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3일 금요일

아님 말고 1000곡(112)






112. Tommy Johnson과 초창기 Delta Blues에 대한 잡스런 이야기들
델타 블루스라는 장르는 다른 말로는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라고도 하며 미시시피 삼각주를 지리적 배경으로 하여 발전된 블루스의 서브-장르다. 델타 블루스의 출현과 유행으로 인해 블루스가 조금 더 대중적 음악이 되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잇을 것이다.(내가 그 시대에 살지 않았는데 시건방 떨며 당연한 일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공식적으로 델타 블루스의 첫 녹음이 1920년대 후반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미 그보다 훨씬 이전에 블루스의 서브-장르로서의 모습을 갖췄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아무튼 Race Record이라는 레이블에서 발매된 음반이 공식적으로 델타 블루스의 첫 음반이라 알려져있고 따라서 이 레이블이 델타 블루스 전문 레이블 중 가장 오래된 레이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하는 이 개드립!)잘나 비틀어진 미국의 대중음악사가들의 말씀에 의하면 애초엔 델타 블루스가 솔로 아티스트들의 음악이었으나 점차 메이저 레이블이 델타 블루스 음반의 발매에 손을 대면서부터 밴드의 음악이 되었다고 한다.

델타 블루스에 대한 이야기는 아티스트들에 대한 소개를 해나가면서 그 정황에 걸맍는 이야기들을 곁들일 생각이므로 이 자리에서 다 까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기본적인 이야기-정말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 두 가지만 하려 한다. 일단 음악의 형식적 측면에서 델타 블루스는 오리지널(?) 혹은 초기 형태의 블루스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더 자세한 니야기를 하게 되겠지만(사실 이런 면에선 Skip JAmes을 먼저 거론하는 것이 옳았는지도 모른다.) 기본형의, 오리지널 블루스, 초기 형태의 블루스, 블루스의 원형... 어던 것이 되었든지 아무튼 이런 것들과 델타 블루스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근본적인 차이는 없기 때문에 두드러진 차이라고 하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연주의 스타일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델타 블루스에서 멜로디 파트를 담당하는 악기로 주로 사용된 것이 기타와 하모니카라는 점인데, 이 점이 블루스와 재즈가 서로 다른 뿌리의 음악이라는 점에 대한 증거라는 점에서 중요한 이야기라 할 것이다. 그냥 까놓고 이야기해서 기타는 블루스의 역사와 함께 같이 사용된 악기지만 재즈라는 장르에 기타가 개입한 것은 재즈가 막 서브 장르를 늘리던 시기라는 것이고 이 점이 두 장르의 대단한 차이 중 하나라는 것이다. 아님 말고...

인터넷을 통해 Tommy Johnson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수도 없이 나오지만 직업적 음악인(Musical Profession)들의 이름으로는 가장 위에 올라있는 사람이 오늘 이야기할 델타 블루스의 대표적인 아티스트 중 하나로 꼽히는 바로 이 타미 존슨이다. 생월과 생일은 분명치 않고 생년만 확실히 1896년인 이 인물은 정확히 환갑이 되던 해인 1956년 11월 1일에 저 세상으로 간 사람인데 그가 자신의 첫 음반을 Victor(커다란 축음기과 그 옆의 강아지가 있는 로고로 유명한 레이블)에서 발매한 것이 1928년의 일인데 그는 이미 1920년에 처음으로 알콜 중독 판정을 받았으니-아마 돈이 충족했다면 충분히 마약중독이 되었을 바람직한 인물이다.-그가 대단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심지어 거둘 수도 없었을 것을 짐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여기서 설마 나에게 "하지만 그의 음악은 그가 죽은 후에도 찬란히 빛나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따위의 오글거리는 문장을 기대하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한다. 암만...

