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일 금요일

1992-2012 벌써 20년? 아직 20년!(2)



1992년 대선을 치루고 그리고 그 후에도 1992년 대선에 이런 저런 방식으로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던 사람들은 NL 주사위들도 그리고 흔히 이야기하는 범PD 계열도 사태를 대단히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결국 그 것이 패착이었던 것만은 분명한데 그러한 혐의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까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항상 문제는 그 것이다. 머릿속에서 얼마든지 작동할 줄로만 알았던 새로운 체계가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 지금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바로 그 점이다. NL 주사위들은 정권을 곧 교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PD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대중적 정당이 생긴다면 반자본주의적 논의를 공론의 장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 금방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이두 가지 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992년에 실패했으나 주사위들의 염원대로 1997년 정권교체는 성공했다. 물론 그 형태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이었던가에 대해선 굳이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 대부분과 국회의 제 1당의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집권이란 것이 얼마나 불완정한 동시에 불안정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라면 나름 이름있는 정치 평론가 혹은 시사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주구장창 이야기해댄 것이었으니 나까지 그에 뭔가를 보탤 이유는 없다고 본다. 중요한 문제는 과연 주사위들의 바람대로 정권교체를 통해 그들이 무엇인가를 얻었는가?라는 점에 대해 생각해야할 것이다. 만일 임종석이나 이인영 오영식 우상호 등이 원내에 진출했다는 것을 성공이라 이야기한다면 그들은 분명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전대협의 초창기 간부들인 그들이 원내에 진출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본다면 1992년 대통령 선거부터 김대중이 알아주건 그렇지 않건 간에 오매불망 김대중을 바라봤던 주사위들에겐 나름의 떡고물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앗! 그러고 보니 오영식은 한 번도 국회의원이 된 적이 없군... 그러나 그들이 국회에 진출한 것으로 인해 김대중 혹은 그 후의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서 주사위들의 영향력이 유의할 수준으로 행사되었는가?랄 되짚어본다면 과연 긍정적인 답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선 끝까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임종석이나 우상호나 이인영 등은 민주당으로 떠다는 순간 그냥 주사위들과는 빠이빠이를 한 상태였다 할 것이다. 그들의 전대협 경력은 그저 경령에 불과했고 그들은 의뢰라는 공간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나 그 외 자신들이 전대협 시절에 했던 이야기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스스로 주사위가 아님을 이야기하기 바빴다는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주사위가 아닌 과거 운동권들이 최소한 원론적으로 원했던 것은 반자본주의 선전의 공론화였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 것을 통해 그들이 굳건히 믿어왔던 "국가독점 자본주의"론에 대해 철저히 깨져야 했음이 옳은 일이었다.(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피노체트 정권을 지원한 미국에 대해 비판을 했으나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이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의 시작이었음에 대해선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졌던 점에 대해 "그 것은 사회주의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무지하게 하고 싶었겠지만, 레이건이, 대처가 노동에 대해 무자비한 탄압을 일삼으며 자국에 완성시키려했던 신자유주의가 현실 사회주의(이택광의 표현을 빌자면 역사적 공산주의)의 몰락에 대단히 큰 역할을 했음을 비판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이론적으론 "국가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을 정도로 시장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전세계를 호령할 동안 공화국의 좌파들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채택할 경우 많은 문제들이 명확하고 쉽게 풀린다. 국가권력에 대한 투쟁이 바로 반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이고 좌파의 대단히 중요한 과제인 국제주의 과제도 대단히 명확하게 풀릴수 있다. 하지만, 1992년 이후남한사회는 단순히 신식민지의 자국의 지위를 떠나 국제적 노동착취국가의반열에 서게 되었고, 레닌이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라 생각했던 것처럼 국가독점 자본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세계화라는 양상을 띄며 자본의 경계 자체를 허물어버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별대란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적어도 국내에서는 말이다.)

국가가 자본을 독점해서 노동계급을 착취한다는 생각에 대한 수정이 필요했다. 실제로 신자본주의는 "국가라는 것이 사실상 필요없는 것일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표면적인 주장과는 달리 신자유주의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명제를 확인시키기 위해 철저하게 국가권력을 이용해왔다. 하지만, 그 것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이론과는 다른 양상이었으며 더 결정적으로는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특정 모델을 가지고 그 모델에 맞춰 국가나 자본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다는 대전제만을 설정해 놓은 상태로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맞춰 노동계급의 탄압에 최우선적인 정책적인 가치를 둔다거나 자유무역을 통한 제 3세계의 강제적 편입 등 그들의 전제에 다른 모든 것을 맞춰나가는 식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했던 것이다. 빌어먹을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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