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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3일 목요일

자해?.... 아니! 자폭!







크리스마스 시즌부터 시작하여 연초까지 이어지는 이 꿀꿀한 기간을 "인생에 더없이 꿀꿀한 기간으로 보냈다. 비교급이 아닌 최상급의 꿀꿀함으로!"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마!이 정도면 가히 크리스마스 이브의 악몽 수분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이브의 자폭 수준일 것이라 장담하며...

1. 우선 시작은 Jeff Buckly의 곡들로... 가사를 음미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 인간이 1968년에 태어나 1997년 불의의 사고로 이 세상과 이별을 고한 그의 일생을 생각하며 "이 빌어먹을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어이없는 사고로 세상을 하직하기도 하는구나... 이 더러운 인생"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나 자신의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인생을 떠올린다.

2. 시동이 제대로 걸렸다 싶을 때에 Damien Rice의 곡들을 듣기 시작한다. 그의 곡들을 들을 때 특히 유의해야할 것은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지지리 궁상스러운가 집중하며 들을 것! 쓰잘데기 없이 그의 가사가 시적이니 어쩌니 그런 사치스런 낭만에 빠지기 시작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그의 지지리 궁상의 극치인 음색에만 집중한다. 이 인간의 음악을 들으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싶었을 때 James Blunt의 음반을 슬슬 꺼내어 준비를 시작한다.

3. 이쯤에서 다른 장르의 곡들도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Pink Floyd의 "Set the controls for the heart of the sun"을 들어야만 한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말의 취지에 제대로 부합하려면 반드시 눈을 감고 들어야 한다. 계속 듣다 보면 왜 내 손이 닿는 곳엔 마리화나도 코카인도 없는 것이냐?를 연발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 바로 이런 느낌을 가지게 된다면 정말 자학의 과정으로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고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4. 이 건 개인적으론 별로라 생각하지만, 이 쯤에서 Gloomy Sunday를 든는다면 아마 당신은 충분히 "자학"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곡이 어째서 그렇게 자학적인 곡이라 불리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쯤에서 남들이 다 알고있는 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고 모닥불에 탱크로리에서 휘발유를 들이붓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태가 될 것이다.

5. 이젠 기타를 들자! 절대 평소에 알고있거나 악보를 가지고 있는 곡이 아니라 어디서 보도 듣도 못한 엄청나게 손가락을 혹사시킬 수 있는 테크닉을 요하는 곡을 귀로 듣고 따서 카피를 하려는 시도를 시작한다. 당연히 잘 될 리가 없다. 이 때쯤이면 당신의 꿀꿀함은 슬슬 분노로 바뀌기 시작할 것이고 마리화나나 코카인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대신 자신이 총기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한탄하게 될 것이다. 아마 총이 있다면 자신의 머리에 대고 그대로 갈겨버리고 싶을 것이다.

6. 중요한 것은 오늘저녁부터 위의 과정을 실행할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결말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영화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식으로 보내야하는 스스로를 한탄하면서 1번부터 차례로 시행하게 될 것 같다...빌어먹을!

2010년 3월 24일 수요일

아자씨!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TV, VCR, DVD)







도대체 이 자어씨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이 사람도 자신이 그렇게 희화화하던 꼰대들과 별 다를 바 없어진 것 같다. 상대방의 불만이나 불만족까지 자신이 재단하며 그 것을 넘어서는 범주의 불만이나 비판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그 아저씨는 당연히 "이 븅신아! 넌 요 것만 보이지 그게 아니야 요 것도 보라고 그러면 문제는 클리어해지는 거야! 알았어? 이 빵꾸똥꾸야!"라 말씀하신다. 아! 이제 딴따라판에 지 좆꼴리는대로 만들어놓고 그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면 "문제는 너!"라고 말씀하시는 구제불능의 인간이 하나 더 늘었다. 우린 그동안 박진영의 그런 개소리만으로도 실컷 지겨웠다. 니미! 이래서 언론과의 관계가 좋아야하나 보다. 이미 박진영은 발작곡을 해도 그의 그 대단한 연대 백그라운드로 기자들이 알아서 "새로운 시도"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곡" 따위의 찬사를 보내지 않았던가? 이제 그 대열에 김병욱 아저씨가 서게 되었다는 사실! 네이버에선 안 그러더니 왜 실명을 노골적으로 거론하며 까대느냐고? 빌어먹을 이러려고 구글 온 것 아니겠어?

