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9일 금요일

Suede-Nhisht Thoughts(2016)




어쩔 수 없이 스웨이드의 가장 최근 앨범이 이 앨범 되시겠다. 이 프로젝트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2014년 1월 아직도 국내에 팬들이 무지하게 많은 Brett Anderson이 갑자기 우리는 지금 현재 새 앨범 녹음작업을 하고 잇는 중이라고 발표하게 되면서 부터였다. 물론 당연히 대중들의 기대치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썩어도ㅗ 준치랬는데 천하의 스웨이드가 새 앨범을 작업중에 잇다는데 기대하지 않을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오매볼망 이 앨범을 ㄱ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마치 조만간 작업이 끝날 것처럼 이야기했던 브렛의 이야기는 일종의 뻥카가 되어ㅏ가고 있었다. 2014년에 작업중이라 이야기했던 앨범이 당연히 발매되어야하는 시기로 생각했던 2014년ㄴ에 발표되지 않고 해를 넘기고야 말았으니 별의별 소문이 다 돌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작인 2013년 앨범인 "Bloodsports"에서 이미 엄청난 규모의 오케스트레이션 작업을 시핸한터라 이 앨범의 방향이 어떨지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발매는 늦어지고 늬들 같으면 안돌아버리겠냐?

긴 기다림에 지칠 때즈음 드디어 스웨이드는 그들의 새 앨범을 3년 만에 세상에 내놓게 된다. 바이널 레코드로도 나오고 그냥 CD로도 나오고 (자 이제 중요한 이야기다. 이 버전이 바로 내가 구입한 버전 되시니 말이다.) 그들이 제작한 영화를 담은 DVD롸 함께 CD 한 장으로 된 패키지. 이렇게 세 가지로 아는데 이 것보다 더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란다. 영미의 팝시장도 이제 아이튠스가 잡아먹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대규모의 음반작업은 신기하기도 한 동시에 고맙기도 한 일이다. 정말 그렇다.

전 곡의 작곡엔 Brett Anderson이 참여했으며 기타리스트인 Richard Oakes, 건밙악기 연주자인 Neil Codling이 적당히 잘 나눠서 참여하고 있다. 전작 만큼은 아니지만 스타트 트랙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오케스트레이션이 들어가 있어 "난 고상한 음악만을 내 아이들에게 듣게 할거야"라는 생각을 하시는 부모님들이 홀딱 반할만한 인트로를 들려준다. 앨범엔 당연히 그들의 뿌리라 할만한 음악인 브릿팝이나 얼터너티브라 분류될 ㅣ수 있는 곡들도 있다. 물론 그들의 올드팬들은 이런 곡들에 귀가 솔깃할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앨범은 브릿팝이나 얼터너티브의 바탕 하에 Art Rock 혹은 Prog. Rock에 한 발 더 가까이간 음악이라는 평가가 조금 더 정확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미 아시겠지만 별점이니 몇점 만점에 몇점이니 이런 식으로 음반을 평가하지 않기로 한 지 굉장히 오래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이 음반의 가치에 대해 이야갸ㅣ하지는 않을 것이나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스웨이드의 열혈 팬들 외에도 흔히들 이야기하는 Classical Rock의 팬들도 만족할 요소들을 갖추고 잇는 앨범이라는 생각이다. 그 나이에 아직도 목소리가 짱짱한 브렛의 보컬을 듣는 것부터가 굉장히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결론은 사서 들어라!


