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경향신문에 외국인의 신분으로 한국에서 연예활동을 하고있는 줄리앤 강과 에바 포피엘의 대담이 기사로 실렸더랬다. 내가 그들의 팬이거나 한 것은 아니고 그다지 자세히 볼 생각도 없었던 기사인데 기사를 읽다가 뒤통수를 한 대 강하게 맞은 충격을 받은 바-아마 지난 토요일이었지?- 잠깐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박정희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의 면상이 떠올라 구역질이 나와 다섯 문단이나 썼던 게시물을 삭제해버렸다. 종종 그런다. 이해하지 않으셔도 된다.) 줄리앤 강에게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냐는 질문을 했던가? 아무튼 그런 질문에 "노래방에 가게 되면 MC몽의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살짝 눈을 의심하고 그러려나보다 하려던 차에 그가 그에 대한 이유를 이야기했던 것 역시 실려있었는데 "미국 스타일 카피 안하고 '완전'한국적인 힙합"이기 때문에 그의 노래를 즐겨 부른단다. 앞서도 말했지만 한 2분 정도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해머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았으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었다.(해머로 머리를 맞아본 적이 없으니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집집마다 인터넷 전용선이 깔리기 훨씬 이전인 90년대 말 하이텔이나 천리안 혹은 나우누리의 대중음악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던 이야기들 중 하나가 당시 휠을 잡던 드렁큰 타이거나 지누션 등등이 과연 "정통힙합"을 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지금은 더 대중화 되었겠지만 당시에도 힙합을 듣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관계로 이런저런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이 많았으나 결론은 "그들의 음악은 정통힙합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고로 좀 구리다."라는 쪽으로 모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장르에 관심이 있긴 하지만 당시에도 어줍지 않게 힙합이라는 것을 조금은 듣던 시기였고 그런 논쟁이 있기 수년 전에 노터리어스 비아이쥐가 투 팍 사커의 살해를 사주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그리고 그 뒤에 노터리어스 비아이쥐 역시 총에 맞아 죽은 일이 있던 관계로 서구의 대중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힙합 신을 주목하기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지만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하려 한 이유는 3대 통신사의 대중음악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던 이야기가 이른바 이스트 코스트 힙합이나 웨스트 코스트 힙합 등의 "정통힙합"이란 무엇이며 한국의 인기 힙합 팀들이 정통인가 아닌가?를 따지며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며 한국의 힙합이 미국의 그 것을 되도록이면 가깝게 따라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격전장이 PC 통신이었다는 말씀...
다른 장르도 그렇지만 유독 힙합이란 장르에 있어서는 "정통"이라는 수사에 대한 집착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단하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정말X300 나를 당황하게 했던 것은 (물론 줄리앤 강이 음악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잎에서 "미국 스타일을 카피했"이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돌리지 말고 이야기하자면 "그간 많은 사람들이 해왔던 그런 류의 논쟁들이 미국인들이 봤을 때 오~ 우리처럼 하는군!"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가 절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여~" 내지는 "우리 것이 최고여~"라는 류의 주둥아리 놀림을 해댈 사람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시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음악의 완성도나 작품성이라는 단어"가 장르의 전범게 일치해야만 하는가?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던져봐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비단 힙합이라는 장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절대 아닐 것이다.
그렇다. 문제는 힙합이란 장르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 자신도 대단히 찔리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 "머리를 해머로 맞으면 이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처죽기 전에 안들으면 넌 병신~ 이라는 컨셉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과연 "내가 죽은 자식의 몸을 만지며 그를 살리려는 불가능한 꿈을 꾸는 병신 색히"는 아닌가?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게 된 것이다. "왜그래? 넌 본디 쓰레기이고 양아치이고 병신색히잖아?"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맞는 말이기는 하나 지금은 말장난 하자는 것이므로 가만있지 않겠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할 문제다. 음악이 먼저인가? 장르가 먼저인가? 이런 문제는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이런 문제는 유치하기 짝이없는 문제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인가?-이런 염병할 내가 무슨 유인촌인가? 이따위 생각을 하게...-외국인의 기준으로 한국의 대중음악을 판단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가지는가? 설마 이런 문제일까? 이런 문제들은 "한국문화의 세계화" 따위의 개소리를 짖어대는 바보들의 질문이다. 물론 나도 바보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고 자부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솔직히 무엇엔가 얻어맞은 느낌이 잇었으나 그 근본이 나에게 있는 것도 알았으나 정확한 실체를 몰랐다. 그러다가 머리를 또 한 번 때리는 것이 있었다.
아! 잘못하다간 내가 그렇게도 욕해대던 꼰대들의 허섭한 짓거리들을 답습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그 점이었다. 물론 Classic이라 불릴 클래스의 작품들이 훌륭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류는 지금은 형태만 남아있거나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악기들부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지 않았는가... 그 것이 발전인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그런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소용없을 것이다. 음악은 계속 변하는 것이고 항상 스스로 주장하듯 "잘만든 음악은 좋은 음악이고 그렇지 않은 음악은 쓰레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 개인적 신념이지만, 그러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항상 새로운 음악을 듣고 현재의 조류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학습을 꾸준히 실행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도 꼰대나 쓰레기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음악들도 좋고 장르의 기본정신에 충실한 음악도 좋다. 하지만 대중음악이라는 장르의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들 중 하나가 "대중"이며 그 단어 자체에 대단히 가변적인 의미가 내표되어 있으며 그런 가변적이고 다의적인 추상들을 쫓아간다는 것은 피상적으로 생각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결론? 뭐 항상 그런 것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난 아직 멀었고 어떤 음악이 되었건 평생 듣지 않으면 nurd이 되고 말 것이다. 빌어먹을...
