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6일 금요일

그래도 음악은 죽지 않는다.(Soundless Music)

The day the music die...
한국에선 그 사고의 주인공은 리치 발랜스로 더 많이 기억되지만, 사실 그 비극적인 사고의 주인공은-그런 사고에 주인공이란 말 자체를 쓰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지만-버디 홀리였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버디 홀리는 아마도 엘비스를 위협할만한 rock ''n' roll의 영웅이 될 것이라 의심한 사람도 없는 인물이었고 실제로 그가 살아있었다면 제리 리 루이스,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미국 팝음악 씬을 삼분할 수 있는 인물이라 여기는 것이 당연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공연을 위해 프로펠러 비행기로 이동하던 중 항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돈 맥글린은 그의 일생의 명곡 "American pie"에서 위의 가사로 그의 죽음이 가지는 팝음악 역사에서의 충격을 묘사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재즈 씬에서 천재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인물인 찰리 "버드" 파커는 약물과다복용으로 저 세상으로 떠났다. 물론 재즈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누구인가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듀크 엘링턴의 이름을 이야기하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이름을 이야기하지만 진정 천재라는 이름으로 불릴만한 사람은 찰리 파커였다. 그가 50도 되기 전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이들은 재즈라는 장르, 더 나아가서는 팝음악의 발전이 상당히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고 그 예상은 어떤 면에선 상당 부분 맞아 떨어졌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떠난 사람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어떤 위치에 있을 지 짐작조차 되지않는 듀언 올맨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직 올맨 브라더스 밴드는 존재하지만 듀언 올맨이 존재하지 않는 올맨 브라더스 밴드는 한 때 잘나갔던 노장 밴드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1977년 엘비스 프레슬리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rock 'n' roll이 전세계를 뒤흔들 장르가 될 수 없었음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그 장르는 엘비스라는 개인의 인기에 힘입어 미국의 팝 씬의 정면에 나설 수 있었다. 이전의 스탠더드 팝 음악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의 팝음악이라는 것이 거의 감상용 음악이었던 것에 비한다면 엘비스의 등장은 팝음악을 듣고 그 자리에서 청자 역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으로 바꿔 놓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다른 사람들이 누렸던 대중적 성공은 엘비스의 그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마이클 잭슨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 어느 누구든 엘비스를 황제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역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When the music's over
1980년 12월 9일 뉴욕 타임스의 헤드라인의 제목은 위와 같았다. 그 바로 전 날 그가 사는 뉴욕의 다코타의 콘도 앞에서 그는 채프먼이라는 "그의 팬이라 자칭하는" 사람의 총탄으로 저 세상으로 갔다. 비틀스의 프런트 맨이었으며 독실한 크리스천들에겐 weird 하다는 평가까지 받는 그는 Fab four이었던 The beatles의 "엄청나게 중요한" 멤버였다. 그의 죽음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음악은 죽었다"는 표현을 쓰는 데에 인색하지 않았다. 최소한 팝음악 씬에서 그의 동료나 선후배 아티스트들이 보여줬던 그에 대한 추모의 열기는 2년은 지속되었다. 그와 그렇게 앙숙지간이었던 폴 매카트니 아저씨도 존 아저씨의 죽음에 엄청난 충격으로 한동안 칩거했고 비틀스가 해체될 무렵에 가장 사이가 나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조지 아저씨도 존 아저씨에 대한 추모의 태도를 진지하게 유지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다들 아실 것이다. 심지어 엘비스의 뒤를 이어 황제라는 칭호를 얻었던 마이클 잭슨 역시 세상을 떠났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사람들의 죽음과 마이클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은 마치 음악이 끝난 것처럼 이야기했다. 물론 여기서 그들의 죽음 따위는 음악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거만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사건들이 가지는 충격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실제로 접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물론 그런 이유로 계속 음악을 한 이들이 용기있는 자들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 예술장르들을 통해 자신을 포현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음악이라는 것이 예술이라면 이 세상 어디선가 그 누군가는 음악을 할 것이다. 위에서 열거한 이들이 초음속 여객기로 불과 수시간 만에 대서양을 건넜다면 또 다른 누군가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뗏목을 타고 대서양을 건널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면 또 다른 바다가 있을 것이다. 그 것이 지중해가 되었던 북해가 되었던 인도양이 되었던 간에... 아직 대서양을 건넜는지도 불분명하고 그 바다를 건넌 후 건너야 하는 바다는 어떤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그 불분명한 도착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음악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음악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람들대로 음악을 열심히 해야하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 역시 계속해서 음악을 들어야 한다. 듣는 사람이 없으면 음악이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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