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한계인간군은장효조와 최동원의 죽음, 너바나의 베스트 앨범, 그리고 R.E.M.의 해체라는 작금의 이 상서로운 일들의 연쇄를 두고 이제 낭만은 없다고 선언했다. 낭만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으나 지금과는 굉장히 달랐던 90년대 후반의 인사동 일대를 뒤지며 맛있는 음식과 밀주를 들이키며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한계인간과 나누며 늦은 시간까지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던 종류의 비생산적 일들을 낭만이라 정의할 수 있다면 빌어먹을 2011년은 이미 낭만이 없어진 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꿈극장도 검은 안식도 소리정원도 이젠 현재진행형의 일반명사가 아니라 과거완료형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을 낭만의 종언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밀주라 해서 대단한 것을 떠올리시진 말라! 그냥 지금은인사동에도얼마 남지 않았지만 인사동의 오래된 전통찻집에서는 직접 담은 과일주등을 파는 곳이 있었다. 그 것을 우리는 밀주라 일컬었다. 그리고 그 맛은 밀주가 아닌 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면 약오르시려나?
그냥 보내기는 억울하고 그렇다고 지금 시점에서 이들이 서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고 해서 울고불고 한다면 심하게 오글거릴 일이라 30년, 정확하게는 31년만에 해체한이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는데 결론적으로 위키피디아를 쳐보면, 혹은 구글링을 해보면다 나올 이들의 프로파일에 대해긴 이야기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음악적으로는 마이클 스타이프에 의해 American Punk Rock이 Alteernative Rock이라는 장르로 재편되었다는 이야기라든지 대학교 교내방송을 통해 전국적인-급기야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비교적 양심적인 신문사들의 수준을 넘지 않는 것일테니 심히 가오 떨어지는 일이라할 것이다.한계인간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그가쓴 "낭만은 끝났다"는 문장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Alternative의 조상인 이들을보내며 해야할 이야기 중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이 "낭만"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야기는 1991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대학이라는 곳은 갈수록 흥미를 잃게 만들고 있었으나 딱히 그 곳을 떠날 정도로 용기가 있거나 그 정도로 싫진 않았던 시기였다. 물론 그 다음 해 학교라는 공간에서 그렇게 많은 일이 터질 줄 알았다면 그렇게 무기력하진 않았을 것이다. 1991년 1학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 강경대는 빌어먹을 전경 새끼들의 쇠파이프에 맞아 저 세상으로 갔고 그 뒤로 전남대생 한 명이(이름이 얼핏 기억나나 틀리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 정도로...) 분신이라는 방법으로 유명을 달리 했고 강경대의 죽음 이후에 이어지던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시위가 계속되던 중 내가 전경들에게 쫓기던 을지로와충무로가 견결되는 도로의 바로 옆 블럭에서 김귀정이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그 때 대학을 다니던 사람이라면 섣불리 "혁명의 달콤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내 손에 의해 혁명이 다가올 것이란 생각을 충분히 할만한 상황이라 판단하고 있었고 그런 역사의 대오에서 이탈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역사상 처음으로 물에 최루액과 형광용액이 들어간 살수차가 처음 등장했을 정도로 치열했던 1991년은-당연히 당시에 윗옷을 두벌 가지고 다니는 것은 적들에 대한 일종의 예의이기도 했다.-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뭐 아름다운 이야기씩이나 된다고 그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겠는가? 누군가에겐 1991년 늦봄이 추억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추억이니 어쩌니 했으면 하는 자그마한 바람이 있다. 그 후로는 급기야 소비에트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무거워지는 이야기들만 들렸을 뿐이니 여지껏 장독의 맨 밑에 숨어있던 맹독성의 자그마한 항아리 하나를 개봉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2학기는 시작되고 여전히 우울하기 짝이 없고 심지어 술도 맛없는(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이상한 현상까지 벌어지지 않았던가...
지금은 없어졌지만 1989년 6월의 어느날 서울광진구(당시는 성동구)에 위치했던 S 모 초등학교 동창인 L모와 함께 대학로의 그 유명한 MTV이라는 곳을 알게된 후로 모든 것이 귀찮고 심지어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아지고 결정적으로 대인관계를 일종의 게임처럼 풀어나갈 수 없을 때엔 그 곳에서 당시 3000원 하던 병맥주 하나를 시켜놓고-지금도 기억나는 그 이름은 스타우트였다.- 청순한 긴 생머리를 자랑하는 기타치고 노래하는 밴드 형들에게 꼽사리 껴서 담배도 같이 피우고 미친듯이...까지는 아니고 적당한 수준의 헤드뱅잉을 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사실 거기 오는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기껏해야 맥주 두 병을 마시면서 12시에 문을 여는 MTV에서 밤 11시까지 시간을 보내는 인간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즈음 어머니 생신 무렵이었으니 대략 11월 초순이었던 것 같다. 최소한 나를 때리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했던 형 한 명이 내게 테입을 전해주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메탈은 아니지만 한 번 들어봐봐 뭔가 남는 것이 있을 거다."
그 형도 아는 형으로부터 어렵사리 얻은 미국에서 비행기 타고온 CD를 오리지널 테입으로 만든 것인데 내가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카피했다면서 특유의 담배 쩐내를 내게 풍기며 테입을 전해줬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난
"형 제가 돈이 없어 형 맥주 한 병 더 사드릴 수는 없지만(그 곳은 선불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형에 대한 사랑을 과도하게 느끼고 있는 것 아시죠?"
"닥치고 잘 듣기나 해..."
그 앨범이 바로 R.E.M.의 Automatic for the people이었고 그 앨범이 발매된 것이 1991년 10월 초였으니 당시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감상할 기회를 가진 것이다. 물론 그런 행운이 인생에서 항상 나와 함께 했던 것은 아니지만...
"Everybody hurts" 이 단순하기 짝이 없고 심지어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정직한 연주에 아주 소박한 오케스트레이션이 가미된그 곡을 듣고난 R.E.M.이라는 팀을 그리고 그들의 프런트맨이었던 마이클 스타이프를 동경하지 않을수 없었다. 혁명이 저만치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그에 대한 분노건 아니면 더 이상 맹목적인 애정을 쏟을 대상이 없어진 것에 대한 회한이건 술을 처먹으며 R.E.M.의 음악을 듣거나 할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분명히 다시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1991년과 1992년을 거치며 지금도 심하게 앓고있는 "냉소주의"라는 병을 떨치고는 살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분명히 말하건데 아마도 그 당시에 R.E.M.의 "Everybody hurts"이 없었다면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런 보물을 손에 넣었다는 것을 동생에겐 말하지 않은 것을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사과하지만, 그 때는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해줄 것이라 믿는다.
정말 한계인간의 말대로 이제 낭만은 없어진 것일까?
R.E.M.의 해체라는 것으로 그런 큰 담론을 꺼낼 수 있는 것일까?
최소한 1990년대라는 시기는 이제 내게서 거의 완벽하게 사라져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Everybody hurts 요 곡은 과도하게 많이 들었을테니 다른 곡을 들어보시길...
이 곡은 작성자 권한으로 소스코드를 제공하지 않는단다.
빌어먹을!!!!
http://youtu.be/xQN7A6Vl1H4
좀 재미있게 지저궐 걸...
답글삭제음.. 그 노래를 들으면 뭔가 치유가 되는 느낌이 들죠, 확실히.. 사실 이 뉴스도 티렉스님께 첨 들었었다는. 사는게 뭔가.. (뭔 소리니)
답글삭제사는 것은 무엇인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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