2009년 10월 26일 월요일
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아! 씨발 손발이 \오글거려 못해먹겠네 빌어먹을(개소리들)
1. 지난 토요일 벼르고 별러서 <스타 골든벨>을 시청했다. 당연히 김제동의 막방이었기 때문이고 그가 과연 무슨 말을 할까라는 것이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내가 여기서 시청 소감을 주루룩 써제낀다면 웃기는 일이 될 것이므로 그에 대한 것은 생략하기로 한다. 물론 한 때 지금의 유재석이나 강호동의 위치에 근접했던 김제동이 지금은 주춤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제동의 후임이라는 사람을 보면 김제동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경쟁력 때문에 KBS에서 김제동을 자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제동의 후임인 J씨는 도대체 웃기지도 않고 감동도 주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오래 버틸 수 있는가?라는 존경심을 가지기에 충분한 인물 아니던가? 게다가 과거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다소간의 문제가 있어 프로그램에서 빠졌던 사람 아니던가? 후임자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역할은 주로 잘 나가던 프로그램이 힘이 빠지게 되고 마침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특급 MC의 계약이 끝나게 되었을 경우 설거지를 하던 것 아니덨던가? S본부의 모 프로그램이 그랬다. 아무튼... 그 프로그램의 경쟁력은 전혀 향상되지 않을 것이다. 아! 불쌍한 이채영 눈화... 이젠 그 눈화를 보기 위해 <스타 골든벨>을 가끔 보던 재미도 업어졌구나...
2. 김제동의 막방을 시청하다가 갑자기 든 생각이 심지어는 노태우나 김영삼이 대통령을 할 때도 죽어라 코미디의 소재가 되던 "현직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소재로 하는 코미디들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에 생각이 이르게 되었다. 즉, 우리의 무오류를 자랑하시는 대통령 각하가 집권을 하시면서 "아!이제 각하의 성대모사를 바탕으로 내가 좀 치고 올라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불철주야 각하의 성대모사를 연습했던 개그맨들은 졸지에 손가락을 빨고 있엤구나... 흑흑흑... 여기에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확실한 상황! "아! 이 정권은 김제동뿐 아니라 수많은 개그맨들의 밥벌이를 막아서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지금은 없어진 <폭소클럽>에서 무오류, 무결점 각하의 성대모사를 하시던 노정렬 형님은 작년 촛불 집회 때 현장에서 사회를 보시더만... 물론 그 일은 돈이 되진 않을 것이다. 물론 무결점 무오류 각하의 성대모사를 하는 개그를 보는 자체가 짜증일 수 있겠으나 이미 김제동이 잘리기 이전, 개그의 소재 자체가 굉장히 제한된 채로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3. 이러던 와중에 절대 오류가 없으시며 실수도 없으신 각하가 속해계신 당의 진 뭐시기라는 의원님께서 김구라를 지칭하여 "저런 분이 방송에 생존해있다는 것은 문제"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언제나 그랬듯 욕 좀 하겠다. 니미! 언제부터 빌어먹을 집권당 국회의원이라는 새끼가 딴따라들 입까지 단속하고 지랄이었단 말인가? 김제동이 잘린 것은 김제동이 경쟁력이 없어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차원이었고 시장에서 끊임없이 수요가 있어 각 방송사에서 필요로하는 김구라에겐 막말이니 어쩌니 하는 개소리를 해가면서 방송에서 나가야 한다니... 아마 김구라가 인터넷 방송을 하던 당시 무오류 무결점의 각하를 "함바집에서 밥이나 처먹던 노가다 십장"이라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방송에 대해 특정 인물이 나가야 하니 들어와야 하니 하는 것은 근대 이후의 국가에서 그 것도 자유선거에 의해 국가의 권력이 정당성을 갖는 이 빌어먹을 공화국의 국회의원의 주둥아리에서 처나올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새끼가 "이미 평정했다"고 했던 네이버를 떠나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4. 굳이 파리의 1968년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 것"임을 망각하는 것이다. 수없이 한 이야기라 지치는 이야기긴 하지만 애초에 법이란 것이 만들어진 이유, 혹은 법의 정신이란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제한하기 위함이었으며 법이 인민들의 일상의 모든 부분까지 제약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그 것은 이미 근대적 법 제정의 원리에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개인과 국가의 문제가 그렇다면 개인과 개인의 문제 역시 심각한 폭력이나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상대방에게 굴욕적인 일들을 저항도 없이 감내할 것을 강제하지 않는 것이라면 되도록이면 법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법이라는 것이 매개된다면 둘의 인간적인 관계가 다시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까와질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권력이건 개인이건간에 "지가 알아서 할 일만 알아서 하는 것"이 명랑사회를 앞당길 수 있는 첩경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는 점이다. 내가 김제동의 팬이거나 김구라의 팬이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도 용납할 수 없는 이 빌어먹을 공화국에서 "사상의 자유"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빌어먹을 새끼들에게 욕이라도 한 마디 더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참으로 빌어먹을 새끼들이다.
