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님 말고 1000곡
142. Sing, Sing, Sing-Benny Goodman(1935, Bluebird)-
듀크 엘링턴을 빼놓고 모던 재즈, 혹은 메인스트림 재즈를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모던 재즈 혹은 메인스트림 재즈를 이야기할 때 듀크 엘링턴을 언급하기 훨씬 이전에 반드시 언급해야만 할 몇 사람을 꼽으라면 그 안에 반드시 들어갈 인물 중 하나가 바로 Benny Goodman일 것이다. 혹은, 그의 이름을 빼먹으면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돌팔매에 혼비백산하며 도망다닐 각오를 해야만 할 것이다. 대단한 이야깃거리는 아니니 베니 굿맨의 본명이 Benjamin David "Benny" Goodman이라는 문헌학적 정보 정도는 미리 밝혀두고 시작한다. 그리고 베니 굿맨은 일리노이주의 시카고에서 1909년 5월 30일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음도 아울러 밝힌다. 그를 칭하는 명칭은 꽤 여러가지가 있지만 단 하나의 명칭을 이야기하면 모든 이들이 베니 굿맨을 떠올린다. "King of Swing" (이 것은 다른 말로 하면Sultans of Swing이 되는 것인가?)
그가 스윙의 제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것 자체가 그가 얼마나 위대한 아티스트인가를 말해주지만, 누군가에겐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점이지만, 그를 평가하는 데에 있어 나름대로 절대로 빼놓아선 안되는 업적이 있다. 그가 그런 일을 한 최초의 사람은 아니지만 그는 대중음악의 역사에 기록될만한 성공을 거둔 "백인과 유색인 유대인 등으로 이뤄진 역사상 최초의 다인종 밴드"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로 말미암아, 그 것이 다소 비극적인 면을 가지고 있기는 해도 재즈라는 장르는 다양한 대중음악의 장르 중, 가장 인종주의의 벽이 낮은 장르로 인식되고 있고 그런 과거의 전통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유대인이었던 그의 인종문제에 대한 태도를 자세히 기록한 문헌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그가 전성기를 보냈던 30년대만 하더라도 이런 일 자체가 역사에 기록될만한 크나큰 의미를 갖는지를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베니 굿맨을 스윙의 제왕이라 부르는 만큼 그의 곡들 중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곡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고 그 중 한 곡을 꼽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소 진부한 선택일지 몰라도 이 곡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팝 음악의 역사를 서술하다 보면 일종의 페스티벌이라 할 수 있는 무대가 아니라 단일한 팀의 단일한 무대가 그 자체로 팝 음악의 새로운 분수령이 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Rock 음악의 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공연인 레드 제플린의 그 유명한 1973년 7월 27일에서 29일 사이의 공연과(이는 Song remains the same이라는 앨범으로도 발매되었고 같은 이름의 기록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딥 퍼플의 Made in Japan이라 이름 붙여진 앨범으로도 출시된 1972년 8월 15일에서 17일 사이에 도쿄와 오사카에서 벌어진 공연의 실황을 꼽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딥 퍼플의 이 앨범은 미국에선 Live in Japan이라는 타이틀로 출시되었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이전인 1938년 1우월 16일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는 베니 굿맨과 그의 밴드가 무대에 서게 된다. Bruce Eder이라는 이름의 당대 최고 수준의 비평가 중의 한 사람은 이 공연에 대해 이런 커멘트를 남겼다. "the single most important jazz or popular music concert in history: jazz's coming out part of 'respectable' music" 개인적으로 영어가 약한 관계로 더 세심한 뉘앙스는 읽는 분들이 더 빨리 알아채시리라 생각하나, 최대한 대중음악적인 이해를 위해 한국어로 다시 이야기해 본다면, 그 공연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재즈 혹은 대중 음악 공연이었고 재즈는 이로 인해 '존중받을만한' 음악적 장르로 그 스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 정도로 약간의 뻥을 좀 섞에서 이야기하자면, 재즈 혹은 대중음악은 1938년 1우월 16일의 베니 굿맨 밴드의 공연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Sing, Sing, Sing 이 곡은 바로 이 역사적인 공연의 절정부를 장식한 곡이라 할 수 있다. 이 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고, 당시 공연을 눈으로 지켜봤던 사람들이나, 당대의 평론가 혹은 후대의 음악사학자 혹은 평론가들의 이야기다. 색소폰의 Babe Russin, 트럼펫의 Harry James 그리고 클라리넷엔 당연히 팀의 매스터이자 곡의 작곡자이며 이 게시물의 주인공인 베니 굿맨, 그리고 이들을 든든하게 바쳐준 드럼엔 Gene Krupa의 라인업이 이 곡을 연주했다. 한 가지 장담하는 것은 이 게시물을 보는 여러분들이 이 라인업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팝 매니아 혹은 재즈 매니아들보다 두 수는 먹어주고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미리 팁을 드린다면, 다른 장르는 물론이지만 특히 재즈라는 장르는 연주의 라인업이 어떻게 되는가를 반듣시 염두에 두고 곡을 감상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나중에 더 자세하게 이야기할 때가 올 것이다.
