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지상파 언론 혹은 제도권 언론이란 이른바 타블로이트 신문들보다 훨씬 더 우월한 위치를 이용해 타블로이드판 신문들보바도 훨씬 더 저급하고 짜증나는 이슈들을 "손가락질을 덜 받으며" 만들어낼 특권을 지니고 있다. 그 것이 바로 지상파 미디어의 힘이다. 물론 지상파라는 이름은 지상파 방송 3사는 물론 이른바 중앙 일간지들-그 것이 6대 일간지이건 8대 일간지이건 간에- 역시 이르는 말이다. 애초에 선정성 자체가 가장 큰 무기인 3대 일간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끔은 특정한 결론을 미리 정해놓은 뒤 그 것을 계몽적 지도자의 위치에서 대중에게 강요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마디로 해선 절대 안되는 "쓸 데없는 선생질"을 하고 자빠진 경우가 허다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어이없는 일들이 가능했던 것 중 하나가 소위 "문화 특히나 대중문화 분야"인데 내 다른 분야는 거론할 여력이 안되고-물론 영화에 대해선 굉장히 생산적인 담론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음악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첫 단락에서 신문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나, 사실 신문 그 자체에 대해 뭐라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듯해 보이는 언론 역시 선정적이긴 마찬가지고 그 것이 언론의 속성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른바 주류 대중음악 비평계의 스타들을 만들어낸 것이 모 신문사이고 그리고 그들로 인해 그들이-어느 그가 어느 그인지 알아맞혀 보세요!- 그 바닥에서 권위를 얻게 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책임은 인정해야할 것이란 생각이다. 내가 이야기하려고 한 것은 그-누군지 대놓고 이름을 말할 수도 있으나 뭐 어차피 다 아는 K씨 L(I?)씨인걸 뭐 새삼스레...-들이 줄기차게 제기해왔고, 그래서 이런 요소들이 빠지면 제대로 된 한국 대중음악 평론이 아닌 것처럼 되어버린-소문에 의하면 누구는 가요평론가라는 직함을 무지하게 혐오하신다 하여...-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경향신문의 모씨와 모 기획사의 대표 모씨와의 대담을 찾아 읽어보시려면 보시고 마시려면 마시고 링크는 생략하도록 한다.
1. Rock and roll에 대한 편집증
Rock음악에 대한 대단히 큰 오해가 있는데, 그런 오해가 가장 심한 곳은 공화국일 것이다. 필히 지적해야 하는 오해라는 것은 서구, 특히 영미의 음악, 더 좁게는 미국의 대중음악 필드에서 휠을 잡고 있는 장르가 Rock 음악이라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미국에서 Rock이라는 이름의 음악장르가 미국 대중음악 전체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는 점이다. 공화국과는 달리 장거리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공화국의 차들이 기본 옵션으로 제공했던 카 스테레오의 카세트 데크마저 옵션인 미국이라는 국가에서 FM방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놓고 그들의 방송은 공화국의 FM방송이 유명 엔터테이너 DJ의 잡담이 주가 되는 것과 달리 Station 자체가 하나의 장르의 음악만을 방송하며 음악이 방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진행자의 뻐꾸기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월등히 높다. 왜 갑자기 라디오 방송국 이야기를 하는가? 궁금하실 수 있을텐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차피 전국방송이라는 것의 영향이 공화국보다는 덜 압도적인 동시에 케이블 텔레비전의 가입률이 낮은 미국에서 FM Station의 전문 음악 방송 채널들 중 어떤 장르가 가장 많은가?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르-인기라는 것이 한 가수나 한 곡의 월등한 시장지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상적으로 듣는 음악들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음악을 말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인가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된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것은 곧바로 시장의 규모와도 무관하지 않다. 한 곡을 틀 때마다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수입이 배분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공화국의 몇몇 주류 대중음악 평론가들의 바람과는 달리 미국에서 가장 많은 스테이션에서 방송되는 장르는 rock음악이 아니라 Country and Western이다. 그리고 시장의 상황이 대단히 많이 바뀐 지금까지도 흑인음악이 대약진하며 컨트리 웨스턴의 위치를 위협하는 평세지 rock 음악 전문방송의 숫자는 컨트리 & 웨스턴 전문방송의 숫자보다는 감소폭이 덜하지만 가장 많다는 이야기를 하기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이다. 이 것은 쪽팔리긴 해도 공화국의 수많은 라디오 방송들 중에서 나오는 음악의 장르들 중 트로트 곡들이 결국엔(심심하시면 일요일 정도에 하루 종일 이 채널 저 채널 라디오를 돌려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으실 것이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가 트로트라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첫번째 이야기의 결론이 Rock음악이 미국의 대중음악을 주도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것이고 미국 사회 전체로 보면 컨트리 & 웨스턴, 음반 시장을 보면 흑인음악이 휠을 잡고 있는 장르라는 점을 이야기한 것이라면 두 번째 이야기는 "그들이 그렇게도 오매불망하는 rock이라는 장르"가 그들의 바람대로 과연 "저항적이며 사회적인 메세지로 충만한 음악인가?"라는 점이다. 가장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Rock and Roll의 태생이 과연 사회적인 메시지를 음악에 담기위한 수단으로서 음악을 사고하던 사람들의 시도였던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불초한 티렉스의 게시물들에서 이미 수차례 언급했지만 Rock and Roll은 흑인 음악에서부터 파생되어 나온 장르이며 그 뿌리가 블루스에 있긴 하나 블루스에 비하면 문학적 성격이 대단히 약한 장르라 할 것이다. 블루스와는 달리 대부분 초창기 록앤롤 곡들의 가사를 보면 대단히 직설적이고 좀 심하게 보면 "개념없는 노는 아이들의 푸념"에 가까운 내용의 가사들임을 아실 수 있을 것이다. 더우기 1950년대 일렉트릭 기타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백인 아해들이 이 장르에 뛰어들면서 그런 상황은 더 심해졌다.