2. 김제동의 막방을 시청하다가 갑자기 든 생각이 심지어는 노태우나 김영삼이 대통령을 할 때도 죽어라 코미디의 소재가 되던 "현직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소재로 하는 코미디들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에 생각이 이르게 되었다. 즉, 우리의 무오류를 자랑하시는 대통령 각하가 집권을 하시면서 "아!이제 각하의 성대모사를 바탕으로 내가 좀 치고 올라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불철주야 각하의 성대모사를 연습했던 개그맨들은 졸지에 손가락을 빨고 있엤구나... 흑흑흑... 여기에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확실한 상황! "아! 이 정권은 김제동뿐 아니라 수많은 개그맨들의 밥벌이를 막아서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지금은 없어진 <폭소클럽>에서 무오류, 무결점 각하의 성대모사를 하시던 노정렬 형님은 작년 촛불 집회 때 현장에서 사회를 보시더만... 물론 그 일은 돈이 되진 않을 것이다. 물론 무결점 무오류 각하의 성대모사를 하는 개그를 보는 자체가 짜증일 수 있겠으나 이미 김제동이 잘리기 이전, 개그의 소재 자체가 굉장히 제한된 채로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3. 이러던 와중에 절대 오류가 없으시며 실수도 없으신 각하가 속해계신 당의 진 뭐시기라는 의원님께서 김구라를 지칭하여 "저런 분이 방송에 생존해있다는 것은 문제"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언제나 그랬듯 욕 좀 하겠다. 니미! 언제부터 빌어먹을 집권당 국회의원이라는 새끼가 딴따라들 입까지 단속하고 지랄이었단 말인가? 김제동이 잘린 것은 김제동이 경쟁력이 없어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차원이었고 시장에서 끊임없이 수요가 있어 각 방송사에서 필요로하는 김구라에겐 막말이니 어쩌니 하는 개소리를 해가면서 방송에서 나가야 한다니... 아마 김구라가 인터넷 방송을 하던 당시 무오류 무결점의 각하를 "함바집에서 밥이나 처먹던 노가다 십장"이라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방송에 대해 특정 인물이 나가야 하니 들어와야 하니 하는 것은 근대 이후의 국가에서 그 것도 자유선거에 의해 국가의 권력이 정당성을 갖는 이 빌어먹을 공화국의 국회의원의 주둥아리에서 처나올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새끼가 "이미 평정했다"고 했던 네이버를 떠나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4. 굳이 파리의 1968년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 것"임을 망각하는 것이다. 수없이 한 이야기라 지치는 이야기긴 하지만 애초에 법이란 것이 만들어진 이유, 혹은 법의 정신이란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제한하기 위함이었으며 법이 인민들의 일상의 모든 부분까지 제약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그 것은 이미 근대적 법 제정의 원리에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개인과 국가의 문제가 그렇다면 개인과 개인의 문제 역시 심각한 폭력이나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상대방에게 굴욕적인 일들을 저항도 없이 감내할 것을 강제하지 않는 것이라면 되도록이면 법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법이라는 것이 매개된다면 둘의 인간적인 관계가 다시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까와질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권력이건 개인이건간에 "지가 알아서 할 일만 알아서 하는 것"이 명랑사회를 앞당길 수 있는 첩경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는 점이다. 내가 김제동의 팬이거나 김구라의 팬이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도 용납할 수 없는 이 빌어먹을 공화국에서 "사상의 자유"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빌어먹을 새끼들에게 욕이라도 한 마디 더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참으로 빌어먹을 새끼들이다.
2009년 10월 12일 월요일
아님 말고 1000곡(104)

104. Jazzy Sensation Etc.-DJ Afrika Bambaataa-
New York City, Bronx, Rapping, Scratching, Graffiti 이 단어들을 모두 합쳐놓으면 하나의 새로운 개념의 단어가 만들어진다. Hip Hop Culture! 이젠 주로 음악의 장르로 이해되는 단어지만 본디 힙합은 앞서 열거한 단어들을 바탕으로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문화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힙합 문화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이나, 굳이 그 연원을 따지자면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즉, 1930년대 뉴욕 할렘가의 6번 구역에 자리잡고 살기 시작한 서인도 제도 출신의 사람들이 형성했던 문화로까지 Rewind시켜야만 한다는 이야기이다. 서인도 제도의 여러 국가들 중에서도 특히 많은 영향을 행사한 것은 (당신들의 짐작대로) 자메이카 출신의 이민자들이었다. 그리고 위에서 열거한 단어들 못지않게 힙합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 있거 중요한-당신들이 절대 잊어서는 안될-이름이 하나 있다. Afrika BAmbaaTaa라는 이름을 쓰는 DJ이다. 사우스 브롱스의 유명 DJ였던 이 사람은 지금은 힙합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라 여겨지는 MCing, DJing을 처음으로 체계화시킨 인물이며 Hip-Hop Music이라 부를 수 있는 대중음악의 장르의 내적 요인들의 "아버지"라 할만한 인물이다.
