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라는 종목이 근본적으로 축구와 다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야구는 상대방과 눈을 마주보면서 하지 않는 유일한 종목이다. 물론 경기 중 투수는 타자의 눈을 볼 수도 있고 타자도 투수의 눈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경기 내내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팀의 상대 선수의 눈을 보는 것이 그리고 마주보고 있는 상대방의 동작을 주시해야 하는 것이 다른 스포츠라면 야구는 절대 그렇지 않다. 두번째로 야구가 축구와 다른 점은 축구와는 달리 야구는 극히 일부분의 참가자들을 제외하곤 게임에 임하고 있는 선수들의 거의 대부분이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놀고"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시간이 노는 시간은 아니고 항상 자신의 플레이를 준비해야 하지만 그 것은 축구가 심지어 골키퍼를 포함해서 모든 선수들이 계속 달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놀고"있다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이유들로 인해 야구는 농구를 능가할 정도로 "특정의 탁월한 능력을 가진 선수"가 경기를 지배할 확률이 그만큼 높은 경기다. 특히 선발 투수라는 역할을 가진 선수의 영향력이란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야구 중계나 야구 관련 프로그램이나 기사에서 수도 없이 인용되는 "Quality Start"이란 말에 대한 오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애초 야구의 초기에는 구원투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투수는 경기에서 내내 투수의 역할을 경기 종료시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를 지나면서 완투가 힘들어지고 198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세이브"와 "홀드"라는 것이 야구 경기에서 중요한 기록으로 등장하게 되자 선발 투수가 한 경기를 완투하는 것-complete game-은 더 이상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 대단히 드문 일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퀄러티 스타트라는 개념이다.
그러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공화국에서는 이 개념에 대해 투구 이닝과 자책점을 동시에 고려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 중요한 것은 퀄러티 스타트엔 여러분들이 당연히 알고 있지만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전제가 있다는 점이다. 즉 "선발 투수는 적어도 6 이닝을 던져야 선발 투수로서의 1차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5회를 퍼펙트로 막고 내려간 투수는 "선발 투수"로서 함량 미달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선발 투수는 일단 적어도 6 이닝을 던져야 하고 그 다음에 그 투구가 어느 정도의 투구였는지를 평가하는 데에 있어 2이닝에 1자책점 꼴인 6이닝 3자책점 이하라는 단서를 붙이게 된 것이다. 이 것은 다른 면에서 본다면 "미국 야구가 선발 투수라는 역할에 대해 얼마나 큰 기대와 신뢰를 부여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지금은 덜하지만 90년대 초중반 까지만 하더라도 선발투스를 6회 이상 던지게 하지 않는 다시 말하자면 그 이전에 선발 투수를 교체하는 경기는 메이저리그에 드물었다.
물론 퀄러티 스타트라는 개념이 처음 야구에 도입될 때보다 지금 투수의 역할이 세분화된 것도 사실이고 불펜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선발 투수가 단지 첫번째 투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감독이나 투수코치 그리고 그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야구팬들의 태도이다. 일단 한 가지 점을 살펴보자. 자신이 많은 이닝을 책임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선발투수는 당연히 투구수가 많아지게 되어있다. 자신이 많은 이닝을 책임지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투수는 "빠른 승부"를 선호, 아니 당연히 빠른 승부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의 투구 스타일에 충실한 타자들은 볼 카운트가 0-2인 상황에서 절대 3구를 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실제로 3구로 스트럭 아웃되는 타자가 얼마나 적은가?- 이런 패턴이 가져오는 결과는 경기 시간의 지연이 될 것이라 추측할 수있다.
컨트롤에 관한 한 역사상 최고의 투수라 일컬어지는 그렉 매덕스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 목표는 단지 27개의 공으로 한 경기를 끝내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위력적인 구질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는 로저 클레멘스나 놀런 라이언도 자신들이 은퇴할 시점에서의 통산 ERA가 3을 넘었다. 다른 면에서 이 사실을 해석하면 아무리 "잘난" 투수라 하더라도 타자들이 절대 못치는 공을 던지는 투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즉 아무리 피해다녀봤자 타자에게 맞는 것이 투수라는 이야기다. 웅리 팀의 야수들을 믿고 빠른 승부를 하는 것이 투구수를 늘리는 것보다 빠른 투구가 엄청나게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포수는 공 하나하나를 벤취의 사인을 보고 투수에게 사인을 내다 보니 경기 시간은 자꾸 길어지게 되고 관중들은 야구를 외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할 이야기가 더 있으나 나중에 하자...