1928년이 그의 레코딩 데뷔년도이자 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 연관어인 Papa Charlie Mcoy와 처음 만나 지속적인 음악적 교류를 가지게 된 해이기도 하며 블루스의 역사에 걸작으로 꼽히는 그의 곡인 "Big Road Blues"이 발매된 해이기도 한다. 관심있으면 외워두고 귀찮으면 말고! 1928년 발매된 그의 데뷔 음반에 소록된 곡인 "Canned Heat Blues"이라는 곡에는 조금 어이없는 그의 경험담이 함께 하는데, 이 곡은 그가 "하도 술이 고파" 메틸 알콜을 물에 타 마신 후에 그 때의 고통을 쓴 곡이라 전해진다. 버뜨 그러나 한 가지 의심스러운 점은 머리 나쁜 티렉스 얼추 고딩때 화학 수업 시간에 들었던 내용을 기억해보면-나쁜 머리로 화학이 선택과목이었더랬다. 외울 것 없는 물리를 더 잘했으나 인문계 학생이 물리를 선택하는 것이 좀 건방져보인다고 생각을 했다나 뭐라나...- 메틸 알콜은 먹는 순간 사망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화학선생이 했던 것 같은데 그걸 마시고 살았다는 것은 다소의 뻥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보게 된다. 아! 또 삼천포로...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이 남다른 재능의 블루스 기타리스트 겸, 작고가 겸, 보컬리스트가 음반활동을 한 것은 1928년과 1929년 딱 두 해 동안아었다는 사실!

그렇게 짧은 레코딩 활동에도 불구하고 타미 존슨은 당대 최고의 델타 블루스 보컬리스트라 인정받을 정도로 대안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그 시절에 살아보지 않았으니 이렇게 이야기할 밖에...) 그의 보컬의 특징을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은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는 듯한 혹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는 듯한 가성의 사용에 있을 것이다. 이런 표현은 growl to falsetto라는 미국의 평단의 평가를 어거지로 우리말로 옮긴 것인데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대략 어떤 뜻인지 짐작하시게 될 것이라 그런 그의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를 대가라 부른다거나 하기엔 좀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짧은 기간을 활동한 사람에게 혹시라도 천재라 부른다면 모를까 대가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지 않을까 싶다. 델타 블루스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꽤 여러번 해야할 것 같고 그런 관계로 일단 대중적인 아티스트들의 곡들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타미 존슨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물론 앞으로도 델타 블루스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게 되길 바란다. 유투브가 링크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제공하다 이젠 소스 퍼가기만 되는 관계로 일단 동영상은 나중에... 짤방은 델타 블루스의 중심지였던 미시시피 삼각주의 사진이다.

2010년 4월 19일 월요일

그냥(Soundless Music)

*오늘 하려는 이야기와 관련된 어떠한 링크나 관련 음원은 저랟 없을 것이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첫번째 그냥(anout 이효리)

1. 이효리의 새 음반...첫끝발이 개끗발?

2. 이효리의 음반은 이효리라는 편견을 빼고 들어보면 들을만했다.

3. 문제는 항상 그렇듯! 사람들은 이효리에게 음악적 완성도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4. 완성도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프로듀싱 과정에 지나친 제작비를 붓게 된다.

5. 중요한 것은 흔히 이야기하는 걸작에 속하는 음반들을 많이 들어본 사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점!

6. 대충 들어서 대충의 그림만 가지고는 음반이 제대로 완성될 리 없다.


두번째 그냥

1.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삶이 무료하시다면 Acid Jazz을 들어보시기 바란다.

2. 꽉 짜여진 음악을 원한다면 나중에 당신에게 욕먹기 싫으니 듣지 마시고...

3. Shinichi Osawa란 이름의 친구가 있다.(절대 내 친구 아니니 오해하지 마!)

4. 음악을 들으며 약하는 기분을 동시에 느끼고 싶다면 절대 추천한다.

5. 자신이 지구상의 마지막 이성의 화신이라 생각하는 놈들에겐 비추!

6. 닥치고 들어봐!


세번째 그냥

1. 제프 벡의 새 음반을 들어보기 바란다.

2. 그 정도의 대가는 평생 잘했던 것들만 짜집기해도 "역시"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3. 버뜨 그러나, 그의 음반엔 "잘하면 욕먹기 십상인" 곡들도 있다.

4. 역시 또 버뜨 그러나! 절대 제프가 욕먹을 일은 없을 것이다.

5. 무서운 제프 아저씨...


네번째 그냥

1. 허리와 등의 통증은 들으면서 자꾸 자세가 앞으로 쏠리는 음악을 거부하게 만든다.

2. 궁금하지? 무슨 소린지?

3. 음악을 듣는 것 자체가 지적 활동이 되어야 하는 류의 곡들은 몸이 거부한다는 뜻!

4. 그렇다고 꼭 그런 음악을 멀리하게만 되는 것은 아니다.

5. 고로 통증이 20년 넘게 지속되는 건 1987년의 학교 농구 골대 밑에서의 말도 안되는 추락을 경험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 빌어먹을 난 자세가 앞으로 쏠리는 음악을 너무 많이 들었다구!!!