많은 히피-하파들이 그랬지만 아프리카 밤바타의 전직은 Street Gang이었다고 한다.(이런 사실이 그에게 자랑이 되진 않겠지만 확실히 특별한 경력이라 할만하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이야기지?) 무책임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난 그의 본명을 모른다. 다만, 그가 Afrika Bambaataa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은 일찌기 청년기에 아프리카 여행을 하고 난 후였다고 한다.(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총쏴서 번 돈으로 아프리카 여행이라... 이 것은 여담인데 그가 조직원으로 일하던 사우스 브롱스의 갱단은 그의 공로는 아니었겠지만 그가 갱응로 활동하던 시기에 사우스 브롱스 지역의 가장 큰 조직이 되었고 지금도 존재하는 조직이라 한다. 그러나, 혹시라도 당신이 디제이로서의 그를 존경하여 그의 인생의 여정을 따르겠다는 생각을 하여 그 조직에 들어간다면 난 절대적으로 반대다. 디제잉을 배우기도 전에 당신의 몸에 수백개의 바람구멍이 생기고 오동나무 코트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 그 여향을 통해 (그와의 인터뷰애 의하면) 자신의 세계관(Worldview)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아프리카 여행을 하던 중 Zulu족의 지역을 지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때부터 자신이 아프리카계 이민이라는 것에 대해 가지고 있더너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칠 수 잇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를 통해 한가지 유추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가설은 "그렇다면 아프리카 밤바타(사실 원어민들의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려면 뱀배~터 정도일 것이다.)의 음악에 줄루족의 음악적 요소들이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닌가?"일텐데, 사실 두말하면 입이 아픈 이야기겠지만 아프리카 밤바타가 음악을 하게 된 것이나 그의 음악에 줄루족의 음악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하나마나한 이야기일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왜 이런 이야기 자체를 꺼냈겠는가?) 일단 밤바타는 줄루족의 지역을 여행한 후 스스로 자신의 경험에 대한 에세이를 작성하여 에세이 컨테스트에 공모하였고 그리고 자신의 에세이가 그 공모에서 수상을 함으로 "문화사업(?)" 분야에서의 첫번째 커리어를 만들게 된다. 이런 일이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밤배타를(어느새 내 표기도 바뀌었군) 제도권에 발을 들이게 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더랬다. 할렘의 흑인들이 제도권에 안착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농구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사실 래퍼가 되거나 히피 하파가 되는 것은 "반드시 제도권에 안착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어쨌거나 뱀배타는 자신에게 힘쓰고 총 쏘는 것 외에 다른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아프리카 밤배터를 이야기할 때 있어(어느새 자연스럽게 표기를 바꾼 것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Universial Zulu Nation이라는 이름의 International Hip hop awareness group이다. 아프리카 뱀배터가 아프리카 여향을 마치고 돌아온 후 그의 타고난 리더십을 이용하여 과거 그의 동료였던 갱들을 모아 문화운동을 지역사회에서 실천할 그룹을 조직하게 되었는데 이 것이 바로 아프리카 뱀배스터를 2007년 RHOF에 헌액되는 클래스의 뮤지션으로 만들게한 Universial Zulu Nation의 시작이었다. 여담이지만 이 줄루 네이션의 브랜치들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나라로는 일본, 영국, 호주, 프랑스 그리고 공화국이 꼽힌다. 줄루 네이션이 추구하는 이상은 국적과 피부색, 그 외의 인간들을 인위적으로 구별하는 모든 법과 제도 혹은 관습들에 상관없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고 아프리카 뱀배스터가 믿었던 것은 그 것이 자신이 경험했던 줄루족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힙합 문화 운동에 의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의 가설이었다. 그래서 그게 성공했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겨우 30년된 movement으로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면 어느 누군들 세계 정복이 불가능하겠는가? 왜 대답이 부족한가?
근 30년간 다른 장르가 발전한 것에 비해 힙합이라는 장르가 워낙 눈코 뜰 사이도 없이 발전해왔기 때문에 지금 아프리카 뱀배터의 곡들을 들으면 막말로 좀 구리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점들과 관계없이 이 인물은 전 세계의 모든 히피 하파들에 의해 힙합의 아버지 혹은 힙합의 매스터로 불리는 인물이다. 본디 이 연속 게시물의 목표가 "최고의 곡"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장르에 관계없이 음악을 들으려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키보드질을 하는 이었고 대부분은 초보자들보다는 중 고급의 감상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이해해 주신다면 이 사람의 곡들을 왜 오늘 소개하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본다. 이런 인물들을 소개할 때는 이 사람의 음악적 완성도 보다는 이 이런 인물들이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천착하게 된다 할 것이다. 음악을 듣느라 귀지 좀 후볐다는 누나, 형들, 클럽에 좀 드나들었다는 누나 형들은 이 사람이 힙합이라는 장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금방 이해하시리라 본다.
Jazzy Sensation
Planet Rock
Feel the vibe(설마 이 곡을 모르실 분들이?)
2009년 10월 5일 월요일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또 양비론?(Soundless Music)
1. 대한민국 음악상의 위기
오늘 경향신문의 "경향마당"에 "위기에 처한 한국대중음악상"이라는 기고문이 실린 것을 보고 어줍잖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다. 결국 다 읽어보시면 알게되시겠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일종의 양비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절대 양시론은 될 수 없음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신문의 기고문을 읽어보면 요는 "가장 의미가 있는 대중음악 상"에 대해 관계 당국의 지원이 끊긴 것이 정부의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물론 당연하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이 끊긴 것은 당연히 이해하지 못할 일이며 이해해서도 안될 일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가자!"라고 이야기하면 그 말을 당연히 "뒤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공화국 정부를 비판하는 것 자체로 그리고 그런 공화국의 정책에 대한 비판만으로 "한국대중음악상"의 난맥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이야기이다.
2. 두 가지 문제점
기고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공화국의 "그래미"나 "주노"를 기대하면서 당국에선 지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최측 역시 그래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을 목표로 했을 것이다. 필자는 이와 관련하여 "주최측에 진보적인 인사들" 때문에 지원이 끊겼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물론 그런 가능성이 다분하다. 지금 이 빌어먹을 공화국에선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양측 모두가 "한국 대중음악상"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에 대해선 근본적인 고민이 부족한 듯 보인다. 양측 모두 "대한민국 대중음악상"이 가지는 한계가 "이 상을 주는 측" 그러니까 "향사를 누가 주관하는가?"가 이 상이 가지고 있는 난맥상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자발적으로 형성된 공신력을 담보할 수 있는 업계 자체의 기구"가 부재하다는 지점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양쪽 모두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 견해다.
일단 이 이야기부터 하자. "그래미가 공정하다고?" "No!" 그래미는 절대 공정하지 않다. 과거에도 여러번 지적한 점이지만 그래미는 이른바 세계 3대 영화제가 자신들의 취향을 가지고 있듯, 그래미의 취향이 있다. 주요 부분의 시상에 있어 그래미의 편파성에 대한 논란은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수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래미가 여지껏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래미를 주관하는 RIAA"가 단어의 의미 그대로 "전미 음반 산업 협회"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음반산왑과 관계있는 많은 사람들 중 일정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회원으로 하며 그들에게 투표권을 주어 그들의 투표로 수상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행사가 진행되며 다소의 편파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미국 내에서 가장 큰 행사의 위치를 지키고 있고 대부분이 어쩔 수 없이 결과에 승복하는 이유는 "업계 관계자의 선택"이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공화국엔 이런 조직 자체가 없고 만일 있다 하더라도 이익단체로 존재한다는 것이 큰 문제거리인 것이다.
