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한계인간군은장효조와 최동원의 죽음, 너바나의 베스트 앨범, 그리고 R.E.M.의 해체라는 작금의 이 상서로운 일들의 연쇄를 두고 이제 낭만은 없다고 선언했다. 낭만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으나 지금과는 굉장히 달랐던 90년대 후반의 인사동 일대를 뒤지며 맛있는 음식과 밀주를 들이키며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한계인간과 나누며 늦은 시간까지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던 종류의 비생산적 일들을 낭만이라 정의할 수 있다면 빌어먹을 2011년은 이미 낭만이 없어진 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꿈극장도 검은 안식도 소리정원도 이젠 현재진행형의 일반명사가 아니라 과거완료형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을 낭만의 종언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밀주라 해서 대단한 것을 떠올리시진 말라! 그냥 지금은인사동에도얼마 남지 않았지만 인사동의 오래된 전통찻집에서는 직접 담은 과일주등을 파는 곳이 있었다. 그 것을 우리는 밀주라 일컬었다. 그리고 그 맛은 밀주가 아닌 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면 약오르시려나?
그냥 보내기는 억울하고 그렇다고 지금 시점에서 이들이 서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고 해서 울고불고 한다면 심하게 오글거릴 일이라 30년, 정확하게는 31년만에 해체한이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는데 결론적으로 위키피디아를 쳐보면, 혹은 구글링을 해보면다 나올 이들의 프로파일에 대해긴 이야기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음악적으로는 마이클 스타이프에 의해 American Punk Rock이 Alteernative Rock이라는 장르로 재편되었다는 이야기라든지 대학교 교내방송을 통해 전국적인-급기야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비교적 양심적인 신문사들의 수준을 넘지 않는 것일테니 심히 가오 떨어지는 일이라할 것이다.한계인간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그가쓴 "낭만은 끝났다"는 문장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Alternative의 조상인 이들을보내며 해야할 이야기 중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이 "낭만"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야기는 1991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대학이라는 곳은 갈수록 흥미를 잃게 만들고 있었으나 딱히 그 곳을 떠날 정도로 용기가 있거나 그 정도로 싫진 않았던 시기였다. 물론 그 다음 해 학교라는 공간에서 그렇게 많은 일이 터질 줄 알았다면 그렇게 무기력하진 않았을 것이다. 1991년 1학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 강경대는 빌어먹을 전경 새끼들의 쇠파이프에 맞아 저 세상으로 갔고 그 뒤로 전남대생 한 명이(이름이 얼핏 기억나나 틀리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 정도로...) 분신이라는 방법으로 유명을 달리 했고 강경대의 죽음 이후에 이어지던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시위가 계속되던 중 내가 전경들에게 쫓기던 을지로와충무로가 견결되는 도로의 바로 옆 블럭에서 김귀정이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그 때 대학을 다니던 사람이라면 섣불리 "혁명의 달콤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내 손에 의해 혁명이 다가올 것이란 생각을 충분히 할만한 상황이라 판단하고 있었고 그런 역사의 대오에서 이탈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역사상 처음으로 물에 최루액과 형광용액이 들어간 살수차가 처음 등장했을 정도로 치열했던 1991년은-당연히 당시에 윗옷을 두벌 가지고 다니는 것은 적들에 대한 일종의 예의이기도 했다.-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뭐 아름다운 이야기씩이나 된다고 그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겠는가? 누군가에겐 1991년 늦봄이 추억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추억이니 어쩌니 했으면 하는 자그마한 바람이 있다. 그 후로는 급기야 소비에트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무거워지는 이야기들만 들렸을 뿐이니 여지껏 장독의 맨 밑에 숨어있던 맹독성의 자그마한 항아리 하나를 개봉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2학기는 시작되고 여전히 우울하기 짝이 없고 심지어 술도 맛없는(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이상한 현상까지 벌어지지 않았던가...
