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9일 수요일

스케줄에 대한 짧은 이야기 하나

명랑사회를 논함에 있어 스케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함은 말할 필오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팀블로그의 제목이 말하듯 스케줄에 대한 탁월한 이해 수준을 우리의 행구교주나 구리좌사가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의심의 여지가 0.00000001g도 남아있지 않을 테지만, 이 팀블로그가 현재 공개로 되어있는 까닭에 이에 대해 한 번 정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생각되는 바, 아주 간략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스케줄의 어원
스케줄이란 단어를 쓰게된 것은 어언 16년 전인 1996년의 일이다. 일정거사 과도하게 일찍 등교하여 1교시 순업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잠시 레닌 선생의 호출이 있었다. 레닌 선생이 생존해 계시지 않은 관계로 레닌 선생은 어쩔 수 없이 일정거사의 꿈을 통하여 선생의 가르침을 현시하시고 긴 뒷머리를 날리시며 사라지셨고 일정거사는 그에 과도하게 감동하여 눈물과 함께 타액까지 흘리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레닌 선생의 현시하신 진리를 얻는데는 굉장한 비용이 필오했으니 그 것은 1교시 수업의 결석이었다는 설이 있다. 대부분 범인들은 지각이나 결석을 게으름의 산물로 여긴다. 그러나, 그 것은 범인의 이야기이고 때로는 과도한 부지런함이 지각이나 결석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일정거사는 그 사건을 계기로 깨달았다 한다. 심지어 일설에 의하면 레닌 선생의 가르침이 바로 그 것이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한가지 생각할 필요가 있으리라 본다. 왜 사회적 통념, 혹은 도덕률과도 같이 여겨지던 "게으름이 지각이나 결석의 원인이다."라는 것이 현실을 100%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가? 만일 일정거사가 그 날 레닌 선생의 호출에 응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레닌 선생의 호출을 거부했다면 일정거사는 수업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그 사건이 있은 후 무려 일주일간 일정거사는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위해 식음에 전념하며 고민했다 한다. 무려 일주일을 식음에 전념하며 고민한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그 날의 수업은 어차피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가 깨달은 것은 일정거사의 일생에서 1996년 늦가을의 그 어느 날 아침의 1교시 수업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일정거사는 그 날의 수업이 그 자신에게 없었다는 것을 미리 예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의 일생 전체에서 그 날의 1교시 수업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각이라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스케줄은 이 시점에 일정거사의 머리에 들어오기 시자갛ㄴ 것이다. 자신의 운명은 밤손님과도 같이 소리소문 없이 대가와 일생의 중요한 순간에 극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그 것을 거스를 수 없다. 평소에도 당연히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이지만 그 누구도 그 중요성은 커녕 존재도 깨닫지 몫하다가 그 어느 순간에 존재의 위대함을 개인에게 알려주는 바로 그 것! 그 것을 일정거사는 스케줄이라 부리그로 했다. 스혹자는 이 걳이 주역을 바탕으로 한 팔자와 다른 점이 도대체 무엇인가?라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팔자는 인간의 운명이 여덟가지의 요인에 의해 정해진다고 보는 반면에 스케줄은 항상 지 꼴리는 바 그대로의 경로를 통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케줄은 운명과는 도대체 무슨 차이점을 가지는가? 라고 이야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케줄은 존재 자체가 어마어마한 무게감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운명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운명은 문학이나 예술의 소재가 될만한 극적인 요소들로 가득한 반면 스케줄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운명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2012년 2월 5일 일요일

1992-2012 벌써 20년? 아직 20년!