머리에 글리스를 잔뜩 바르고 가죽 자켓을 걸친 아해들이 무리들 중 한 놈의 집의 차고(Garage 거라쥐라고 발음한다나 뭐라나)에 모여 연주를 하던 아해들은 대부분 "학교 가기 싫어하는 양아"들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척 베리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그들보다 한참 후배인 엘비스나 비틀스의 초창기 음악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록&롤 음악이 베트남전 반대 운동, 히피 무브먼트,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유행이라는 세가지 요소와 결합되며 "저항적인 색채를 가지게 되었"던 것은 인정한다. 그 것까지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 식자층들이 rock이라는 장르에 뛰어 들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곡들을 양산해내기도 했지만, 그런 팀들의 음악에서 보여지는 저항의식이나 사회적 메시지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 효과의 하나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것은 모든 헤비메탈 음악이 사타니즘과 관련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으로 이어서 이야기하게 될 내용이지만, 음악에 대한 비평 담론이 자꾸 이런 식으로 "가사의 사회적 의미"에 치우치면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할 것이다.
(심하게 길어졌고 본디 계획이 그랫던 관계로 다음 번에 이야기 이어지겠다.)
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get the fuck out of here(개소리들)
2000년대 초반 자타칭 "미국에서 온 랩 천재"가 있었다. 그는 E모라는 이름의 힙합(?)그룹으로 데뷔했고 미국 서부의 최고 명문대인 S대학의 영문학 석사라는 후광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분이시다. 그 사람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한 다리 건너면 다 "어떤 좆같은 새끼가 뒤에서 너 까더라"라는 이야기가 돌고도는 것이 이 바닥이니 그런 일은 참도록 하고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위대하신 스탠포드 영문학 석사 출신의 형님이신 스탠포드보다 좀 많이 떨어지는 컬럼비아 유니벌씨티를 나오신 캐네이디언이자 교육방송에서 영엉를 가르쳐 돈을 처벌고 계신 그 분의 형님의 지극히 크로이펠츠 제이콥스 증후군적인 뇌구조에 대한 이야기 되시겠다. 아! 심지어 그 위대하신 미국의 명문대 출신의 두 형제에다가 중간에 그들보다 더 좋은 학교를 나온 따님을 두신 어머님은 "빌어먹을 좆같은 공화국의 여성지"에 존나 이상적인 어머니로 몇차례 인터뷰까지 하신 분이시다. 씨발새끼 왜 부모까지 들먹거리냐고? 그러려면 네가 네 부모가 잡지와 인터뷰했다는 이야기를 어이없는 공화국 좆병신들의 사대주의의 씁쓸한 결과로 만들지 말았어야지 병신 새끼야...
씨발 내 너보다 나이도 많으니 처음부터 반말까고 들어간다. 이 새끼야. 물론 내가 너보다 어렸어도 새끼로 시작해서 새끼로 끝났겠지만, 당신이 도토리 존나 사대면서 화려하게 꾸민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당신의 게시물을 보니 이런저런 대단한 것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영어 못하는 새끼들이 미국의 중심인 뉴욕에 나가서 영어 못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국의 시청자들을 웃기는 무한도전을 보며 그들을 바라보는 미국애들의 시선 때문에 미국애들이 아닌 무한도전에 화가 났다"는 것 아니겠어? 이미 당신은 전력이 있더구만... 작년 빌어먹을 멸치대가리 새끼가 개좆같은 FTA를 위해 미국에 가져다 바친 쇠고기 협상에 대해 반대하는 공화국의 인민들을 "한심해 보인다."라고 한 일이 있더구만... 뭐 그래 그거야 미국보다도 광우병 소의 출현이 더 빈번한 캐나다 국적의 소를 처먹은 자네라면 캐나다소를 처먹은 나도 있는데 그보다 안전한 미국 소를 가지고 왜 지랄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근데 씨발 문제는 그게 아니거든... 클로이펠츠 제이콥스 증후군에 걸린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당신의 뇌가 그 병의 환자들보다도 더 심각하게 스펀지같은 상태라는 데에 네 문제점이 있는거야...이제부터 잘들어! 응? 난 같은 말 여러번 하는 것 싫어하고 "좋은 주먹 놔두고 왜 말로 해!"가 내 인생 신조니까 한 번에 못알아들으면 밤길 조심하면서 다녀야 한다. 알았지?
