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듣거나 말거나 1000곡(129)

아님 말고 1000곡

128. Gracias a la vida-(Mercedes Spsa 1971)-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질문 중 하나가(항상 애석하게 이 가장 싫은 이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것들의 수가 세자리를 넘어간다는 것이 문제다.) "하나의 앨범을 고르라면?" "하나의 곡을 고르라면?" "한 명의 아티스트를 고른다면?"이라는 질문인데, 도대체 이런 질문을 날리는 인간들의 뇌구조는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들은 가볍게 날리는 질문일지 모르나 그 질문에 대답을 해야하는 사람의 경우 심한 경우엔 그 질문으로 인해 한 주 이상 잠을 못이룰 경우도 있다는 생각을 좀 하셔야할 것이다. 알겠냐? 이 포스트를 보는 사람들 중 제발 찔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한 번 알겠냐? 알겠어?

버뜨 그러나, 가끔은 흔쾌히 "단 하나"를 꼽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야할 경우도 있다.(이 경우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 없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주시기 바란다. 문맥상, 그리고 의무감으로 동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 취향을 뒤로 하고 "여지껏 아르헨티나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음악을 했던 사람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을 한 명 꼽으라면 누구를 이야기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신다면 클래식 애호가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아르게리히(아르헤리히가 맞나?)도 대단한 연주가임을 부정할 수 없고 음악사에 대단한 위치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를 강조하게 된다면 내 손을 묶고 인두를 이용해 몸을 지질 것이란 협박을 하더라도... 심지어 목에 칼이 실제로 들어온다 하더라도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라고 소리높여 외칠 것이다. 요즘 기준으로 "겨우 74세"에 유명을 달리한 그를 알리는 데에 이 포스트가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 기쁨을 달게 받으리라는 말씀이다.

이 정말 햏햏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메르세데스 소사를 이야기하려면 누에바 깐치온(Nueva Cancion)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역사가 티렉스에게 부여한 사명일 것이 틀림 없으나 포스트가 지나치게 길어지면 곤란하므로 적당한 선에서 조절할 것임을 말씀드리며, 혹 이 포스트에서 부족하다면 다른 게시물을 통해 이야기해야할 것이다. 참! 또 한가지 질문이 있을 수 있겠지... "소사의 음반 중 어떤 음반을 가장 먼저 들어야 하는가?" "상관없다 모두 다!!!" "소사의 곡 중 어떤 곡을 가장 먼저 들어야 하는가?" "상관없다. 그의 곡이라면 모두 다! 순서는 상관 없다." "가장 훌륭한 음반은?" "닥쳐!" "가장 훌륭한 곡은?" "닥쳐!" 비틀스라는 이름이 단지 가장 유명한 밴드가 아니라 서구의 20세기 역사의 한 부분이듯, 20세기 남미대륙을 이야기할 때 소사도 남미 대륙 그 자체의 한 부분이다. 그러니 요상한 질문질들 할 생각은 하지 말도록!!!! 부탁한다.


노래 한 곡을 이야기하기 위해 길고, 할 이야기도 많은 소사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도 없으니 크게 두 가지 이야기만 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애초 메르세데스 소사는 페론주의자였다. 그의 정치적 여정은 페론주의자로서 시작되었으나 (이 점이 아르헨티나 지식인들 혹은 활동가들의 대단히 불가사의한 점들 중 하나인데) 좌파의 대의명분에 대한 지지를 평생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삶에 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호르헤 비델라(Jorge Videla)의 군부가 아르헨티나에서 집권하게 된 1976년부터 시작된다.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은 페론주의자이며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던 메르세데스 소사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노골화했으며 그러한 군사정원의 소사에 대한 탄압이 정점에 이르렀던 사건은 1979년 소사의 La Plata 공연에서 소사는 물론이고 공연장의 관객들까지 경찰에 의해 구속된 것이었다. 그리고 당근 소사는 그 일 이후 아르헨티나에서 추방되었고 군사정권이 무너진 1982년에 다시 귀국한 뒤로도 정권과 그다지 매끄러운 관계를 유지하진 못했다 할 수 있다.

카를로스 메넴(Carlos Menem)은 1989년부터 1999년에 이르는 10년간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을 지낸 인물인데 그의 집권기에도 메르세데스 소사는 아르헨티나 정부와 그다지 매끄러운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정치적으로 Néstor Kirchner의 지지자였으며 그는 메넴 대통령의 정적, 이 표현이 심하다면, 혹은 라이벌 관계에 있었으며 소사의 그에 대한 공개적 지지는 메넴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라 보여진다. 물론 건강상의 이유도 있었지만 실제로 메넴의 집권기에 소사는 음악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그다지 활발한 활동을 하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소사의 활동을 일일이 예시하며 "이래도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다고 할 참이냐?"고 한다면 뭐 아님 말고... 라는 답을 할 수밖엔 없지만 Kirchner가 집권한 2003년 이후의 소사의 활동이 더 두듣러진 것은 나를 패고 싶은 사람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소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아르헨티나에서는 Nuevo Cancionero라 불리는 남미 남미 대륙의 Modern folk movement라 할 수 있는 Nueva Cancion Movement이다. 메르세데스 소사와 그의 첫 남편인 마누엘 오스카 마투스가 주도한 이 포크 운동의 정점은 아르헨티나의 포크 음악들을 집대성하여 출반한 소사의 두번째 앨범인 Canciones con Fundamento에서 정점을 이룬다. 1960년대 남미를 휩쓴 이 포크 운동의 핵심은 미국 자본과 그의 꼭두각시 놀음을 하는 당시 남미의 정권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매장되었던 (남미의 포크 음악의 말살과정은 사실상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시대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미의 문화-특히 그들의 포크 음악 또는 민속 음악-을 있는 그대로 발굴하여 음악적인 색을 찾자는 것이었다. 아! 또 이야기가 길어진다. 아무튼 소사는 위대하고 오늘 소개할 곡은 소사의 Signature Song이라 불리는 Gracias a la vida이다. 궁금한 점 있으면 gmail을 통해 질문하시고 그 중 참한 녀석이 있으면 게시물을 통해 답변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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