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5일 목요일

빌어먹을 또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하지?(개소리들)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인 티렉스가 무려 15년 가까이 물심 양면으로 음으로 양으로 노력한 일이 있다면 그 것은 공화국에서 "사형제를 폐지"하는 일이었다. 1997년엔 빌어먹을 모교의 갓 지은 따끈따끈한 무슨 빌어먹을 기념관 혹은 제 2학생회관이라 불리는 곳의 조그만 지하 강당에서 크쥐스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영화인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을 몇몇 아해들과 함께 튼 적도 있었더랬다. 그 때 놀랐던 것은 강당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던 점 때문이었는데 국제사면위원회라는 단체의 명성 때문이었는지 혹은 크쥐스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명성 때문이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선 아직도 추측만이 가능할 따름이다. 그 당시의 예상외의 인원에 대한 추측이 이 쓰레기 게시물의 목적은 아니니 그 점에 대해선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대략 "그 당시부터 공화국의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들에게 인권에 대한 의식이 내 예상보다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는 정도로만 이야기해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제 아무리 끔찍한 살인사건을 저지를 자라 할지라도 그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간단한 이야기를 아무리 입술에 쥐가 나도록 떠들어대도 생각해보려고도 하지 않는 녹속들이 있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그 분들이 떠들어대시는 부분에 대해 개인적으로 좀 개입을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불행한 일이 될 것인가? 아무튼 함부로 까불면 다치니 건드리지 말라는 말씀을 미리 드리고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사형제 존속에 대해 찬성하시는 분들이 줄기차게 내세우는 것은 "사형제도가 흉악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리라. 일단 한가지 fact을 이야기하고 보자. 자랑스러운 당신들의 조국인 공화국의 대통령 각하의 목에 메인 줄의 주인 되시는 George W. Bush이라는 녀석이 텍사스의 주지사로 계시던 몇년간 텍사스 주를 제외한 49개주(물론 주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한 주도 포함된다.)에서 집행된 사형제도를 압도하는 집행횟수를 기록했지만 텍사스주의 살인 발생률이 다른 주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다는 기록은 어데서에도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왜 텍사스의 예만을 드는가?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사형제가 존치하고 있는 국가와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와의 살인사건의 발생률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들의 살인사건 발생률이 더 낮다고 한다. 사실상 사형제도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복수법이요 그 기원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들 계실 함무라비 법전에서 유래한다 할 것이다. 물론 함무라비 법전의 경우 근대법에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근대법의 원리는 복수법의 원리와는 상당히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근대법이란 것은 두 가지의 정신 즉, 개인과 개인간의 분쟁에 있어 자의적 판단에 의한 상호폭력을 방지하는 목적과 국가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방지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수법은 근대적인 성격의 법에선 그 행사를 지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재판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자의적인 힘의 행사 내지는 보복이라는 것이 국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됨은 말할 것도 없다.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항상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해왔으며 "피해자의 인권이 살인자의 인권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 역시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것이므로 극악한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들에게 시간 낭비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사형폐지론자들의 주장은 퍼벌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며 석방없는 종신형이 그 대안"이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해왔으니 그 부분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사형이라는 것이 가지는 그 비인권적인, 그리고 비인간적인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이는 인권의 문제인 동시에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는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하려 한다. 즉, 사형제라는 것이 과연 본질적으로 "극소수의 범죄자와 절대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간의 문제이며 단순히 극악한 범죄자들을 선량한 인민들로부터 격리시켜야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당한 절차와 모두가 공감할 수 잇는 선에서 국가의 정치권력이라는 것이 행사되어야 하고 그리고 근대법의 원리가 자의적인 권력의 행사를 막기위한 것이 그 제정원리였다면 사혗제도의 존치문제는 권력과 시민 훅은 인민간의 문제인 것이다. 즉, 국가의 권력 행사라는 것을 과연 어느 선까지 용인하는 것을 인민들이 합의하는가?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법에 의거해 사형제도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사형제도라는 것처럼 그 자체가 "권력의 자의적 행사" 그 자체인 것은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이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그 어느 권력도 법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일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고, 그런 정도의 권력을 국가가 행사하도록 합의한 인민들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래서도 안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의적 권력의 행사를 막기 위한 법률이라는 것이 정하는 최고의 형벌이 가장 자의적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살인자가 살인을 저지를 당시에 사형이라는 것이 살인을 막는 효과를 가지지도 못"하며 사형제도가 가지는 살인사건의 방지효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으며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제는 인권의 문제 이전에 과연 인민들이 국가의 권력을 어디까지 용인하는가?라는 권력과 개개인의 관계 설정의 문제라는 점이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목숨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권력에 동의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사형을 언도받을 정도의 인간이라면 이미 인간이라는 것을 포기한 놈이기 때문에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권력이 가질 수도 있는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인간은 절대 있지 않을 것이다. 단순하게 이야기할 문제는 아니지만 이 지긋지긋한 사형이라는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라 할 것이다.