지금은 없어졌지만 1989년 6월의 어느날 서울광진구(당시는 성동구)에 위치했던 S 모 초등학교 동창인 L모와 함께 대학로의 그 유명한 MTV이라는 곳을 알게된 후로 모든 것이 귀찮고 심지어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아지고 결정적으로 대인관계를 일종의 게임처럼 풀어나갈 수 없을 때엔 그 곳에서 당시 3000원 하던 병맥주 하나를 시켜놓고-지금도 기억나는 그 이름은 스타우트였다.- 청순한 긴 생머리를 자랑하는 기타치고 노래하는 밴드 형들에게 꼽사리 껴서 담배도 같이 피우고 미친듯이...까지는 아니고 적당한 수준의 헤드뱅잉을 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사실 거기 오는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기껏해야 맥주 두 병을 마시면서 12시에 문을 여는 MTV에서 밤 11시까지 시간을 보내는 인간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즈음 어머니 생신 무렵이었으니 대략 11월 초순이었던 것 같다. 최소한 나를 때리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했던 형 한 명이 내게 테입을 전해주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메탈은 아니지만 한 번 들어봐봐 뭔가 남는 것이 있을 거다."
그 형도 아는 형으로부터 어렵사리 얻은 미국에서 비행기 타고온 CD를 오리지널 테입으로 만든 것인데 내가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카피했다면서 특유의 담배 쩐내를 내게 풍기며 테입을 전해줬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난
"형 제가 돈이 없어 형 맥주 한 병 더 사드릴 수는 없지만(그 곳은 선불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형에 대한 사랑을 과도하게 느끼고 있는 것 아시죠?"
"닥치고 잘 듣기나 해..."
그 앨범이 바로 R.E.M.의 Automatic for the people이었고 그 앨범이 발매된 것이 1991년 10월 초였으니 당시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감상할 기회를 가진 것이다. 물론 그런 행운이 인생에서 항상 나와 함께 했던 것은 아니지만...
"Everybody hurts" 이 단순하기 짝이 없고 심지어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정직한 연주에 아주 소박한 오케스트레이션이 가미된그 곡을 듣고난 R.E.M.이라는 팀을 그리고 그들의 프런트맨이었던 마이클 스타이프를 동경하지 않을수 없었다. 혁명이 저만치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그에 대한 분노건 아니면 더 이상 맹목적인 애정을 쏟을 대상이 없어진 것에 대한 회한이건 술을 처먹으며 R.E.M.의 음악을 듣거나 할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분명히 다시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1991년과 1992년을 거치며 지금도 심하게 앓고있는 "냉소주의"라는 병을 떨치고는 살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분명히 말하건데 아마도 그 당시에 R.E.M.의 "Everybody hurts"이 없었다면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런 보물을 손에 넣었다는 것을 동생에겐 말하지 않은 것을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사과하지만, 그 때는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해줄 것이라 믿는다.
정말 한계인간의 말대로 이제 낭만은 없어진 것일까?
R.E.M.의 해체라는 것으로 그런 큰 담론을 꺼낼 수 있는 것일까?
최소한 1990년대라는 시기는 이제 내게서 거의 완벽하게 사라져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Everybody hurts 요 곡은 과도하게 많이 들었을테니 다른 곡을 들어보시길...
이 곡은 작성자 권한으로 소스코드를 제공하지 않는단다.
빌어먹을!!!!
http://youtu.be/xQN7A6Vl1H4
2011년 9월 26일 월요일
2011년 9월 20일 화요일
듣거나 말거나 1000곡(128)
아님 말고 1000곡(128)
128. The Freinds of Mr. Cairo-Jon and Vangelis-
이 곡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앞서 몇가지 던져보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다. 우선, 이제 더 이상 연주력을 가진 Synthesizer 연주자는 사라진 것인가? 라는 점이다. 신서사이저라는 악기는 처음 팝음악 신에 도입되었을 때를 회상해본다면 현재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보편적인 악기가 되었고, 심지어 곡 작업을 하면서 신서사이저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를 찾는 일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보편적인 악기가 되었다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과연 신서사이저가 보편적이 되었다고 해서 신서사이저의 쓰임이 더 효율적이 되었는가?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신서사이저 연주자들의 연주력이 과연 신서사이저가 도입되어 사용되던 처창기에 비해 월등해진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선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힌다.