다른 것 다 제쳐놓고 바이링구얼 내지는 멀타이 링구얼일 네가 공화국에서 한국말 좆도 이상하게 하는 외국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씨발 빌어먹을 공화국 인민들은 영어가 모국어인 애들이 아주 인사동에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영어로 길 물어보면 "서로 영어로 답해주지 못해 안달난 새끼들처럼 경쟁적으로 영어 하려고 하는 불쌍한 영어 편집증 환자들"인 것 인정한다. 그리고 씨발 또 미국에 가서는 영어로 길 물어보고... 넌 이 새끼야! 미국애들이 거의 당연하게 영어로 서울에서 한국인들에게 길 물어보는데 그런 놈들에게 영어로 "존나 친절하게 고매한 양키들이 땡스 외쳐주시면 몸둘 바를 몰라하며 잇츠 오케이 외쳐주시는 공화국 인민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왜 유재석의 박명수의 병신같은 영어에 네 얼굴이 화끈거려야 하는데? 어차피 웃기려고 간 애들이 존나 유창한 영어를 해대거나 통역을 대동해서 매끈한 대화를 하면 그게 한식세계화에 이바지하려는 공영방송 문화방송의 야심찬 다큐멘터리지 주말 버라이어티 <무한도전>이니? 알지 모르겠는데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은 과거 소싸움 대회에서 1등한 소하고 줄다리기 하고 지하철하고 100미터 잘리기하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면서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하던 프로그램이라는 거 아냐? 갑자기 네 모국어가 듣고 싶어졌나보지? 유재석이가 뉴욕에 간다니까 네 모국어 듣고 싶어졌어? 씨발! 네가 뭔데 지상파 방송의 프로그램 포맷까지 이래라저래라 해? 네가 진성호야? 최시중이야? 씨발 어차피 웃기는 프로그램 불편했으면 채널 놀려 응? 손가락은 딸딸이 칠때만 쓰니? 나도 어지간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 좋아하지만 "손발이 오글거릴 때"는 그냥 다른 채널로 돌려 심지어 <1박 2일>이라 해도 말이야... 이게 내가 네 대가리를 날려보리고 싶은 첫번째 이유야 알겠어?
네가 그렇게 고매하게 생각하고 자부심을 갖는 네 모국어인 영어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보자 "네 밥벌이 하게 해주는 것이 영어인데 너 영어 2급 정교사 자격증"은 있냐? 야 이 씨발놈아! 넌 새끼야 곡화국 법에 따르면 중학교에서 영어 가르치는 것도 불법이란 말이야... 네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그 영어가 그렇게 대단해? 22000 뗀 새끼들은 3등급 시민이고 33000 뗀 새끼들은 2등급 시민이고 네이티브들하고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새끼들은 1등 시민이니? 씨발...너 나보다 한국어로 욕 잘해? 영어 잘하는 것이 그렇게 자랑이야? 근데 넌 네 동생처럼 영문학 전공자도 아니잖아? 근데 왜 영어로 밥빌어먹고 살고 지랄이야? 뭐 그거야 그렇다 치자. 네가 차별을 받았다고? 어려서 영어 때문에? 그래서 미국애들의 그런 시선이 싫다고? 네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그런 이유로 외국인들을 버러지 보듯하는 미국애들은 그 외국인 새끼들이 영어 존나 잘해도 어차피 버러지보듯하는 새끼들이야. 제노포비아 새끼들 눈엔 외국인들, 트히 유색인종인데다가 황인종인 우리들,은 다 버러지야? 알아? 너만 미국에서 학교 다녀본 것 아니란다. LA의 한국인 갱스터들은 영어 못해서 총질해대니? 바꿔 생각해봐! 촬영장비 다 보이고 우스꽝스럽게 행동하는 애들을 보면서 "혐오에 찬 시선을 보내는 애들"은 너희 잉글리시 스피킹 피플들이 그렇게 외쳐대는 폴리티컬 코렉트니스를 실천하고 있는 새끼들인지... 넌 그 새끼들이 문제있다는 생각은 1g도 안해봤지? 이게 네가 네 대가리를 날리고 싶은 두번째 이유야... 더 있는데 그냥 이쯤에서 관두자 너같은 새끼는 전기톱으로 뇌를 따서 네 골을 "보양식 좋아하시는 어르신들"이 드시게 광화문 광장-빌어먹을 지구상에서 가장 추한 중앙 분리대-에 놔두고 싶으니까... 그리고 정말 심한 욕으로 끝내고 싶구나. "씹새끼야 평생 그렇게 살어!"
씨발 내 너보다 나이도 많으니 처음부터 반말까고 들어간다. 이 새끼야. 물론 내가 너보다 어렸어도 새끼로 시작해서 새끼로 끝났겠지만, 당신이 도토리 존나 사대면서 화려하게 꾸민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당신의 게시물을 보니 이런저런 대단한 것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영어 못하는 새끼들이 미국의 중심인 뉴욕에 나가서 영어 못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국의 시청자들을 웃기는 무한도전을 보며 그들을 바라보는 미국애들의 시선 때문에 미국애들이 아닌 무한도전에 화가 났다"는 것 아니겠어? 이미 당신은 전력이 있더구만... 작년 빌어먹을 멸치대가리 새끼가 개좆같은 FTA를 위해 미국에 가져다 바친 쇠고기 협상에 대해 반대하는 공화국의 인민들을 "한심해 보인다."라고 한 일이 있더구만... 뭐 그래 그거야 미국보다도 광우병 소의 출현이 더 빈번한 캐나다 국적의 소를 처먹은 자네라면 캐나다소를 처먹은 나도 있는데 그보다 안전한 미국 소를 가지고 왜 지랄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근데 씨발 문제는 그게 아니거든... 클로이펠츠 제이콥스 증후군에 걸린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당신의 뇌가 그 병의 환자들보다도 더 심각하게 스펀지같은 상태라는 데에 네 문제점이 있는거야...이제부터 잘들어! 응? 난 같은 말 여러번 하는 것 싫어하고 "좋은 주먹 놔두고 왜 말로 해!"가 내 인생 신조니까 한 번에 못알아들으면 밤길 조심하면서 다녀야 한다. 알았지?