상을 주최하는 측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 "공화국의 음반 구입자들의 10%는 듣도 보도 못하거나 팀이나 솔로 가수의 이름 정도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의 거의 대부분을 몰아준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상의 수상자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생기리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일 것이다. 이 문제 역시 이 상의 수상자를 결정하는 가장 큰 주체가 평론가 집단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대중음악에 대한 상은 "우매한 대중들을 계몽하는 도구"가 되어선 안된다. "거의 반은 노골적으로" 대중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며 그들을 가르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상에 대해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것 자체가 바보들의 가장 큰 특기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보일수록 자신들의 "계몽적 훈계"에 훈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바보들만큼 바보는 아니다. 이 문제 역시 음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영리적 조직"이 제대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데세 미롯한다는 것이 개인적 견해다.
3. 사실 바람직한 것은...
지금 공화국의 문제점 중 하나는 메이저 제작사들의 음악이 단조로운 것 못지 않게 비메이저 제작사들의 음악 역시 다양하지 않다는 점이다. 메이저 제작사들이 내놓는 아이돌들의 음악이 다양하지 않은 만큼 인디 레이블들의 음악 역시 그다지 다양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식 용어를 쓰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인디 레이블에 소속된 팀들에겐-특히 여성 멤버가 리드보컬을 맡고 있는 팀들의 경우엔 더- 어쩔 수 없는 그들만의 "조"가 있다. punk나 neo punk로 대표되는 modern rock이나 hip hop은 이른바 인디 신들의 주류이며 인디 레이블에서 출반되는 음반들 역시 특정한 장르음악을 제외한다면 그다지 다양하다는 수사를 사용하기엔 무언가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 것만으로도 밤을 새울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현실이 그렇다는 것만을 일단 이야기해두고자 한다.
사실 "대한민국 대중음악상"에 대한 기고문에서 기고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그래미"에서도 거의 대부분 CBS SONY, UNIVERSAL, WARNER BROS.등의 메이저 음반사들이 직접 배급한 음반들이거나 메이저 음반사들의 자회사들이 배급을 한 음반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다양성"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본의 음악산업에 대한 지배"에도 불구하고 "음악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자본"이 다양한 음악에 투팁될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 공화국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가장 크게 고민을 해야할 부분은 다양한 음악이 대량유통방식으로도 대중들에게 접근가능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전제가 되어야 궁극적으로 음악의 다양성이라는 것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평소의 소신이었고 지금도 그러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문제가 간단하게 몇 줄의 문장으로 답을 제시할 것이라면 고삐리 때 다른 놈들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사피우는 데에 돈을 쓰는 대신 라이선스 음반들을 사모으고 FM 방송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그 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내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메이저 신에서 다양한 음악의 경합이 가능한 조건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이다.
오늘 경향신문의 "경향마당"에 "위기에 처한 한국대중음악상"이라는 기고문이 실린 것을 보고 어줍잖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다. 결국 다 읽어보시면 알게되시겠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일종의 양비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절대 양시론은 될 수 없음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신문의 기고문을 읽어보면 요는 "가장 의미가 있는 대중음악 상"에 대해 관계 당국의 지원이 끊긴 것이 정부의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물론 당연하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이 끊긴 것은 당연히 이해하지 못할 일이며 이해해서도 안될 일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가자!"라고 이야기하면 그 말을 당연히 "뒤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공화국 정부를 비판하는 것 자체로 그리고 그런 공화국의 정책에 대한 비판만으로 "한국대중음악상"의 난맥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이야기이다.
2. 두 가지 문제점
기고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공화국의 "그래미"나 "주노"를 기대하면서 당국에선 지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최측 역시 그래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을 목표로 했을 것이다. 필자는 이와 관련하여 "주최측에 진보적인 인사들" 때문에 지원이 끊겼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물론 그런 가능성이 다분하다. 지금 이 빌어먹을 공화국에선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양측 모두가 "한국 대중음악상"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에 대해선 근본적인 고민이 부족한 듯 보인다. 양측 모두 "대한민국 대중음악상"이 가지는 한계가 "이 상을 주는 측" 그러니까 "향사를 누가 주관하는가?"가 이 상이 가지고 있는 난맥상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자발적으로 형성된 공신력을 담보할 수 있는 업계 자체의 기구"가 부재하다는 지점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양쪽 모두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 견해다.
일단 이 이야기부터 하자. "그래미가 공정하다고?" "No!" 그래미는 절대 공정하지 않다. 과거에도 여러번 지적한 점이지만 그래미는 이른바 세계 3대 영화제가 자신들의 취향을 가지고 있듯, 그래미의 취향이 있다. 주요 부분의 시상에 있어 그래미의 편파성에 대한 논란은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수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래미가 여지껏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래미를 주관하는 RIAA"가 단어의 의미 그대로 "전미 음반 산업 협회"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음반산왑과 관계있는 많은 사람들 중 일정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회원으로 하며 그들에게 투표권을 주어 그들의 투표로 수상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행사가 진행되며 다소의 편파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미국 내에서 가장 큰 행사의 위치를 지키고 있고 대부분이 어쩔 수 없이 결과에 승복하는 이유는 "업계 관계자의 선택"이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공화국엔 이런 조직 자체가 없고 만일 있다 하더라도 이익단체로 존재한다는 것이 큰 문제거리인 것이다.