질문 2라 할 수 있는 것은 좀 더 본질적일 수 있는 이야기인데, 과연 신서사이저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것과 통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인데, 신서사이저와 여타의 건반악기. 특히나 피아노,는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가? 꼭 피아노를 칠 줄 알아야 신서사이저를 다룰 수 있는가? 이 이야기는 신서사이저를 대중음악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와도 연관된 문제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질문이기 하나, 이에 대해선 두 사람의 전혀 상반된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을 대신하려 한다. 우선 반겔리스의 경우엔 "피아노를 전혀 다룰 줄 올라도 신서아이저를 사용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고 릭 웨이크먼이나 키스 에머슨의 경우엔 "자신의 클래식 피아노에 대한 학습이 신서아이저 연주자가 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냥 사족을 달자면, 하몬드 오르간이나 파으프 오르간과는 달리 신서사이저의 핵심은 모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퀀서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있다고 보는 것이 내 견해라는 이야기.,..
이런 구질구질하며 허섭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반겔리스 파파사나시우라는 신서사이저의 대가를 여러분들께 소개하고자 함이다. 이미 알고 있으니 소개 따위는 필요 없다고? 당연하다. 공화국에서 문맹이 아닌 이상 반겔리스를 모르는 일은 대단히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를 모르는 것이 죄는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반겔리스 파파사나시우(Evangelis Papathanassiou)라는 사람이 위에서 지저분하게 이야기한 신서사이저라는 악기의 대가 중의 대가로 꼽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대가, yes의 보컬리스트로 유명한 존 앤더슨이 있다. 존 앤더슨 역시 두 말하면 입만 아픈 British Rock Scene의 불세출의 보컬리스트지만, 70년대의 그 험난한 rock scene을 거쳐오며 다른 보컬리스트들은 누리지 못한 독특한 위치를 누린 인물이다. 어떤 부분에 보컬리스트의 음악적 가치를 두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존 앤더슨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보컬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가에 속한다는 것은 하나의 fact으로 받아들여야하는 인물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에반겔리스 파파사나시우와 존 앤더슨이 처음 함께 작업하기로 결심을 한 것은 존이 처음으로 YES을 탈퇴했던 시기인 1979년으로 올라간다. 아! 물론 애석하게도 이들은 더 이상 Jon and Vangelis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그 시기는 존 앤더슨인 예스를 떠나고 예스는 전설적인 테크노 듀오인 버글스의 죠프리 다운스와 후에 예스의 프로듀서로 자신의 음악적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트래버 혼-트레버 레빈과 혼돈하지 말 것!-을 통째로(?) 받아들여, 이미 여러차례 밝혔듯 개인적으로는 예스의 최고 앨범으로 평가하는 "Drama"를 위한 작업에 돌입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두 명의 대가는 1980년에 그들의 첫번째 앨범인 "Short Stones"을 발매하게 된다. 물론 그들의 활동시기를 1979년에서 1991년으로 이야기하는 데에는 1980년 그들의 정규앨범이 나오기 전 해에 "I hear you now"이라는 타이틀의 싱글을 발매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당신들이 처죽기 전에 반드시 듣고 죽어야할 128번째의 곡은 그들의 두번째 앨범인 "The friends of Mr. Cairo"(1981)의 동명의 타이틀 곡이다. 만일 "작품성도 인정받고 싶고 대중적으로도 성공할만한 곡"을 쓰고 싶은 작곡가가 있다면 무조건 이 곡에 대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착실하게 분석하라는 말을 자신있게 권해주고 싶을만큼 이 곡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정도로 좋은 곡이다. 대중적으로도 작품의 측면에서도 성공하려면 동시에 갖춰야할 몇가지 욧소가 있는데 이 곡은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곡이라 할 것이다. 전문가라 불리는 혹은 스스로를 칭하는 사람마다 그 반드시 갖춰야할 요소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의견이 있을테고 반드시 그 것이 일치하진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사가 가지는 서사성의 완벽함, 가사가 가지는 서사성을 받춰줄 수 있는 곡의 형식적 구성, 마지막으로 보컬과 그 외의 인스트루먼트들을 동시에 지칭할 수 있는 "연주력"이 갖춰진다면 작품이나 인지도라는 두 가지의 측면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것은 개인적 견해다. 아니면 말고...
