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7일 화요일

As good as possible







이런 입에 발린듯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익숙한 일은 절대 아니지만 이런 경우엔 입에 발린 소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마커스 밀러의 몬테 카를로 재즈 페스티벌 실황 앨범과 같은 음반을 만났을 때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최소한 대가라는 이름을 듣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찬사 외엔 딱히 더 이상 생각나는 표현이 없고 그 이상의 표현을 할 능력도 되지 않음에 혀를 깨물고 죽는 편이 낫다는 생각도 해볼 정도로 이 음반은 재즈 퓨전이라는 장르의 실황 공연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을 때 최고라는 수사를 쓰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될지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 라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1959년 생인 마커스 밀러가 벌써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최고라는 수식어가 절대 아깝지 않을 정도의 활약을 보여온 것ㅇ르 생각하면 어쩌면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라 하고싶은 이들도 있겠지만 이 앨범이 가지는 의미는 여태까지의 마커스의 실력과는 조금 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좀 상관없는 듯한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한다. 항상 주장하기를 "베이스와 드럼은 대중음악에 있어, 특히나 밴드의 음악에서는, 전체 음악의 8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지껏 남들에겐 밝히지 않은 또 다른 소신이 하나 있다. "자니치게 뛰어난 베이시스트는 일종의 계륵과 같은 역할을 한다. 베이시스트의 여량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베이스는 멜로디 파트를 담당하는 악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으의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인물이 바로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마커스 밀러였다. 한마디로 마커스 밀러라는 베이시스트는 잘한다는 단어를 뛰어넘는 위대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누구도 자신과 같이 작업을 하던 마커스 밀러가 어느날 홀연히 사라진다 할지라도 그를 도저히 원망하거나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그가 자신과 함께해준 시간에 대해 뮤즈에게 감사홰야할 따름인 것이다. 그 누구보다 특별한 베이시스트를 대하는 태도는 이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도, 데이빗 샌본도, 루더 밴더로스도 그들의 이름만으로 재즈 퓨전 신이 벌벌 떨지 모르지만 마커스 밀러와 계속해서 함께 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위에 한 이야기는 5일장이나 7일장에 내다 팔아버리시든지 안 사가면 거져 줄 수도 있는 별 것 아닌 이야기라는 점을 참고하시길 바라며 이야기 계속 하겠다. 이 앨범은 몬테 카를로 재즈 페스티벌에서 마커스 밀러가 자신의 밴드와 함께 "재즈를 위한 브라스 팀"이 아닌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던 공연의 실황 앨범이다. 마커스 밀러가 자신의 베이스 연주력만 가지고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 프로듀서로서의 부인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도 그의 장수에 기여했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마커스 밀러가 오케스트레이션에도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엄청난 음반 되시겠다. 참고 삼아 말씀드리면 지금 몬테 카를로 재즈 페스티벌은 이미 휠을 잡고있는 캐나다의 몬테레이 재즈 페스티벌의 수준에 필적할 정도의 수준에 올라와 있으며 몬테 카를로 거주자들이 돈이 많은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스케일 면에서는 몬테 카를로가 몬테레이를 앞선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반드시 구입해서 음반을 들으실 것을 유도하기 위해 자세한 이야기는 되도록 피하는 선에서 음반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스튜디오 앨범이 아니고 실황 앨범인 관계로 트랙 하나의 길이가 대단히 길며 그로 인해 한 장의 음반에 겨우 아홉 곡밖에 수록되어있지 않으나 "이 것이 마커스 밀러의 음악"임을 느끼시는 데엔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째서 편곡자로서의 마커스의 능력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지도 아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아마 이로 인해 엔지니어가 거의 피똥을 쌀만큼 고생을 했으리라 확신하지만) 음질이 스튜디오 앨범에 거의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는 점이다. 아무튼 이 게시물의 제목처럼 As good as possible이라는 표현이 합당한 음반이니 부디 구입 후 들어보시고 좀 더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되길 간곡히 바라나이다.




1. Blast! (Marcus Miller)

2. So What (Miles Davis)

3. State Of Mind (Raul S. Midon)

4. I Loves You Porgy (George & Ira Gershwin)

5. Amandla (Marcus Miller)

6. I'm Glad There Is You (Jimmy Dorsey, Paul Mertz)

7. Medley : O Mio Babbino Caro / Mas Que Nada (Jorge Ben)

8. Your Amazing Grace (Marcus Miller)

9. Strange Fruit (Lewis Allen)

2010년 7월 20일 화요일

명랑사회는 언제쯤이나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당당하게 올 것인가?! (개소리들)

죽으나 사나 명랑사회를 향한 열정 하나로 오늘도 철야로 주무시는 여러분들께 오랜만에 명랑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고자 한다. 안타깝게도 그간 명랑하지 못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있던 바, 그 점에 대해서 왈가왈부 지랄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간 명랑하지 못했던 것은 순전히 내 잘못이고 그걸 가지고 억울하니 마음이 아프니 하고 지랄해대는 것은 전혀 명랑하지 않은 일이기에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분들에게 사과를 드리는 선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뭐 내가 그러겠다는데 뭐라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거니와...

