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6일 일요일

아님 말고 1000곡(125)









듣거나 말거나 1000곡

125."Maggie Campbell Blues(1928)" Etc.-Tommy Johnson-

1896년 미시시피주의 Terry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이 사람은 음악을 한 사람이다. 이 정도의 정보만 있다 하더라도 100명 중 60명 이상은 이 사람은 "Delta Blues"와 관련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뭐 아닐 수도 있지 않느냐? 어거지 쓰지 말아라!"라고 주둥이를 처놀리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당장 꺼져 주시고... 어쨌건 오늘 이야기할 사람은 델타 블루스의 전설적인 뮤지션들 중 하나로 꼽히는 Tommy Johnson인데, 이 양반이 특히 유명한 것은 당시로는 파격적이라할만한 시도-시도라는 말이 거슬린다면 연주기법이라고 해도 좋고.-인 가성(영어로는 falsetto voice이라 하니 어디 가서 작업할 때 이용하시려면 하시고...)을 사용하는 창법과 당시 수준에선 감히 다른 이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복잡한 혹은 난해한 기타 연주의 테크닉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한다.

Tommy Johnson은 그가 열네설 되던 해인 1910년 미시시피 주의 Cristal Springs이라는 곳으로 이주했는데 그 무렵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1914년 경엔 그의 형제인 Mager, LeDell과 함께 지역의 사교모임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수입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뭐 쉽게 이야기하자면 오블리 밴드,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행사"를 뛰면서 돈을 벌었다는 뜻이다. 1920년 경 그는 애석하게도 알콜중독자가 되어.... 술을 대단히 많이 마시게 되었지만 Papa Charlie Mcoy의 밴드에 참여하면서 남부 일대를 돌며 연주여행을 다녔고 그 과정에서 대단한 명성을 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추정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내가 그 시대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각종 자료로 추측하는 것이 전부 아니겠는가?) 그리고 강아지가 축음기 옆에 있는 앰블럼으로 유명한 Victor Record에서 1928년 Mcoy와 함께 그의 첫 음반을 발매하게 된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나? 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신 분이 계신가? 아! 물론 난 아주 어렵게 그 영화를 볼 수 있었으나 자세한 과정에 대해선 생략하기로 한다. 그 영화에 Tommy Johnson이름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의 타미 존슨이란 사람은 자신의 기타 연주를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인물로 나온다. 그런데 영화를 보시면 한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것이다. 영화에서 타미 존슨이 연주하는 곡들은 Skip James의 곡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사실은 영화 속의 타미 존슨이라는 캐릭터의 실제 모델은 Tommy Johnson이 아닌 Robert Johnson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혹시나 그 영화를 보셨다면 그 영화 속에서의 타미 존슨과 실제의 타미 존슨을 혼동하지 않기를 바라며 드린 말씀이다. 별 뜻은 없다.

아무튼 누가 뭐라 하더라도 Tommy Johnson을 대표하는 곡은 "Big Road Blues"일 것이고 그 곡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뭐 물론 안들어본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 것은 지들의 문제지 내 문제가 절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남들 다 아는 곡도 못 들었으면서 그런 인간들은 보나마나 개인 정보를 작성할 일이 있을 때 "취미"란에 "독서, 음악감상"이라고 적을 것이다. 빌어먹을 인간들 음반을 사지 않으면서 취미를 음악감상이라 쓰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줄도 모르고 심지어 You Tube이란 놈이 별의별 곡들을 다 백화점처럼 진열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한 번 이용하지도 않았으면서 취미가 음악감상이라는 자들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든지 주둥이를 꿰메든지 해애 2011년엔 사회가 명랑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내 손에 피를 묻히기는 싫고...

