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가 처음 밴드의 보컬리스트가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21년 하고도 5개월 전의 일이었다. 내가 좋건 싫건 그런 것은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팀의 보컬리스트라는 것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공연 일은 이미 잡혀있고 팀의 보컬은 긴 퍼머머리에 가죽바지에 체인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아들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한 그의 아버지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장이 나와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악보를 볼 줄 알고 소리를 내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이유로 땜빵 보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도 그는 주로 보컬 자리에 문제가 생긴 팀의 땜빵 보컬을 하는 신세였다. 뜬금없는 속담을 인용하면 "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보컬 인생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2. 애초에 그는 헤비메탈 곡들을 카피하는 밴드의 보컬이 되리라는 생각 따위는 낮잠을 자다 꾼 꿈에서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중학 때부터 주로 Progressive Rock과 지금은 주로 Art Rock이라 불리는 유럽 쪽 팀들의 음악을 들었고 자신이 음악을 하게 된다면 막연하게 그런 음악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고 주변의 찌질이들을 모아 그런 음악들을 카피하는 밴드를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헤비메탈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을 뿐 아니라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그는 헤비메탈 보컬들의 창법이 자신이 없기도 했었다 한다. 고음을 내는 것이 두려웠다기 보다는 성대를 활짝 연 상태에서 그런 고음을 내다가 성대가 잘못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가 헤비메탈"만"을 연주하는 팀의 보컬을 했던 것은 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3. 그 뒤로 주로 땜빵 보컬로 몇 번의 무대에 서게 되었으나 그는 애초 그의 생각대로 에릭 마틴과 같은 모노톤 창법으로도 그리고 메탈 보컬리스트들이 주로 사용한다는 두성만으로도 노래를 부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지 꼴리는대로" 노래를 불렀다 한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시간이 갈수록 그의 노래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노래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다. 좀 더 상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엄청나게 무미건조한 보컬"이 되어가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보컬이 그런 식으로 변할수록 무대 아래에서의 광란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는 슷로 "이제야 나는 노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무대 위에서 무대 아래의 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는데 자신의 노래에 만족하게 되었다고?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물론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4. 그는 자신의 무미건조한 노래에 대하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생각엔 음악이란 것은 엄청난 격정에 싸인 그 순간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계속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엄청난 고통의 순간이나 분노의 순간에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을 떠나려는 연인을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하는 그 순간의 감정을 물론 음악으로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진짜 폭발하는 감정이 생기는 순간엔 음악이 아닌 더 격한 것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왕 시작한 것 꾸준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내게 있어 음악이란 것은 일종의 후일담 같은 것이다. 격정이라든지 격랑이라 할 수있는 그 어떤 것이 지나간 다음에 비로소 그런 감정이 음악이라는 형식으로 정리되어 자신의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음악이 후일담이란 것은 그런 의미이고 격정의 순간이 지난 후에 이야기하는 후일담엔 격정보다는 덤덤함이 존재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5. 그는 앞으로도 무대에 설 기회가 생긴다면, 그리고 그보다 먼저 자신이 자신의 음악을 만들게 되어 그 음악을 무대에서 다른 인간들에게 들려주게 된다면 그 음악은 철저하게 "덤덤" 그 자체일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 것이야 말로 진짜 변명이긴 하지만) 그는 자신이 흔히 이야기하는 "극적인 분위기의, 그런 창법의 노래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신의 곡을 무대에 올릴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격정적이며 극적인 곡을 쓸 일도, 그럴 자신도 없으며, 다른 사람의 곡을 연주하더라도 그런 곡들을 택하진 않을 것이라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음악이라는 것의 완성도는 자신의 철학에 일치하는 음악에 가까워질 때에 비로소 높아지는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