2013년 4월 29일 월요일
2013년 4월 12일 금요일
올드하지만 진부하지 않다는...
요 근래에 항상 그렇듯, 얼굴책에 링크를 해오던 중 참스승님이나 똘레도님께서 The Lumineers의 음악에 깊은 관심을 보이시는 것을 기점으로 하게 된 고민이 하나 있는데 그 것은 과연 old한 음악에 대해 어떤 방식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미리 전제하고 들어가자. 다분히 the lumineers의 음악은 old하다는 평가를 받을만한 구석이 있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분명히 그들의 음악은 시계를 상당히 과거로 돌린 듯한 음악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떤 미국의 음악 관련 매체에서도 그들의 음악에 대해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한 것을 찾진 못했다. 이야기를 이러한 문제에 집중해 보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공화국의 가요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 하나가 "아이돌 음악 중심의 천편 일률적인 음악"이라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 말을 "곡을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라는 말로만 면죄부를 받기엔 분명히 한 방향으로 전력질주하는 모습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공화국의 가요라 할 수 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표절을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단 어떤 쪽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하면 그 페달에서 적당한 때에 발을 뗄 줄을 모르고 여기저기 다른 사람들도 그 방향으로 미친 듯이 쫓아오고 서로가 가속 페달을 더욱 더 강하게 밟는 그런 상황이 진행된다는 이야기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표현해서 오버그라운드 씬이건 언더그라운드 씬이건 자신들의 음악이 "올드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공화국의 가요계에선 끝장이라는 말씀이다. 또 여기서 오해하지 마시길 부탁드리는 것은 그렇다고 내가 "미사리 가요"에 대한 찬사를 보내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개인적으로는 미사리나 콘서트 7080과 같은 것들이 공화국의 가요계에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부정적인 영향력이 훨씬 더 강하다 생각한다. 그에 대해선 이전에도 수없이 이야기해 왔기 때문에 오늘은 특별한 언급을 반복하진 않으려 한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오버 그라운드나 언더그라운드 씬 모두 "참신하고 신선하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작업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올드한 것"에 대한 사랑이 넘처나기도 하는 곳이 공화국이다. 마치 KBS 1TV에 채널을 고정하고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이 "보수의 자부심"인양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특정한 장르-까놓고 이야기하자면 트로트-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 자신의 나이가 가지는 특권인 양 행동하는 사람들도 가요시장에서 대단히 많은 portion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굳이 일례를 들자면...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해보자면 음악을 존나 사랑한다는 50대 후반의 초면의 사람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라 해서 "제퍼슨 에어플레인 같은 사이키델릭 음악도 많이 들어 보셨는가?"라 불어봤더니만 "난 요즘 음악은 안들어"라며 자랑스럽게 웃던 적이 있었다나 뭐라나...
전에 한 번은 후배 한 명이 "메이저 가요 씬에선 희망이 없고 오로지 인디 가요만이 공화국의 가오계가 나아갈 제대로 된 방향"이라는 말을 술자리에서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것이 벌써 15년 전 일이었고 당시엔 나도 20대였고 그 후배는 갓 스물이 된 대학 신입생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사실은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음악" 내지는 인디 음악에 대한 수요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여기서 갑자기 글빨 딸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아무튼 끝까지 가보자.
중요한 것은 분명히 "올드하나 진부하지 않은 음악"은 존재하고 그런 것들에 대한 선행 학습도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재즈 퓨전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메인스트림 재즈에 대한 완ㅇ벽한 이해 없이는 자신의 음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그를 학습한다. 그 올드한 것들을 계속 해오면서 사운드의 완성도를 더해가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 것은 마치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수백년 전의 곡들을 아직도 꾸준히 연주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래! 까놓고 이야기해서 난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나 그 자체를 클래식 애호가라는 사람들이 깔보는 것이 싫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올드한 것들을 파고들어 그런 음악의 질적인 발전을 추구해야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이 대중음악의 자양분이 될 것이란 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대중음악도 이제 학생들을 혹은 앞으로 음악을 할 사람들에게 체계적인 교본이 될만한 것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그 분야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자신의 업으로 삼을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 물론 힘든 일이다. 지금처럼 판팔이 해서는 밥벌이 하기 힘든 세상에선 말이다. 물론 시장에서의 수요에 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에서의 수요를 만들어 내는 일 역시 그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라는 말씀이다. 앞의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다가 스스로 수요를 만들어 내는 일은 포기하는 사태는 한 마디로 "대중음악의 악몽"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수?