이야기가 또 다른 곳으로 삐딱선을 타버렸지만 "Big Road Blues"이라는 곡 못지않게 중요한 곡은 같은 음반 안의 "Canned Heat Blues"이라는 곡인데 심지어 이 곡은 곡의 이름을 딴 "Canned Heat Blues"이라는 밴드가 생기기도 할 정도로 대단히 영향력이 높은 곡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곡인 "On the road again"은 타미 존슨의 "Big Road Blues"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라고 공공연히 알려져 있기도 하다. 2010년의 마지막에 타미 존슨을 소개하는 이유는 블루스의 원형 중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델타 블루스의 원형에 가까운 음악을 소개해드리고자 함이었다. 그냥 열심히 들으시고 2011년에도 별다른 변화 없이 생각날 때마다 그 때 그 때 이 게시물을 연작으로 올릴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게시물이 올라가는 것은 2011년이겠으나 2010년에 작성을 시작했으므로 구글 블로그 기준으로는 2010년 12월의 게시물이 된다.

<추신>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다. 자타칭 "가요계의 레전드"라는 L씨가 작년 가장 화제가 되었던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블루스에 대한 이야기를 설파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다가 거의 쓰러지는 줄 알았다. 블루스적인 부분? 블루스적인 느낌? 이 사람은 블루스를 마이너 펜타토닉 스케일이나 전형적인 모던 블루스의 창법 등 흔히 이야기하는 "Blusy"라는 단어에 얽메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이너 펜타토닉 스케일도 그저 블루스의 일부분일 뿐이다. 블루스라는 것은 곡이 가지는 고유의 느낌이기 이전에 12마디를 기본으로 하는 미국의 대중음악의 한 형식이다. 아마도 그의 귀엔 초창기 블루스 곡들은 절대 블루스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아! 아직도 명랑사회는 말고도 험한 길을 눈앞에 깔아두고 있다. 빌어먹을!!!














2010년 12월 23일 목요일

자해?.... 아니! 자폭!







크리스마스 시즌부터 시작하여 연초까지 이어지는 이 꿀꿀한 기간을 "인생에 더없이 꿀꿀한 기간으로 보냈다. 비교급이 아닌 최상급의 꿀꿀함으로!"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마!이 정도면 가히 크리스마스 이브의 악몽 수분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이브의 자폭 수준일 것이라 장담하며...

1. 우선 시작은 Jeff Buckly의 곡들로... 가사를 음미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 인간이 1968년에 태어나 1997년 불의의 사고로 이 세상과 이별을 고한 그의 일생을 생각하며 "이 빌어먹을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어이없는 사고로 세상을 하직하기도 하는구나... 이 더러운 인생"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나 자신의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인생을 떠올린다.

2. 시동이 제대로 걸렸다 싶을 때에 Damien Rice의 곡들을 듣기 시작한다. 그의 곡들을 들을 때 특히 유의해야할 것은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지지리 궁상스러운가 집중하며 들을 것! 쓰잘데기 없이 그의 가사가 시적이니 어쩌니 그런 사치스런 낭만에 빠지기 시작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그의 지지리 궁상의 극치인 음색에만 집중한다. 이 인간의 음악을 들으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싶었을 때 James Blunt의 음반을 슬슬 꺼내어 준비를 시작한다.

3. 이쯤에서 다른 장르의 곡들도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Pink Floyd의 "Set the controls for the heart of the sun"을 들어야만 한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말의 취지에 제대로 부합하려면 반드시 눈을 감고 들어야 한다. 계속 듣다 보면 왜 내 손이 닿는 곳엔 마리화나도 코카인도 없는 것이냐?를 연발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 바로 이런 느낌을 가지게 된다면 정말 자학의 과정으로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고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4. 이 건 개인적으론 별로라 생각하지만, 이 쯤에서 Gloomy Sunday를 든는다면 아마 당신은 충분히 "자학"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곡이 어째서 그렇게 자학적인 곡이라 불리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쯤에서 남들이 다 알고있는 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고 모닥불에 탱크로리에서 휘발유를 들이붓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태가 될 것이다.

5. 이젠 기타를 들자! 절대 평소에 알고있거나 악보를 가지고 있는 곡이 아니라 어디서 보도 듣도 못한 엄청나게 손가락을 혹사시킬 수 있는 테크닉을 요하는 곡을 귀로 듣고 따서 카피를 하려는 시도를 시작한다. 당연히 잘 될 리가 없다. 이 때쯤이면 당신의 꿀꿀함은 슬슬 분노로 바뀌기 시작할 것이고 마리화나나 코카인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대신 자신이 총기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한탄하게 될 것이다. 아마 총이 있다면 자신의 머리에 대고 그대로 갈겨버리고 싶을 것이다.