다른 것 다 제쳐놓고 바이링구얼 내지는 멀타이 링구얼일 네가 공화국에서 한국말 좆도 이상하게 하는 외국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씨발 빌어먹을 공화국 인민들은 영어가 모국어인 애들이 아주 인사동에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영어로 길 물어보면 "서로 영어로 답해주지 못해 안달난 새끼들처럼 경쟁적으로 영어 하려고 하는 불쌍한 영어 편집증 환자들"인 것 인정한다. 그리고 씨발 또 미국에 가서는 영어로 길 물어보고... 넌 이 새끼야! 미국애들이 거의 당연하게 영어로 서울에서 한국인들에게 길 물어보는데 그런 놈들에게 영어로 "존나 친절하게 고매한 양키들이 땡스 외쳐주시면 몸둘 바를 몰라하며 잇츠 오케이 외쳐주시는 공화국 인민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왜 유재석의 박명수의 병신같은 영어에 네 얼굴이 화끈거려야 하는데? 어차피 웃기려고 간 애들이 존나 유창한 영어를 해대거나 통역을 대동해서 매끈한 대화를 하면 그게 한식세계화에 이바지하려는 공영방송 문화방송의 야심찬 다큐멘터리지 주말 버라이어티 <무한도전>이니? 알지 모르겠는데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은 과거 소싸움 대회에서 1등한 소하고 줄다리기 하고 지하철하고 100미터 잘리기하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면서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하던 프로그램이라는 거 아냐? 갑자기 네 모국어가 듣고 싶어졌나보지? 유재석이가 뉴욕에 간다니까 네 모국어 듣고 싶어졌어? 씨발! 네가 뭔데 지상파 방송의 프로그램 포맷까지 이래라저래라 해? 네가 진성호야? 최시중이야? 씨발 어차피 웃기는 프로그램 불편했으면 채널 놀려 응? 손가락은 딸딸이 칠때만 쓰니? 나도 어지간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 좋아하지만 "손발이 오글거릴 때"는 그냥 다른 채널로 돌려 심지어 <1박 2일>이라 해도 말이야... 이게 내가 네 대가리를 날려보리고 싶은 첫번째 이유야 알겠어?
네가 그렇게 고매하게 생각하고 자부심을 갖는 네 모국어인 영어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보자 "네 밥벌이 하게 해주는 것이 영어인데 너 영어 2급 정교사 자격증"은 있냐? 야 이 씨발놈아! 넌 새끼야 곡화국 법에 따르면 중학교에서 영어 가르치는 것도 불법이란 말이야... 네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그 영어가 그렇게 대단해? 22000 뗀 새끼들은 3등급 시민이고 33000 뗀 새끼들은 2등급 시민이고 네이티브들하고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새끼들은 1등 시민이니? 씨발...너 나보다 한국어로 욕 잘해? 영어 잘하는 것이 그렇게 자랑이야? 근데 넌 네 동생처럼 영문학 전공자도 아니잖아? 근데 왜 영어로 밥빌어먹고 살고 지랄이야? 뭐 그거야 그렇다 치자. 네가 차별을 받았다고? 어려서 영어 때문에? 그래서 미국애들의 그런 시선이 싫다고? 네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그런 이유로 외국인들을 버러지 보듯하는 미국애들은 그 외국인 새끼들이 영어 존나 잘해도 어차피 버러지보듯하는 새끼들이야. 제노포비아 새끼들 눈엔 외국인들, 트히 유색인종인데다가 황인종인 우리들,은 다 버러지야? 알아? 너만 미국에서 학교 다녀본 것 아니란다. LA의 한국인 갱스터들은 영어 못해서 총질해대니? 바꿔 생각해봐! 촬영장비 다 보이고 우스꽝스럽게 행동하는 애들을 보면서 "혐오에 찬 시선을 보내는 애들"은 너희 잉글리시 스피킹 피플들이 그렇게 외쳐대는 폴리티컬 코렉트니스를 실천하고 있는 새끼들인지... 넌 그 새끼들이 문제있다는 생각은 1g도 안해봤지? 이게 네가 네 대가리를 날리고 싶은 두번째 이유야... 더 있는데 그냥 이쯤에서 관두자 너같은 새끼는 전기톱으로 뇌를 따서 네 골을 "보양식 좋아하시는 어르신들"이 드시게 광화문 광장-빌어먹을 지구상에서 가장 추한 중앙 분리대-에 놔두고 싶으니까... 그리고 정말 심한 욕으로 끝내고 싶구나. "씹새끼야 평생 그렇게 살어!"