일생을 살면서 개인에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살았던 1992년같은 한 해를 경험하기란 귀운 일이 아닐 것이라 장담한다. 데이비드 하비는 "초보적인 수준의 논쟁조차 벌일 준비조차 되어있지 않은 운동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저로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어요"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자본주의와 그 적들"-돌베게- p.152) 사실이 그렇다. 정말 초보적인 수준의 논쟁조차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게다가 그 사람이 자타가 공인하는 운동가 혹은 활동가라면-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의 일이 아니라 짜증을 유발하는 일이다. 하지만 1992년엔 절대다수인 그들과 멘땅에 헤딩을 하듯 하면서 1년의 2/3을 허비했다. 87년 세대를 사람들에겐 자랑스러운 기억이라도 있지만 나같은 사람에게 1992년이란 그저 내가 얼마나 "절대적 소수"인가를 스스로 깨닫는 과정외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목표는 거창했다. 오세철 교수의 총선 당선, 진보정당 창당을 위한 민중회의의 출범과활동의 가시화, 백기완 후보의 100만표 득표, 이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엔오세철 교수의 국회의원 당선외에 나머지는 모두 가능한 목표라 생각했다. 결과야 다들 알고 계실테니 굳이 반복해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당시 경험을 토대로 20년이 지난 오늘날의 이야기를 곁들여보도록 하자는 것이 내 이야기라는 말씀! 난 인간적으로 이른바 "운동가 혹은 활동가"라 불리는 사람이 범민주 단일후보(난 이를 범만주 단일후보라 했다)론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를 분열주의자 혹은 종파주의자로 몰아붙이기 시작하는 것에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1992년이 시작되자마자 남민전에선 "당선가능한 후보에 대한 애국시민과 청년학생의 지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주사위들은 그에 충실할 것이라는 것 정도는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지만, 독자정당이라든지 독자후보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매도할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활동가라 이야기하면서 별다른 고민도 없이-그들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보수정당의 후보를 암묵적으로(심지어는 명시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이란 말인가?(김어준같은 사람들에겐 이런 것 정도는 문제거리도 되지 않겠지만...) 보수들이 절대다수를 선점하고 있는 정치판에서 선거라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해야 할 것인가?라든지 선거라는 계기를 이용해서 노동계급이 어떻게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동력을 얻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라는 점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들로선 "또 민자당이 집권하게되면 다 너희들이 책임져야할 것!"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어이없는 공격을 받았을 땐 그냥 확 한번 성질 제대로 부리고 남은 인생을 국가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하며 보내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실제로 92년도엔 주사위 후배 하나를 곤죽이 되도록 패버려서 학교를 꽤 오랜 기간 멀리한 적도 있었다.

92년 백기완 후보의 득표수는 27만표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에 백기완 후보가 대선을 완주하지 않았더라면 2004년에 민주노동당이 총 10석을 확보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 자부한다. 92년 이후 민주노동당이 정식으로 창당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8년이었는데, 92년과 비슷한 형태의 독자후보 선거대책본부 형식으로 97년 대선을 치룬 후 비로소 정당이 탄생하게 되기까지도 엄처청난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꼭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2008년 선거에선 2004년의 결과보다는 상당히 "후진" 결과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또 정치의 해가 오고야 말았다. 92년처럼 두 선거가 동시에 행해지는 해로...4월 총선, 12월 대선 공교롭게도 정말 정확하게 20년 만이다.

1992년에 어렴풋이 생각했던 2012년은 이런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때 뭔가를 구체적으로 생가갛진 않았으나 최소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좌파정당돠 유의미한 득표수를 기록하는 독자후보 정도는 상식적으로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지금 현실은 어떠냐고? 늬들도 눈이 있으면 처보면 알 것 아닌가? 또 빌어먹게 옛날 이야기가 길어졌다. 하나의 상징적인 예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애증의 박용진씨가 진보신당을 탈당하여 민주통합당으로 갔고 그는 그 곳에서 당대표 및 최고윈원 경선에 출마했다. 그의 득표율은 대략 2.67% 1인 2표제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루미 많이 봐줘야 그가 첫번째 선택이었던 투표자는 기껏해야 2*을 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진보진영을 대표하여 야권 대통합에 참여한다는 명분으로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던 것이다.

(하나에 다 쓰려 했더니 엄청 길어져서 나눠야겠다는... 바로 다음 게시물에 이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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