1. K씨는 꼰대가 되려는가?
그렇다. 오늘도 명랑사회의 필수적 전제가 되는 "명랑 뒷다마"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K씨 그는 이른바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블로거가 아니고 설치형 블로거를 사용하는 블로거들 중 가장 유명한 블로거이자 스스로 좌파이며 사회주이자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러나 티렉스는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의 블로그에 가지 않는다. 요즘 나름대로 K씨에 못지 않은 스타 블로거이자 평론가인 J씨와의 설전으로 나름 인터넷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중인데, 좀 과하다 싶은 표현으로 그를 "명랑사회읮 적"들 중 한 명이라는 표현을 써 명랑사회와 유리된 삶을 쓸쓸히 살다가 더욱 더 쓸쓸히 가시길 원하는 이유는 제목처럼 그는 꼰대가 되어가려 노력중이고 자신의 꼰대스러운 노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생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름 자신이 과거 드럼을 쳤었고 지금도 퍼커션을 다루는 것을 굉장한 자부심으로 간직하고 살아가는데 자신이 하비 메이슨급의 드러머로 착각하고 사시는 것은 그의 자유지만 과거 그의 블로그에서 거슬렸던 것은 자신이 대딩때 연주하던 곡들ㅇ티나 70~80년대의 공화국 Rock음악에 대한 애착과 편애가 지나치셔서 그의 그 "선생질"은 "아 씨발 내가 한참 팝송 듣던 때 음악들은 졸라 좋았는데 요즘엔 들을 노래가 없어... 그래서 요즘 음악은 안들어"라고 말씀하시는 미사리파 꼰대들의 그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그가 좋다고 생각하는 음악에 어떤 "절대성"을 부여했다. 나중에 그의 블로그를 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그가 JK 김동욱에 대한 이야기를 한 포스트엔 실소하다못해 이런 쪽팔린 이야기를 아무리 자신의 블로그라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그의 용기를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사고 싶었다.

그가 꼰대가 되어간다는 결정적 증거가 바로 이번 J씨와의 논쟁인데 그는 J씨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논쟁을 하자는데 화를 돋운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K의 결정적 문제는 "진보신당이 어쩔 수 없이 대중들에게 오픈된 대중정당"이라는 점을 낼름 잡아잡숫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진보신당의 정체성이란 것은 "진보신당이 합법적 대중정당이 아닌 정치 결사체"였을 때만이 강력하게 요구되는 정체성이라는 점을 그는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정당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발로 찾는 다양한 대중들을 쫓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진보신당 언저리에 와글대는 (그의 표현을 빌자면)"배타적 자유주의자"들이 아니라 진보신당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에 대한 공개적인 사상투쟁이 벌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부분일 것이다. 진보신당의 정체성은 K씨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당원들이 찾아가야 할 부분이고 어쩔 수 없이 현존 정당중에선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나같은 사람은 이런 과정을ㄹ 통해 찾게될 진보신당의 정체성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진보신당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며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그가 걱정해야할 것은 진보신당의 정체성이 아니라 왜 똑같이 신자유주의자였으며 신자유주의라는 정글에 공화국을 내몬 당사자인 김대중과 노무현을 이평가하는 데 있어 김대중에겐 "한없는 존경심"을 표하고 "노무현을 까대는 데에 있어선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가?"라는 문제로 표면화되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이유로 절대 동의 할 수 없는 이야기까지 서슴지 않으며 그런 이야기로 다른 사람들에게 "선생질"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도 원하는 명랑사회는 이런 어설픈 "선생질"이 통하지도, 그런 선생질을 하는 사람을 용납하지도 않는 사회다. No Thanks! 쓸 데 없는 선생질은~~~ Times up! get the fuck out of here! 아무튼 K씨 누가 성질을 건드리면 가서 주먹질이라도 하시든지! 자신의 지지자들이 찾아올 곳에서 키보드로 뒷다마나 까는 것은 명랑하지 않습니다요!

2. 그냥 "척"하는 것도 그렇게 힘든가?
서론 없이 직접적인 팩트부터 이야기하자. 정말 문제인 것은 성범죄자에게 화학적 거세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성범죄라는 것이 단지 성충동 뿐만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을 모두 단 한 가지 요인인 성적 충동을 유발하는 호르몬을 억제하는 약물투여 만으로 범죄자가 될 가능성으로부터 차단할 수 있다 믿는 것 자체가 하나의 넌센스이다. 자신이 사회에서 억눌려 사는 존재이며 자신은 사회라는 무서운 정글속에 내버려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동안 타인들은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자신보다 물리적으로 약한 여성들을 상대로 자신을 유린했다고 믿는 강자들이 자신에게 했다고 하는 행위들을 쏟아부으려 하고 쥐뿔도 없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남근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강자의 모방"은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들에게 강제적으로 행하는 것이라 믿을 것인데 그들은 단지 성적인 충동을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와 마차낙지로 성과 관련된 인간이 범해선 안될 짓들 중 누가 버더라도 사회적 강자에 의해 저질러지는 일들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성을 성적으로 가볍게 대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에 절대 저항할 수 없는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쾌감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눈치를 채셨겠지만 티렉스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강용석인가 하는 호로새끼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부터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인간에게서 큰 의미의 가식을 뺀다면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한마디로 지옥의 불구덩이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가 보기엔 국회에서 주최하는 토론회에 참석하는 명문대학의 토론 클럽의 학생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나라당을 지지할 것이며 자신처럼 되기를 갈망하는 "공화국의 진정 바른 청년들"이었을 테고 자신이 길거리에 침을 뱉는 것까지 "존나 있는 일"로 볼 아해들이라고...