1. 이 것은 미리 밝혀둔다.
미리 밝혀두거니와 티렉스가 가장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은 남여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마치 초월적 힘을 가지고 있는 인류 최고의 가치라 여기는 각종 문화 컨텐츠이며 만일 실제로 남여간의 사랑 자체에 실제로 그런 식으로 ㅐㅁ달리는 인간들이 있다면 그런 광경을 목격한 순간부터 그 사람과는 티렉스가 만들고자 하는 명랑한 나라에서 그 사람은 완전히 사요나라라는 점이다. 왜냐고? 세상엔 연애질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일들이 많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너란 색히가 연애를 못해봤기 때문에 그러는 거냐?"라고 물어보신다면 그냥 좆까라고 말씀드리련다. 뭐 나중에 이 색히 완전히 지가 연애도 못해봐서 거기에 한이 맺힌 새끼 아냐?라는 말은 안타깝지만 전혀 들어줄 마음이 없다는 말씀이다.

2. 김병욱 시트콤의 미덕
존경하는 토돌님의 말씀에 의하면 김병욱에겐 다른 연출자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그만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 있으니 그 것은 바로 "짝사랑하는 사람의 심리 상태라든지 그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아주 명쾌한 말씀 되시겠다. 그 점에 있어 김병욱을 따라 할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순풍 산부인과>의 허간호사가 그랬고 혜교가 그랬으며 워낙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조기종영했지만 <귀엽거나 혹은 미치거나>의 경림도 그랬고 <똑바로 살아라>에선 이런 관계가 수도 없이 나왔으며 <거침없이 하이킥>의 윤호(이거 맞나 모르겠다. 아무튼 정일우)와 민정이 그랬으며 <지붕 뚫고 하이킥>의 세경과 세호 준혁 역시 그 범주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짝사랑이란 것이 할 이야기가 많은 소재라는 점은 그 것이 남여간의 사랑에 대한 것이라기 보단 관계 자체가 비대칭적이기 때문에 "짝"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것이며 이 비대칭적 관계는 그 자체가 이야기거리이기도 한 동시에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김병욱의 시트콤은 다른 많은 미덕들을 가지고 잇으나 일단 오늘의 이야기를 위해 이 부분에 집중해 보도록 하자.

3. 간과하기 쉬운 <지붕 뚫고 하이킥>의 또 다른 비대칭
앞서 이야기한 것이 김병욱이 "잘 다루는" 짝사랑이라고 하는 단어가 가지는 관계의 비대칭성에 대한 것이라면 지금 이야기할 비대칭성은 조금 더 다른 의미를 가진다. 경제학을 공부하신 분들이라면 익히 들어보았을 단어인 "정보의 비대칭성"이란 문제인데, <지붕 뚫고 하이킥>의 얽히고 얽힌 짝사랑이라는 관계의 비대칭성의 그 어떤 경우에도 직, 간접적으로 속해있는 인물인 지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세경의 짝사랑의 대상이며 세경을 짝사랑하는 준혁의 삼촌이며 세호가 짝사랑하는 대상인 정음의 남자친구가 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지 모든 남여관계의 중심에 서있다. 그러나 그가 원해서 비대칭적 관계의 한 축이 된 적은 없다. 더욱 이상한 것은, 아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에 대한 정보는 <지붕 뚫고 하이킥>에 열광한 시청자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그가 어떤 인물인가를 아는 유일한 사람은 김병욱 그 자신외엔 없다. 심지어 그 어떤 에피소드도 그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이 개입된 상태에서 시청자들에게 보여준 것은 없었다. 그럴 정도로 지훈은 김병욱이 아니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 사제이자 추리소설작가였던 로버트 녹스의 "추리소설의 10계"에 보면 탐정은 독자들에게 제시되지 않은 증거로 범인을 찾아내면 안된다고 한다. 물론 녹스의 10계엔 워낙 황당한 것들도 있어(예컨데 중국인이 등장하면 안된다든지 하는...) 지금도 유용하진 않지만 지금 인용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순간에도 절대적으로 지켜져야만 하는 룰인 것이다. 반전의 명수라는 M. 나이트 샤밀란의 <식스 센스>에도 내가 처음 볼 때부터 이상하다 느꼈던 몇몇의 것들이 일종의 단서였고 그 것은 수가 높은 트릭이긴 해도 "잘 봐! 너희들한텐 보여주지 않아서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난 다 알아!"라는 식은 아니었다. 지훈이란 캐릭터는 그렇다면 "김병욱의 전가의 보도"였던 것인가?