6. 그러나 그런 짓을 하라고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

7. 평생 허리와 등의 통증이 있더라도 듣고 싶은 음악은 들어야 한다는 거...

2010년 4월 10일 토요일

아님 말고 1000곡(111)








나름대로 특집 2.
111. Paranoid-Black Sabbath(1970)-
일단 누군가가 내게 질문을 한다.
"Hard rock과 Heavy Metal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 간단하게 그리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달라."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당근과 채찍을 써야할 시간이라는 이야기!
"자 봐봐! Black Sabbath은 heavy metal이야. 그런데 Led Zeppellin은 hard rock이야. 그리고 또 한가지가 있어. Deep Purple은 Hard rock이고 Judas Priest은 heavy metal이야. 알았어?"
물론 상대방이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 설명이 어디있냐?"고 말이다. 이때 채찍이 등장한다.
"그렇게 듣고 나서도 구별할 수 없다면 넌 진지한 listener이 될 자격이 없어! 당장 때려치워!"
대부분의 경우는 이런 구박을 다시 당하지 않으려고 여기서 그치는데 정신 차리지 못하고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다며 재차 질문을 하는 녀석들이 있다면 그 땐,
"넌 아직 멀었어! 내가 그렇게 가르쳤냐? 너 정말 실망이다."라며 도리어 화를 내는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나름대로 팝음악을 많이 들었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꽤나 알려진 일종의 우화지만 솔직히 이 말로 표현하기 애매한 차이를 이런 확연한 대비를 통해 직접 들어서도 알 수가 없다면 음악에 대한 (감상자로서의) 센스는 빵점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라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일종의 진리인 것이다. 애석하게도...

1970년 Black sabbath의 두번째 앨범인 "Paranoid"이 발매 당시 평단의 이 앨범에 대한 반응은 한마디로 "뭥미?" 그 자체였다. 말을 순화시켜 이 정도지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자면 "도대체 어떤 멍청이들이 이런 음악의 기본도 모르는 소음을 들고 남들에게 사달라고 감히 이야기하는거야?"라는 것이 더 어울렸을 법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을 얻은 앨범이 발매한 뒤 곧바로 (밴드의 역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영 앨범차트 1위에 오른 것이었다. 이 앨범에 대한 반응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도대체 왜 신은 이런 바보들에게 기타와 앰프를 가지도록 허락햇는지 알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자신들의 평가와 그에 대비되는 대중들의 이 앨범에 대한 반응은 평단을 당황시키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Paranoid" 앨범은 헤비메탈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앨범으로 꼽히고 있는 동시에 전체 fock음악의 역사를 기준으로 놓고 봐도 가장 큰 impact을 가졌던 앨범들 중 하나로 꼽히고도 남음이 있는 "역사적인 음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1970년 9월 18일은 헤비메탈의 팬들에겐 이 앨범이 발매된 날로 기억될 것이라는 말씀!

티렉스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헤비메탈 음악의 팬들은 본격적인 헤비메탈의 역사는 "Paranoid"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런 식의 의미를 이 밴드와 이 앨범에 부여하자면 "본격적인 비틀스 세대의 등장"이라는 점이다. 오지가 나중에 인터뷰에서도 밝힌 이야기지만 자신들은 "비틀스의 음악을 들으며 악기를 잡았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사실 1970년은 비틀스가 사실상 해체를 한 해이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비틀스 세대의 등장이 시작된 해이기도 했다. rock음악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팀들이 많았으나 가령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 같은 밴드들의 음악적 자양분이 비틀스의 음악이었다 하기엔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음악적인 소양이 대단했고 그 것이 비틀스로부터 온 것이라 보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후일 오지 오스본이 자신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들은 비틀스를 들으며 기타를 잡기 시작한 비틀스 키드들이었으며 이 팀이 오버그라운드에서의 성공은 대중음악계에 본격적인 비틀스 세대들이 등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다른 식으로 풀어 보자면 블루스나 그와 연관있는 음악들을 통해 rock and roll을 했던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던 세대들의 음악이 지배하던 오버그라운드 팝 신에 직접적으로 rock and roll의 영향으로 음악을 시작하고 자신들의 올 모델을 rock and roller으로 설정한 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 중요한 것은 "Paranoid"을 기준으로 이제 팝 신에 본격적으로 헤비메탈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물론 처음 헤비메탈이라는 장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 장르가 한 시대에 휠을 잡는 장르가 되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아마 K.K 다우닝이나 오지 오스본도 생각하지 못핬으리라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Black Sabbath의 경우 1970년에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그 해 6월에 곧바로 두번째 음반의 작업에 들어간 것 자체가 어쩌면 모험이었다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데뷔 앨범에 대한 평단의 평가도 상업적인 성적도 그다지 만족할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제작자인 로저 베인(Roger Bain)은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까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곧바로 두번째 앨범의 작업에 착수할 것을 제안하고 그다지 두드러진 무대도 보이지 못한 채 곧바로 스튜디오로 시쳇말로 잠수를 타게 된다. 그들은 이 두번째 앨범에 대해 어느 정도로 무계획었냐 하면 앨범의 타이틀 트랙인 Paranoid을 한 장의 LP에 채우기엔 너무 부족한 분량을 어떻게든 때워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드러머인 빌 워드(Bill Ward)이 녹음 과정 중에 곡을 쓰고 연주하고 녹음을 하게 되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 곡을 채움으로써 겨우 42분이 조금 넘는(사실 그다지 짧은 시간은 아니다.) 앨범을 완성할게 된 것이다.