그 씨발놈은 한마디로 "아닌 척"하는 것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더 어려운 존재로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이 빌어먹을 새끼의 행동이 명랑하지 못한 것은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들은 의외로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하며 자신에게 그런 인내심이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런 인내심을 키우는 노력이 체화되었을 때에 비로소 남들이 자신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망각한 새끼"이기 때문이다. 명랑한 사회는 강용석 같은 새끼가 좆끝과 혀끝을 함부로 놀리는 것이 허용되는 사회가 아니라 그런 새끼를 모두가 쌩까고 영원히 자신의 집 다락방에서 쉴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사회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와 동의어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 새끼의 문제는 그 새끼 개인의 문제 아닌가?라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티렉스는 이야기한다. "그 새끼가 그런 짓거리를 한 배경엔 그의 개짓거리가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다는 그 병신의 믿음이 존재한다."

그 새끼가 한나라당이건 민주당이건 그런 문제는 관심없다. 하지만 그 새끼가 정치판에서 쫓겨난 다음에 그 새끼의 친구들과 나눌 대화들을 상상했을 때가 더 좆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새끼는 아마 자신과 친한 사람들과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아 씨발 별 이야기 아닌 것 가지고 똥 밟았어" 그 새끼의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래 똥 밟았다고 생각해... 너만 그런 것도 아닌데 별 좆같은 것들한테 걸려서..."
"요즘 대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했더니 세상 무서운 것도 모르고 어디서..."
분명히 그는 그의 친구라는 새끼들과 위의 내용과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강남의 룸빵에서 양주를 처먹을 것이다. "척하는 것이 체화되는 것이 명랑사회의 멀고먼 여정의 전제 조건"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새끼들 때문이다.

2010년 7월 13일 화요일

Exile on main St.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들(Soundless Music)

기를 쓰고 꼭 알아야 할 내용은 아니지만 이 게시물을 보시기 전에 대충 칼립소(Calypso Music)이라 불리는 음악 장르에 대해 예습하신다면 훨씬 더 알찬 인터넷질 되실테니 그리 아시기 바란다. 물론 언제나처럼 결론은 싫음 말고! 절대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난번의 게시물에서 이 앨범에 대해 그리고 롤링스톤스에 대해 언급하며 키치라는 말을 썼는데 이 앨범에 대해 그런 표현을 쓴 이유 중 하나가 이 앨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대중음악 장르들 중 다른 장르들은 비교적 여러분들께 친숙한 장르지만 칼립소는 여러분들이 덜 친숙한 장르인 관계로 실제로 이 앨범을 구입해서 음악을 들으려할 경우 칼립소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이 앨범에 대한 이해도가 좌우될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서도 내 이야기는 항상 같다. 싫음 말고!

칼립소에 대한 공부를 조금 하셨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게시물을 읽어주시기 바란다.

일단 먼저 밝혀둘 것은 티렉스가 소장하고 있는 이 음반은 영국과 미국 날짜로 2010년 5월 17일에 발매된 Rerelease 음반이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린다. 이 점을 밝히는 이유는 티렉스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은 본디 2 LP으로 발매되었던 원본을 2CD 버전으로 발매하여 한 장엔 2LP의 원래 곡들을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의 CD엔 보너스 트랙을 수록했기 때문이며 혹시 나중에 왜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겨우 이 것 뿐이지? 야! 이 사기꾼 새끼야!라는 말씀이 나올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아무튼 롤링 스톤스의 오래된 팬들에게 이 음반의 재발매 소식은 지극히 기쁜 일이었음에 분명하다는 점을 들어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자 하니 제발 받아주시기도 바란다.

이 앨범이 다른 롤링 스톤스의 앨범과 구별되는 특이한 점을 간단하게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보통 그들의 작업은 키스 리처드나 믹 재거에 의해 주도되었으나 이 앨범은 특이하게 팀의 베이시스트인 빌 와이먼(Bill Whyman)에 의해 멤버들이 소집되어 1971년 6월 중순부터 그 달 내내 곡 작업을 밤 여덟시부터 끝나는 시간은 어찌되었든 다음날 아침인 강행군을 하게 되었다는 점!

2. 16세기 풍 건축물 중 하나의 명칭인 Nellcôte라 불리는 장소에서 음반의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작업의 진척도가 예상외로 부진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키스 리처드와 믹 재거의 세션 참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사적인 이유들이기 때문에 밝히지 않기로 한다. 참고로 넬꼬떼라는 것은 16개의 방으로 만들어진 16세기 양식의 건축물이라는데 뭐 내가 살아봤어야 알지...