Pavement-Crooked Rain, Crooked Rain(1994)

이 앨범을 모르더라도 심지어 페이브먼트를 모르더라도 Cut your hair이라는 곡을 모를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팀을 결성한 연도를 기점으로 보면 만으로 10년 첫 앨범이 나온 해를 기준으로 한다면 만으로 7년 이 팀은 그야말로 미국 Indie Rock Scene의 아이콘이었다. 모두가 미국은 이 시기에 Alternative Rock의 전성기라 기억하고있을 바로 그 시기를 얼터너티브의 음악적 세례 없이 정말 자기들의 길을 걸은 몇 안되는 밴드였고 그들의 존재가 바로 당대 미국의 Indie Rock이었던 팀이 바로 Pavement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이 2010년 잠시 재결성을 하여 활동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 시기에 페이브먼트는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 투어 활동을 한 것이었으므로 실재했으나 실제로 활동한 것은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었던 관계로 이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이들의 활동시기로 나오는 2010년은 이들의 무대를 기다려왔던 팬들에겐 역사적인 기간으로 기록될법한 시기이긴 하나 이들의 정식 활동기간으로 여겨야할지에 대해서 앞으로 논의를 거쳐야할 정도로 애매모호한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이들의 시그니처 사운드가 된 Scott Kannberg의 의도적인 불협화음의 연주가 이 앨범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면 대단히 훌륭한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바나와 커트 코베인의 개간지에 밀려 그간 과소평가된 억울한 팀들의 대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가장 심한 피해를 본 것은 Pearl Jam이라 할 수 있겠지만 페이브먼트 역시 펄 잼에 못지않게 저평가를 감수해야만 했던 팀이라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페이브먼트는 사골처럼 우릴 이야기가 많은 팀이니 오늘은 정말 이 정도만 하자. 물론 귀찮기도 피곤하기도 하고 말이다.




Amebix-Arise!(1978)

1970년대 후반은 팝음악계 전체가 커다란 혼란에 빠져있던 시기라 해도 크게 잘못된 말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딱 잘라서 실패했다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Punk Rock이라는 장르의 발흥 자체가 어떻게 보면 그 시기가 혼란의 시기였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수도 있다. 나날이 갈수록 정교해지던 Rock 음악에 등장한 펑크의 존재는 안정적인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졍교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리라는 전문가들의 기대와 대중들의 취향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실이라 여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어떤 식으로든지 기존의 Classic Rock Era와는 다른 형태의 음악들이 Scene의 전면에 등장할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고 그 시기가 언제가 될 것인지에 대해선 불분명하긴 했지만 한 시대를 휩쓸 음악이 펑크가 되리란 것을 예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 씨발 너무 과도하게 큰 이야기부터 하려니 답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 아래부터는 나중에 덧붙이도록 하고 일단 올린다.





2016년 4월 27일 수요일

Prince and the Revolution-Purple Rain(1984)

프린스 형님이 세상을 떠나신 일이야 이미 며칠 지났으니 굳이 그 이야기를 반복하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이 포스트질은 프린스 형님에 대한 추모의 의미가 있다는 점ㅇ느 분명하다는 점을 알아주기 비란다. 올해는 정말 과도하게 마가 낀 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짐 모리슨과 제니스 조플린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를 모두 잃었던 19701년(아 왜 하필이면 잉런 저주받은 해라는 말인가?) 이후로 팝계가 이렇게 많은 것을 한번에 잃은 해는 올해가 처음일 것이란 생각이다.

혹시 늬들이 PMRC(Parents Music Resources Center)이라는 잔체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잇을지 모르겠는데 이 단ㄴ체가 창설되는 데에 가장 큰 기여를 하신 것이 바로 프린스 형님이시란 말씀이다. 그리고 바로 이 앨범하고도 연관이 있다.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하다고 여길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한 때 미국 부통령의 부인이었던 Tipper Gore여사를 아시는가 모르겠다. 그렇다 그 분은 바로 Ql Gore 전 미국 부통령의 부인 되시겠다. 티퍼 여사가 어느날 자신의 열한살 난 딸이 바로 이 앨범의 Darling Nikki를 듣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당연히 이 앨범이 발매되었을 당시 공화국에서도 그 선정적인 내용 때문에 방송 금지곡 풀반 금지곡의 영예를 얻으신 곡인데 자신의 열한살 먹은 딸이 이 곡을 듣는 것을 보고 이 단체를 세우게 되신다.