상을 주최하는 측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 "공화국의 음반 구입자들의 10%는 듣도 보도 못하거나 팀이나 솔로 가수의 이름 정도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의 거의 대부분을 몰아준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상의 수상자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생기리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일 것이다. 이 문제 역시 이 상의 수상자를 결정하는 가장 큰 주체가 평론가 집단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대중음악에 대한 상은 "우매한 대중들을 계몽하는 도구"가 되어선 안된다. "거의 반은 노골적으로" 대중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며 그들을 가르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상에 대해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것 자체가 바보들의 가장 큰 특기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보일수록 자신들의 "계몽적 훈계"에 훈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바보들만큼 바보는 아니다. 이 문제 역시 음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영리적 조직"이 제대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데세 미롯한다는 것이 개인적 견해다.
3. 사실 바람직한 것은...
지금 공화국의 문제점 중 하나는 메이저 제작사들의 음악이 단조로운 것 못지 않게 비메이저 제작사들의 음악 역시 다양하지 않다는 점이다. 메이저 제작사들이 내놓는 아이돌들의 음악이 다양하지 않은 만큼 인디 레이블들의 음악 역시 그다지 다양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식 용어를 쓰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인디 레이블에 소속된 팀들에겐-특히 여성 멤버가 리드보컬을 맡고 있는 팀들의 경우엔 더- 어쩔 수 없는 그들만의 "조"가 있다. punk나 neo punk로 대표되는 modern rock이나 hip hop은 이른바 인디 신들의 주류이며 인디 레이블에서 출반되는 음반들 역시 특정한 장르음악을 제외한다면 그다지 다양하다는 수사를 사용하기엔 무언가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 것만으로도 밤을 새울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현실이 그렇다는 것만을 일단 이야기해두고자 한다.
사실 "대한민국 대중음악상"에 대한 기고문에서 기고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그래미"에서도 거의 대부분 CBS SONY, UNIVERSAL, WARNER BROS.등의 메이저 음반사들이 직접 배급한 음반들이거나 메이저 음반사들의 자회사들이 배급을 한 음반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다양성"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본의 음악산업에 대한 지배"에도 불구하고 "음악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자본"이 다양한 음악에 투팁될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 공화국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가장 크게 고민을 해야할 부분은 다양한 음악이 대량유통방식으로도 대중들에게 접근가능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전제가 되어야 궁극적으로 음악의 다양성이라는 것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평소의 소신이었고 지금도 그러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문제가 간단하게 몇 줄의 문장으로 답을 제시할 것이라면 고삐리 때 다른 놈들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사피우는 데에 돈을 쓰는 대신 라이선스 음반들을 사모으고 FM 방송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그 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내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메이저 신에서 다양한 음악의 경합이 가능한 조건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이다.
2009년 10월 2일 금요일
몇 가지 신보들에 대한 잡소리들(Soundless Music)

1. 청력이 다해가고 있긴 한 것같다.
무려 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는 비틀스 전 음반의 디지털 리매스터 버전... 디지팩으로 된 14개의 앨범이 한 데 묶여있는 세트를 사는 것은 경제적 문제로 당연히 실패했고 어느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Abby Road"의 디지털 리매스터링 버전을 손에 넣게 되었고 잠에 취한 상태에서 Paster Maters1, 2 을 인터넷으로 구매(아직 도착하진 않았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아직 큰 시스템을 통해 들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디지털 리매스터 판에 대해 다른 사람들처럼 "놀라운 사운드"라든지 "요즘 들어도 전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사운드"(물론 이 이야기는 내가 20년도 더 전부터 주장하던 이야기기 때문에 이런 호들갑을 떠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내지는 심지어 단세포식의 반응인 "이거 쥑이네~" 정도의 반응도 나올 수 없었다는 것! 익명의 독지가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아직까지 새 음반으로 뿅가는 경험"을 하진 못했다. 아마 꺼져가는 내 오른쪽 귀의 청력 문제일 수도 있겠지?
비틀스의 앨범들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tip을 한가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존의 똥고집인지 폴의 똥고집인지 아니면 조지 마틴의 근거없는 확신인지는 몰라도 비틀스의 레코딩들은 동시대의 다른 아티스트들의 레코딩과 비교해 보더라도 "좌우 스테레오 분리가 과하다." 다른 이야기로 하자면 왼쪽 스피커에서 기타 소리가 들린다면 왼쪽 스피커로는 기타소리가 거의 안들리고 베이스의 소리는 그 반대고... 이런 식이다. 요즘같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많이 듣는 세대들에겐 답답할 수 있을 일일 것이다. 이런 현상이 특히 심한 것은 "Elenor Rigby"인데, 당시 보통 비틀스가 작업하던 4채널 방싱의 녹음에서 폴의 보컬이 하나의 채널, 현악단-오케스트레이션이라고 해두자-이 한 채널, 그리고 또 다른 채널을 하나 사용하고 나머지 한 채널은 비워두었다. 당신이 혹시 과거 아날로그 버전의 "리볼버" 앨범을 듣다가 이어폰의 판 쪽이 빠지게 되면 오케스트레이션을 놓치거나 폴의 보컬을 놓칠 것이다. 이번 디지털 리매스터 판에선 이런 문제들이 어느 정도 개선되었는지를 비교해보는 것이 "좋다, 나쁘다"라는 인상주의적 평가를 벗어나 조금 더 건강한 감상을 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 할 것이다.
