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시간은 흐르는 것이다. 시간은 아무도 가늠할 수는 없지만 시작한 시점이 있었고 그리고 끝나는 시점도 존재할 것이다. 적어도 지구에서의 시간은 그럴 것이다. 적어도 우리 세대엔 오지 않을 것이 확실하지만 지구의 수명은 정해져있는 것이고 지구의 수명이 다하는 그 순간이 지구에서 물리적 의미의 시간이라는 것은 그 종착점에 달할 것이다. 정말 다행인 것은 지금 이 거지같은 포스트를 읽고 있을 사람들 중에선 그 어느 누구도 그 시점까지 생존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그래서 결국 적어도 지금 이 지구에서 사는 우리들은 인류의 종말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선 신경 끄고 살아도 사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우리가 어지간해선 100년 이상의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을 지나치게 서러워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 것은 누가 가르쳐줬든 인간의 본능이든 인간이 기록을 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그 것을 꾸준하게 발전시켜온 데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인간은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것을 바탕으로 주둥이를 털면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도 하고 유혹하기도 하고-이 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한 행위가 될 것이다.- 잚못 입을 털어서 개망신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이라는 것의 이점은 단순히 문자가 아닌 다른 여러가지의 방법을 동원해 누릴 수 있다.
음악도 결국 이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악보를 통해 음악을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간 사회엔 평론가라는 직업이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평론은 예술작품이 기록되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평론이라는 분야가 아무리 발달한다 하더라도 그 것이 그 장르의 예술 그 자체를 뛰어넘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평론이라는 이름의 행위가 행해지는 순간의 상황에 따라 같은 예술작품에 대해서도 수없이 많은 다른 세부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으며 평론가 개인에 따라서도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입을 터는 행위의 한계는 바로 이런 데에 있다.
이런 질문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두 가지가 별로 다를 것 없는 것 같은데..."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평론이라는 것은 대상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해주기 바란다. 시대와 개인에 따라 대상 자체가 달라지는 것과 대상에 대해 이을 터는 것이 달라지는 것을 같은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넌 그냥 멍청한 새끼일 뿐이다. 아무리 훌륭한 평론가라 하더라도 평론을 할 대상이 없다면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즉, 자기 주제 따위는 모르고 지나치게 입을 터는 것들을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 이와 관련하여 더 할 이야기가 있지만 그 이야기를 다하게 되면 과도하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