공화국의 가요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 하나가 "아이돌 음악 중심의 천편 일률적인 음악"이라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 말을 "곡을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라는 말로만 면죄부를 받기엔 분명히 한 방향으로 전력질주하는 모습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공화국의 가요라 할 수 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표절을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단 어떤 쪽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하면 그 페달에서 적당한 때에 발을 뗄 줄을 모르고 여기저기 다른 사람들도 그 방향으로 미친 듯이 쫓아오고 서로가 가속 페달을 더욱 더 강하게 밟는 그런 상황이 진행된다는 이야기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표현해서 오버그라운드 씬이건 언더그라운드 씬이건 자신들의 음악이 "올드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공화국의 가요계에선 끝장이라는 말씀이다. 또 여기서 오해하지 마시길 부탁드리는 것은 그렇다고 내가 "미사리 가요"에 대한 찬사를 보내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개인적으로는 미사리나 콘서트 7080과 같은 것들이 공화국의 가요계에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부정적인 영향력이 훨씬 더 강하다 생각한다. 그에 대해선 이전에도 수없이 이야기해 왔기 때문에 오늘은 특별한 언급을 반복하진 않으려 한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오버 그라운드나 언더그라운드 씬 모두 "참신하고 신선하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작업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올드한 것"에 대한 사랑이 넘처나기도 하는 곳이 공화국이다. 마치 KBS 1TV에 채널을 고정하고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이 "보수의 자부심"인양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특정한 장르-까놓고 이야기하자면 트로트-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 자신의 나이가 가지는 특권인 양 행동하는 사람들도 가요시장에서 대단히 많은 portion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굳이 일례를 들자면...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해보자면 음악을 존나 사랑한다는 50대 후반의 초면의 사람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라 해서 "제퍼슨 에어플레인 같은 사이키델릭 음악도 많이 들어 보셨는가?"라 불어봤더니만 "난 요즘 음악은 안들어"라며 자랑스럽게 웃던 적이 있었다나 뭐라나...
전에 한 번은 후배 한 명이 "메이저 가요 씬에선 희망이 없고 오로지 인디 가요만이 공화국의 가오계가 나아갈 제대로 된 방향"이라는 말을 술자리에서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것이 벌써 15년 전 일이었고 당시엔 나도 20대였고 그 후배는 갓 스물이 된 대학 신입생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사실은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음악" 내지는 인디 음악에 대한 수요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여기서 갑자기 글빨 딸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아무튼 끝까지 가보자.
중요한 것은 분명히 "올드하나 진부하지 않은 음악"은 존재하고 그런 것들에 대한 선행 학습도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재즈 퓨전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메인스트림 재즈에 대한 완ㅇ벽한 이해 없이는 자신의 음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그를 학습한다. 그 올드한 것들을 계속 해오면서 사운드의 완성도를 더해가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 것은 마치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수백년 전의 곡들을 아직도 꾸준히 연주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래! 까놓고 이야기해서 난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나 그 자체를 클래식 애호가라는 사람들이 깔보는 것이 싫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올드한 것들을 파고들어 그런 음악의 질적인 발전을 추구해야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이 대중음악의 자양분이 될 것이란 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대중음악도 이제 학생들을 혹은 앞으로 음악을 할 사람들에게 체계적인 교본이 될만한 것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그 분야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자신의 업으로 삼을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 물론 힘든 일이다. 지금처럼 판팔이 해서는 밥벌이 하기 힘든 세상에선 말이다. 물론 시장에서의 수요에 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에서의 수요를 만들어 내는 일 역시 그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라는 말씀이다. 앞의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다가 스스로 수요를 만들어 내는 일은 포기하는 사태는 한 마디로 "대중음악의 악몽"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수?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