윗 단락에서 어느 정도 짐작하셨겠지만 본래 앨범의 타이틀 역시 Paranoid이 아니었고 War pig이라는 타이틀로 발매할 생각이었다. 그들의 초창기-즉 오지가 처음에 탈퇴하기 이전까지-의 앨범들이 가지고 있는 일관된 주제는 주로 물신에 대한 숭배와 전쟁, 인간의 파괴 본능, 암울한 인류의 미래 등이었다. 그리고 그 절정에 바로 이 앨범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이 앨범에 대해 "이런 원시인들에게 기타와 앰프를 사용하게 만든 사람은 음악계에 재앙을 불러온 사람이 자신임을 반성해야 할 것"이라는 거의 생매장 수준의 평가까지 내렸던 리뷰어들과 컬럼니스트 그리고 크리틱들은 급속도로 대중들에게 파급력을 가지게 된 이 앨범에 대해 "무언가 변명거리를 찾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음악의 시대적 조류는 급속히 변"하기 마련이라는 선까지 후퇴했으나 결국 지금에 와서 이 앨범은 Rock 음악의 역사를 바꾼 앨범 중 하나로 평가받는 앨범이 되었다. 헤비메탈이라는 장르가 안착하게 된 계기를 마련한 것 외에 이 앨범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 중 하나는 "평단의 공통된 평가에 대한 대중들의 조직적 반기"의 첫번째 사례로 기억될 일이라는 점일 것이다. 사후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별무소용한 일이란 것은 분명하나 과연 헤비메탈이 시대의 조류를 탈 운명의 음악이었기 때문에 이 앨범이 성공했던 것인지 이 앨범으로 인해 헤비메탈이 첫번째의 중흥기를 맞이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한 번 정도는 던져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일종의 뒷담화라면 뒷담화일텐데 Black Sabbath의 앨범 중에서도 이 앨범은 국내에선 뒤늦게 평가받은 앨범이었다 할 수 있을텐데, 서슬이 시퍼러둥덩하던 그 시절 앞에서 이야기한 내용들로 인해 이 앨범은 국내에선 발매될 수 없었고 그들이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국내에 방송을 통해 알려진 곡은 주로 "Chaanges"이나 "She's gone"과 같이 어쿠스틱한 동시에 대단히 얌전한 곡들이었더랬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몰라도 1989년 국내에 음반직배사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방송불가가 곧 음반의 판매불가라는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으며 그 시기에 이 음반을 합법적으로 소유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성을 띄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She's gone이나 Changes을 들으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리고 그 시기에 이 밴드에 대한 나름의 환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자신의 위시리스트 목록에서 Black Sabbath을 부랴부랴 지우기도 했겠지만 그를 압도하는 수의 사람들이 이 밴드의 그리고 이 음반의 진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riginal LP
Side one
"War Pigs" – 7:55
"Paranoid" – 2:47
"Planet Caravan" – 4:30
"Iron Man" – 5:58
Side two
"Electric Funeral" – 4:47
"Hand of Doom" – 7:07
"Rat Salad" – 2:29
"Fairies Wear Boots" – 6:13


CD Issue
2009 deluxe edition disc three
"War Pigs" (instrumental) – 8:00
"Paranoid" (alternative lyrics) – 2:50
"Planet Caravan" (alternative lyrics) – 4:34
"Iron Man" (instrumental) – 5:56
"Electric Funeral" (instrumental) – 4:52
"Hand of Doom" (instrumental) – 7:07
"Rat Salad" (alternative mix) – 2:30
"Fairies Wear Boots" (instrumental)– 6:14


War pig


Iron man


Paranoid

2010년 4월 5일 월요일

20100406 씨발 잘 봐라! 응?