2010년 2월 12일 금요일

아님 말고 1000곡(109)







109. Song for my father-Horace Silver(1965)-

지난 번에 우연히도 비밥 재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알아서들 찾아보시기를- 감히 "천재들의 시대"라 할 수 있는 비밥의 시대를 관통한 후 나타는 음악을 어떤 이들은 Post Bop이라는 단어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포스트 밥이라는 음악은 1960년대 초에서 1960년대 중반 그 전성기를 맞았던 장르인데 이 포스트 밥이라는 음악의 기원은 거의 모든 대중음악사가, 혹은 재즈음악사가들이 공통적으로 John Coltrane, Wayne Shoter, Miles Davis, Bill Evans, Charles Mingus, Herbie Hancock울 꼽곤 한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휠을 잡았던 장르지만 포스트 밥은 후에 Hard Bop, Modal JAzz, Avant-garde JAzz, Free JAzz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틱기할만한 사실은 이 post-bop era를 대표하는 레이블이 작년 초부터 기념음반을 내기 시작한 Blue Note라는 점이다. 즉, 요즘 박스 세트로도 출시되고 있는 블루 노트의 기념음반들을 통ㅇ해서 별로 힘들이지 않고 이 장르의 명반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내친 김에 Post-bop과 Blue Note의 이야기를 잠시만 하자면 Wayne Shorter의 "Speak no evil" McCoy Tyner의 "Real McCoy" 그리고 여러분들도 다 알고계실 Herbie Hancock의 Maiden Voyage Lee Morgan의 Search for the new land등의 앨범이 포스트 밥이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음반들로 꼽힌다. 여기서 주의할 필요가 있는 점은 Lee Morgan은 엄밀히 따지면 post-bop 장르로 분류되는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Search for the new land라는 타이틀의 그의 앨범은 post-bop의 시대를 이야기할 때 있어 절대로 빠지면 안되는 앨범으로 꼽힌다는 점이다. 즉 어디 가서 "리 모건은 포스트 밥의 대표적 아티스트지!" "어디서 그런 병맛같은 소리를?" "티렉스란 새끼의 블로그에서 봤는데...그 놈이 이뭐병이었구나..."라는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만들지 말아주십사 부탁한다는 말씀! 대부분의 post-bop 장르의 아티스트로 분류되는 인물들은 다른 장르의 재즈 연주도 병행했으며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post-bop이후에 bop jazz의 3부작의 완성이라 할만한 hard-bop을 연주하게 되었다는 점 역시 특이할만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정도가 되어선 post-bop의 아티스트로 분류되던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jazz fusion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재즈에 손을 대기 시작하게 된다.(표현이 좀 안좋은 것 같다. 손을 대다니... 마리화나나 헤시시 등을 떠올리는 표현이다.)