물론 티퍼 고어 여사가 PMRC을 세울 당시에 티퍼 여사는 당연히 부통령의 부인이 아니었지만 이 단체를 세우시고 우리가 해외 직구를 통해 구입하는 음반에서 볼 수 있는 "Parnetal Advisory:Explicit Lyrics"이라는 스티커는 바로 이 PMRC의 권고로 음반을 배포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측에서 자발적으로 붙이는 것으로 되어있다는 말씀이다. 물론 이른바 19금 음반이라는 것을 구입해보신 적도 없으신 이 사회의 밝고 건강한 성인이신 여러분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일테지만 말이다.

아무튼 프린스 형님의 앨범들 중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이 바로 이 앨범인 것만은 틀림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엔 당신들이 모르는 세계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 하나 있다. 같은 날짜에 동시에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와 빌보드 200 앨범 차트 그리고 전미 박스 오피스의 1위 자리에 동시에 자신의 작품을 올린 아티스트는 프린스가 최초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아무도 이 기록은 깨지 못하고 있다. 당시엔 동명의 영화가 100 퍼센트 프린스 자신의 이야기라 알려졌지만 사실 그냥 자신의 이야기에 바탕을 둔 영화였다고 한다.

사실은 앨범에 대한 프로젝트가 먼저 진행되었고 그리고 그 와중에 영화가 제작되었으며 그 뒤 프린스의 흑역사를 장식하게 될 프린스의 두번째 영ㅇ화 작업인 과는 달리 철저하게 음ㄴ반 프로젝트가 먼저 시작된 후 영화가 뒤를 따른 경우라 할 수 있다. 어쨌든간에 1984년 이 앨범은 빌보드 200 앨범 차트에서 무려 24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겼으며 같은 해에만 1300만장 이상이 팔리는 기록을 세웠으며 (영화의 제작비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어 순수익의 규모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으나) 6800만 달러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한가지! 작년 아델의 앨범에 한참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을 때 경향신문에 팝 칼럼리스트 I모씨가 이런 이양기를 하신 적이 있다. 그 분의 이야기인즉, 요즘 차트의 순환이 빠른 이유가 과거에 비해 들을만한 곡 혹은 역작이나 명작이 없어서 그럿다> 근데 어떻게 차트의 순환이 빠른 것과 음악의 퀄러티를 연관시킬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당대의 음반들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 빠른 차트의 순환이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자. 그 분이 그렇게 좋아하시는 classical rock의 명반들도 10주 이상 차트의 정상에 있어본 적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체크해 보셨는가?









2016년 4월 25일 월요일

Genesis-...And there were three...(1978)

피터가 팀을 떠나면서부터 제네시스의 음악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햇던 그의 존재감을 대체할만한 방법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사후적으로 그들의 음악에 대해 내릴 수 있는 평가다. 하지만 아직도 드럼로서의 연주력에 대해선 끊임없이 의문부호가 붙는 필이었지만-지금은 그나마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 필의 드러밍을 들을 수도 없다.-그에게는 피터에 뒤지지 않는 곡을 쓰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한 필의 능력은 피터가 팀은 떠난 후에도 여전히 제네시스를 작품성이 뛰어난 음악을 생산해낼 수 있는 팀이라는 위치에 머무를 수 있게 했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결국 토니와 마이크 필 이 세 사람만이 제네시스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자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음악적인 방향성에 수정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베이시스트도 없고 드러머가 보컬을 담당해야 하는-그 것도 전 곡의- 상황에 처한 제네시스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와 같은 대규모 사운드의 팀으로 남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피터가 팀을 떠난 이후에 오히려 상업적으로는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평단의 평가 역시 피터가 떠난 이후에도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상업적인 성공과는 별개로 이 팀에 대한 평단의 평가는 달라지게 되었고 공화국 이님ㄴ들이 잘 아는 80년대의 제네시스는 그 전처럼 대 밴드라는 인식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평단의 평가가 달라지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바로 이 앨범에서부터였다. 이토록 비장한 타이틀의 앨범이 평단에서의 평가가 나빠지기 시작한 계기가 된 것이다.