1. 이래도 총파업이 조직되지 않냐?
"기존 사회가 부여한 조건 속에서 또 그 사회가 제공하는 수단으로만 성취가능한, 즉 그러한 조건들과 수단의 재생산에 단단히 결박된 그런 사적 이해"라는 표현을 쓴 사람이 누군지 아시는가? 물론 두 말하면 입 아픈 맑스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그 어떤 상황에서건 자본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고 그 프레임을 깰 목적의 툽쟁이 계급투쟁의 가장 상위의 목표이자 항상 당면 투쟁의 목표가 아닌 사회는 결국 "분배의 정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라는 것이 티렉스의 뻐꾸기 되시겠다. "안전한 환경에서 일을 할 권리"라든지 "충분한 휴식시간을 보장받을 권리"등이 "단순한 인권차원의 노동운동의 일부"가 아닌 이유는 이런 조건들이 가능해지려면 자본주의라는 패러당미의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외로 근본적 처방을 요하는 것은 경제투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본론 이야기하시겠다.

삼성전자 생산라인에서 노동자로 있다가 백혈병을 얻어 투병하던 중 결국 세상을 뜬 박지연씨는 결국 마지막 가는 길에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한 삼성을 향해 원망의 눈길 한 번 보낼 자유조차 박탈당한 채로 그렇게 23세를 일기로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어차피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젊은 여성의 죽음에 대해 삼성은 물론이고 노동부 역시 묵언수햏중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박지연씨를 제외하고도 세 명(두 명일 수도 있다. 아무튼...)이 같은 작업장에서 같은 병을 얻었다고 한다. 물론 멸치 대가리 새끼의 사돈이 오너로 있는 빌어먹을 한국 타이어 역시 이 비슷한 일이 있다. 빌어먹을! 아무리 노동조합이 없는 삼성이라 해도 같은 작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리고 또 하나, 그 빌어먹을 좆같은 삼성에 노동조합이 없다 해서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에선 이런 중차대한 일에 조직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니미 빌어먹을 주사위들이 지도부를 장기간 장악했던-이젠 그들에 대한 관심이 1g도 남아있지 않아 지금 지도부가 주사위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민주노총이라는 무능과 무개념의 공화국 대표 노조가 하는 일이란 광복적에 즈음해 북한의 노동자와 통일 축구대회 따위나 하는 데에 목숨을 걸고 산하의 개별 노조들이 자신들의 정규직 지위를 이용해 직접 자신들이 하청계약을 하는 머저리같은 짓을 해도 그들을 제제할 생각 따위는 엄두도 못내고 있는 그런 좆같은 일이 21세기의 공화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씨발! 더 이상 뭐가 필요하단 말이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노동자들이 생명을 담보로 암이 발병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는 조건에서 노동하고 있었고 심지어 암을 얻었으며 결국 목숨을 잃었는데 도대체 "노동운동"이란 것의 실천을 언제 하려 한다는 것인가? 무슨 명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인가? 지금 당장 총파업을 조직하지 않는다면 당신들 역시 "자본의 개"가 되는 것에 스스로 자청해서 협력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닐 겅디ㅏ.

만일 이 사항이 총파업을 할만한 명분이 없는 상황이라 생가한다면 당신들의 조직론은 아마 안드로메다에서 가져온 조직론일 것이다. 뭐 없는 개념들이 모여사는 안드로메다에선 이런 일에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 "개념"이 되어있을 테니 말이다. 당신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존나 폼나는 일"도 아닌데 하고 싶기야 하겠냐만... 뭐 하긴, 당신들은 이른바 궂조조정과 노동유연성을 이야기하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부르짖던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를 친노동적 정부로 만들어버리고도 남앗던 사람들이니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으나 만일 당신들이 "자신들의 본분이 자본과의 협상이나 타협이 아니라 노동운동"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이야말로 당신들이 대대적인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으로 "이제부터라도 노동운동에 대해 인민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크나큰, 그리고 감동적인,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기다. 안드로메다에 보냈던 개념들은 이제 다 잊어버리고 새롭게 개념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2. 씨발 난 단독중계 해도 상관 없다는 말이다.
우선 이 이야기부터 하자. 우리의 김대운횽 일명 김C라고도 하는 "뜨거운 감자"의 리드보컬이 이런 이야기를 자신의 트위터를 올렸다. "드라마도 되고 야구도 되고 음악프로그램도 되는데 가요 프로그램과 예능은 왜 안되냐?" 당연히 김대원횽의 말이 2000000% 옳다. 외환위기가 왔으니 금을 모으자는 새끼들이나 숭례문이 불에 탔으니 시민들의 모금을 통해 복원하자는 말을 하는 새끼들에게 이런 비극에 "너희들은 일률적으로 슬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절대 오해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46명을 개죽음으로 몰고 간 어이없는 사고에 대해 내가 슬퍼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화국의 인민들이 지금 분출하고 있는 슬픔이라는 단어의 본질이 무엇인가?