3. 이 앨범은 롤링 스톤스가 영국의 지나치게 높은 세율을 피해 미국에 정착하기로 한 뒤 처음으로 낸 앨범이라는 사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의 잉글랜드는 대단히 높은 소득세율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비틀스의 멤버인 조지 해리슨이 "Taxman"이라는 곡으로 잉글랜드(영국)의 세제를 비판했을 정도로 철저한 누진세율의 원칙을 지키고 있었다.

4. 넬꼬떼에서 녹음 작업이 완성되지 않았던 관계로 나머지 작업은 로스 앤젤리스에서 마무리 되었다 한다. "Rip this Joint", "Shake Your Hips", "Casino Boogie", "Happy", "Rocks Off", "Turd on the Run" and "Ventilator Blues"등의 곡들이 로스 앤젤리스에서의 작업으로 완성된 곡들인데 주목할 점 중 하나가 이 때 세션으로 참가했던 사람들 중엔 비틀스의 "Let it be"앨범에 비틀스의 멤버가 아닌 인물로는 유일하게 앨범 전체에 세션으로 참여했던 빌리 프레스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5. 이 앨범은 Rock and roll외에도 Blues, Country and western, Calypso등의 장르의 음악들을 포괄하고 있는데 지난 번 게시물에서 롤링 스톤스 자체도 그리고 이 앨범도 키치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은 이미 존재하는 장르의 음악들을 가지고 교묘하게 롤링 스톤스의 음악으로 만드는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고로 칼립소에 대해선 수시로 공부하시기 바란다.

6. 직접 사서 들어보시고 판단하시길 바란다. 덧글이나 트랙백으로 올려주시면 감사하겠다. 지금 컨디션이 개판이라 더 길게 쓸 수 없음을 용서해 주시길...

2010년 7월 12일 월요일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월드컵의 역사)







1.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잉글랜드를 강력한 우승후보라 생각하지 않는데 유독 세 곳에서만 예외다. 공화국과 미국 그리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전세계의 남아도는 돈들이 몰리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엄청난 자금력과 영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는 지금 각국의 스타 플레이어들에 대한 초과수요 상태를 이루고 있고 그보다 더한 초과수요는 잉글랜드 선수들에 대해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웨인 루니나 디디에 드록바를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동급으로 놓는 일은 제정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화국에선 그 것이 상식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잉글랜드에 월드 클래스의 선수는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드물며 심지어는 애증의 리버풀 팬인 나 조차도 스티븐 제라드는 일종의 계륵같은 존재라는 점을 인정한다. 파비오 카펠로가 아니라 마르첼로 리피나 루이스 아라고네스가 감독으로 온다 하더라도 잉글랜드를 4강에 올려놓는 일은 힘들 것이다. 하물며 우승은...

2. 이미 티렉스같은 캐병신조차 현대 축구에서의 키플레이어는 플레이 메이커에 해당하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니라 앵커맨에 가까운 수비형 미드필더라고 심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제 공화국의 그나마 개념있는 언론들이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것도 김학범으 입을 빌어... 과거 유로 2008 당시의 스페인보다 이번 월드컵의 스페인이 강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도 세르히오 부스케스가 아직은 비야 레알의 마르코스 세나의 빈자리를 담당하기엔 경험이 부족하고 경가를 읽는 시야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독일이 그 결정적인 준결승에서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팀 전체를 뒤로 물리는 방식으로 나왔던 것 역시 경기를 지배할만한 수비형 미드필더의 부재 때문이었다. 이번 대회 최악의 선수들 중 하나로 이탤리의 겐나로 "링기오" 가투소를 꼽는 이유도 그 것이리라. 링기오는 이탤리어로 "포효하는"이라는 뜻이라는데 가투소는 포효하기는 커녕 상대선수들에게 착실히 공격루트를 양보해 주었던 것이다.

3. 우리의 요한 크루이프 선생께서 자신의 조국인 네덜란드의 축구에 대해 "더러운 안티 풋볼"이라 말씀하셨다. 히딩크 감독으로 인해 대단히 수비적인 포메이션으로 알려진 3-4-3 포메이션은 본디 크루이프 선생께서 바르까의 감독으로 계실 때 당시 유행하던 압박축구, 즉, 3-5-2 포메이션을 좌우 윙 플레이어의 \끊임없는 위치변환을 통해 깨기 위해 만든, 대단히 공격적인 전술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잊고 있었다. 그만큼 크루이프 선생은 공격지향적이다. 그러니 크루이프 선생의 혹평을 조금은 "차감해서 듣"는다 하더라도 절대 앞뒤로는 움직이지 않는 네덜란드의 양쪽 백인 반 브롱크호스트와 반 더 빌은 욕을 먹어 싸다. 그들의 경기는 마치 1994년으로 돌아가 당시 대단히 수비적인 축구로 욕을 먹었으나 우승을 차지했던 브라질 대표팀의 Flat four을 보는 것 같았다. 어쨌든 네덜란드의 이번 대회 전술엔 "안티 풋볼"적인 요소가 어느 정도 있었음을 인정해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4. 위의 3번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지만, 만일 이번 대회에서 네덜란드가 우승했다면 당분간 유럽축구의 대세는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와 플랫 4 의 수비수들을 쓰는 축구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이는 올바르지 못하다 생각하는데, 사실상 1top 체제인 4-3-3이 국제적 주류인 현 상태에서 라이트나 레프트 백들의 오버래핑이 없다면 더 이상 축구는 "이기기 위한 경기"가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한 경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견고한 4백은 수시로 아래위로 움직이며 공격에 가담하는 양쪽 백들의 적극적인 공격 가담 없이는 붕괴시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스페인 스타일의 축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스페인의 우승이 다행이라 여기는 데엔 이런 이유도 있다는 사실!

