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0일 목요일

아님 말고 1000곡(113)







113. 로니 횽아를 보내며...Holly Diver, Heaven and hell등등

Ronnie James Dio(1942)가 애초 "베이스의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10대의 나이에 베이시스트로 프로 뮤지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한 때 휠을 잡을 뻔도 했으나 그렇지 못했던 elf이라는 이름의 밴드에서 베이스를 치기 시작한 것이 1950년대 말이니 그가 죽기 전까지 생존 뮤지션들 중 가장 오랜 커리어를 가진 이 중의 한 명이 그였다는 사실 역시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프로페셔널로 살아왔지만 정작 그가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Rainbow시절 이후이기 때문에 그는 그의 나이보다 항상 젊은 뮤지션으로 인식되어온 것 역시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기도 하다.(이게 도대체 뭔 말이냐? 내가 쓰고도 헤깔린다.) 그리고 레인보우와 블랙 사바스를 거친 탓에 그가 영국인인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상당수이나 그는 뉴 햄프셔주의 포츠머스 태생의 미국인이기도 하다. 시작한 김에 이런 이야기 하나 더 하자면 그의 본명은 Ronnie James Padovone이며 예명인 Dio라는 성은 유명한 마피아였던 Johnny Dio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1975년 그가 레인보우의 초대 보컬이 되기 이전 바로 1년 전인 1974년에 역시 딥 퍼플 출신의 로저 글로버의 개인 프로젝트였던 컨셉트 앨범 Tje butterfly ball and the grsshopper's feast의 수록곡인 "Love is all"의 보컬로 참여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가 딥 퍼플의 멤버들과 개인적인 교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리치 블랙모어의 후임으로 딥 퍼플에서 기타를 치게 된 타미 볼린이 미국인이라는 사실도 그다지 생뚱맞은 일은 아니라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즉, 딥 퍼플의 멤버들이 미국 출신의 뮤지션들과 교분이 돈독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헤깔리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어찌되었건, 만일 레인보우에 로니 횽아가 참여하시지 않으셨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로니 제임스 디오라는 이름을 몰랐을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대단히 둔감한 사람이라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만큼 로니 제임스 디오라는 이름과 레인보우는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를 추모하는 이야기를 한다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늘어놓는 것은 무의미한 알일 것이므로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편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 아무튼 그랬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레인보우가 아닌 블랙 사바스의 보컬로서였지만 꼬꼬마 시절 음악을 이것저것 들으면서 다시 로니 횽아에 대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생각해보니 역시 로니 횽아의 이력에서 레인보우를 지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과정에서 그에 대해 가지게 된 인상은 가장 gothic한 보컬리스트라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로니 횽아의 음악을 듣는 과정과 고딩때 유행하던 록 음악에 나타난 사탄의 메시지가 어쩌고 하는 책들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던 사람이 오지 횽아와 로니 횽아였던 탁도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가 레인보우 시절 불렀던 곡이나 블랙 사바스 시절에 불렀던 곡들이 어린시절에 가지고 있던 하드록이나 헤비메탈이라는 단어가 주던 인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로니 횽아가 과연 "heavy metal"혹은 "hard rock"이라는 장르에 적합한 보컬리스트라는 점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 논란의 단초는 로니 횽아의 보이스 컬러가 한 때 휠을 잡던 다른 보컬리스트들에 비한다면 대단히 굵은 느낌의 목소리 혹은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다소 저음의" 목소리를 가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 무대 위에서 보여주던 실수 역시 그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한 요인들이었으리라는 생각이다.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Rob Helfort 횽아와 자주 비교되며 로니 횽아는 헤비메탈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평자들이 많았더랬다. 그리고 보이스 컬러나 목소리의 높낮이에 대해서라면 그런 비판은 상당히 타당하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리라는 점 역시 동의한다.