6. 중요한 것은 오늘저녁부터 위의 과정을 실행할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결말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영화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식으로 보내야하는 스스로를 한탄하면서 1번부터 차례로 시행하게 될 것 같다...빌어먹을!

2010년 12월 11일 토요일

니미 닭튀김 못 처먹어서 죽은 귀신들이 씌었나?(개소리들)

도대체 첫 문장을 다시 썼다 지우고 한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별의별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까에 대한 고민을많이 했다. 당연히 이 게시물의 마지막 줄을 끝냈을 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다. 게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심지어 롯데마트는 그 빌어먹을 "통큰 치킨"을 15일까지만 판매한다고 했고 이마트는 치킨과 피자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신들을 죽어도 팔겠단다. 물론 그 덕에 이야기할 거리가 늘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나 그 더러운 이병철의 후손들 혹은 범 삼성가의 더러운 짓거리에 대해선 분노 게이지가 훨씬 더 올라갔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게 되기도 했다. 더럽다...는 단어 하나로 그냥 이야기를 끝낼 수도 있지만 나름 블로그란 곳을 그런 용도로 쓰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라 그 정도로 끝내주진 않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마트 피자가 나왔을 때에도 그랬고 롯데마트 치킨이 나왔을 때에도 그랬고 이 문제를 "자타칭 진보언론"인 한겨레나 경향까지도 단순히 거대자본의 횡포 정도의 "낭만적 레토릭"의 선정적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고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족"인 공화국의 밤의 주둥아리들 역시 소비자의 권리를 씨부리며 롯데 매트 닭을 당장 다시 살려내라(처음 이 게시물을 쓰기 시작한 후 중간에 벌어진 일들이 꽤 많이 있다. 롯데 마트의 닭은 사라졌으며 빌어먹을 정용진 새끼의 이마트는 피자를 계속 팔겠단다. 그리고 원가 논쟁이니 뭐니 하는 일들이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며 웃기지도 않는 닭짓을 하고 있는 중이다. 다들 가격이 어쩌고 하는 동안 내가 했던 생각은 좀 다른 것이었다. 왜 이미 아시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이 다들 할만한 이야기는 내가 굳이 하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거대자본 중 하나인 애플이 아이폰 시리즈를 내고 삼성이 아이폰에 대항한다며 갤럭시 시리즈를 낼 때 그 잘나빠진 공화국의 인민들은 그들이 제시하는 "어차피 원가와는 전혀 상관 없을" 가격에 상관없이 그에 열광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아무리 그들도 대자본이라 한들 상대도 되지 않을 피자 체인이나 치킨 체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엄청나게 "충격적인" 가격에 피자와 치킨을 출시하면 또 그에 열광한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는가? 지금은 거의 없어진 파격적인 가격의 동네 치킨집들은 왜 당시 그 동네를 싹쓸이 하지 못했는데 거대자본의 이런 빌어먹을 짓에는 동네마다 수없이 존재하는 치킨집들이 다들 울상이며 심지어 한 때는 롯데 카드로 결재하는 손님에겐 닭을 팔지도 않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는가? 여기서 한 번 시작을 해보자는 이야기이다.

즉, 과연 우리들에게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우리의 의지대로 소비할 자유가 있는가?"라는 문제와 "우리의 의식까지 대자본들이 지배하고 있는데 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자는 이야기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라는 생각을 우선 해보았더니 공화국의 가요계라는 답을 얻었다.(물론 나름대로) 항상 준비되어 있는 소비자는 그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든지 간에 SM, JYP, YG,에서 나오는 신인 가수들을 기다리고 있다 "Ready! Start!"라는 소리와 동시에 그들에게 미친듯 열광한다. 심지어 그들의 음반이 나오기 전-음반이 나오기는 하나?-부터 그런 분비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자신들은 개념에 가득찬 척 해대며 "개념없는 빠순이들"을 욕하는 20대 이상의 소비자들은 애플과 삼성의 제품에 같은 태도를 보인다.