2. Back to the Blueprint
흔히들 이야기한다. 영화계 최고의 영향력있는 커플은 "브랜젤리나 커플"이라고... 그들이 누군지 또 이야기하는 것은 입아픈 일이므로 생략! 그렇다면 Pop계의 최고 파워 커플은? 두 말하면 입 아프다. Jaay-Z와 비욘세 놀스! 내가 Jay-Z 이 친구를 처음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신인급이었는데 이젠 힙합계에서 "휠을 잡으시는 분"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엠미넴은 정말 "엄처나게 오래갈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에 비하면 제이-지는 엠미넴만큼 오래갈 것으로 보는 사람은 드물었더랬다.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아무튼 제이-지가 이번에 새 앨범을 가지고 돌아와 그의 팬들의 괄약근을 쉴 사이 없이 자극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그 것도 히피 하퍼들이 꼽는 힙합계 최고의 명반들 중 하나라 꼽히는 그 자신의 Blueprint, Blueprint2에 이은 Blueprint3이라는 타이틀로 말이다.
벌써 이 앨범의 타이틀 트랙 격인 D.O.A.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고 한다. 요게 무슨 약자냐고? Death Of Auto-tine의 약자인데, 요즘 내가 놀라는 것은 이 오토튠이라는 장비의 기능이 바뀐건지 아니면 무슨 오토튠을 능가하는 더 새로운 장비가 나왔는지 과거 쓰이던 용도와는 다른 용도로 오토 튠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토 튠은 본디 스튜디오에서 보컬 트랙을 녹음할 때 한음 정도까지 음정이 틀리는 것을 잡아주는 기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기계가 음성변조용으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보곤 의아했다. 이건 과거의 이야기인데 아직 신인시절의 공화국의 동갑내기 남여가수였던 K모씨와B모씨의 곡들을 들어보면 동일인이라 착각할 정도로 음색이 비슷하다. 물론 이런 음악적 쾌거에 기여한 것이 오토 튠이라는 장비였다. 아무튼 D.O.A라는 곡은 바로 이 무분별한 오토 튠의 사용에 대한 제이-지의 꼬장이다. "경향신문"의 타이틀에선 비판이라 했는데 비판보다는 꼬장이 더 어울리지 않는가?
한 아이돌 팀이 오토 튠을 사용해서 재미를 보면 뒤에 곡을 발표하는 이들은 죄다 오토 튠을 사용하고... 이런 상황은 미국도 예외는 아닌가보다. 하긴 오토 튠을 음성 변조용으로 가장 먼저 사용한 장르가 힙합이라고 하니 제이-지의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만도 했을 것이다. 과거의 아이돌이었다 지금 솔로로 돌아온 K모 가수도 오토 튠에 대한 비판을 하던데, 자신의 소속사의 다른 아이돌들은 다 오토 튠을 "요즘 쓰이는용도"로 사용하고 있고 그가 작곡 능력은 없으니 아마도 국내에선 메이저 신에서 오토 튠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곡을 듣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제이-지의 앨범 전체를 다 들어본 것이 아니고 D.O.A.만을 들은 관계로 그의 앨범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은 생략한다. 아무튼 다들 즐거운 추석!
2009년 10월 1일 목요일
아님 말고 1000곡(103)

103. 역사상 가장 완벽했던 라인업을 갖췄던 팀들(2)
오늘 이야기할 팀이야말로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라인업을 갖췄던 팀이지만 가장 과소평가되었던 팀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팀일 것이다. "가장 실력있는 팀은 세명으로 구성된 밴드"라는 이야기에 농담조로 "그럼 솔로가수가 가장 실력있겠네?"라는 반문을 했던 기억이 있다.(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늘 이야기할 팀이 과소평가 되었다는 것은 "절대적 기준"에서라기 보단, 훨씬 더 화려한 팀으로 기억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에 "휠을 잡았던" 다른 듀오들로 인해 상대적으로 그들의 대중적 관심도가 다소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가장 완벽한 듀오의 구성은 Hall and Oates이라 생각하는데-물론 그 팀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하게 될 것이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곡작업에 있어선 철저한 형업체계를 갖춘 동시에 곡의 표현,다시 말해 보컬,에 있어선 한 사람이 전담함으로서 팀의 음악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외부적으로느느 이야기하나, 사실 그 둘의 곡작업의 완성도가 워낙 높기 때문에 그들을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듀오로 꼽는다. 허나 오늘 이야기할 팀은 "듀오 형태의 팀의 역할 분담이 이렇게 완벽해도 문제가 없는가?(궤변인 것 잘 안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팀이다. 그들의 이름은 다음 문단부터 나온다.
-Eurythmics(명. 율동체조)-
뉴웨이브를 대표할만한 팀의 이름이 무슨 빌어먹을 율동체조냐?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명칭의 유례는 워낙 어린 시절부터 각종의 예술적 교육을 받아온 Annie Lenox가 어렸을 적 받았던 댄스 레슨의 선생님이 가르쳐주었던 댄스 테크닉 중 하나의 이름이 "Eurythmy"였다고 한다. 클래식 댄스와 관련된 용어는 거의 대부분 불어에서 곧바로 온 것이라 이 역시 불어를 영어로 번역한 단어일 것이라 추측할 따름이다. 과거 이 팀이 휠을 잡기 시작할 무렵 다소 섭섭하신 한 팝 저널리스트 선생께서 애니 레넉스가 파트 타이머로 "에어로빅"을 가르친 적이 있어 이런 명칭을 사용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으나, 제발 그런 말들에 대해선 한 번 정도 의심해 보시기 바란다. 아무튼 이 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선 Punk rock band였던 The Catch와 The tourist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나 안그래도 보기에 답답하고 지나치게 긴 게시물들에 대한 지적을 받는 마당에 이 팀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을 수는 없고 아무튼 데뷔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던 팀의 명칭에 대해 나름대로 깔끔하게 정리하자면 위와 같다는 이야기이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David Allen Stewart와 Annie Lennox 이 두 사람이 언급한 두 팀에서 죽 같이 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팀의 작곡을 주로 담당하던 Pete Coombes와 관련된 계약상의 법적 문제로 인해 이 두 사람이 80년에 팀을 뛰쳐나오고 "Eurythmics"이라는 이름의 듀오를 결성하여 RCA와 계약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그들은 재결성 뒤엔 Arista로 이적하게 된다.)