5. 이제 공화국의 언론이나 푹구 팬들도 알아야할 것이 하나 있다. "축구는 축구공이 골 안으로 들어갔을 때 득점이 된다"는 아주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간 공화국의 언론이나 축구 관계자나 팬들은 "사람이 골 안으로 들어가면 득점"이 되는 줄 알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볼을 어떻게 빨리 움직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는 "더 많이 더 빨리 뛰는 선수들"에만 집착해왔던 것이다. 박지성이 잘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항상 그가 몇 km의 거리를 뛰었는가를 이야기하는 언론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이상 공화국의 축구는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축구의 가장 기본은 빠른 발도 현란한 드리블도 아니라 축구공을 가장 강하고 정확하게 목표한 곳으로 차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패스라는 점!!!

2010년 7월 11일 일요일

이제 시작인가?(월드컵의 역사)







남들은 끝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겠으나 이제 시작이다. 월드컵은 대대적인 이동의 시작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월드컵을 토대로 선수들이 이동하고 선수들의 이동은 자본의 이동을 이야기하며 공화국에선 다음 월드컵이 어쩌고, 국내리그에 대한 관심이 어쩌고 하는 식으로 축구에 대한 생산적인 이야기들을 완전히 사적이거나 단순한 문제들로 이동시키는 작업에 매진할 것이다. 이번엔 아주 기특하게도 허정무가 미리 좀 더 생산적인 축구에 대한 담론들을 완전 봉쇄해버렸다. 사실상 지난 대회와 같은 성적을 거두고도(1승 1무 1패), 게다가 지난 번엔 톱 시드 국가와 무승부를 기록하고 이번 대회엔 아르헨티나에게 말도 되지 않게 깨져놓고도 같은 승점으로 16강에 올라갔다는 이유만으로도 근본적인 처방이 될만한 문제들은 모두 다 갈아엎어버리고 "국내 선수들과 소통이 잘되는 국내 지도자"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문제가 그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축구라는 것이 1년 내내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다 퍼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을 뿐더러 내 관심사도 아니다. 난 그저 아름다운 축구를 보고 싶을 뿐이다. 그냥 월드컵이 끝난 후의 몇 가지 생각들을 단문으로 적어본다. 오늘은 부분전술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싫다.

1.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오는 프로필을 보면 리오넬 메시는 169cm,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는 170cm으로 나와있는데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볼 때 항상 최소한 손가락 두마디 이상의 차이가 난다. 이니에스타의 겸손인가? 메시의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인가?

2. 누가 뭐래도 결승전에서 가장 모양빠졌던 인물은 페르난도 토레스일 것이다. 그는 대회 내내 스페인의 골 결정력 부재에 한 몫을 했으며 결승전에선 체력이 소진된 다비드 비야와 교체되어 들어갔으나 패스를 받으려 뛰어가다 햄스트링 부상이 도져 경기장에 드러줍고 말았다. 그 뒤로 스페인은 11:10이 아닌 10:10으로 싸워야 했다.

3. 여전히 우승 문턱에서 좌절할 것이었다면 네덜란드는 공화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팀답게 욕먹지 않을 그들만의 플레이를 했어야 했다. 결국 모양도 빠지고 우승도 놓치지 않았던가...

4. 드디어 펠레가 마지막 작전을 썼다. 결승전을 앞두고 우승팀을 예견하는 것으로...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5. 내가 기억하기로는 78년 월드컵 공인구인 탱고부터 아디다스는 쭉 "더 이상 완벽한 축구공은 없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왜? 매 대회마다 공인구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고 항상 완벽하다면서 왜 대회마다 새로운 공인구를 제작하기에 바쁘단 말인가?

6. 아디다스나 나이키 두 회사에서 지원을 받는 팀들 중 같은 회사에서 지원을 받는 팀이 연속으로 우승하지 않는다는 징크스는 이번에도 지켜졌다.(아마 이런 이야기는 지상파 맴체에선 나오기 힘든 이야기일 것이다.)

7. 스페인이 우승하지 못했다면 아마 다비드 실바는 역적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물론 부스케스도...

8. 왜 공화국 대표팀은 2008년에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던 아디다스사의 후원제의를 거부하고 나이키와 후원계약을 연장했을까?

아무튼 스페인에게 축하를!!!