12분 11초에 달하는 이 대곡은-물론 대곡이라는 것이 곡의 연주시간만으로 이야기할 수있는 부분은 아니다. 당연히!-가상의 영화속의 대화를 중신으로 곡의 파트가 바뀌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우선 도입부에 이 곡이, 그리고 이 곡 속의 영화가 어떻게 전개되어갈지를 암시하는 첫번째 대사들이 나온 다음, 베이스 스케일과 함께 곡의 도입부로 들어간다. 곡의 전반부를 지배하는 베이스의 스케일은 존 앤더슨의 보컬과 Paralell하게 진행되며 지나치게 단순하지도 지나치게 난해해자도 않은-반겔리스의 솔로 앨범들이 이 음반이 나오기 전엔 서구의 대중음악 음반 중 가장 난해한 작품에 속했던 것에 비한다면 이는 놀라운 변화라 할 것이다.- 편곡과 yes의 보컬로 대중에게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있으나 대중음악의 mainstream과는 이질적인 존 앤더슨의 보컬 역시 yes에서의 보컬에 비해선 대단히 대중적인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다.
하지만 12분 11초라는 곡의 연주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둘의 chemistry는 기대한 것 이상이다. 닐 션과 얀 해머의 션$해머 프로젝트가 저니의 음반이나 얀 해머의 솔로 음반보다도 더 본격적인 작품성을 추구했던 것에 비하면 (물론 상업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나) Jon & Vangelis의 프로젝트는 자신들의 본래 작업보다 훠씬 더 대중적이고 직설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결코 유치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그러나 실상 이 곡이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곡에서 들을 수 있는 그들의 연주력 보다는 곡의 구성이다. 이 곡은 특이하게도 도입부에서 전개 그리고 발전으로 연결되다가 발전부의 변형이 한 번 더 연주된 후 대단원이 없이 그 상태에서 곧바로 심하게 하강해버리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곡 안의 영화 혹은 곡 자체에서 미스터 카이로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언급 등은 생략한 채 결국 곡의 종결을 맞이하게 된다. 이 것은 가사 뿐 아니라 이 곡 안에서 대단히 유용하게 사용되는 보이스 트랙으로 곡을 끝내며 미스터 카이로의 대사가 결국 영사기의 테입이 결말을 들려주지 못한 채, 끝까지 감기며 결국 미스터 카이로의 마지막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생략한 채 곡의 종결을 마무리한다. 앞서 뭔가 휠을 잡고 싶은 작곡가는 이 곡을 철저하게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했으나, 이 곡의 구성이나 편곡 방식 등을 그대로 따라하게 되면 거덜날 수도 있을 것이다. 12분 11초의 긴 시간을 이토록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도 없이 타이트한 구성을 통해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은 보통의 능력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여러분들은 곡의 마지막에서 테입이 끝까지 감기는 것을 듣게 되는 마지막 순간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아님 말고...
뱀발> 보노소년님께서 존 & 반겔리스의 궁합 또는 파트너쉽이 기가막힌 것 같다 하신 말씀에 나는 이런 저질 답변을 드렸다. "그들은 곡 작업은 철저하게 둘이 공동으로 존의 작사에 대해선 반겔리스가 절대 관여하지 않고 반겔리스의 편곡에 대해선 존이 절대 관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철저하게 계산된 분업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이 최상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비결"이라고... 솔직히 좀 허섭한 답변이긴 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핵심엔 어느 정도 접근한 답변이었다는 생각이다.