Show must go on!
2012년 12월 31일 월요일
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쫙 몰아서(개소리들)
1. 그들은 왜 실패했는가?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승패가 갈리는 게임에 있어 패자에겐 반드시 진 이유가 있다. 간혹 승자에겐 승리를 한 이유가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패자에겐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자신들이 "질 이유가 없는 선거였다."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들이 다가가야할 문제의 본질이란 선거라는 것을 어떻게 임해야 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치적 목적이 대단히 분명한 데에 반해-그렇다. 그들의 정치적 목적은 정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들이 펼 수 있는 전술이라는 것은 선거를 통한 승리 말고는 다른 것이 없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가에 상관없이 대중운동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직접적으로 정권을 획득할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그들의 성공과 실패는 과도하게 명확하게 드러난다. 선거에서의 승리와 패배, 그래서 그들은 5년 후의 선거 외엔 다른 수가 없다. 하지만 "질 이유가 없었다."라고 한다면 그들은 전술적인 발전이나 변화를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질 이유가 없는 선거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들은 한 쪽의 길을 스스로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에 임하며 세부적인 전술을 세울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해 대단히 가혹한 평가를 하고 상대방에 대해선 반대로 대단히 후한 평가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 견해는 그렇다. 선거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갈 수도 있는 표를 우리 쪽으로 가져오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자신들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리면 곤란한가?라는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자신들에 대해 후한 평가를 하게 된다면 그 때부터 "자신들이 끌어 올 수도 있는 상대방 표를 잡아 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대단히 느슨해지게 될 것이다. 왜 유명한 격언이 있지 않은가? "잡은 고기에겐 떡밥을 던져주지 않는다." 조금 더 과한 상황이라면 자신에게 후한 평가를 하게 되는 순간 반대로 "절대로 자신이 이미 잡은 것이나 다른 물고기라 생각해서 떡밥을 던지는 것도 잊고 있던 고기"가 떡밥을 던지는 다른 이의 낚시대에 결린
찌를 물게 된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당의 실책이 드러난다. 50대의 이탈이나 생각보다 강했던 2030 세대의 우경화는 결과적인 문제일 뿐이다. 민주당은 그들을 위한 떡밥을 제대로 던지는 데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은 절대 선"이고 "머리가 제대로 박힌 인간이라면 우리를 찍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거는 신앙 고백을 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뒤 그리스도 예수가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선거는 아주 대표적인 게임이다. 참가자가 있고 룰이 있으며 보상, 즉 결과가 있다. 분명 상대가 존재하는 게임을 그들은 "절대 선인 자신들에 대한 인민 대중의 찬반투표"로 사고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들은 선거가 끝난지 벌써 열흘이 다 되어가는 데에도 자신들의 선거 전략과 전술에서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지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들이 자신들을 절대선으로 치부하고 선거에서 상대방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정에서의 잘못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봐도 이길 선거를 진 것이 누구의 탓"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번 선거를 사고한 그들이 패배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2. 난 항상 당신보다 왼편에 있다.