라벨:
개새끼들,
빌어먹을 놈들,
씹새끼들,
영어 2급 정교사 자격증,
영어 사대주의,
영어 편집증,
인격,
크로이펠츠 제이콥스 증후군
2009년 11월 14일 토요일
아님 말고 1000곡(105)

105 Body and Soul Etc.-Coleman Hawkins-
어떤 이들은 이 인물이 1901년에 출생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그에 대해 입증할만한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고 있진 못한 관계로 공식절으로 이 사람은 1904년 11월 21일 생인 것으로 되어있다. 이 사람은 미국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Jazz Saxophonist들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테너 색스를 재즈라는 음악에서 독주 악기로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것만으로도 그의 이름을 반드시 기억애햐할 충분한 명분이 된다는 것이 개인적 견해지만 뭐 그러기 싫으면 그냥 싹 다 잊어버리고 살아도 당신이 밥벌이하는 데에는 1g의 지장도 없으니 뭐 알아서들 하시길 바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재즈에 테너 색스를 사용한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콜먼 호킨스 이전의 테너 색스라는 것이 재즈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테너 색스라는 악기는 최소한 재즈라는 장르에 있어서만은 콜먼 호킨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콜먼 호킨스라는 이 위대한 재즈 뮤지션은 스윙 재즈의 시대를 거쳐 비밥 재즈의 시대에 자신의 만개한 기량을 선보였던 인물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만 할 것이 있다. 이 게시물을 보시는 여러분들 중 대부분은-심지어 얼마 전까지의 티렉스도- 보통 비밥 재즈라는 장르의 이름을 제시하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인물이 있다. 그 이름도 거축한 Charlie "Bird" Parker... 그렇다. 그는 재즈의 역사가 낳은 가장 위대한 천재 색소포니스트들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리고 비밥 재즈를 이야기할 때 만일 이 인물의 이름을 빼놓게 된다면 그는 아마도 비밥 재즈가 뭔지 모르는 인물이거나 비밥 재즈라는 것이 비가 오는 날 밥을 먹을 때는 재즈를 들으면서 먹으면 분위기 죽인다... 라는 불결한 연상을 할만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할 것이다. 하지만, 콜먼 호킨스라는 인물은 비록 찰리 버드 파커만큼의 대단한 천재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비밥 재즈의 시대를 서술하는 데에 있어 찰리와 함께 반드시 거론되어야할 인물임에 틀림없다는 점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당연히 찰리 버드 파커와 콜먼 호킨스가 협연을 한 곡도 있다.(그 둘만 같이 작업을 한 것이 아니었고 그 유명한 Lester Young도 그들과 함께 작업을 했더랬다.) 그의 고향은 미주리주의 Saint Joseph이라는 곳이었는데, 우연치 않게-그 이류가 정확히 서술된 문헌을 발견하지 못한 관계로 이렇게 말씀드린다.- 고등학교를 시카고로 진학하게 되었고 당시 스윙 재즈의 본거지나 다름없었던 시카고에서 그는 (그 학교의 이름이 Topeka Highschool이었다 한다.) 학교에서는 물론 학교를 벗어난 지역에서도 자연스럽게 당시 미국 대중음악의 본거지라 할만한 시카고가 그에게 음악적으로 베풀 수 있는 많은 혜택의 수혜자로서 살아갈 수 잇었던 것이다. 그는 이런 와중에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1921년에 Mamie Snith's JAzzHound이라는 이름의 밴드에 합류하게 되었고 공식적인 그의 음악적 커리어의 시작은 이 밴드와 함께였다 한다. 그 후 호킨스는 이 팀에서 1923년까지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해 호킨스는 뉴욕시에 정착하게 되며 이는 그가 본격적으로 직업 연주가의 길에 들어섰음을 의미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는 1924년부터 1934년까지 뉴욕에서 Fletcher Henderson's Orchestra이라는 이름의 밴드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는데 그 팀에서 그는 자신의 주 연주악기인 테너 색소폰 외에도 클라리넷과 베이스 색소폰(이 악기는 평생 실물을 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까지 연주하며 다중악기주자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특히 1924년부터 그 다음 해까지는 그 유명한 루이 암스트롱의 눈에 쏙 드는 연주로 그의 무대에 항상 서기도 했다.
1934년 Jack Jylton의 밴드에 가입하며 그는 런던으로 무대를 옮기게 된다. 그리고 1939년까지 거의 쉴사이 없는 유럽 투어를 다니게 되었는데 좀 늦은 편이긴 했지만 이 투어를 통해 드디어 그는 soloist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 때 그와 함께한 이 때 그와 함께했던 연주자로는( 놀라지 마시길 바란다.) Django Reinhadr와 Benny Carter등이 있는데, 이 세명이 모두 함께 투어에 참가한 해는 1937년이 유일하지만 그 impact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들의 투어를 중요하게 여겨야할 충분한 이유는 이들의 투어가 지속되고 꾸준한 반향을 얻었던 것을 바탕으로 하여 대륙(당연히 유럽 대륙을 말하는 것이겠지요.)과 신대륙과의 Jazz라는 장르의 시차가 상당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유럽 대륙의 스웨덴같은 재즈 강국이 탄생하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콜먼 루이스가 본격적으로 재즈 신에서 자신의 이름을 각인하긴 했어도 그는 스윙 재즈에서부터 (1928년에는) 루이 암스트롱의 "West and Blues"의 녹음에 참여하는 등, 녹음 작업에 있어선 "자신만의 색채가 다소 약한 연주자"였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랬던 그가 본격적인 "A Class"에 속하게 되는 계기는 미국의 재즈 신에서 Bebop이라는 하위 장르가 말 그대로 휠을 잡던 시기가 열리던 바로 그 사건이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다음 게시물에 이어가도록 한다. 줴길... 한번에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길어졌잖아...오늘 링크를 건 Body and soul이라는 곡은 호킨스가 본격적으로 비밥신에서 휠을 잡기 이전 빅밴드 스타일의 동명의 타이틀의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서 발매 연도는 1939년이다.