오늘 여러분께 소개하는 곡은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의 타이틀이기도 한데, 사실 재즈란 장르가 여러분들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특정한 한 곡의 퀄러티를 따지는 것보다는 앨범의 퀄러티를 따지는 것이 보편적인 장르기 때문에 굳이 이 곡만을 꼽는 것보다는 이 앨범 전체를 들어보시는 것이 좋다는 것이 개인적 견해고 따라서 이 앨범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란 생각이다. 이 앨범은 Horace Silver quintet의 1965년의 동명의 타이틀을 가진 앨범인데 당연히 Blue Note Label을 통해 발매된 앨범이며 블루 노트의 그 놀라운 역사에서도 가장 훌륭했던 음반들 중 하나로 꼽히는 앨범이기도 하다. 호레이스 실버 할아버지가 이 앨범을 구상한 것은 그가 브라질을 여행하던 기간이었다고 전해지는데 앨범 자켓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호레시으 실버 할아버지의 아버지인 John Tavares Silver 할할아버지 되시겠다. 호레이스 실버 할아버지의 가계를 잠시 살펴보자면 그의 어머니는 아이리시계의 흑인이었으며 아버지는 포르투갈 태생이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복잡한 혈통인가? 이런 마당에 민족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자! 이제 좀 주의해서 이 게시물을 읽어주셔야 할 시간이 왔다. 이 "Song for my father"이라는 곡이 음악사 혹은 재즈 음악의 형식이나 이론에 있어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이 곡이 보사노바 리듬의 바단조의 AAB Head 타입입의 재즈 곡의 스탠더드"이기 때문이다.(어디 가서 아는 체를 하시면서 상대방을 제압하려면 이 정도의 드립만 쳐주셔도 문제될 것이 없으시겠으나 빌어먹을 놈의 "Follow-up" 질문 드립을 쳐주는 색히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들의 야코를 죽일 이양기를 조금 더 해드리도록 한다.) 즉, head 부분에 트럼펫과 테너 색소폰이 하모니를 이루며 연주를 한다는 이야기이다. 뭐 이 뒤에도 질문이 또 들어오게 된다면 "야 이 씨발 색히야 그렇게 잘알면 네가 나한테 설명해 봐봐!"라고 하시든지 그래도 또 뭔가를 캐물으려 한다면 입을 향해 박치기를 한 번 날려서 그의 입을 다물게 하시면 될 것이다. 그래도 그 색히의 주둥이가 살아있다면 내게 데려오시면 티렉스가 알아서 파묻던지 한강에 거꾸로 심어버리든지 하는 방식으로 해결해 드리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팀들 중 하나라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Steely Dan의 명곡 중 명곡이라 꼽히는 "Rikki don't lose that number"의 베이스 피아노 부분은 바로 이 곡에서 거의 그대로 차용했다고 알려지고 있다.(이런 것은 표절이라는 괁점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베이스 피아노는 멜로디와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표절여부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곡의 오프닝의 horn riff는 스티비 원더의 "Don't you worry 'bout a thing"에서 차용했을 정도로 이 곡이 팝 신에서 가졌던 임팩트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할 것이다.(독창성과 창조성에 있어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인물들이 그의 리프들을 차용한 것은 실로 그들이 이 곡에 대해 얼마나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 아니겠는가?) Allmusic의 리뷰어인 스티브 휴이(Steve Huey)는 다음과 같이 이 곡(앨범)을 극찬했다.
"One of Blue Note's greatest mainstream hard bop dates, "Song for My Father" is Horace Silver's signature LP and the peak of a discography already studded with classics...it hangs together remarkably well, and Silver's writing is at his tightest and catchiest."(자! 해석은 늬들이 알아서 하시기 바란다.) 혹자(Allmusic의 Scott Yanow같은 사람들)는 이 앨범을 하드밥 재즈의 가장 중요한 17개 앨범들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Track listing

"Song for My Father" – 7:15
"The Natives Are Restless Tonight" – 6:08
"Calcutta Cutie" – 8:28[2]
"Que Pasa" – 7:45
"The Kicker" – 5:24
"Lonely Woman" – 7:03
The following tracks were added to various CD reissues:
"Sanctimonious Sam" – 3:52
"Que Pasa" (trio version) – 5:35
"Sighin' and Cryin'" – 5:23
"Silver Treads Among My Soul" – 3:50


Personnel

RVG Edition re-release
Tracks 1, 2, 4, 5
Horace Silver — piano
Carmell Jones — trumpet
Joe Henderson — tenor saxophone
Teddy Smith — bass
Roger Humphries — drums
Tracks 3, 6 – 10
Horace Silver — piano
Blue Mitchell — trumpet
Junior Cook — tenor saxophone
Eugene Taylor — bass
Roy Brooks — drum


"Song For my father" -Horace Silver(1965)-

그냥 잔말 말고 인증 짤






빠마의 세계

궁극의 느끼함

2010년 2월 4일 목요일

아님 말고 1000곡(108)







108. After the ball-Charles K. Harris(1892-1930)-

전에 말로만 대충 떠들었던 그 유명한 Tin Pan Alley의 역사상 최초의 히트곡이라 일컬어지는 곡이다. 워낙 아름다운 곡이라 이 곡에 대해 반감을 가질 사람들은 없으리라 생각되므로 비교적 우호적인 이야기를 해도 무방하리라 생각되어 오늘은 흐뭇한 이야기만 해도 괜찮으리라 생각한다. 일단 곡의 내용에 대해 잠시 설명하자면 "한 중년의 남자가 자신의 여조카에게 왜 자신이 결코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고전적인 3/4박자의 월츠곡으로 중년의 남자가 자신의 조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내용은 자신이 사랑하던 한 여자가, 또한 그 여자 또한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어느날 ball(일종의 댄스 파티라 보면 될 것이다.)에서 다른 남자와 입을 맞추는 것을 보고 조용히 떠나갔는데 그 일이 있은 후 한참 후 그 당시의 그 남자가 그 여자의 오빠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그런 "아름답거나 어이없는"이야기이다.