128. The Freinds of Mr. Cairo-Jon and Vangelis-
이 곡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앞서 몇가지 던져보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다. 우선, 이제 더 이상 연주력을 가진 Synthesizer 연주자는 사라진 것인가? 라는 점이다. 신서사이저라는 악기는 처음 팝음악 신에 도입되었을 때를 회상해본다면 현재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보편적인 악기가 되었고, 심지어 곡 작업을 하면서 신서사이저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를 찾는 일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보편적인 악기가 되었다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과연 신서사이저가 보편적이 되었다고 해서 신서사이저의 쓰임이 더 효율적이 되었는가?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신서사이저 연주자들의 연주력이 과연 신서사이저가 도입되어 사용되던 처창기에 비해 월등해진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선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힌다.
질문 2라 할 수 있는 것은 좀 더 본질적일 수 있는 이야기인데, 과연 신서사이저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것과 통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인데, 신서사이저와 여타의 건반악기. 특히나 피아노,는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가? 꼭 피아노를 칠 줄 알아야 신서사이저를 다룰 수 있는가? 이 이야기는 신서사이저를 대중음악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와도 연관된 문제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질문이기 하나, 이에 대해선 두 사람의 전혀 상반된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을 대신하려 한다. 우선 반겔리스의 경우엔 "피아노를 전혀 다룰 줄 올라도 신서아이저를 사용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고 릭 웨이크먼이나 키스 에머슨의 경우엔 "자신의 클래식 피아노에 대한 학습이 신서아이저 연주자가 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냥 사족을 달자면, 하몬드 오르간이나 파으프 오르간과는 달리 신서사이저의 핵심은 모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퀀서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있다고 보는 것이 내 견해라는 이야기.,..
이런 구질구질하며 허섭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반겔리스 파파사나시우라는 신서사이저의 대가를 여러분들께 소개하고자 함이다. 이미 알고 있으니 소개 따위는 필요 없다고? 당연하다. 공화국에서 문맹이 아닌 이상 반겔리스를 모르는 일은 대단히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를 모르는 것이 죄는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반겔리스 파파사나시우(Evangelis Papathanassiou)라는 사람이 위에서 지저분하게 이야기한 신서사이저라는 악기의 대가 중의 대가로 꼽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대가, yes의 보컬리스트로 유명한 존 앤더슨이 있다. 존 앤더슨 역시 두 말하면 입만 아픈 British Rock Scene의 불세출의 보컬리스트지만, 70년대의 그 험난한 rock scene을 거쳐오며 다른 보컬리스트들은 누리지 못한 독특한 위치를 누린 인물이다. 어떤 부분에 보컬리스트의 음악적 가치를 두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존 앤더슨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보컬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가에 속한다는 것은 하나의 fact으로 받아들여야하는 인물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에반겔리스 파파사나시우와 존 앤더슨이 처음 함께 작업하기로 결심을 한 것은 존이 처음으로 YES을 탈퇴했던 시기인 1979년으로 올라간다. 아! 물론 애석하게도 이들은 더 이상 Jon and Vangelis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그 시기는 존 앤더슨인 예스를 떠나고 예스는 전설적인 테크노 듀오인 버글스의 죠프리 다운스와 후에 예스의 프로듀서로 자신의 음악적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트래버 혼-트레버 레빈과 혼돈하지 말 것!-을 통째로(?) 받아들여, 이미 여러차례 밝혔듯 개인적으로는 예스의 최고 앨범으로 평가하는 "Drama"를 위한 작업에 돌입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두 명의 대가는 1980년에 그들의 첫번째 앨범인 "Short Stones"을 발매하게 된다. 물론 그들의 활동시기를 1979년에서 1991년으로 이야기하는 데에는 1980년 그들의 정규앨범이 나오기 전 해에 "I hear you now"이라는 타이틀의 싱글을 발매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당신들이 처죽기 전에 반드시 듣고 죽어야할 128번째의 곡은 그들의 두번째 앨범인 "The friends of Mr. Cairo"(1981)의 동명의 타이틀 곡이다. 만일 "작품성도 인정받고 싶고 대중적으로도 성공할만한 곡"을 쓰고 싶은 작곡가가 있다면 무조건 이 곡에 대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착실하게 분석하라는 말을 자신있게 권해주고 싶을만큼 이 곡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정도로 좋은 곡이다. 대중적으로도 작품의 측면에서도 성공하려면 동시에 갖춰야할 몇가지 욧소가 있는데 이 곡은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곡이라 할 것이다. 전문가라 불리는 혹은 스스로를 칭하는 사람마다 그 반드시 갖춰야할 요소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의견이 있을테고 반드시 그 것이 일치하진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사가 가지는 서사성의 완벽함, 가사가 가지는 서사성을 받춰줄 수 있는 곡의 형식적 구성, 마지막으로 보컬과 그 외의 인스트루먼트들을 동시에 지칭할 수 있는 "연주력"이 갖춰진다면 작품이나 인지도라는 두 가지의 측면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것은 개인적 견해다. 아니면 말고...