있어 보이냐? 하나도 안 있어 보인다. 멋있으라고 한 소리라면 이런 소리를 쓰진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멋진 말이에요! 죽여요!"라고 하는 것을 즐기고자 했다면 이런 정도의 이야기를 썼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확대를 위한 우리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개뿔! 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이라니... 대선 결과를 가지고 멘탈이 붕괴된 사람들은 사실상 "대선이라는 것에 대해 굉장히 많은 의미를 부여한 사람들"일 것이다. 미안하게도 난 그다지 크게 정신이 빠져나갔다거나 하진 않았다. 물론 당연히 1번이 아닌 2번이 당선되길 바랐음에도 불구하고 1번이 당선되었다는 사실이 그렇게까지 충격적이진 않았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넌 1번이 당선되든, 2번이 당선되든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냐?"
답은 어떤 면에서는 그렇고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 않을까? 그 갈갈이 찢겨진, 심지어는 대중의 비웃음의 대상인 MBC 문화방송에 다니면서도 그 조직의 구성원인 것을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는 정의사회의 2인자 대멀에겐 자신이 가진 자부심이 더 이상 바닥을 뚫고 가는 일을 지켜만 볼 수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정권교체라는 것이 누구보다도 중요한, 심지어 그에게는 정권교체라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수호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공화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의 구성원들에게 정권교체라는 것이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해서 공화국의 구성원 모두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한가지 면만을 볼 수는 없겠지만 "좀더 정직하고 착한 자본주의"라는 것에 대한 기대치와 혹은 그 것의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 의해 정권교체가 엄청난 의미를 갖는가? 혹은 그 의미가 엄청나지는 않은가?가 나뉠 것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자신들에겐 좀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이 대선 후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항상 그랬듯, "그럴 각오로 살아라!"는 따위의 말은 하지 않겠다. 죽음 외엔 탈출구가 없다는 생각까지 간 사람에게 그런 입에 발린 잠언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리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권교체라는 것이 무지하게 큰 의미는 아니었던 것은 "정권교체를 엄청나게 큰 의미로 받아들인 사람들에 비해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이 더 왼 쪽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아니라 하더라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정권을 누가 잡게 되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엔 동의할 수 없다. 분명히 자신의 이익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요구했던 정권교체라는 구호는 타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3. 그 외 할 이야기들이 있지만...
12월 18일 명랑사회를 위한 대선 평가 및 독자적 계급정당의 앞날에 대한 평가를 위한 좌담회... 는 개뿔이고 오랜만에 술을 먹기 위해 마련한 모임에서 마지막까지 멀쩡한 정신으로 남았던 사람들 중 두 명이 내게 예의 정권교체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를 가지고 "다구리"를 했더랬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밝혔듯, 기본적으로 딴따라 마인드인 나는 내가 딴따라 짓을 하는 데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정치적인 발언을 그다지 즐기지 않,....기는 개뿔이지만, 어느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내가 마음 잡고 딴따라 짓거리에 매진하기엔 아스트랄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오늘 비교적 정치적인 현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할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이 정도로 줄인다. 줴길...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승패가 갈리는 게임에 있어 패자에겐 반드시 진 이유가 있다. 간혹 승자에겐 승리를 한 이유가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패자에겐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자신들이 "질 이유가 없는 선거였다."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들이 다가가야할 문제의 본질이란 선거라는 것을 어떻게 임해야 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치적 목적이 대단히 분명한 데에 반해-그렇다. 그들의 정치적 목적은 정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들이 펼 수 있는 전술이라는 것은 선거를 통한 승리 말고는 다른 것이 없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가에 상관없이 대중운동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직접적으로 정권을 획득할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그들의 성공과 실패는 과도하게 명확하게 드러난다. 선거에서의 승리와 패배, 그래서 그들은 5년 후의 선거 외엔 다른 수가 없다. 하지만 "질 이유가 없었다."라고 한다면 그들은 전술적인 발전이나 변화를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질 이유가 없는 선거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들은 한 쪽의 길을 스스로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에 임하며 세부적인 전술을 세울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해 대단히 가혹한 평가를 하고 상대방에 대해선 반대로 대단히 후한 평가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 견해는 그렇다. 