이 앨범을 발매하던 1978년은 뉴웨이브의 총아라 할 수 있는 듀란듀란이 아직 세상에 나타나기 전이지만 이미 디페쉬 모드나 저팬(일본의 X-Japan과는 다른 밴드라는 점에 유의하시기 바란다. 베이시스트가 없는 팀의 구성상 더 이상 그들의 사운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으나 그들에게는 불세춝의 키보디스트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Tony Banks이 건재했다. 그리고 이 문단의 시작에서 이야기한 뉴웨이브는 그들의 음악에 하나의 돌파구가 되었다. 물론 그 것이 옳은 방향이든 그렇지 않든간에 말이다.

클래시컬한 Rock 밴드들에게 대단히 우호적인 롤링 스톤 조차 이 앨범에 별 다섯개 만점에 겨우 별 네개를 주었으며 항상 제네시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던 Q는 겨우 세개의 별점, 심지어 당대 가장 옇ㅇ향력있는 팝 저널리스트였던 Robert Christgau의 경우엔 D+이라는 상상외의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UK 차트의 맨 꼭대기에 오르는 등 대단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 앨범을 통해 우리가 한 가지 커다란 것을 알게 된다. 즉, 이후 필의 솔로 활동의 실마리가 이 앨범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특히나 대단히 중요한 것은 53분이 넘는 이 대작 앨범에서 대단히 안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Follow you follow me의 경우에 제네시스가 발매한 싱글들 중에선 가장 파괴력이 강한 곡이 되었는데 이 곡이 가지고 있는 미니멀한 사운드와 서정적인 가사는 80년대 솔로 아티스트로서 전성기를 누린 필 콜린스의 음악의 전범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Suede-Suede(1993)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나-라고 하기엔 이유가 대단히 분명하다.- 많은 이들은 스웨이드의 출현을 지기의 재림으로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얼터너티브, 브릿팝 계열의 밴드 중에선 대단히 특이하게도 Glam Rock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밴드가ㅏ 스웨이드 였고 스웨이드의 프런트맨인 브렛 앤더슨의 별난 행동이 (개인적으로는 별 상관이 없다고 보지만) 지기를 연상시켰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측면에서가 아니라 스웨이드야 말로 한 시대의 지분을 크게 장악했던 수많은 브릿팝 밴드들 중에서 가장 저평가된 팀 중 하나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겠지만 지금은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의 다섯 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데뷔 당시엔 4인조였다. 보컬엔 굳이 이름을 다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명한 Brett Anderson, 기타엔 Bernard Butker, 베이스 기타의 Matt Osman, 드럼엔 Simon Gilbert이 그들이었다.

여기서 또 하나, 아는 사람은 다 알고있을 사실이지만 스웨이드가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앨범인 Coming Up(1996)을 발매할 당시엔 창단 멤버이자 팀의 한 축을 담당했던 버나드 버틀러가 팀을 떠난 상태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팀의 초창기 음악에서 버나드 버틀러가 담당했던 부분을 간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게다가 오늘 늬들이 들을 이 음반이야 말로 브렛 앤더슨은 물론이요 버나드 버틀러의 역량이 대단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음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발매 당시에 이 앨범은 UK 차트의 정상에 올랐고 공교롭게도 이 앨범을 발매한 레이블은 늬들이 좋아 환장할 이름인 Nude이라는 음반 회사다. 이미 1992년에 싱글로 두 곡 "The Drowners"와 "Metal Mickey"을 발매해 간을 보았던 만큼 데뷔 앨범이긴 해도 이 앨범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리라는 것은 예견된 것이었지만 영국에서의 뜨거운 반응에 비하자면 다른 지역에서의 반응은 그리 불타오르지는 않았다 할 수 있다. 아무튼 닥치고 감상하다 보면 좋은 음반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라 본다. 물론 아님 말고...