3. 해피의 반대말은 "언해피"라는 것 정도는...
지금 내가 키보드질을 하는 이유는 엔딩이 흔히 언론에서 떠드는 "새드 엔딩"이기 때문이 아니다. 일단 결론부터 선언적으로 이야기하고 넘어가자. "김병욱식의 짝사랑과 관계의 불균형과 정보의 비대칭이 만들어낸 재앙이 바로 <지붕뚫고 하이킥>이다." 새드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당근 이루어지지 못할 첫사랑, 게다가 짝사랑이기도 한,이 새드라는 말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남여가 서로 맺어지지 않은 것이 새드 엔딩이라 한다면, 지구상에 자신의 인생을 새드하게 끝낸 뒤에도 다시 살아가는 수많은 인류들은 뭐지? 문제는 엔딩이 새드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쁜" 엔딩이라는 점이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그가 얼마나 극의 마무리를 발로 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링크를 걸기에도 불결하니 알아서들 찾아보시기 바란다. 그는 사람이 죽는 것에 개연성이 뭐가 필요한가? 학림을 같이 가는 것 정도로 자신은 지훈과 세경의 관계의 미묘한 변화의 설명이 충분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으로 "희망이란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 외에 더 유치한 변명들이 있으니 찾아보시기 바란다.

일단 이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시간이 멈춘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김병욱 역시 알았을 것이다. 니미! 일단 물리학적으로 시간이 멈추면 지구인들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점은 차치하고 과연 "시간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이런 유치한 징징대는 첫사랑 놀음을 전파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가능한가?" 여기서 시간의 비가역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붕뚫고 하이킥>은 단순히 시간을 멈출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김병욱의 세계에선 시간이 가역적이라는 문제를 갖는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마지막회를 앞둔 단 두 주 동안의 시간 동안 그간 흘러온 시간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나르시스트적인 결말을 위해 반년이 넘는 시간을, 실제로 극 속에서는 더 흘렀을 시간을, 완전히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미 다들 아실 그 엔딩이 과연 자기 부정을 통해 어설픈 정당성을 얻기 위해 버려질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그간의 시간이었으며 그들간의 관계였다는 것인가? 이 부분에서 김병욱은 가장 무리수를 둔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어떻게든 되돌릴 수 있다는 자기최면을 걸며 스스로를 속이고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속이려 햇던 것이다. 심지어 효율적인 속이기에 실패했다고 판단햇을 시엔 "이걸 모르다니 너 바보 아냐?"라고 이야기할 각오까지 하면서 말이다.

4. No Romance!
해피하지 않다는 것은 "새드하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언해피"일 뿐이다. 그 것이 비극적인 것이거나 슬퍼야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지상파 컨텐츠의 커다란 축인 시청자들은 이런 등식이 자연스럽게 성립하는 것으로 간주해버렸고 심지어는 "세경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말 그대로 시간이 멈췄으므로 세경의 입장에선 해피엔딩"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마지막 두 주는 시청자라는 사람들에게 이 나쁜 엔딩을 "비장미"로 착각하며 찬양할 사람들이 나오게 만드는 시간을 번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장난하나? 자본의 생태 피라미드의 맨 아랫부분에 위치한 것을 이유로 파탄이 난 가족의 이야기도 부유한 가정에서 부러울 것 없이 자랐으나 지독한 애정결핍에 시달려야 했다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운 유년기의 여자 아이, 항상 힘없고 무시당하는 40대 가장의 이야기 등은 "세경의 세속적 사랑의 비극적 완성"앞에선 홍어 좆도 안되는 것인가? 말 그대로 지금 장난하나?

반년 이상을 진행시켜온 이야기를 두 주간에 완전히 뒤엎어버린 이 엔딩이라는 것은 "해피"인가? "새드"인가?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단히 자의적이며 "너희들은 몰랐지만 나만 알고있는 정보로 진범을 밝혀냈는데 너희들은 애초에 그 정보라는 것을 가질 필요도 없었고 내가 알려줄 생각도 없었으니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냥 믿기만 하면 돼!"라고 이야기하는 얼치기 명탐정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 점이 내가 절대 <지붕뚫고 하이킥>을 지지할 수 없는 이유다. 물론 김병욱씨는 "내가 내 마음대로 만들겠다는데..."라고 이야기한다면 그에 대해 난 이런 답을 돌릴 것이다. "당신이 자신이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자기 자식들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들을 죽이고 자신은 자살한 가장과 무엇이 다른가? 아마 세상에선 이 말도 되지않는 시츄에이션을 '동반자살'이라는 웃기는 용어로 표현하지요? 이봐 아저씨 이건 동반자살도 아니라 그냥 자폭이야!" 김병욱 아저씨!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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