오늘 이 팀을 소개하는 목적은 "가장 완벽한 라인업을 가진 팀"중 하나로서 알리는 것이니 그 점에 초점을 맞추자면 스코틀랜드의 에버딘 출신인 1954년생인 애니 레넉스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말을 제대로 구사하기도 전에 악기를 다루기 시작했다."는 믿지못할 소문이 있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음악적으로 출중한 재능을 보였고 집안의 분위기 역시 애니의 그런 재능을 키우기 위해 "경제적인 것만 빼고" 절대적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설마 그랬을라구...) 10대 후반에 이미 런던으로 거처를 옮겨 Royal Academy of Music(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무지하게 좋은 학교다.)에서 정식 음악교육을 받았고 프로페셔널로 녹음을 시작한 것은 The tourist의 멤버로서였다고 한다. 80년대엔 어느 정도 국내에도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요즘 그 것을 기억할 사람들은 없을 것 같아 이야기하지만 애니 레넉스는 로열 아카데미에서 3년간 flute을 공부했는데 성악이 아닌 기악전공인 것이 그에겐 보컬리스트로서 더욱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뛰어난 보컬리스트들을 봐왔고 그들의 연주를 들어왔으나 애니 레넉스는 "흔들리지 않는 정확한 음정"을 가진 보컬리스트를 꼽자면 당연히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리라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기악을 전공한 데에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성악 전공자들은 곡의 조에 상관없이 그 조의 "도레미파솔라시도"롤 음정을 받아들여도 괜찮은 데에 비해 기악전공자들은 악보의 위치 그대로 하나하나의 음을 인식할 수 있어야 연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애니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 데이브에 대한 이야기도 당연히 해야할 터, David Allen Stewart 흔히 Dave Stewart으로 통하는 그는 팀의 작곡과 프로듀싱을 담당했는데 Eurythmics의 멤버로 활동하던 시기에 워낙 유능한 작곡자로 인식되는 바람에 그웬 스테파니, 존 본 조비, 빅 재거, 보노, 타투(t.a.T.u), 케이티 페리(Katy Perry)등에게 곡을 줄 정도로 동료 선후배들의 신망을 얻었던 인물이다.(저 위에 열거된 인물들 중 선배라 할만한 나이의 사람은 오로지 믹 재거외엔 존재하지 않지만...) 그리고 그는 물론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주는 일 외에도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의 작업에 참여한다거나 뮤지컬을 작곡하는 등의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 인물이다. 1968년 상영되었던 그 유명한 제인 폰다가 주연했던
그들이 첫 앨범을 낸 것은 1981년의 일이다. "In the garden"이라는 타이틀로 발표된 그들의 데뷔 앨범은 공식적으로 앨범 판매를 집계하는 영어권의 세 국가(호주, 영국, 미국) 중 그 어느 곳에서도 차트의 100위(미국은 200위) 안에 들지 못하는 쾌거를 이룬다. 그리고 그들은 세간을 놀라게 했던 Self Titled Album인 "Eurythmics"을 발표하기에 이르는데 그 때가 바로 1983년의 일이다. 잠시 여기서 미국인들과 RIAA의 오만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에서 타자로 대성공을 거둔 스즈키 이치로는 2001년 American League의 신인상과 최우수 선수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그런데 그는 이미 일본 프로야구 리그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었다. 미국인들은 미국외의 지역의 경력에 대해선 이런 식으로 폄훼하는 경향이 있다. Eurythmics역시 1981년의 실제 데뷔앨범이 미국에선 발매되었는지조차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이유로 1984년 초의 그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그들을 Best New Artist of the Year의 후보로 올린다. 아무튼 다행인지 불행인지 판단하긴 애매하나 그들은 신인상을 수상하지 못했지만 앨범의 타이틀 트랙이었던 "Sweet Dreams(are made of this)"은 전영 싱글차트에서 2위 빌보드 hot 100 싱글 차트에서는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결론에 가까운 이야기를 해야만 할 필요를 느끼는데 그들을 최고의 라인업을 갖춴던 팀들 중 하나로 꼽는 이유는 (한 단일 작곡가를 세계 최고니 하는 수식어를 사용하여 언급하는 것은 항상 적절한 일이 아니므로) 뛰어난 작곡능력과 연주능력에 프로듀서로서로서의 능력도 갖춘 멤버와 뛰어난 곡 해석력과 표현력 그리고 타고난 가창력과 "굉장히 탄탄한 음악적 기초"를 갖춘 멤버로 구성된 이 팀과 같은 듀오가 나온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리 밝힌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써먹기 위해 아껴둔다. 이 게시물의 초반에 Eurythmics이 과소평가되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은 당대에 그들의 라이벌이라 불릴만한 팀들 중 유난히 Duo들이 많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말 그대로 휠을 잡았던 "Wham"와 "Tears for fears"를 포함해 심지어 미국의 팝음악 전문가들이 "Simon and Garfunkel"을 제치고 미국 최고의 듀오라 꼽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Hall and Oates"마저 그들과 상당부분 활동기간이 겹쳤던 관계로 최소한 대중적 인지도에 있어서만큼은 큰 손해를 보았던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도 이 팀에 대해 이야기하겠지만 곡을 자세히 들어보시면 그들의 라인업이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아실 수 있을 것이다.(그들의 최고의 곡은 한 번 더 우리기 위해 오늘은 뺀다.)
Sweet Dreams(are made of this)
There must be an angel(playing with my heart)(이 곡의 하모니카 연주를 잘 들어보시고 누구의 연주인지 아신다면 당신은 센스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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