2010년 7월 7일 수요일

아님 말고 1000곡(114)







114. Tumbling Dice, Happy Etc-Rolling Stones(1972)- 퇴원기념 "듣거나 말거나 1000곡(114)"

사실 그 빌어먹을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나온지는 꽤 되었으나 이제서야 음악을 들어도 머리가 아프다던가 하는 일이 좀 덜하여 이제서야 이 쓰레기같은 연속 게시물을 다시 시작할 마음이 생겨 오랜만에 올리게 되었으니 부디 욕부터 하지 마시고 늬들 돈으로 추어탕이나 한 그릇씩 사주고 한 마디씩 하시기 바란다. 그러기 싫으면 왜 이렇게 게으르니 늦게 올리니 하는 드립은 화장실에서 양치질 한 후에 치시기 바란다. 물론 그 것도 싫다면 잠자코 게시기 바란다. 아! 그리고 미리 밝혀둔다. 이 게시물은 사실 관계에 대한 설명보다는 주로 여러분들이 보기에 어디 가서 고대로 되새김질 하기 힘든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니 그 역시 미리 각오하고 보시기 바란다. 역시 싫으면 말고!

a. 가장 허섭한, 가장 확실한, 가장 Rolling Stones다운...
흔히들 공화국의 무책임한 팝 저널리스트들이 뱉고 많은 이들이 주워 삼키는 아주 쉬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비틀스는 백인 중산층을 겨냥한 음악을 했고 롤링 스톤스는 흑인과 하층 계급을 위한 음악을 했다." 이런 빌어먹을 개소리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이 이야기는 한 마디로 "비틀스는 그들의 팬들을 위해 그들의 음악을 만들었고 롤링 스톤스는 롤링 스톤스의 팬들을 위해 그들의 음반을 만들었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과연 그 두 팀의 음악적 특성을 그런 식의 계급에 기반한 이분법으로 나눈다는 것이 그들이 잉뤘던 음악적인 그리고 대중적인 엄청난 성공을 몇 %정도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말이다. 한 마디로 뒷감당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함부로 뱉으면 얼마나 큰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생각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보인다.

Exile on main St.으로 대변되는 롤링 스톤스 음암의 위대한 점은 소제목으로 적었다시피 그 허섭함에 있다 할 것이다. 제발 이 이야기를 무대포로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마시고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물론 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는 시기의 많은 rock band들이 그러하지만 롱링 스톤스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맨 앞에 두고 깊게 생각해두어야할 명제는 "Rolling Stones의 음악은 그 자체가 kitsch이다."라는 것임을 분명히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이나 그들의 음악이 가지는 그 자체의 예술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악을 그 자체로 어떤 것의 origin이라 하거나 originality라는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그들의 음악을 이끌어왔던 믹 재거나 키스 리처드라는 두 인물 자체가 그런 평가에 관심이 없었든지 혹은 의식적인 행위였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그들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장르의 음악을 그 장르의 허섮한 부분들을 일부러 공략해 자신들의 음악으로 만드는 그런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롤링 스톤스의 이 위대한 1972년 작의 앨범은 가장 허섭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확실하게 롤링 스톤스적인 음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비틀스의 팬들이나 비틀스의 연구가 혹은 대중음악사가들이 비틀스의 페퍼상사 앨범에 대해 내리는 평가만큼의 가치를 이 앨범이 인정받고 있는 것도 이전 비틀스가 페퍼상사 앨범에서 해냈던 작업을 가장 완벽하게 롱링 스톤스의 방식으로 해낸 앨범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 사적인 견해지만, 사적인 견해를 떠나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이 앨범은 비틀스가 페퍼상사 앨범에서 한 시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의 음악을 제시한 것 이상의 reference album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이 앨범 훌륭하다는 이야기이다.

b. 역사적 명반의 운명?
희한하게도 역사적인 명반이라 꼽히는 앨범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페퍼상사 앨범이 앨범의 엄청난 판매고와 그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앨범 수록곡 중에서 빌보드 싱글차트의 1위를 기록한 곡이 없었던 것이나 밥 딜언의 Highway 61 revisited에서도 그 유명한 Like rolling stone이 2위를 한 것이나(물론 이 곡은 앨범 발매 이전에 싱틀로 발매되었다.) 그 외에 Four Play의 앨범이나 그 유명한 Steely Dan의 ㅎ며쵀eh rmfoTrh 역시 그랬고 마이클 잭슨의 Thriller을 제외한다면 여지없이 역사적 앨범들에선 싱글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곡은 잘 나오지 않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앨범 역시 마찬가지 중 하나다. Dumbling Dice이 영국 차트에서 7위 Happy가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22위를 차지한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이 것을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물론 북미나 유럽에선 아직도 그렇지만) 아티스트들의 투어가 활동의 대세를 이루던 시기라 할 수 있고 비틀스의 등장 이후로 앨범이 스튜디오에서건 무대에서건 활동의 기본단위로 자리잡은 시점이기도 하다.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이 비틀스에 대해 이야기한 것처럼 "이제 밴드들은 앨범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던" 시기라는 점이 대작 앨범들의 상대적 싱글 히트곡 부재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 소망이자 추측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번에 이 앨범이 새로 발매되었으니 돈 있는 자! 사서 들어보시기 원한다. 싫음 말고...