그러나 그런 그의 단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가 여전히 매력적이며 rock 음악의 역사를 쓸 때 대단히 중요했던 보컬리스트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앞서 이야기했던 바로 그 gothic이라는 수식어 때문이다. 그의 보컬리 가지는 다소 기괴한 이미지는 그보다 훨씬 샤우팅에 능한 다른 보컬들이 가지고 있지 못했던 그의 장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NWOBHM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이전, Heavy Metal Scene을 대표하던 보컬리스트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과 대중적 인기를 누린 보컬리스트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그런 기괴하고 스탠더드를 다소 벗어난듯한 그의 스타일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보컬리스트의 꿈을 키웠고 티렉스 역시 시험이 끝나고 혼자 집을 보게될 경우 볼륨을 더 이상 높일 수 없을 정도까지 올리고 그의 노래를 카피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암이라는 질병이 언젠가는 정복될 날이 오겠지만 그 빌어먹을 놈의 위암이 데려간 로니 횽아의 부고는 티렉스의 꼬꼬마시절이 완전히 사라지고 있음에 대한 신호 중 하나라는 점은 확실하다. 빌어먹을...

2010년 5월 18일 화요일

이명박이 죽으면 모두 행복해질까?(2)

그냥 웃기는 이야기부터 하나 하고 시작하겠다. 어제 동네 버스정류장을 도보로 지나가는데 파랑 띠를 두르고 같은 색의 명함을 나눠주는 새끼가 있는 것 아닌가? 뭐 간단하게 "아! 씨! 어디 한나라당 따위가 감히!"라고 손사래츷 쳤는데, 저 쪽에서 연두색 의를 두르고 같은 색의 명함을 주려는 새끼가 있는 것 아닌가? 그 것도 존나 웃으면서 "아! 씨발 넌 또 뭐야?" 뭐 아무튼 그랬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이 게시물의 결론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주사위들은 그랬다. 87년엔 백기완 후보에게 사퇴하라 지랄을 했고 92년도에도 마찬가지였으며 심지어 97년 대선때 같은 과의 주사위 후배 새끼 하나는 내게 이런 개같은 소리를 지껄였다. "형! 이번에 권영길이 100만표 나오고 김대중이 대통령 되면 참 좋겠지요?" 내가 한 마디 했다. "야! 그럼 넌 누구 찍을건데?" 물론 그 새끼가 잠시 말이 없다가 수업을 핑계삼아 그 자리에서 꺼졌음은 두 번 이야기하면 혀에 쥐나는 이야기 되시겠다. 드디어 이번 선거에 그들은 엄청난 대동단결을 이뤄냈다. (그에겐 미안하지만) 이상규라는 이름을 가진 듣보잡을 후보로 내세운 후 "출마포기"라는 이름으로 "큰 정치"를 잉루셨다. 빌어먹을 새끼들! 아주 좋은 상황일 것이다. 한명숙이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반 MB로 똘똘 뭉쳐 이뤄낸 쾌거"가 될 것이며 오세훈이 치하에서 서울이 4년 더 신음하게 된다면 "노회찬 때문"이라고 말하면 그 뿐일 것이다.

지금 좀 흥분한 상태라 과격하게 나가겠다. 아무튼 이 땅의 주사위들은 질문 하나 받아주기 바란다. "씨발 너희 새끼들이 남한에서 몰아내고 싶은 것은 미제냐? 아님 90년대에 PD라 불리던 사람들이냐?" 그들이 무려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김대중을 비롯해 지금까지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어져 내려오는 그들에게 추파를 던져 당신들이 얻은 것이 무엇인가? 임종석이나 오영식, 이인영, 우상호 등등의 과거 날리던 주사위 스타들이 제도권으로 들어간 것? 아니면 민주노동당을 손 하나 안대고 바보같은 학삐리들 꼬셔서 조직적으로 지구당 경선에 개입해서 쳐 드신 일? 아! 물론 이해한다. 한나라당 새끼들이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것 이상으로 민주당 새끼들이 그러하며 당신들 역시 그렇다는 잠! 그래서 민주당과 당신들이 통한다는 점!