무려 1867년 5월 1일에 태어나 1930년 12월 2일에 세상을 떳을 정도로 현대의 대중음악과는 굉장히 많은 거리를 두고 있는 Charles K. Harris이라는 이름의 이 곡의 작곡자는 미국에선 대중음악(popullar song) 작곡자들 중에서도 아버지격으로 여겨지는 사람이다. 그리고 음악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위치로는 Tin Pan Alley의 개척자라는 점이다. 생전에 그의 애칭은 "King of the tear jerkers"이었는데 이를 한국어로 옮긴다면 "눈물을 짜내는 사람들 중의 왕"이라는 뜻으로 그가 얼마나 애가(哀歌)를 쓰는 데에 있어 탁울한 재능을 보여주었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그의 재능에 딱 알맞은 애칭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주의 Poughkeepsie(이 단어를 한글로 표기하면 포킵시라 한다. 포그킵시도 푸그킵시도 포프킵시도 푸프킵시도 아닌 포킵시라고 읽어야 한단다. 빌어먹을... ) 그의 아버지는 가죽제품의 판매를 업으로 사는 그렇게 어려운 집안 형편은 아니었으며 아버지의 사업으로 인해 미시건주의 세기노(Seginaw)와 밀워키 등으로 이주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다.

어린 시절 그는 우연히 보게 된 벤주(Benjo)와 그 악기의 음색에 반해 벤조 연주를 익히게 되었으며 그가 겨우 열여덟이었던 1885년 "Since Maggie learned to skate"이라는 곡을 쓰게 되었는데 이 곡은 단독으로 압고로 출반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곡된 곡이 아니라 Nat Goodwin의 연극 의 삽입곡이었다 한다. 그로부터 6년 뒤, 그의 나이 24세 때인 1891년에 전형적인 월츠곡으로 평가되기도 하고 역사상 최초의 Tin Pan Alley 히트곡이라고도 여겨지는 "After the Ball"을 쓰게 되는데 이 곡이 바로 오늘 여러분들께 소개시켜드리고자 하는 곡이다. 찰스 아저씨는 이 곡 이후에 1883년 시카고의 World Columbian Exposition에서의 연주로 유명세를 얻어 500만장 이상의 레코드 판매 실적을 기록했던 John Phillipe Sousa의 눈에 띄게 된다. 그래서 그는 1897년ㄴ에 스페인-미국 전쟁에서 죽어간 병사의 이야기를 소재로한 곡인 Break the news to mother이라는 곡을 Sousa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상업적으로 성공한 그의 다음 작품으로 기록되게끔 한다.(내가 써놓고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이 주술관계는 도대체 어느 별의 문법이란 말이냐?)그 후 찰스 K 해리스는 본격적으로 뮤지컬용의 곡들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 바닥에서 전설로 통하는 Oscar Hammerstein과 함께 작업하여 The scarlet sisters와 What's the matter with Julius등의 작품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1930년 12월 2일에 뉴욕시에서 눈을 감게 된다. 대단히 아름다운 가사는 아니지만, 당시의 보편적인 가사의 풍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가사를 함께 복사해서 붙이니 한 번 음미해보시기를...


Verse 1
A little maiden climbed an old man's knee,
Begged for a story – "Do Uncle please.
Why are you single; why live alone?
Have you no babies; have you no home?"
"I had a sweetheart years, years ago;
Where she is now pet, you will soon know.
List to the story, I'll tell it all,
I believed her faithless after the ball."

Refrain
After the ball is over,
After the break of morn –
After the dancers' leaving;
After the stars are gone;
Many a heart is aching,
If you could read them all;
Many the hopes that have vanished
After the ball.

Verse 2
Bright lights were flashing in the grand ballroom,
Softly the music playing sweet tunes.
There came my sweetheart, my love, my own –
"I wish some water; leave me alone."
When I returned dear there stood a man,
Kissing my sweetheart as lovers can.
Down fell the glass pet, broken, that's all,
Just as my heart was after the ball.

Repeat refrain

Verse 3
Long years have passed child, I've never wed.
True to my lost love though she is dead.
She tried to tell me, tried to explain;
I would not listen, pleadings were vain.
One day a letter came from that man,
He was her brother – the letter ran.
That's why I'm lonely, no home at all;
I broke her heart pet, after the ball.

Repeat refrain

Charles K. Harris-After the ball


요건 유투브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기타 연주인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니 한 번 따라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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