2016년 4월 22일 금요일

Milt Jackson and John Coltrane - Bags & Trane(1960)

자. 일단 링크부터 걸고 개소리는 잽싸게 첨부하도록 하자.

1923년 미국 미시건주의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Milt Jackson은 대중음악계에서 보기 드문 비브라폰 연주자로서 솔로 커리어로도 수많은 업적을 이뤄낸 사랑이며 동시에 일본에서 굉장히 인기가 있는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수많은 미국의 아티스트들이 그랬듯 밀트 잭슨 역시 음악적인 경험을 처음 하게 된 계기가 어린 시절 교회에 다니면서였다고 한다. 물론 교회에서 재즈를 가르치지는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맨처음으로 악기를 (정식으로) 연주한 것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기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의 마림바나 비브라폰 연주자가 그렇 듯이 시작은 팀파니였다고 한다. 팀파니를 연주하는 외에 고등학교 시절에 그는 주로 드럼을 연주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설마 그런 것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겠냐는 말이지...뮐론 비브라폰을 처음 접하게 된 것도 고등학교 시절의 일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본인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한다.

밀트 잭슨의 일대기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포스트가 아니니 그에 대해선 이 정도로 이야기하도록 하고(물론 앞으로도 또 이야기할 기회가 생길 것이라 단언한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하드 밥 시대의 거장 중 한 명이라 불리는 밀트 잭슨은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연주했고 특히 Modern Jazz Quartet의 멤버로서 활동하며 수많은 명반을 남긴 인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궁금하면 늬들이 찾아보기 바한다.


2016년 4월 20일 수요일

John Coltrane-My Favorite Things(1961, Atlantic Record)

정말 날로 먹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뭐 이 건 굳이 설명이 필요가 없는 앨범임에 분명하다. 존 콜트레인이 소프차노 색스는 어떻게 연주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준 앨범임과 동시에 이 앨범의 타이틀 트랙은 수많은-사실상 세는 것이 가능할까 싶으로 많은- 재즈 넘버들 중 가장 사랑받는 곡이기도 하고 이 앨범 자체가 1988년 Grammy Hall of Fame에 헌정되기도 했다. 조만간 다시 설명할 기회가 오리라 생각하지만 Modal Jazz의 교과서라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앨범이다.

닥치고 감상!!!


2016년 4월 19일 화요일

Portrait in Jazz-Bill Evans(1959)

우리가 빌 에반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상식 중 하나는 빌 에반스가 대단히 오래 전 태어난 사람일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빌 에반스는 겨우 1929년 생으로 많은 사람들이 동시대의 인물이라 생각하는 미셀 푸코에 비해서도 두 살이나 어리다. 물론 빌 에반스 역시 미셀 푸코 만큼이나 일찍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말이다.

이 앨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1959년 4월 마일스 데이비스와 빌 에반스의 재즈의; 역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음악적인 측면은 물론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성공한 공동 작업-요즘 하도 Collaboration이라는 말을 많이 쓰다 보니 이 말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거니와 굳이 이 단어를 꼭 써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아니다.- 이후 빌은 자신의 밴드를 재정비하게 된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몰라도 그 이전 상당히 오랜 시간 자신과 같이 해오던 사람들 중 상당수와 헤어지고 거의 새로운 밴드를 조직하다시피 한 엄청난 재편이었다 할 수 있는 팀의 재정비후 같은 해 12월에 발매한 것이 바로 이 앨범이다. 그리고 이 앨범은 빌 에반스 자체가 역사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빌 에반스 자신의 음악 생활은 물론 재즈의 역사 더 나아가서 대중음악의 역사에 길이 남을 앨범이 되고야 만다.