그런데 이 문제는 하나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이 빌어먹을 공화국이 미국이나 영국 이상으로 신자유주의적 지옥이 되기까지 과연 한나라당 병신들만 관여했을까? 김대중이나 노무현의 책임은 없을까? 김대중이 당선자 신분으로 자랑스럽게 조지 소로스와 사진을 찍고 노무현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서둘렀을 때부터 이미 그들은 "인민의 편"이 아니었음을 부인한다면 당신들은 뇌가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김대중와 노무현의 10년 집권 기간동안 공화국이 신자유주의의 첨병이 되어간 속도는 그 이전을 압도할 정도로 빨랐다. 이명박은 김영삼부터 내려온 토대위에 정점을 찍으려는 무모한 개지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죄 없는 자 저들을 돌로 쳐라!"라고 한다면 돌을 던질 나지만 그들이 이른바 한나라당 병신들과 공모해 저지른 짓에 대한 어떠한 사과나 반성도 없이 단순히 반 한나라당 이나 반 이명박이라는 단어로 전선을 단순화할 수 있는가?

당신들이 항상 잘 써오던 말 있지 않은가? "현시기에 당면한..."아쩌고 저쩌고 하는 개소리 말이다. 그 것은 당신들이 정당이라는 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때라면 어느 정도 용인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들은 당신들의 터진 주둥이에서 뱉어대는 말 그대로 빌리자면 "진보정치를 위해 진보정당을 만든" 사람들 아닌가? 당신들 생각엔 반 이명박이라는 단순한 전선을 긋고 당신들이 말하는 진보와 민주당 놈들과의 정책적 연대와 연합이 가능하다 생각하는가? 뭐 아니라고 한다면 당신들은 지금 양심을 속이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고 한다면 당신들은 바보일 것이다. 물론 당신들은 항상 그 둘 다를 갖춰온 사람들이었지만...

당신들이 대화의 파트너 혹은 연합의 파트너라 생각하는 민주당 역시 인민들에 의해 타도되지 않는다면 당신들 말대로 미제가 이 땅에서 물러나기는 커녕 미국에 개기는 시늉만 내닫가 들어줄 것 다 들어주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당신들 말대로 이명박만 죽으면 이 땅이 행복한 세상이 되는가? 뭐 끝까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없지만 이미 몸주고 돈주고 마음까지 준 뒤에 "이런 것은 아니잖아요!"라고 한다면 캐병신 취급밖에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당신들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제발 당신들이 당을 왜 만들었는지에 대해 진지한 모긴이 있다면 이따위 싸구려 치정행각은 그만두기 바란다. 물론 아님 말고...

2010년 5월 6일 목요일

가요에 관한 잡담(Soundless Music)







잠시 블루스에 대한 이야기를 좀 접어 두고 오랜만에 가요에 관한 짧은 몇 개의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나 뭐라나...

1. 그냥 받아들여!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하시겠으나 때로는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되도 않는 이유를 찾아가며 저항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산적인 경우가 있다. 다름이 아니라 공화국이 낳은 최고 여가수 중 한 명으로 "엘레지의 여왕"이라 일컬어지는 이미자 선생은 언제나 인터뷰에서 "트로트를 뽕짝이라고 부르는 것과 트로트가 전통가요로 대접받지 못하고 일본 노래로 치부되는 것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음을 토로하신다. 트로트라는 장르가 Fox-trot이라 불리는 3/4박자의 춤에서 온 리듬의 음악을 일컫는 말이라고 사전적 정의는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 심지어 모 신문에서는 "일본의 엔카와 한국의 트로트는 멜로디상의 굉장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엔카라는 장르는 fox-trot 리듬을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두 음악을 같은 음악으로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말씀 대단히 위험한 변명 되시겠다는 것이 개인적 견해라는 말씀 수차례 드렸으나 잊어버리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는 관계로 다시 말씀 드리려 한다.