니미 이 빌어먹을 슬픔의 본질은 사고 자체의 비장함과 비극적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보여준 공화국 군과 행정부의 무개념 대응에 대한 분노가 그 기저에 깔려있기도 할 것이다. 최소한 내 주변의 모든 비뚤어진 이들의 생각은 그렇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서 지금 인민들이 느끼고 있는 슬픔은 "아! 우리가 가서 그들을 구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못하고 있고 그 것을 대신해주는 국가에 대해서도 처연한 슬픔이 느껴질 정도로 고맙다"눈 의미를 조금이라도 내포한 슬픔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국가의 무능과 방종과 오만함과 지긋지긋한 북풍공작 등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한 슬픔이지 이 슬픔이 "국가를 존나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비장함"과는 거리가 한참 떨어진 성격의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신 새끼들이 어디서 선생질이냐는 것이 내 이야기다. 왜 당신들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기는 방송사가 되어야 하고 그런 방송사의 결정에 "존나 잘했어요!"를 외쳐대며 그저 구경하고 박수치는 들러리로 인민을 사고한다면 그런 꼰대같은 정신으로는 그 누구도 설득시킬 수도, 심지어는 자신들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여론의 조작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공화국의 사회가 얼마나 "웃음"이라는 것에 대한 조악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뭐 하나만 봐도 안다. 힘 좀 쓴다는 선생이나 주먹 깨나 쓰는 노는 새끼들이 학교에서 노상 달고 사는 말 "지금 너희들이 웃어? 장난하나?" 뭐 이런 식의 이야기가 상대방을 웃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주는 "권력의 쾌감"을 대변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개소리를 지 주둥이로 뿜어대는 그 시간 동안 그 어느 누구도 웃어서도 안되고 웃는 새끼는 "당연히 처맞아야 할 새끼"로 손쉽게 만들어버리는 것! 즉, 자신 앞에서 마음껏 웃지 못하는 것으로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조폭적 근성"이 이런 천박한 생각과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궁금하지? 제목하고 관계없는 이야기만 씨부려대고 있으니 말이니... 그래 그렇게 궁금하면 이제부터 결론을 이야기해주도록 하겠다. 웃지 말라는 것과 24시간 동안 같은 것을 보여주면서 흥분하고 발악하고 감동하며 "건전한 국가관"을 키우는 인민들을 보는 것이 그 어떤 정권에서도 한결 같은 소망이었을 것이다. 니미 빌어먹을 운동 경기에 발광하면서 애국이 어떠니 지랄을 떨고 자빠지는 것을 의도하는 새끼나 그 지랄에 장단을 맞추는 새끼들이나...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문제 역시 중요하나 빌어먹을 지상파 방송 어딜 틀든지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국가대표 선수들이 얼마나 모진 역경을 이겨내고 인간승리의 과정을 거쳐 KFA의 촌스럽게 생긴 호랑이 앰블럼이 찍힌 유니폼을 입게 되었으며 상대방은 70%나 그 이하의 기량을 보여주는 것이 당연하고 공화국 팀은 200%의 기량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여 축구 한 경기에 대해 "세상을 정복할 수도 있는 자랑스런 한국"에 대한 환상을 가득 심어줄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을 따름이다. 빌어먹을 한 채널에서만 중계하면 그 채널을 보지 않으면 되지만 지상파 방송 모든 채널에서 월드컵이나 올림픽 죽계만 틀어주는 것은 "하이 히틀러"나 "어버이 수령"을 외치는 것을 화면이 아닌 옆집 사람 앞집 사람을 통해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엄숙주의와 억지감동은 방송을 통한 여론과 이데올로기 장악의 가장 간단한 표현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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