당이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할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라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물론 "진보당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런 현실이 오히려 좌파들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따위의 낭만적 언사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이유도 없고 그래선 더욱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개인적인 제안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4. 명랑한 선거를 맞이하려면?
지금까지 횡설수설 그지 발싸개같은 게시물을 싸지르고도 아직까지 무슨 멋있는 말을 해야하긴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기도 하고 "이런 답 없는 문제를 왜 싸지르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럴수록 기본으로 돌아간다면 의외의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 마오도 항상 계급투쟁에 대해 생각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복지의 문제건 경제민주화의 문제건 (개인적인 결론으로는) 계급간 세력의 불균형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문제는 조금 좁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먼저 노동계급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 이전에 어떤 지점에서 연대라는 틀을 구성할 것인지를 찾는 것이 기본이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이라 생각된다. 지금 당장 어떤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좌파들이 대선에 개입할 지점이 바로 노동계급의 세력확장과 노동계급의 연대라는 대단히 추상적인 것이 아닐까? 빌어먹을 선거...
1987년에도 그랬다. "지금은 정권을 바꾸는 것이 큰 목표다. 이 대의에 성공하면 너희들의 운신의 폭이 넓어질 공간을 확보해 주겠다." 그 두에 정확하게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때는 정권교체는 실패했고 운신의 폭이 넓어지기는 개뿔...이었다. 1992년엔 "범만주 단일 후보로 대옫 단결"을 하자며 범 만주 단일 후보라 지들이 지치칭하던 김대중에게 모든 것을 올인하지 않는 새끼들은 "미제의 첩자"라고 까지 이야기하는 주둥이 지랄들을 해댔다. 졸지에 나는 김대중에 의해 "주사파"도 되었다가, 주사파들에 의해 "미제의 첩자"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 때도 정권교체라는 그들의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대의"는 이루지 못했고 김대중도 지들도 "좆됐다." 1997년 대선에서 드디어 김대중이 당선되고 과거부터 김대중에게 목을 메던 주사파들이 국회에 나름대로 많은 수가 입성하기도 했는데, 문제는 이미 그들은 무장해제한 상태로 김대중과 그의 당의 일원이 된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을 그 뒤로도 15년 씩이나 지난 지금에도 듣는다. "아! 씨발 일단 박그네 댙총령 되는 것은 저지해야하지 않겠냐?" 그리고 "그리 되기만 한다면 너거들도 활동하기 편해진다. 내 좆을 걸고 맹세한다." 왜 내게 늬들 맹세에 내 정치적 지향을 접어야 하니? 이런 이야기는 소용 없다. 20년 전에 주사위들에 의해 "미제의 첩자"로 몰렸다면 20년 후엔 "박그네 첩자"로 몰면 그만일테니...
2. 진부한 이야기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아니고 잡소리
정말 대단히 힘든 이야기다. 25년간 같은 이야기들을 해대며 발목을 잡으려 노력했던 자들이 있었다면, 그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25년간 독자적인 정치적 행동-즉 독자후보 전술-을 이야기했던 측에도 어떤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진보정당 활동 혹은 진보정당 운동을 하고 있는 김종철 같은 활동가들은 그들이 20년 전 PD의 틀에 머물러 있다고 하지 않는다. 물론 내부적으로 구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PD이라는 단어가 틔미하는 바인 "인민민주주의 혁명"에 의한 정권들이 무너짐과 동시에 더 이상 그 단어는 유효하지 않거나 집착해서는 안되는 단어였다. 하지만, 그 것은 선언적인 의미에 불고할 수도 있다. 과거 민중민주 혹은 인민민주주의 계열의 과거 진학련이나 진정추 혹은 전학특연 출신들이 모여 시작한 정당은 확실히 그들의 과거 활동방식과 무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처음 창당했을 무렵을 회고하자면 학생운동 조직에서 곧바로 학연 등의 인맥으로 민주노동당의 활동가가 된 사람들은 가장 익숙한 방향의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민주당 창당 당시 당원을 모집하뎐-자발적으로 추후에 가입한 사람들이 대거 생기기 전엔- 방법은 주로 대인 면접에 가까운 방법이었다. 차창당 과정에서 활발히 당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자신이 학생운동을 하던 혹은 노동운동을 하던 당시의 지인들에게 입당원서를 내밀고 그 자리에서 사인을 받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파벌"이라는 책을 보게 되면 알겠지만, 애초에 NL 계열의 활동가들이 민조노동당에 참여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들을 대거 받아들이게 된 것 역시 학생운동 시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정당운동에 참여하기로 했던 NL 계열은 그들 중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애초-앞에서의 설명과 연결되는 이야기지만- NL의 주류들은 독자적인 정당도 대선에서의 독자적인 후보도 필요가 없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2002년에서 2003년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NL 주류들이 대거 당에 들어오게 되는데 그 과정이 바로 여러분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경기 동부연합"과 "광주 전남 연합"이 "용맹스럽게(?)" 당에 입성하던 시기였다. 사실 그들이 특정 지역부터 장악하기 시작해 중앙당까지 장악하던 일련의 과정은 이미 학생운동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익숙하게 당하던 과정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지나친 자책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당운동은 과거의 학생운동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면 좀 더 강력하게 그들이 당을 장악하는 것을 저지했어야 한다. 그리고 결국 진보신당으로 갈아탈 것이었다면 분당도 그 당시에 이뤄졌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회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애초부터 진보정당 운동을 기획하고 참여했던 사람들은 "보수정당의 지지자들과 NL주사계열의 진부한 공격"에 당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진보정당 운동의 초창기부터 활동해온 사람들에게 "반성"이 필요하다는 언사는 유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미 90년대 초 더 이상 PD이라는 말을 하지 말자는 그 시간부터 역설적으로 과거 PD의 틀에 갇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강산이 변했을 20년 동안 과거의 이야기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 정돋가 덧붙여진 것이 현실이라면 더 이상 그들의 주장엔 현재성 혹은 동시대성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야말로 대중적인 언어를 사용해 이야기하자면 "더 이상 이념이 유효하지 않은 시대에 이념의 과잉상태"에 있던 집단이 차뤄야할 대가를 치루는 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가를 치루기만 하고 아무런 소득이 없다면 조금 억울하지 않겠나? 위의 세 문단은 그냥 사실 그대로 인정하는 쪽으로 하고 이젠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전술에 대해 생각해 봐야할 시간이 되었다고 본다.
