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co-Yankee Hotel Foxtrot(2001)
이 앨범을 한국어 구글에서 검색할 경우 아마도 발매일이 2002년 4월 23일로 나올텐데 그 것은 이 앨범이 CD에 담겨 음반의 형태로 발매된 날짜고 맨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그보다 훨씾 전인 20019월 18일 즉 911 테러로 미국의 심장부가 공격받은 후 정확히 한 주 후에 온라인 상에서 스트리밍으로 대중에게 발표되었다. 둘 중 어느 날을 이 앨범의 공식적인 발매일로 생각하건 그 것은 늬들 자유지만 공식적으로는 이 앨범은 2001년의 음반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만 같이 기억하고 있으,면 별 문제 없을 것이다.
언제나 그래돴듯 이 곡의 모든 곡들은 철저하게 팀의 프런트맨인 Jeff Tweedy와 Jay Bennett이 공동으로 쓴 곡들이다. 다만 1, 7 그리고 마지막 트랙인 11번 트랙은 Heff Tweedy 혼자 쓴 곡이고 트랙의 가사는 그야말로 언제나 그랬듯 제프 트위디 개인의 작품이다. 여기서 언제나 그랬듯 제프와 제이의 공동작곡이라는 이야기는 이 앨범까지의 기록을 기준으로 하는 말이니 착오가 없도록 하자. 현재는 Jay Bennett 역시 팀을 떠난 상태이므로 언제나라는 말이 지금 시점까지 통용되는 말은 아니다.
또 한가지 알아두면 건강에 해롭지 않ㅇ느 사실 하나는 이 앨범 하면 떠오르는 상징과도 같은 커버의 사진의 건물은 양키 호텔로 알고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사실은 이들의 고향이자 활동무대인 Chicago의 Marina Tower이다. 그리고 정말 의외인 사실은 처음부터 현재까지 윌코를 떠나지 않고 있는-이 팀은 워낙 멤버 교체가 잦기로 유명한 팀인 것 정도는 알아두도록 하자.-의외로 John Strratt으로 팀의 결성부터 지금까지 다소는 성질이 까다롭다고 알려진 Jeff Tweedy의 바로 옆에서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는 멤버다.
이 앨범에 대한 찬사는 인터넷을 뒤지면 차고 넘치는 것이니 다른 측면의 이야기를 하자면 이 앨범으로 음악적으로 정점을 찍은 후 그 후엔 이 수준의 앨범을 내지 못하고 있는 Wilco의 현재 음악적 위치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앨범이 이 앨범이기도 하다 할 수 있다는 점인데 애초 창단멤버가 아니었던 Jay는 팀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고 특히나 믹싱 작업에 있어서는 전문적인 엔지니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능력으로 이 앨범을 2000년대 초반의 가장 중요한 앨범의 위치에 끌어올린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Jay와 Jay의 나름 오랜 음악적 동료인 Jim O'Rouke에게 일종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윌코를 같이 하던 내내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희대의 명반이라 불리는 이 앨범을 끝으로 제프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 현재까지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이전의 윌코의 앨범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있는지는 각각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 앨범은 자신의 다른 프로젝트였던 Loose Fur의 사운드를 윌코의 음반에 표현하고 싶었던 Jeff의 기획하에 진행된 프로젝트이고 2001년 초 팀의 드러며였던 Ken Coomer을 Glenn Kotche로 교체한 후 본격적으로 페즈의 이런 구상을 구체화했으며 Loose Fur의 멤버인 Jim O'Rouke의 음악적 영향이 음반의 여러 군데에서 드러나는 것 역시 이 음반의 기획단계에서부터 비롯된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전 앨범에서의 윌코의 사운드가 얼터너티브에 훨씬 더 가까웠다면 이 앨범의 음악은 그보다는 훨씬 더 Art Rock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각종 매체에서 2002년 최고의 음반으로 이 앨범을 선정했고 특히나 다소 그 일관성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롤링 스톤에선 2012년에 급기야 이 앨범을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중요한 500 장의 앨범의 하나로 꼽기도 했을 정도로 2001년 2002년 두 해에 걸쳐 비평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앨범이기도 했고 어떻게 본다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르는 영국의 Art Rock 앨범들의 음반 스타일과 대단히 유사한 것으로 영겨지지만 그 것이 당시엔 오히려 대단히 실험적인 시도로 평가를 받았던 앨범이다. 언제 들어도 좋다는 것은 덤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