Coleman Hawkins - Body & Soul
2009년 11월 5일 목요일
오랜만에 축구 이야기나 실컷...(월드컵의 역사)

1. 진실게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펴기 옹은 박지성의 부상 때문에 A매치 데이에 대표팀에 합류하는 것을 반대하고 허정무는 데려가겠단ㄷ. 가능성은 두 가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퍼기가 몽니를 부리고 있거나 아니면 허정무가 개새끼거나... 이런 이야기를 주말에 모처럼 모인 녀석들과 하는 도중에 내가 한가지 가능성을 더 제시했다. "워낙 한국 언론의 관심이 높은 박지성을 쓰지 않는 데에 대해 한국 언론에 핑계거리를 만들려는 퍼기 영감의 고도의 전술"일 수 있다고... 그런데 더 큰 문제가 터졌다. 아예 팀에선 경기에 출전도 시키지 못한다고 아쉬워할 정도의 부상을 입은 박주영까지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허정무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몇시간 분량은 되나 걸러내고 걸러내고 또 걸러내어 정제된 용어만 사용해서 한 마디만 하겠다. "이봐 허정무씨 평가전은 평가전이야. 평가전 성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으려 하지 말라구..." 그런데 왜 제목이 진실게임이냐고?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게임이라는 것이 아니라 허정무가 평가전이라는 이름의 게임이 가지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2. Steel Yard을 홈으로 가지고 있는 포항 시민들이 부럽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미친즛이 측면공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화국 축구 전문가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왜 항상 공화국 측면은 상대적으로 높은 측면 공격의 비중에도 불구하고 측면 공격에서 좋은 장면을 만들지 못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두 가지다. 축구는 볼을 제대로 잘 차는 것이 가장 우선되는 종목이르는 점을 공화국의 축구지도자라는 인간들이나 선수들이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고 두번째로는 측면돌파로 페널티 에어리어 부근까지 간 다음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하는 것이라고는 아무도 속아주지 않는 몸을 좌우로 움직이는 페인트 동작을 쓰는 윙어들"이 문제다. 축구가 되었건 농구가 되었건 사람이 사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공격과 수비를 하는 운동(배구는 예외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말이다.)에서 맨마킹의 기본 중의 기본은 "눈도 다리도 팔도 거짓말을 핯 수 있지만 골반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수비의 제 1원칙이라는 점이다. 제 아무리 유연한 몸과 신의 경지에 이른 개인기를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도 절대 자신이 움직이는 방향과 반대방햐으로 골반을 틀 수는 없다. 노련한 수비수일수록 맨마킹을 하게 되는 경우 절대 상대방의 시선을 응시하지 않는다.
결국 몸을 좌우로 움직이는 것이 페잊ㄴ트 동작이라 생각하는 윙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옆으로 계속 움직여 중앙에서 고립되거나 사이드라인 쪽으로 고립되는 것 말고는 없다. 지금은 좀 맛이 갔으나 한 때 세계 최고의 오른쪽 윙어였던 호아킨 산체스나 왼쪽 윙어의 표본이라 불리던 아르옌 로벤이나 현역 최고의 윙어라 불리는 프랑크 리베리 중 그 어느 누구도 페널티 에어리어 북근까지 드리블을 한 뒤 수비를 앞에 세워두고 몸을 좌우로 움직이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내지른다. 당연히 중앙 공격수가 따라오고 만일 그럴 여유가 없다면 스스로 자신이 해결한다. 그런데,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포항 스틸러스의 팬은 절대 아니지만 포항 스틸러스의 플레이를 보면 그냥 군더더기도 아니고 "절대 해서는 안될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공화국 축구에선 항상 보는" 앞에서 이야기한 그런 허섭한 짓거리들이 거의 없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팀에 비해 쓸 데 없는 백패스를 거의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횡패스의 비중도 낮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압도적인 ball possesion을 바탕으로 축구를 하는 팀들을 좋아하고 포항은 그런 스타일은 아니지만 군더더기가 없다는 면에서는 오히려 점유율이 높은 축구보다 효울적일 수도 있는 포항의 축구에 대해선 높게 평가한다.
더군다나, 마케도니아 국가대표인 스테보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있긴 하지만, 기껏해봤자 공화국 대표팀 멤버가 될 선수로는 황재원이나 김형일 정도가 전부인 팀이 아시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유럽 챔피언스리그가 아니면 축구도 아니라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으나 국가가 나서 수많은 돈을 뿌려가며 선수들을 사재기해대는 중동국가나 구소련에서 독립한 국가의"거의 국영인" 클럽들이 돈지라를 하면서도 안아보지 못한 ACL 우승 트로피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단히 싼 가격에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팀장악력을 가진 유능한 감독"을 붙잡아둘 수도 있는 기회를 이번 ACL 우승으로 가질 수도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개인적 견해다. 파리아스를 단기간에 실적이 나올 수 있는 팀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장기적으로 그를 붙잡아두고-꼭 국가대표팀 감독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파리아스 자신이 국가대표팀을 원한다 했으니 그 것도 나쁘지 않다.- 많은 부분의 재량권을 그에게 준다면 공화국에서 아르헨티나의 페케르만과 같은 감독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페케르만은 비록 2006년 월드컵의 실패로 모양이 좀 빠지는 수모를 겪었으나 그만큼 어린 선수들을 데리고 전술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구사하는 축구를 할 수 있는 감독은 거의 없다고 본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길어졌으나 오랜만에 축구도시 포항과 그들의 스틸러스가 내게 준 감격은 빌어먹을 리버풀FC의 부진을 잠재울 수 있게 해주어 참으로 고마웠다는 말밖에 다른 할 말이 없었다.
3. 리버풀은 끝까지 나를 우울하게 만들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선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최소한 올 시즌엔 답이 안보인다. 사비 알론소의 공백이 이 정도일 줄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누구의 말처럼 아넬카를 왜 데리고 오지 못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나마 이제 아퀼라니가 리그에서의 데뷔를 앞두고 있다하니 그에 대해 기대를 걸어볼 따름이다. 사실 3번은 첼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간의 경기를 보고 왜 안첼로티나 퍼기 옹이 세계적 감독인가라는 이야기를 하려 했으나 그들의 승승장구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리버풀의 팬이라는 것이 너무 약이 올라 이야기하기 싫어졌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보르도의 선전 정도일 것이다. 매번 올해는... 혹시 올해는... 하며 리버풀의 우승을 기원하던 것도 이젠 지친다는 말 밖에는... 빌어먹을 리버풀! 왜 베니테스 아저씨는 스페인 출신이 잉글랜드 감독들보다 더 뻥축구를 해대는거야...
