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4일 월요일

월드컵 개막 사흘 후...(월드컵의 역사)







아직 모든 팀의 1라운드 첫번째 경기가 끝난 것이 아닌 관계로 몇 팀에 대한 이야기만...

1.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모르는 사람들은 승리의 자격이 없다.
현재 흔히들 이야기하는 유럽 빅리그의 팀들이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는 누가 뭐라 하더라도 프랑스의 축구 시스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프랑스는 자국의 유소년 클럽들로부터 리그 1의 팀들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축구갑부가 되기 위해 거쳐가는 가장 확실한 중간기 기착지 노릇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멤버만으로도 언제든 월드컵이나 유로대회의 8강엔 들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4년 전에도 그랬지만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풍부한 경험외엔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도메네쉬 감독이다. 물론 카림 벤제마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예상보다 부진했다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으나 프랑스 리그에서 가장 공격 옵션이 충부한 공격수인 하템 벤 아르파를 데려가지 않았고 사미르 나스리 역시 데려가지 않았으며 설상가상으로 라사냐 디아라는 건강상의 문제로 남아공에 가질 못했다. 하지만 4년전과는 달리 이제 프랑스 대표팀에 지즈는 없으며 티에리는 지즈가 했던 역할을 하기엔 버거워 보인다. 니미...

2. 그들은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유럽 축구에 있어 두 가지의 우화가 있다. 하나는 개스코인의 이야기인지 리네커의 이야기인지 혹은 그 둘이 아닌 다른 누구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축구는 22명이 전쟁처럼 벌이는 드라마이고 결국엔 독일이 승리하는 경기다."라는 것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은 전세계 모든 축구 전술가들이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며 만들어낸 전술의 무덤이다."는 것이다. 공을 발로 차는 동작의 운동을 맨 처음 시작한 것은 중국이지만 어쨌든 지금 형태의 어소시에이션 풋볼을 체계화시킨 것은 잉글랜드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4-4-2니 4-2-3-1이니 4-2-1-3이니 하는 따위의 암호는 잉글랜드인들이 절대로 해독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일 뿐이다. 수비수들은 공을 걷어내고 미드필더들은 상대방을 반칙으로 무력화시키려 노력하며 뛰어난 윙포워드를 가지고 있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사이드라인을 따라 달리고 크로스를 올린다. 그리고는 상대방에게 볼을 빼앗긴다. 그 것이 잉글랜드의 축구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까지 그러한 잉글랜드 축구에 대한 전통적 기대를 배신하지 못하고 있다. 파비오 카펠로가 아니라 라누스 메힐스가 오더라도 잉글랜드 팀에 있어 전술이라는 것은 해독 불가능한 외계어일 것이다.

3. 마스체라노와 베론?
모든 사람들이 깨닫고 있으나 단 한 사람만 모르는 사실이 있다. 브라질의 호나우두 이후에 그 어느 선수도 선수 한 명의 힘으로 게임을 끝낼 수 있는 상황이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메시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부진한 것은 장시간 여행에 따른 체력의 문제도 그가 12세부터 바르셀로나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애국심이 없어소도 아니다. 메시가 대표팀에서 부진한 이유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엔 챠비 에르난데스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도 부스케스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라도나가 모르는 것은 또 하나 있다. 마스체라노는 홀딩맨으로서의 역할은 정말 세계 최고 수준이나 패싱능력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페케르만은 그를 후안 로만 리켈메의 뒤에 바짝 붙여 리켈메의 부족한 수비력과 스피드를 보완하고 마스체라노의 떨어지는 패싱능ㄹ역을 상호보완하는 포메이션을 사용했다는 점! 하지만 우리의 베론 횽아는 마스체라노와의 간격을 너무 벌여놓고 플레이를 한다. 그 것은 메시의 위치를 자꾸 아래쪽으로 내리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볼보다 사람이 더 빠른 축구"를 하게 한다. 마라도나가 메시를 축으로 아르헨티나 팀을 월드컵 정상에 올려놓기 위해 해야할 일은 챠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역할을 어떻게 아르헨티나 대표팀 내에 심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싫음 말고...