아마 인류가 발매한 재즈 음반들 중 피아노가 팀을 리드하는 음반들 중 최고의 앨범을 꼽으라 하면 충분히 몇 손가락 안에 꼽히고도 남을만한 음반인 이 음반에 이르러 비로소 피아노는 당당히 모던 재즈의 주역으로 확실한 자신의 위치를 가지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의 찌질이들에게 "네가 빌 에반스에 대해 알아?"라 시작하는 허세를 부리고 싶다면 반드시 이 앨범은 꼭 들어보고 연기하기 바란다. 허세와 허풍에도 나름의 격이 있는 법이다.



2016년 4월 18일 월요일

Genesis-Genesis(1983)

제네시스와 같은 역전의 밴드가 셀프 타이틀드 앨범을 발매한 것이 그들이 정식으로 앨범을 발매한 후 활동을 시작한 후 거의 15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라는 것이 거짓말이라 믿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애석하게도 말이다. 그리고 그 것이 벌써 33년 전의 일이란 것도 믿어지지 않는다.

제네시스의 역사에 있어 이 앨범이 차지하는 위치도 대단히 애매하다. 이미 1975년 피터가 팀을 떠난 후 팀의 음악적인 색깔이 달라질 것이라는 점은 개나 소나 다 직감한 일일 것이다. 사실 80년대는 기존에 휠을 잡던 팀들이 음악적으로 다소 아스트랄한 변신을 시도한 때이기도 하다. 무디 블루스나 예스 심지어 재결성했던 딥 퍼플에 이르기까지 당시 음악계의 대세이던 뉴 웨이브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경우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 와중에서도 이 앨범은 그 어느 팀들보다 먼저 더 소프트하고 무그 악기들의 영향력에 의해 지배되는 새로운 시도를 1980년대의 활동방향으로 가장 먼저 천명한 앨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론 그 유명한 Abacab을 통해 제네시스의 이런 변신은 이미 예견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어느 팀보다도 제네시스만큼 시대의 조류를 잘 따랐던 팀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과거 피터가 리드보컬을 담당하던 시기의 음악과 비교하자면 피터의 활동기간의 무거움을 털어내는 데에 다소간의 강박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굳이 필이 팀을 주도하던 이 시기의 제네시스를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스티브 해킷이 팀을 떠난 이후로 제네시스는 유능한 기타리스트가 없는 한계를 미리 설정하고 음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면죄부를 받아도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장기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피터의 솔로 앨범 역시 당대의 조류를 충실히 따르고 있지 않았던가...


2016년 4월 7일 목요일

공화국에서 야구는 어떻게 가장 재미없는 스포츠가 되었는가?

이 포스트도 과연 올라갈지 아닐지 자신할 수 없지만 아무튼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노력을 통해 사장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기엔 그간 양치기 소년 짓거리를 많이 해서... 일단 시작하도록 하자. 재미없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공화국의 삶 자체가 재미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순서겠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덜 재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행동 중 하나인 "프로야구를 즐기기"가 어떤 이유로 가장 재미없는 일 중 하나가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공화국의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의 야구팬이 대부분의 축구 팬이라는 점이리라 생각한다. 여기다 토달지 말기 바란다. 대부분이라 했지 전부 다는 아니라고 했다. 이걸 가지고 또 뭐 난 축구는 존나 좋아하는데 야구는 혐오한다 이 개새끼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말아라! 이 씨발놈아! 이런 식으로 지껄이려면 딴 데 가서 지껄이라는 말씀이다. 각설하고 문제는 야구는 점점 즐기는 연령층이 높아지고 축구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이에 대한 가장 명쾌한 해답은 야구는 지루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루하다는 것이 단지 경기 시간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경우에 따라 10분 이내에 경기가 끝나는 경기들도 지루할 수 있고 수일에 걸쳐 벌어지는 종목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야구의 문제가 단지 경기 시간이 길기 때문에 지루하다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니미

니미 씨발이다.

이런 식으로 다시 블로그로 돌아오게 되다니...

좆같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팔로어

프로필

내 사진
궁금해? 내가 당신 프로필이 궁금하지 않은 것처럼 당신도 내 프로필을 궁금해하지 마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