아직 머리가 제대로 안돌아가 이 정도에서 끝내는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란다.

2010년 7월 5일 월요일

이제 좀 지겹지?(월드컵의 역사)







티렉스가 더 이상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과도한 독서와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그저 때가 때인만치 축구에 대한 이야기로 소일하려고 한다. 뭐 꼬우면 이 블로그를 접수해서 댁들 마음에 맞는 용도로 쓰시든가? 아님 말고...

1. 이번엔 독일이 악역을 피할 수 있을까?
토레스의 부진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비야의 1인 팀이 되어버린 것 같은, 그리고 예상외의 복병이자 개인적으로는 8강 진출팀들 중 자신들의 기량을 200% 보여준 유일한 팀이라 생각되는 파라과이와의 경기도 쩔쩔 맨, 스페인을 보자면 과연 티렉스가 추구하는 아름다운 축구는 토너먼트에선 무용한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스페인 축구에 대한 대략적 비판들은 지나치게 짧게 잘라가는 축구가 때로는 비효울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을텐데, 이런 상황에선 그런 소리를 좀 들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는 페르난도 토레스가 아직 한 골도 넣지 못하는 감히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스페인은 다소 지친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FC코리아의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다른 국가의 대표팀을을 보면 대략 이탤리, 프랑스, 스위스, 아르헨티나 등일 것이다. 다 공화국 축구 대표팀과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한 조에 속했던 경험이 있는 팀들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이탤리에 대한 공화국 축구팬들의 거의 발악에 가까운 반감은 인정하지 가끔은 저 사람들에게 칼만 쥐어주면 이 동네는 축구팬들이 검객으로 돌변하는 멋진 동네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심지어 티렉스가 인정하는 몇 안되는 진정한 축구팬 중 하나이자 네덜란드 대표팀의 열렬한 팬인 노토리군 역시 이탵리 태표팀을 일종의 절대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할 정도로 그들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FC코리아의 광적인 팬들이 2002년 대회 이후 가지게 된 그저 막연한 반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네덜란드의 공격적인 플레이에 대한 대척점에 있는 팀에 대한 반감의 성격이 강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월드컵에서 가장 심한 악역을 맡아온 팀은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 옛 서독 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베른의 기적이라 불리는 그리고 그들의 상대였던 헝가리 팀에게는 베른의 기절이었을 그 대회를 보자. 당시 헝가리 팀은 단순히 세계 최강팀이 아니라, 과거 빌드업 플레이로만 생각했던 축구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꾼 W-M 포메이션을 들고 나와 전세계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팀이었다. 심지어 그들의 W-M 포지션은 그 후 모든 축구 포지션의 기본 바탕에 깔려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물론 진흙탕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고정된 스터드에 낀 진흙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헝가리 팀을 착탈식 금속 스터드로 무장한 서독팀이 이겼다고는 하지만, 서독의 우승으로 1954년 대회는 가장 수준이 높았던 팀과 우승팀이 일치하지 않은 대회로 기록되게 되었다는 점을 아시려나 모르겠다.

그와 같은 일이 정확히 20년 뒤 서독에서 일어났다. 이른바 토털 사커라 불리는 그 이전 최고의 부분전술이라 일컬어지던 옛날 4-4-2 조차도 완전히 뛰어넘은 네덜란드의 미헬스 감독과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선수 중 한 명임을 부인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선수인 요한 크루이프의 네덜란드 팀을 결승에서 2-1로 꺾은 것은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가 이끄는 서독 팀이었다. 그들은 네덜란드보다 덜 창의적이고 구식으 축구를 했지만 결국 우승은 그들이 가져갔다.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는 "요한 크루이프는 정말 훌륭한 선수이고 멋지다. 하지만 우승은 우리가 차지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고 결국 그 말을 실현에 옮겼다. 아! 이렇듯 서독은 축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대회마다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팀들의 발목을 잡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세컨 찬스를 어떻게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가?를 보여주는 축구를 반세기 이상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유럽 축구에 관심이 없이 우러드컵만으로 유럽 선수들을 접하는 사람들은 슈바인슈타이거가 그토록 엄청난 돌파력을 가졌는지에 대해 자신의 눈을 의심할 것이고 발락의 결장으로 모두가 독일은 아니라고 생각햇을 때 터키 이민자인 외질이라는 어린 선수가 나타나 발락의 안정감과는 다른 생기를 팀에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겨우 4골을 기록한 미로슬라브 클로제는 이제 월드컵 역사상 가장 많은 골을 넣은 독일인이 되었다.(게르트 뮐어 역시 그와 동일한 14골이다. 물론 뮐러는 두 번의 대회에서 기록한 골 수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그들의 축구가 새롭진 않지만 과거처럼 축구하는 기계들과 같은 딱딱함은 없어졌고 수많은 팬들을 양산할만한 창의적인 플레이도 해대고 있다. 물론 그들의 플레이가 21세기 축구의 새로운 패러다임까지는 아니겠지만 이번에 그들이 우승한다면 비로소 악역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2010년 7월 1일 목요일

왜 2010 남아공 월드컵은 더럽게 재미가 없는가?(월드컵의 역사)






이런저런 일신상의 이유로 축구를 보는 것 자체가 대단히 육체적으로 힘들었던만큼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되는 경기를 지켜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 누구보다 축구로 인한 국가주의의 피해에 대해 치를 떠는 내가 공화국 월드컵 팀이 16강에서 탈락했다는 것 때문에 그랬을 리도 없고 지즈의 은퇴 후 마음이 떠나버린 프랑스 대표팀의 부진 때문에 그랬을 리는 절대 없다. 물론 경기를 보는 것 자체가 육체적인 노동이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번 월드컵은 그 어느 월드컵에 비해서도 재미가 없는 월드컵이 되어가고 있다. 도대체 왜?