선거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갈 수도 있는 표를 우리 쪽으로 가져오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자신들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리면 곤란한가?라는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자신들에 대해 후한 평가를 하게 된다면 그 때부터 "자신들이 끌어 올 수도 있는 상대방 표를 잡아 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대단히 느슨해지게 될 것이다. 왜 유명한 격언이 있지 않은가? "잡은 고기에겐 떡밥을 던져주지 않는다." 조금 더 과한 상황이라면 자신에게 후한 평가를 하게 되는 순간 반대로 "절대로 자신이 이미 잡은 것이나 다른 물고기라 생각해서 떡밥을 던지는 것도 잊고 있던 고기"가 떡밥을 던지는 다른 이의 낚시대에 결린
찌를 물게 된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당의 실책이 드러난다. 50대의 이탈이나 생각보다 강했던 2030 세대의 우경화는 결과적인 문제일 뿐이다. 민주당은 그들을 위한 떡밥을 제대로 던지는 데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은 절대 선"이고 "머리가 제대로 박힌 인간이라면 우리를 찍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거는 신앙 고백을 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 뒤 그리스도 예수가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선거는 아주 대표적인 게임이다. 참가자가 있고 룰이 있으며 보상, 즉 결과가 있다. 분명 상대가 존재하는 게임을 그들은 "절대 선인 자신들에 대한 인민 대중의 찬반투표"로 사고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들은 선거가 끝난지 벌써 열흘이 다 되어가는 데에도 자신들의 선거 전략과 전술에서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지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들이 자신들을 절대선으로 치부하고 선거에서 상대방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정에서의 잘못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봐도 이길 선거를 진 것이 누구의 탓"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번 선거를 사고한 그들이 패배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2. 난 항상 당신보다 왼편에 있다.
있어 보이냐? 하나도 안 있어 보인다. 멋있으라고 한 소리라면 이런 소리를 쓰진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멋진 말이에요! 죽여요!"라고 하는 것을 즐기고자 했다면 이런 정도의 이야기를 썼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확대를 위한 우리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개뿔! 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이라니... 대선 결과를 가지고 멘탈이 붕괴된 사람들은 사실상 "대선이라는 것에 대해 굉장히 많은 의미를 부여한 사람들"일 것이다. 미안하게도 난 그다지 크게 정신이 빠져나갔다거나 하진 않았다. 물론 당연히 1번이 아닌 2번이 당선되길 바랐음에도 불구하고 1번이 당선되었다는 사실이 그렇게까지 충격적이진 않았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넌 1번이 당선되든, 2번이 당선되든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냐?"
답은 어떤 면에서는 그렇고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 않을까? 그 갈갈이 찢겨진, 심지어는 대중의 비웃음의 대상인 MBC 문화방송에 다니면서도 그 조직의 구성원인 것을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는 정의사회의 2인자 대멀에겐 자신이 가진 자부심이 더 이상 바닥을 뚫고 가는 일을 지켜만 볼 수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정권교체라는 것이 누구보다도 중요한, 심지어 그에게는 정권교체라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수호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공화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의 구성원들에게 정권교체라는 것이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해서 공화국의 구성원 모두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한가지 면만을 볼 수는 없겠지만 "좀더 정직하고 착한 자본주의"라는 것에 대한 기대치와 혹은 그 것의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 의해 정권교체가 엄청난 의미를 갖는가? 혹은 그 의미가 엄청나지는 않은가?가 나뉠 것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자신들에겐 좀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이 대선 후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항상 그랬듯, "그럴 각오로 살아라!"는 따위의 말은 하지 않겠다. 죽음 외엔 탈출구가 없다는 생각까지 간 사람에게 그런 입에 발린 잠언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리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권교체라는 것이 무지하게 큰 의미는 아니었던 것은 "정권교체를 엄청나게 큰 의미로 받아들인 사람들에 비해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이 더 왼 쪽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아니라 하더라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정권을 누가 잡게 되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엔 동의할 수 없다. 분명히 자신의 이익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요구했던 정권교체라는 구호는 타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3. 그 외 할 이야기들이 있지만...
