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인 티렉스가 무려 15년 가까이 물심 양면으로 음으로 양으로 노력한 일이 있다면 그 것은 공화국에서 "사형제를 폐지"하는 일이었다. 1997년엔 빌어먹을 모교의 갓 지은 따끈따끈한 무슨 빌어먹을 기념관 혹은 제 2학생회관이라 불리는 곳의 조그만 지하 강당에서 크쥐스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영화인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을 몇몇 아해들과 함께 튼 적도 있었더랬다. 그 때 놀랐던 것은 강당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던 점 때문이었는데 국제사면위원회라는 단체의 명성 때문이었는지 혹은 크쥐스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명성 때문이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선 아직도 추측만이 가능할 따름이다. 그 당시의 예상외의 인원에 대한 추측이 이 쓰레기 게시물의 목적은 아니니 그 점에 대해선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대략 "그 당시부터 공화국의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들에게 인권에 대한 의식이 내 예상보다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는 정도로만 이야기해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제 아무리 끔찍한 살인사건을 저지를 자라 할지라도 그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간단한 이야기를 아무리 입술에 쥐가 나도록 떠들어대도 생각해보려고도 하지 않는 녹속들이 있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그 분들이 떠들어대시는 부분에 대해 개인적으로 좀 개입을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불행한 일이 될 것인가? 아무튼 함부로 까불면 다치니 건드리지 말라는 말씀을 미리 드리고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사형제 존속에 대해 찬성하시는 분들이 줄기차게 내세우는 것은 "사형제도가 흉악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리라. 일단 한가지 fact을 이야기하고 보자. 자랑스러운 당신들의 조국인 공화국의 대통령 각하의 목에 메인 줄의 주인 되시는 George W. Bush이라는 녀석이 텍사스의 주지사로 계시던 몇년간 텍사스 주를 제외한 49개주(물론 주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한 주도 포함된다.)에서 집행된 사형제도를 압도하는 집행횟수를 기록했지만 텍사스주의 살인 발생률이 다른 주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다는 기록은 어데서에도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왜 텍사스의 예만을 드는가?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사형제가 존치하고 있는 국가와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와의 살인사건의 발생률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들의 살인사건 발생률이 더 낮다고 한다. 사실상 사형제도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복수법이요 그 기원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들 계실 함무라비 법전에서 유래한다 할 것이다. 물론 함무라비 법전의 경우 근대법에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근대법의 원리는 복수법의 원리와는 상당히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근대법이란 것은 두 가지의 정신 즉, 개인과 개인간의 분쟁에 있어 자의적 판단에 의한 상호폭력을 방지하는 목적과 국가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방지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수법은 근대적인 성격의 법에선 그 행사를 지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재판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자의적인 힘의 행사 내지는 보복이라는 것이 국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됨은 말할 것도 없다.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항상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해왔으며 "피해자의 인권이 살인자의 인권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 역시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것이므로 극악한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들에게 시간 낭비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사형폐지론자들의 주장은 퍼벌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며 석방없는 종신형이 그 대안"이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해왔으니 그 부분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사형이라는 것이 가지는 그 비인권적인, 그리고 비인간적인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이는 인권의 문제인 동시에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는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하려 한다. 즉, 사형제라는 것이 과연 본질적으로 "극소수의 범죄자와 절대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간의 문제이며 단순히 극악한 범죄자들을 선량한 인민들로부터 격리시켜야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당한 절차와 모두가 공감할 수 잇는 선에서 국가의 정치권력이라는 것이 행사되어야 하고 그리고 근대법의 원리가 자의적인 권력의 행사를 막기위한 것이 그 제정원리였다면 사혗제도의 존치문제는 권력과 시민 훅은 인민간의 문제인 것이다. 즉, 국가의 권력 행사라는 것을 과연 어느 선까지 용인하는 것을 인민들이 합의하는가?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법에 의거해 사형제도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사형제도라는 것처럼 그 자체가 "권력의 자의적 행사" 그 자체인 것은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이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그 어느 권력도 법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일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고, 그런 정도의 권력을 국가가 행사하도록 합의한 인민들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래서도 안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의적 권력의 행사를 막기 위한 법률이라는 것이 정하는 최고의 형벌이 가장 자의적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살인자가 살인을 저지를 당시에 사형이라는 것이 살인을 막는 효과를 가지지도 못"하며 사형제도가 가지는 살인사건의 방지효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으며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제는 인권의 문제 이전에 과연 인민들이 국가의 권력을 어디까지 용인하는가?라는 권력과 개개인의 관계 설정의 문제라는 점이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목숨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권력에 동의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사형을 언도받을 정도의 인간이라면 이미 인간이라는 것을 포기한 놈이기 때문에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권력이 가질 수도 있는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인간은 절대 있지 않을 것이다. 단순하게 이야기할 문제는 아니지만 이 지긋지긋한 사형이라는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