1. 더 이상 월드컵은 새로운 포메이션이나 부분 전술의 실험장이 될 수 없는가?
사실상 기술적인 면에서 가장 충격적인 국제대회를 들라면 누가 뭐라 하더라도 유로 2000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지금과는 대단히 다른 형태지만 브라질이 다시 4백 라인들 들고 우승컵을 거머쥐었을 때도 사람들은 당시의 4백은 지금과는 다른 플랫 4라는 이유로 애써 3-5-2의 쇠퇴라 규정하지 않았고 98년도 프랑스가 안방에서 월드컵을 그 유명한 다이아몬드 4-4-2라 불리는 포메이션을 들고나와 우승했을 때도 프랑스 수비수들의 개인적인 능력을 우선시하는 분위기였다. 그 정도로 압박축구라는 것과 3-5-2 포메이션은 동일시되던 것이었다. 그런데 유로 2000에서 드디어 더 이상 3백에 대한 미련을 가지는 것은 국제 축구의 유유한 흐름의 뒤안길에 서게 될 것을 자초할 뿐이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유로 2000으로 인해 더 이상 좌우 백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말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으며 이제 수비형 미드필더가 축구의 전면에 부상하는 포지션으로 막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2006년과 2008년의 경험은 더욱 더 부분전술의 중요성이 명백하게 하는 것이었다. 4-3-3이라는 포메이션이 대세였던 독일 월드컵에선 결국 포메이션보다는 개개인의 부분전술 소화 능력이 팀 성적을 좌우하며 축구에서 공격 옵션이 다양한 것이 농구에서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며, 유로 2008을 통해 스페인은 압박축구를 부수는 유일한 방법은 절대 휴식없는 패스-휴식없는 움직임이 아님을 주의하시길 바란다.-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결국 축구으 근본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야 축구에 대한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새로운 부분전술이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경기를 안전하게 끌고갈까에 대한 생각만이 감독이나 선수의 머릿속에 가득한 것 같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일본과 파라과이의 16강전이었다 할 것이다. 양팀은 지속적으로 상대방 진영을 향해 전진하지만 그 것은 자신들이 자신들의 진영으로 돌아올만한 충분한 시간이나 공간이 확보된 상태에 한해서였다. 뭐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다. 아무튼 그렇다는 이야기.

2. 중계하는 새끼들이나 보는 새끼들이나...
본디 SBS는 축구 중계에 있어 가장 떨어지는 방송사로 알려져있다. 그들은 심지어 K리그 경기를 중계하는 비율도 지상파 3사 중 가장 낮다. 그런데 그들이 무서운 기세로 프리미어 리그의 중계권을 사들이더니 결국 월드컵까지 독점중계해버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빌어먹을...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멘트는 아마도 목동 사옥 근처의 오피스텔이나 방송국 숙직실에서 한달 정도 가둬두고 암기시켰음이 분명한 누가 들어도 뻔한 네이놈 검색에서 찾을만한 수준의 내용들로 가득하며 심지어는 "...는 대단히 훌륭한 선수지요?"라고 해설자에게 묻는 어이없는 일도 서슴지 않고, 게다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해댄다. 과연 저 걸 보고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떻게 하나... 오로지 한 방송사에서만 해주는 걸... 그래도 지상파 채널이 온통 월드컵만 방송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웃기는 것은 가끔 네이놈 스포츠 게시판의 찌질이들인데 "박문성의 해설이 지나치게 전문적"이라거나 "축구팬들이나 알아들을 단어가 아닌 일상적인 용어로 풀어 설명해줄 것"을 요구하는 밤의 주둥아리 새끼들이다. 이 것은 쉽게 이야기하자면 "스트라이크"라는 단어 대신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의 겨드랑이 밑에서 무릎 아래 쪽 과 홈플레이트라 불리는 판에 가상으로 만들어 놓은 3차원의 공간을 통과해서 포수의 손에 잡혀습니다."라고 말하라는 것과 같은 의미 아닌가? 도대체 이런 와중에 무슨 빌어먹을 월드컵이 지구인의 축제니 4년에 한번은 미쳐볼만 하다느니 하는 말들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4년 후에도 빌어먹을 놈의 중계 때문에 진짜로 미쳐버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팔로어

블로그 보관함

프로필

내 사진
궁금해? 내가 당신 프로필이 궁금하지 않은 것처럼 당신도 내 프로필을 궁금해하지 마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