12월 18일 명랑사회를 위한 대선 평가 및 독자적 계급정당의 앞날에 대한 평가를 위한 좌담회... 는 개뿔이고 오랜만에 술을 먹기 위해 마련한 모임에서 마지막까지 멀쩡한 정신으로 남았던 사람들 중 두 명이 내게 예의 정권교체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를 가지고 "다구리"를 했더랬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밝혔듯, 기본적으로 딴따라 마인드인 나는 내가 딴따라 짓을 하는 데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정치적인 발언을 그다지 즐기지 않,....기는 개뿔이지만, 어느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내가 마음 잡고 딴따라 짓거리에 매진하기엔 아스트랄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오늘 비교적 정치적인 현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할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이 정도로 줄인다. 줴길...
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아! 씨발 또 대통령 선거다.(개소리들)
공화국 인민들 중 자신들이 첨단의 진보적 지식인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름만 들어도 환장한다는 놈 촘스키 할아버님은 경제영역 혹은 생산영역의 사회화의 정도가 강하고 국가의 힘보다 개인의 자유가 극대화된 사회를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계신 분이다. 물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촘스키 할아버지의 문제는 현재의 사회적 지형에서 그런 사회-그냥 편의상 사회주의적 공동체가 지배적인 사회라 하자.-로의 이행이 수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현재의 정치투쟁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할 때의 촘스키 옹의 지난한 오류...까지는 아니고 일종의 어긋남이라고 할까?...를 깔고 말씀하시게 된다.
지금 여기서 촘스키 옹의 생각이 과도하게 이상적이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벌써 앞에서 깔고 들어가지 않는가? 내 생각도 촘스키 옹의 생각과 흡사하다고... 물론 개인에 대한 내 생각이 더 리버럴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촘스키의 생각이 가지는 문제는 국가기관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국가기관을 장악해야 한다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토대는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라는 맑스의 말을 조금 더 완화해서 이야기한 알뛰세르의 "토대는 최종 심급에서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말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필요조건은 아닐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은 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빌어먹을 공화국에서 선거라는 것을 넋놓고 보고만 있을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알뛰세르주의자이건 아니건 간에, 작금의 현실에서 상부구조를 장악하지 않으면 그 어떤 정치적 이념을 관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뛰세르 주의자이건 아니건 마오 주의자이건 아니건, 현대사회는 대단히 세련된 방식으로 고전적 의미의 "잉여가치의 착취"라는 것을 은폐하고 있으며 그런 이데올로기의 조작이라는 것이 사실상 사회의 상부구조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을 통해 이루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물론 개인적으로 마오가 중국의 혁명을 조직함에 있어서 그런 식의 주장을 한 것을 두고 현대의 그런 교묘한 착취의 은폐를 미리 예견한 결과라 할 수 없음은 분명하지만, 현재의 현상만을 놓고 본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상부구조가 가지는 상대적 자율성에 의한 사회구성체 혹은 정운영 선생이 좋아하는 용엉로 사회형성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명쾌한 일이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쓰다가 관뒀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아서...
지금 여기서 촘스키 옹의 생각이 과도하게 이상적이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벌써 앞에서 깔고 들어가지 않는가? 내 생각도 촘스키 옹의 생각과 흡사하다고... 물론 개인에 대한 내 생각이 더 리버럴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촘스키의 생각이 가지는 문제는 국가기관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국가기관을 장악해야 한다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토대는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라는 맑스의 말을 조금 더 완화해서 이야기한 알뛰세르의 "토대는 최종 심급에서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말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필요조건은 아닐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은 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빌어먹을 공화국에서 선거라는 것을 넋놓고 보고만 있을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알뛰세르주의자이건 아니건 간에, 작금의 현실에서 상부구조를 장악하지 않으면 그 어떤 정치적 이념을 관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뛰세르 주의자이건 아니건 마오 주의자이건 아니건, 현대사회는 대단히 세련된 방식으로 고전적 의미의 "잉여가치의 착취"라는 것을 은폐하고 있으며 그런 이데올로기의 조작이라는 것이 사실상 사회의 상부구조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을 통해 이루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물론 개인적으로 마오가 중국의 혁명을 조직함에 있어서 그런 식의 주장을 한 것을 두고 현대의 그런 교묘한 착취의 은폐를 미리 예견한 결과라 할 수 없음은 분명하지만, 현재의 현상만을 놓고 본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상부구조가 가지는 상대적 자율성에 의한 사회구성체 혹은 정운영 선생이 좋아하는 용엉로 사회형성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명쾌한 일이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쓰다가 관뒀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아서...