제일 큰 문제는 이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트로트는 폭스트롯리듬을 사용하고 혹은 사용했던가?"라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예스"라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논쟁이란 것 자체라 불필요하지 않다는 점 다시 밝혀둔다. 근데 어쩜 좋냐? 공화국 원로 가수들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트로트의 리듬이 폭스트롯이라고 하기 많이 미안한 점이 있어서...정 의심스러우시다면
요기
를 한 번 눌러 보시기 바란다. 과연 공화국의 전통가요라 하는 트로트가 소위 말하는 가요 전문가나 이런가들이 이야기하듯 폭스트롯에서 온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유명한 ㄴ모 가수의 노래를 틀고 저런 춤을 출 수 있으며 앞서 말씀드린 이미자 선생의 노래로 저런 춤을 출 수 있다고? 그런데 멜로디 전개의 유사성은 충분히 인정되나 리듬상의 문제로 엔카와 트로트는 다른 음악이라고? 이 점을 인정할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할 것ㅅ이다. "당신의 말은 틀렸다. 오히려 엔카가 트로트의 영향으로 발전한 음악이다." 글쌔... 1차 대전을 전후헤서 일본에서 엔카의 원형이 틀을 잡기 시작했고 1920녀대에 와서 공화국에서 트로트라 불릴만한 음악이 완성되었다는 점은? 블루스나 소울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인 계기가 백인들이 그 장르에 뛰어들면서부터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으나 백인들이 블루스나 소울을 "애초에 백인의 것"이었다거나 "우리의 블루스나 소울은 흑인들의 그 것과 다르거나 더 우월하다"라며 이야기하던가?

2. 2009년 최고의 가요 앨범?
광화국에서 자타칭 "가요 전문가"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루시드 폴의 앨범을 작년 최고의 앨범으로 꼽고 싶어할 것임을 확신한다. 그 것이 그들이 15년 이상 지켜온 곤조니까... 버뜨 그러나! 루시드 폴의 앨범이 대단히 훌륭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과연 그 앨범이 2009년 최고의 앨범이었는가? 라는 질문을 개인적으로 받게 된다면 내 Answer은 "Nwver"일 수밖에 없다. 항상 최고의 앨범을 꼽을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두 가지 기준은 우선 그 앨범의 impact이라 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차트를 만드는 일에 있어서 가장 큰 공신력을 가지고 있는 Rolling Stone의 기준 역시 그렇다. 그 임팩트라는 단어가 허용하는 범위가 전사회적이든 아니면 딴따라판에 한정된 것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임팩트라는 단어임에 분명하다. 그 차트의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앨범들보다 떨어지는 완성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앨범들에 비해 낮은 위치에 있다기 보다는 그 빌어먹을 놈의 임팩트라는 단어 때문에 아래에 위치하는 경우가 절대적이라 보시면 될 것이다.

물론 루시드 폴의 앨범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기간 보여왔떤 공화국 평론계의 취향에 가장 부합하는 앨범 역시 루시드 폴의 앨범이라는 점을 읹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하지만, 티렉스의 개인적 선택은 단연코 "Drunken tiger-Feel good music: the 8th wonder"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 앨범은 "이제 더 이상 CD의 시대는 갔다"고 선언적 일갈을 하며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다른 아티스트나 제작자들의 "발빠른 변신"에 보란 듯 "깔끔한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역할을 했다. 그 것도 2CD 앨범으로 말이다. 그리고 항상 가요계 평단의 주류들이 문제시했던 "힙합음악은 사운드가 무언가 빈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평가를 가볍게 일축해버릴 정도로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드렁큰 타이거가 "난 널 원해"나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를 부르던 시절부터 그들의 팬이라면 "과도하게 착해진" Tiger J의 가사에 실망할 분들도 계시리라 보지만 드렁큰 타이거의 음악은 절대 착해지지(?) 않았다.