2010년 6월 11일 금요일

어쨌든 또...(월드컵의 역사)







1. 만일 마라도나와 펠레가 한 팀에서 뛴다면 그 팀은 무적일까?
두 사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1974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가 더 이상 새롭고 경이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상투어구일 수 밖에 없을 정도의 팀이었다는 것은 더 이상 하면 입만 아픈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 해 월드컵은 새 주인을 허락하지 않고 서독에게 두번째 안기는 쪽을 선택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74년 월드컵에서 가장 대단했던 팀은 서독이었는지도 모른다. 동독에게 패배를 하고도 결국 네덜란드를 꺾고 월드컵을 가져갔으니 말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당시 서독의 멤버들 간엔 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고 그 긴장은 팀의 케미스트리를 망치기에 딱 좋은 성격의 것이라는 점이다. 당대 서독 분데스리가의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캡틴이 두 명이나 속해있었기 때문인데 카이저라는 별명에 걸맞았던 유일한 선수였던(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카이저는 독일어이고 따라서 역사상 존재했던 독일 선수 중 가장 뛰어난 선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바이에른 뮌헨의 프란츠 베켄바워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주장인 그라보스키가 한 팀에 속해 있었고 그 둘은 축구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앙숙들 중 하나로 꼽힌다. 다들 아시겠지만 결국 그라보스키는 서독의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서독의 우승이 확정되던 순간 마치 슬램덩크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한 행동을 두 사람이 보였더랬다. 세상에! 베켄바워와 그라보스키가 포옹을? 3년 이상을 다른 팀의 선수로, 앙숙으로 살던 그들이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월드컵의 유일한 매력일 수도 있다. 만일 마라도나와 펠레가 함께 뛴다 하더라도 그들이 최고의 케미스트리를 발휘할 수 있다면 그 팀은 최강의 팀이겠지만 그 것이 힘들기 때문에 그 어느 감독도 둘이 같은 팀에 있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2. 이 점만은 꼭...
첫번째로, 한국 축구가 16강에 올라가는가? 아닌가? 따위로 스트레스 받지 마시기 바란다. FC 코리아가 16강에 어울리는 팀이라면 어떻게든 가레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16강에 올라간다 하더라도 민폐에 불과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수준높은 경기를 볼 수 있는가? 아닌가?이지 특정 팀의 성적이 아니다.

두번째로, 축구에서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엄청난 운동량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셔야 할 것이다. 체력이라는 것은 선수의 재능을 담아내는 그릇에 불과하다는 점을 아셔야 한다는 말씀이다. 문제는 축구공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끊이지 않고 움직이는가이다. 그 것을 해내는 팀이 결국 승리하는 것이 축구다. 많이 뛰는가?는 부차적 문제라는 점을 아시기 바란다.

세번째로, 이른바 강팀들의 조별리그 성적을 가지고 그들의 최종 성적을 예상하지 마시라는 점이다. 이른바 강팀들은 절대 조별리그에 그들의 에너지를 다 쏟아붓는 미숙함을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단, 조별리그의 마지막 경기는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다.

네번째로, 혹시라도 스포츠 토토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그 분들이 손해보지 않기를 원하신다면 수익의 20퍼센트 이상을 티렉스에게 분배하시는 조건으로 조언을 구하시기 바란다. 우선 메일을 쏴 주시길! 메일 주소는 다 아시잖습니까? 그러면 제가 제 전화번호를 가르쳐 드리고 통화를 통해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마지막으로, 공화국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다 하여 그 후로 월드컵 시청을 포기하시는 바보 짓은 하지 마시기 바란다는 점 말씀 올린다.

짤은 당연히 프란츠 베켄바워형님 되시겠다.

2010년 6월 8일 화요일

어제 우연히 전화기에 저장된 번호들 중 이젠 더 이상 사용할 일이 없어진 전화번호들을 정리하다가 이상한 번호들을 발견했다.
한 두개가 아니고 몇 개의 전화번호였는데 노인들을 위한 요양시설들의 번호였다.
전에 어머니가 내게 외할머니를 그런 곳으로 모셔야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며 알아보라고 부탁을 하셨고 검색을 한 후 저장했다가 걸어보기도 했던 번호였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이젠 더 이상 그런 곳들의 번호가 필요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그 번호들을 쫙 다 삭제하다가 기분이 묘해졌다.
이젠 그런 곳으로 모실 외할머니가 계시지 않은 것이다.
벽제 화장장에서 정말 한줌이라는 표현이 딱 정확한 만큼의 재가 된 할머니를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어릴적 한동안은 친할머니의 기일이 동생의 생일 3일 후라 동생의 생일이 찬밥신세였던 적이 있었는데 이젠 아마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 딱 일주일 차이가 나는 할머니의 기일과 내 생일로 인해 기분이 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어먹을 세상이다.
전에 할머니가 아직 거동에 불편하신 점이 없으셨을 때 가끔, 정말 가끔 제과점에서 롤케익이라도 사가지고 갈라치면 할머니는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 내 손에 만원짜리 한 장씩을 집어주곤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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