2012년 12월 10일 월요일
내 첫 곡은 그랬다.(Soundless Music)
1.
"이건 뭐! 완전한 짜깁기잖아!!!"
지금은 정확한 날짜도 기억나지 않지만(사실은 기억한다. 그러나 나도 쪽팔림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에 대해선 아는 사람인 관계로 일부러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쓴 곡의 악보를 보여줬을 때 들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난 전혀 그 누구의 곡도 참조한 적이 없었더랬다. 그래서 억울했냐고? 물론 그렇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처음으로 곡을 써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주변의-절대 우리 학교 새끼들은 아니었다.-이야기는 이런 것들이었다.
"네가 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 걱정되는 건 네가 지나치게 많은 음악을 들었다는 점이다. 음악을 대단히 많이 들은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문제 중 가장 큰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의도하지 않은 표절곡이 나온다는 거야."
지금처럼-물론 지금도 난 신서사이저가 없고 미디 프로그램도 없다. 전엔 썼지만- 장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어떤 사운드가 나오는지 대략 확인해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저 머릿속의 곡과 겉으로 나오는 곡이 어느 정도 비슷하기만을 바라며 잘 쓰지도 못하는-아시겠지만 워낙 유명한 악필이고 악보를 그린다고 해서 악필이 명필이 되진 않는다.- 악보를 써가며 만든 내 첫 곡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맨 앞 문장 저거 딱 한 줄이었다는 말씀!
2.
우스개소리였을 것 같다면 미안하게도 절대 아니다. 실제 내가 처음 쓴 곡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지게 되었으며, 내 일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가정한다면 굉장히 슬픈 일에 속한다고 할만한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때의 일은 지금도 뭔가 끄적거린 것을 절대 남한테 보여주지 않는 악습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앞서 이야기한 정도의 굴욕적인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당시는 고삐리 시절 아닌가? 지금은 최소한 고삐리는 아니라는 점에서 자그마한 위안을 삼고자 한다. 고삐리인가? 아닌가?가 왜 중요하냐고?
물리적인 나이가 고삐리의 나이가 아니라는 것보다 고삐리들이 흔히 음악에 막 다이브했을 때 겪게되는 오류들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런 오류들이 어떤 지점에서 비롯하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점이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아주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음악은 가오에서 시작하지도 가오로 끝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전엔 하나도 모르던 화성의 진행이라는 문제에 대해 다소의 이해가 생기면서 말도 되지 않는 널뛰기 멜로디를 가지고 "곡을 썼다"는 말을 과감하게 할 용기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되시겠다.
나이를 처먹으면 처먹을수록 머릿속에 뭔가 좀 더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것이 뭔가 새로운 것의 재료가 되거나 하진 않는 것 같다. 항상 이야기하지 않는가? 경제에 대해 가장 미친 듯 떠들어제끼는 시기는 "막 경제원론 수강을 끝냈을 때"라고... 물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 따위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늙으면 늙을수록 쪽팔리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다.
3. 물론 지금은 과거에 비하면 훨씬 더 매끄러운 뭔가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다. 순전히 미디 작업을 하기 힘들어 편곡까지 완성되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뭔가 막 떠오를 때 계속 기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날아가는 것들도 굉장히 많고...
문제는 얼마나 뻔뻔해지는가....일 것이다. 하지만, 뻔뻔해지려면 쪽팔릴 것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 법... 그러나 이제 쪽팔림을 모르기엔 귀가 좀 발달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날이 느는 것은 다른 인간들의 곡들을 까대는 일일 것이다. 아! 넌 발표도 못했거나 네 말을 충분히 받아들여 안한 주제에 왜 남들을 까냐고? 허허허... 어째서 다른 사람들의 곡을 평가하는 시간만큼 자신이 뭔가 완전한 것들을 표본으로 삼고 "이 정도면 되겠지..." 가 아닌 "반드시 이런 것들은 충족시켜야 해..."라는 음악적 미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실까?