12분 11초에 달하는 이 대곡은-물론 대곡이라는 것이 곡의 연주시간만으로 이야기할 수있는 부분은 아니다. 당연히!-가상의 영화속의 대화를 중신으로 곡의 파트가 바뀌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우선 도입부에 이 곡이, 그리고 이 곡 속의 영화가 어떻게 전개되어갈지를 암시하는 첫번째 대사들이 나온 다음, 베이스 스케일과 함께 곡의 도입부로 들어간다. 곡의 전반부를 지배하는 베이스의 스케일은 존 앤더슨의 보컬과 Paralell하게 진행되며 지나치게 단순하지도 지나치게 난해해자도 않은-반겔리스의 솔로 앨범들이 이 음반이 나오기 전엔 서구의 대중음악 음반 중 가장 난해한 작품에 속했던 것에 비한다면 이는 놀라운 변화라 할 것이다.- 편곡과 yes의 보컬로 대중에게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있으나 대중음악의 mainstream과는 이질적인 존 앤더슨의 보컬 역시 yes에서의 보컬에 비해선 대단히 대중적인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다.
하지만 12분 11초라는 곡의 연주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둘의 chemistry는 기대한 것 이상이다. 닐 션과 얀 해머의 션$해머 프로젝트가 저니의 음반이나 얀 해머의 솔로 음반보다도 더 본격적인 작품성을 추구했던 것에 비하면 (물론 상업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나) Jon & Vangelis의 프로젝트는 자신들의 본래 작업보다 훠씬 더 대중적이고 직설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결코 유치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그러나 실상 이 곡이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곡에서 들을 수 있는 그들의 연주력 보다는 곡의 구성이다. 이 곡은 특이하게도 도입부에서 전개 그리고 발전으로 연결되다가 발전부의 변형이 한 번 더 연주된 후 대단원이 없이 그 상태에서 곧바로 심하게 하강해버리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곡 안의 영화 혹은 곡 자체에서 미스터 카이로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언급 등은 생략한 채 결국 곡의 종결을 맞이하게 된다. 이 것은 가사 뿐 아니라 이 곡 안에서 대단히 유용하게 사용되는 보이스 트랙으로 곡을 끝내며 미스터 카이로의 대사가 결국 영사기의 테입이 결말을 들려주지 못한 채, 끝까지 감기며 결국 미스터 카이로의 마지막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생략한 채 곡의 종결을 마무리한다. 앞서 뭔가 휠을 잡고 싶은 작곡가는 이 곡을 철저하게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했으나, 이 곡의 구성이나 편곡 방식 등을 그대로 따라하게 되면 거덜날 수도 있을 것이다. 12분 11초의 긴 시간을 이토록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도 없이 타이트한 구성을 통해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은 보통의 능력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여러분들은 곡의 마지막에서 테입이 끝까지 감기는 것을 듣게 되는 마지막 순간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아님 말고...
뱀발> 보노소년님께서 존 & 반겔리스의 궁합 또는 파트너쉽이 기가막힌 것 같다 하신 말씀에 나는 이런 저질 답변을 드렸다. "그들은 곡 작업은 철저하게 둘이 공동으로 존의 작사에 대해선 반겔리스가 절대 관여하지 않고 반겔리스의 편곡에 대해선 존이 절대 관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철저하게 계산된 분업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이 최상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비결"이라고... 솔직히 좀 허섭한 답변이긴 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핵심엔 어느 정도 접근한 답변이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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