피에쓔>
이 게시물을 쓰고 있는 동안에 독일의 국가대표 골리였던 얀케의 자살소식이 들여왔다. 그리고 며칠 전, 이 광기 형아의 아들이 저세상으로 갔단다. 얀케 역시 자신의 딸을 잃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얀케가 없어도 지구상에서 축구공은 계속 굴러가겠지만 그는 정말 훌륭한 골리였다. 그의 명복을 빈다.
아저씨가 살아있었다면...(Soundless Music)

1984년 4월 2일(한국시간) 그때만 하더라도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FM음악방송의 팝음악 전문 프로그램들은 말 그대로 난리도 아니었다.(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왜 도대체 이런 비논리적이고 비언어적인 표현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많은 사람들-심지어 나조차도-쓰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난리가 아니라면 별 일 아닌 일이란 이야기인데...) 물론 존이나 조지의 사망소식처럼 전 세계를 들끓게했던 임팩트를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인류는 자신의 필드에선 압도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던 한 위대한 작곡가이며 타악기와 건반악기와 심지어는 클라리넷까지 연주할 수 있던 다중 악기 연주자이자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보컬리스트를 한 명 잃었다. 그 것도 병사가 아닌 대단히 불행한 사건으로 말이다.(그 것이 뭔지는 각자 알아서들 찾아보시기 바란다.) 사람들은 그가 살아있을 때 그를 Marvin Gaye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더랬다. 미국 시간으로 1939년 4월 2일 워싱턴 컬럼비아 특별구에서 태어나 45세 생일을 하루 앞둔 1984년 4월 1일 로스 앤젤리스에서 세상을 떠난 그 사람이 바로 마빈 게이라는 말이다.
누구나 Motown Sound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면 슈프림스나 잭슨 파이브를 떠올리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Motown Sound의 완성은, 그리고 가장 높은 음악적 완성도 역시, Marvin Gaye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본다. 물론 그의 별칭 역시 "Prince of Motown"이거나 "Prince of soul"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마빈의 개인적인 천재성 못지않게 모타운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에 "화룡정점"(용은 불에 구워 먹어야 맛있다는 이야기)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잭슨 파이브나 잭슨스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스타성에 비해 아직 풋내기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고 다이애나 로스 & 더 슈프림스는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다이애나 로스가 오리지널 멤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팀의 이름 앞에 내세울 정도로 지나치게 다이애나 아줌마의 스타성에 의존하는 팀이었고 전혀 이견이 없는 천재 스티비 원더는 "대단히 재기발랄하고 천재성이 넘치나 원숙한 음악을 했다"고 보기엔 무언가 조금 모자란 점-음악적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경륜의 문제라 하는 것이 좋겠군요-이 있었다는 생각이다.
마빈 아저씨는 곡을 쓰는 능력에서 다중악기 연주자로의 능력은 물론 보컬리스트로서도 당대 최고의 인물 중 하나라는 데에 이견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그가 돋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는 우월한 DNA를 이용해서 듣는 사람들을 윽박지르는 듯한 힘" 보다는 폭발할 듯, 폭발할 듯하다 결국엔 특정 지점에선 선을 넘지않는 "대단히 지적이고 영악한 보컬리스트"라는 점 때문이라 할 것이다. 아마 소울 보컬의 전범(proto type)이 어떤 것이냐?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열 명중 여섯 명 이상의 전문가들은 그를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소울 보컬의 선생님"으로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만큼 그의 보컬은 천부적인 보컬리스트로서의 재능을 갖추었다기 보단 천재적인 곡해석력을 가지고 있는 보컬리스트라는 평을 받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아지막 문단에서 그 빌어먹을 1000곡도 아닌 다른 카테고리에 이 사람의 "Sexual Healing"을 소개하려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니 딴 곳으로 채널 돌리지 마시라!(채널은 무슨 얼어죽을 채널이란 말인가? 그래서 애들 방에선 텔레비전을 없애야 한다.)
사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흑인음악을 진지하게 들어야겠다는 동기의식을 부여했던 곡이 바로 이 곡이다. 중학생도 안된 놈이 그 해 밞매되었던 마빈 아저씨의 이 곡을 듣고 "우리와는 도저히 정서도 안맞고 따라부를 능력도 낭되는 흑인음악"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감히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으나 그렇기 때문에 평생 들을 수 있는 음악이 흑인 음악"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 것이 바로 이 곡이다. 물론 이 곡이 마빈의 곡 중에서 최고라든지 흑인음악을 대표할만한 유일한 곡이라든지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실시간으로 들었던-발매되던 그 해에 접했던- 소울 곡이며 그리고 그 감동의 동시성을 근 30년이 다 되어 돌이켜보아도 "그 때 마빈 아저씨의 이 곡을 듣지 못했다면 T-Rex이라는 인간의 반은 충분히 날아가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마빈 아저씨가 살아있었다면-올해 만으로 70이 되셨겠지만- 와견 흑인음악의 판도가 지금과 유사했을까?-지금의 이 바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이런 대가가 죽지 않고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마빈 아저씨의 이야기는 그 빌어먹을 1000곡 어쩌고 하는 게시물에서 더 자세히 하게 될 것이다.
Sexual Healing-Marvin Gay
위의 곡은 Extended Version입니다.