그냥 주저리 주저리...
"이건 뭐! 완전한 짜깁기잖아!!!"
지금은 정확한 날짜도 기억나지 않지만(사실은 기억한다. 그러나 나도 쪽팔림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에 대해선 아는 사람인 관계로 일부러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쓴 곡의 악보를 보여줬을 때 들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난 전혀 그 누구의 곡도 참조한 적이 없었더랬다. 그래서 억울했냐고? 물론 그렇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처음으로 곡을 써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주변의-절대 우리 학교 새끼들은 아니었다.-이야기는 이런 것들이었다.
"네가 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 걱정되는 건 네가 지나치게 많은 음악을 들었다는 점이다. 음악을 대단히 많이 들은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문제 중 가장 큰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의도하지 않은 표절곡이 나온다는 거야."
지금처럼-물론 지금도 난 신서사이저가 없고 미디 프로그램도 없다. 전엔 썼지만- 장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어떤 사운드가 나오는지 대략 확인해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저 머릿속의 곡과 겉으로 나오는 곡이 어느 정도 비슷하기만을 바라며 잘 쓰지도 못하는-아시겠지만 워낙 유명한 악필이고 악보를 그린다고 해서 악필이 명필이 되진 않는다.- 악보를 써가며 만든 내 첫 곡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맨 앞 문장 저거 딱 한 줄이었다는 말씀!
2.
우스개소리였을 것 같다면 미안하게도 절대 아니다. 실제 내가 처음 쓴 곡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지게 되었으며, 내 일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가정한다면 굉장히 슬픈 일에 속한다고 할만한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때의 일은 지금도 뭔가 끄적거린 것을 절대 남한테 보여주지 않는 악습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앞서 이야기한 정도의 굴욕적인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당시는 고삐리 시절 아닌가? 지금은 최소한 고삐리는 아니라는 점에서 자그마한 위안을 삼고자 한다. 고삐리인가? 아닌가?가 왜 중요하냐고?
물리적인 나이가 고삐리의 나이가 아니라는 것보다 고삐리들이 흔히 음악에 막 다이브했을 때 겪게되는 오류들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런 오류들이 어떤 지점에서 비롯하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점이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아주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음악은 가오에서 시작하지도 가오로 끝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전엔 하나도 모르던 화성의 진행이라는 문제에 대해 다소의 이해가 생기면서 말도 되지 않는 널뛰기 멜로디를 가지고 "곡을 썼다"는 말을 과감하게 할 용기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되시겠다.
나이를 처먹으면 처먹을수록 머릿속에 뭔가 좀 더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것이 뭔가 새로운 것의 재료가 되거나 하진 않는 것 같다. 항상 이야기하지 않는가? 경제에 대해 가장 미친 듯 떠들어제끼는 시기는 "막 경제원론 수강을 끝냈을 때"라고... 물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 따위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늙으면 늙을수록 쪽팔리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다.
3. 물론 지금은 과거에 비하면 훨씬 더 매끄러운 뭔가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다. 순전히 미디 작업을 하기 힘들어 편곡까지 완성되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뭔가 막 떠오를 때 계속 기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날아가는 것들도 굉장히 많고...
문제는 얼마나 뻔뻔해지는가....일 것이다. 하지만, 뻔뻔해지려면 쪽팔릴 것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 법... 그러나 이제 쪽팔림을 모르기엔 귀가 좀 발달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날이 느는 것은 다른 인간들의 곡들을 까대는 일일 것이다. 아! 넌 발표도 못했거나 네 말을 충분히 받아들여 안한 주제에 왜 남들을 까냐고? 허허허... 어째서 다른 사람들의 곡을 평가하는 시간만큼 자신이 뭔가 완전한 것들을 표본으로 삼고 "이 정도면 되겠지..." 가 아닌 "반드시 이런 것들은 충족시켜야 해..."라는 음악적 미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실까?
그냥 주저리 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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