3. 대통령 선거를 어찌하리요?
사실 위에서 한 이야기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라는 편이 옳을 것이다. 주사의들에게 당하고 산 것이 한 두해의 일이며 노빠나 민주당 지지자들이 호구라 생각한 것이 어디 한 두해의 일이었다는 말인가? 그래서 뭐? 뭘 어쩌라고? 갑자기 홍대지하철역 앞에서 다함께의 활동가와 말싸움을 하던 2010년 초의 일이 떠오른다. 그 때 그 친구는 "선거가 다가오는데 선거연합을 하지 않을거냐?"라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걸 왜 꼭 해야 하는건데?"라는 내 대답은 당연히 언쟁을 2라운드에 이르게 만드는 도화선이 되었고... 그러나 일행에 의해 내 전의는 한풀 꺾였고 술처먹으러 가느라 그 활동가와 더 이상 논쟁은 붙지 못했다는 전설이 있다. 항상 그렇지만, 선거가 있기 때문에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기 위해" 선거연대를 해야한다는 그들의 논리엔 그다지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선거연대를 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연대의 상대로 생각하는 집단 혹은 정치세력과 공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접점이 있는가? 있다면 그 것은 무엇인가? 그 최소한의 접점이라는 것이 다른 많은 차이점들을 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선에서 어느 정도 덮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따져 연대의 득이 실보다 크다는 정세분석의 도출이다.
그 후의 문제는 전술적인 문제인 관계로 연대를 성사시킨 혹은 합의한 후에 구체화할 수 있는 것이라 본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문제는 선결 조건이다. 그리고 어느 선까지를 양보할 것이고 어느 선 이상은 양보할 수 없는가를 정할 기준이다.만일 민주당의 후보가 되든 안철수가 되든 그 쪽의 후보의 선거운동을 해주러 다니면서 "아! 니미! 이번엔 제발 새누리당 찍지 마삼!"이런 소리나 하고 다닐거라면 선거연대라든지 좀 더 거창한 단어로 범야권 단일후보라든지 하는 정치적 수사 자체가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노동부 장관 자리를 달라든지, 혹은 복지 관계 부처의 장관 자리를 달라든지 하는 식의 구체적인 약속이라도 없는데 머릿수나 채워주고 자빠질 일이라면 그런 빌어먹을 선거연대를 하는 것은 과거 전국체전할 때 고등학생들이 매스게임에 동원되던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 새악이긴 하나 선거라는 정치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타협의 최하선이 정리되지 않는다면 연대라는 말 자체를 쓰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미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무원칙적이고 탈이념적인 선거연대에 목을 멘 나머지 지금의 통합 진보당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더라도 절대다수의 반이명박 주의자-그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말이다.-들에게 독자후보를 내는 것조차 "시건방을 떠는 일" 정도로 보이기에 딱 좋은 환경을 알아저 조성했다 .물론 통합진보당의 주류라 할 수 있는 구 민주노동당의 당권파들을 보면 이런 상황이 조성된 것 자체가 그다지 이상하진 않겠지만, 문제는 지금의 통합진보당이 과연 독자적인 정당으로서 대통령 선거에서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단히 부정적인 대답 자체가 좌파들이 대선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지 자체를 축소시켰다는 점이다. 사싱상 지금 상황에서 현재의 통합진보당이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할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라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물론 "진보당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런 현실이 오히려 좌파들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따위의 낭만적 언사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이유도 없고 그래선 더욱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개인적인 제안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4. 명랑한 선거를 맞이하려면?
지금까지 횡설수설 그지 발싸개같은 게시물을 싸지르고도 아직까지 무슨 멋있는 말을 해야하긴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기도 하고 "이런 답 없는 문제를 왜 싸지르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럴수록 기본으로 돌아간다면 의외의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 마오도 항상 계급투쟁에 대해 생각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복지의 문제건 경제민주화의 문제건 (개인적인 결론으로는) 계급간 세력의 불균형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문제는 조금 좁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먼저 노동계급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 이전에 어떤 지점에서 연대라는 틀을 구성할 것인지를 찾는 것이 기본이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이라 생각된다. 지금 당장 어떤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좌파들이 대선에 개입할 지점이 바로 노동계급의 세력확장과 노동계급의 연대라는 대단히 추상적인 것이 아닐까? 빌어먹을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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