2009년 11월 4일 수요일
20091105(개소리들)

1. 레비 스트로스 할배를 위한 추도
11월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은 탓에 101세가 아니신 100세를 일기로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단 힌반더 선생을 만나뵌 적은 없으나 일찍이 20대 초반의 시절에 처음 접한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선생에게 내가 진 빚을 이야기하자면 족히 20초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 대가리의 용량을 생각했을 때 20초 동안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당근 체력이 소진하고도 남을만한 시간이다. 그만큼 그에게서 받은 영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그의 저서는 내가 칼 맑스 선생의 저서를 접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대퇴부를 강타하는 심하게 강타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T-Rex 좆같은 새끼"라 말씀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분명히 밝혀야만 할 것은 맑스의 주장은 사실 지나치게 유럽중심주의적인 것이고 항상 문제가 되는 이른바 "오리엔털리즘"이라는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
맑스 선생은 유럽 중심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지나치게 강했던 나머지 아시아에 대한 "전통적 유럽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신 부분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단적으로 "아시아적 소유 형태"라 그가 이야기했던 것을 "아시아적"이라 일반화시키기엔 무리가 있었고 맑스 이후의 수많은 맑시스트들 역시 유럽중심주의 혹은 이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 혹은 이성의 절대적 우의에 대한 암묵적 동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맑스 이후의 최고의 "맑스주의 역사학자"라는 평가를 받는 에릭 홉스봄 선생의 글들을 "행간을 아주 자세하게 디리 파지 않으면" 자칫 잘못하다가는 서구의 아시아에 대한 지배를 정면으로 반박할 논리가 빈약해진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사실 이런 맑스주의의 출발점과 무관하다고 하긴 힘들 것이다. 그렇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심지어 유럽의 좌파들도 서구인들의 아시아 침탈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할 수 없는 어정쩡한 포지셔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아쉽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해도 그리 과한 이야기는 아니라 할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차치하고 레비스트로스가 내게 갖는 의미는 이른비 식민지 팽창의 시기에 왜 인류학이 발달할 수 있었으며 서구의 국가들이 왜 그리도 많은 의사들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보냈으며 결국 그런 "선행(?)"의 종착역이 식민지 지배였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다. 오지 탐험가나 인류학자라는 인간들이 아프리카나 아시아 국가들에 들어가 "아! 씨발 여긴 존자 미개하고 야만적이에여 교육과 의사가 필요해요! 참! 얘네들은 존나 미신을 숭배하니 선교사도 필요해요! 그리고 이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궁극적으로는 군대도 있어야 해여!" 니미! 역사시대 이전의 역사를 연구한다는 미명아래 이따위 작당을 하고 있었으니 레비 스트로스 할아버지의 "야 이 좆같은 새끼들아! 늬들은 밥처먹을 때 포크와 나이프를 쓰지? 브라질의 아마존에 사는 사람들은 손을 써서 밥을 먹거든? 너희들의 포크와 나이프가 밥처먹는데 쓰는 도구라면 이 사람들에게 손이 바로 그거야! 그러니 미개니 야만이니 저급이니 고급이니 하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려거든 네 주둥이를 꿰메버리겠어"라는 말씀이 대퇴부를 강하게 때리지 않는가?
레비 스트로스 할배를 위시하여 구조주의의 수퍼스타들이라 불릴만한 롤랑 바르트, 미쉘 푸코, 루이 알뛰세 등이 모두 이 세상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드디어 레비 스트로스 할아버지도 가셨다. 아마도 이제 더 이상 구조주의가 서구의 지성계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몰고오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이들을 "구조주의의 수퍼스타"라 칭한다 하더라도 레비 스트로스 할아버지만큼의 폭발력을 지닌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레비 스트로스 할아버지만큼 구조주의라는 것을 통해 바보들의 뒤통수를 쳤던 일도 없었다 할 것이다. 맹목적으로 개신교에 광분하며 "미국이 없었으면 우리는 좆됐을겨"라고 떠드는 주둥아리나 "일본이 없었으면 근대화는 불가능했고 박정희 장군이 없었으면 우리는 아직도 쫄쫄 꿂고 있을겨.."라고 처나불대는 주둥아리에 아마존의 식인 물고기인 피라니를 몇마리씩 처넣어주고 싶다. 지들이 그걸 우적우적 씹어먹든지 피라니가 그 색히들을 처먹든지 둘 중 하나의 결과는 있으리라. 니미...
2. 공화국은 이미 토건국가였다 수십년 전부터...
올해도 어김없이 연말이 오고 이미 9우러부터 서울 곳곳의 아스팔트를 까대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느 한 구(區)도 아스팔트나 블럭을 까지 않은 곳이 없다. 니미 이 병신같은 공화국은 일년에 반은 눈이 오는 공화국보다 훨씬 더 높은 위도의 국가들도 하지 않는 "매년 아스팔트 교체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것도 지방자치가 부활되기 훨씬 전부터 말이다.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아저씨들이 토건국가 운운하며 4대강 어쩌고 하는 사업을 비판하기 훨씬 이전부터 공화국은 빌어먹을 놈의 토건국가였다는 말이다. 아스팔트랄 까고 수도관이나 하수도관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다가 사람들이 다치고 심지어 죽는 일이 생겨도 매년 "내구연한 1년"의 보도블럭은 계속 생산되고 "유통기한 1년"의 아스팔트 공장들은 신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다 경제통계에서 GDP라는 이름으로 잡히는 항목이란 말이다. 니미럴... 긴소리 하기 귀찮다. 대운하나 4대강을 봉쇄하려면 이런 저질스런 짓부터 막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삽질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새끼들의 대가리를 몽둥이로 까버릴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오랜만에 올리니 길게 쓰기도 귀찮다.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지오반니 가브리엘리 아저씨께도 죄송하다.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