긴 말을 하는 것보다 직접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아직도 디지털 음원을 겨냥하고 곡을 만드는 작업보다 음악적으로 CD로 음악을 만드는 작업이 훨씬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고 더 높은 질을 보장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아직까지도 CD이라는 매체는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다는 사실 단 하나 만으로도 이 앨범은 2009년 발매된 공화국의 가요 앨범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앨범 전체를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드렁큰 타이거 혹은 타이거 JK의 사회에 대한 분노가 즉자적인 것에서 대자적인 것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도시의 빛과 그림자, 서울 서러운 울음소리의 줄임말"이라는 가사만으로도 이미 15년 가까이 되는 한국 생활, 그리고 서울이 아닌 주변부 도시에서 살아가며 체험한 것을 음악 속에 녹아내는 것 자체가 대단히 자연스러운 그의 작업의 기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40이 훨씬 넘어서도 힙합계에서 휠을 잡을 수 있는 공화국의 유일한 히피 하파가 있다면 그는 당연히 서정권일 것이다.

3. 이제 그들은 "대중성"에 대한 감을 잡았다?
김대원씨 혹은 김C 자신이 밝힌 바에 의하면 그의 절친한 친구인 자우림의 이선규는 항상 "뜨거운 감자"를 가리켜 "인디 나부랭이"라고 이야기한다지만, 사실 moderen rock의 뿌리가 깊은 음악 Scene에서였다면 "뜨거운 감자"라는 밴드가 그 정도로 마이너리티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베이시스트와 보컬리스트-김대원을 리드기타 혹은 퍼스트 기타로 보기엔 그는 지나치게 스트로크에 능한 기타리스트라는 점을 감안하여 이렇게 말한다.-만 고정적인 멤버인 밴드의 한계로 이른바 full band 음악을 구사하는 데엔 일정한 한계가 상존하던 밴드였지만 그들의 음악이 지나치게 실험적이라거나 지나치게 난해한 음악이라 하는 것은 좀 무리한 이야기다 싶을 때가 많았다 할 것이다. 물론 그들이 폭풍같은 인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마이너리티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극소수들이 추구하는 장르음악을 한다고 하기엔 비교적 대중들에게 친숙한 음악을 구사하는 밴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 그들이 마이너리티의 대표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면 그 것은 그들의 음악이 가지고 있었던 "타고난 시니컬함"이 큰 몫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다들 아시겠지만 그들의 새 앨범의 곡들은 조금 더 일렉트로닉한 면들을 많이 취하고 그와 반대로 현란하진 않지만 짜임새 있는 오케스트레이션도 선을 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과거에 비해 대단히 다양한 사운드를 그들의 앨범에 도입했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의 음악에서 "아 이제 이런 곡들을 연주하면 대중적인 반향을 얻을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티를 심하게 내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그들이 대중성과 야합하기 시작했다 받아들이신다면 곤란하다. "뜨거운 감자"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것들을 훼손시키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대중성을 그들의 음악에 포함시키는 법을 알았다는 것이 적당한 이야기일 것이다.

아시다시피 이 음반은 Imaginary Sound Track이라 불릴 앨범이다. 즉, "시소(See-Saw)"이란 제목의 가상의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라 할 앨범인데, 그다지 많은 수록곡이 있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이 음반은 영화음악 앨범이라는 점을 청자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 할 것이다. 그 것이 가능했던 것은 보컬이 있는 곡과 연주곡의 적절한 배열 때문일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옥에 티라 한다면 중간에 (이 배우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이 점은 안타깝다.) 배두나의 내레이션 부분이 지나치게 오글거린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텐데, 이 앨범을 처음 들을 때 외엔 그 부분은 스킵한다 하더라도 건강에 아무 지장이 없으니 그리 하신다면 이 앨범의 가치를 조금 더 높이면서 감상하실 수 있으이라 생각한다. 뜨거운 감자의 음악에 조금씩 스며드는 낙천성이 "예능 프로그램인 1박 2일에서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잇는 김C"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그에게 있어 예능은 그의 이야기와는 달리 꽤 큰 도움을 주는 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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