아이폰과 갤럭시의 경우는 높은 가격에 상관없이 소비하는 경우겠지만, 과연 이마트 피자나 롯뎁마트의 치킨이 아니라 수많은 연세대 부근의 자취생들의 마음의 고향인 그랜드 마트에서 그런 치킨을 내놓고 미아트와 같은 가격에 피자를 판매한다고 해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럴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폰의 예이건 이마트 피자의 예이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짜 경쟁력은 "가격"이나 "품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시장에서의 지배적 위치에서 기반하는 비교할 수도 없는 힘인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의지나 영혼 따위에 대한 생각도 저항도 없이 그 엄청난 시장 지배력의 품에 안기며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원가 논쟁? 그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 이마트 피자의 납품 업체는 상장도 되지 않은 신세계 일가의 "개인회사"다. 그리고 롯데 마트의 구조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 그들이 요구하는 가격에 맞추려면 아마도 납품업체는 허리가 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잊고있는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정용진 새끼의 말처럼 "좋은 제품을 싼 가격에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유통업의 존재 이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통업의 존재 이유는 "그냥 그 상태로는 상품이 되지 않는 재화를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점이다. 유통업은 자본주의에서 종사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일종의 긍정적 서비스"가 아닌 "착취 구조가 시작되는 지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똑같은 장사꾼 새끼는 "나도 2주에 한번 꼴로 배달 치킨을 시켜먹는데 가격이 좀 비싸다는 생각을 한다. 영세상인 보호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싼 가격에 치킨을 먹을 수 있는 권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떠들겠지만 말이다.

2010년 12월 5일 일요일

아님 말고 1000곡(124)








듣거나 말거나 1000곡

124. God-John Lennon/Plastic Ono Band(1970)

1970년 발매된 John Lennon/Plastic Ono Band이라는 타이틀의 음반은 아주 단순하게 본다면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존의 곡 중 하나인 "Love"이 들어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이 음반이 중요한 이유를 꼽으라면 Phil Specter, Billy Preston이 각각 "Love"과 "God"이 두 곡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는 점에서 이 음반은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 할 것이다. 두 사람 다 비틀스 시절 존과 함께 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것은 이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의 드러밍을 링고가 했다는 점이다. 폴도 없고 조지도 없지만 이 앨범이-비틀스 시절의 존의 곡들과는 확실히 다르긴 하지만- 대중들에게 익숙하게 들릴 이유가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 "Rolling Stone"지로부터 이 시대에 가장 위대한 앨범에 스물 한번째로 이름을 올린 이 앨범은 1970년 12월 11일 발매된 "실질적인 존 레논의 첫번째 대중음악 앨범"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존은 요코와 함께 이전에 세 장의 음반을 공개한 적이 있었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비틀스의 리더(라고 하면 폴이 삐칠지 모르지만)로서 그리고 20세기 가장 중요한 팀의 멤버로서의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 아니라 미술가인 동시에 행위 예술가지아 사회운동가였던 자신의 부인인 요코 오노와의 접점을 과시하는 듯한 일종의 실험적 프로젝트였다고 보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존 레넌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정도의 실험적 프로젝트였닫고 할 수 있을 것이다.(오해가 있을 듯 싶어 덧붙인다면 오로지 그런 프로젝트만을 하는 사람은 음반을 세상에 내놓을 내놓을 정도로 무모한 음반사와 계약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할 것이다.)

참고적으로 이 앨범은 세 가지의 버전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하는데, 그 이유는 앵초 A Side와 B sibe로 이뤄져있던 오리지널 Vynil LP 버전엔 12곡이 수록되었다. 2000년에 재발매된 디지털 리매스터드 버전엔 13번과 14번 트랙에 "Power to the people" "Do the Oz"가 수록되었으며 2010년, 즉 올해 또 다시 발매된 버전의 앨범엔 이 13번과 14번 트랙이 다시 사라졌다. 이런 말을 하기 다소 꺼려지긴 하지만 역시 아직까지도 인류에게 있어 가장 상업적으로 안전빵인 아이템은 비틀스와 그 멤버들이란 사실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앨범을 여는 "Mother"에서부터 B side의 마지막 곡인 "My mummy's dead"의 전곡을 듣다보면 한 가지 추론가능한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것이다. "시기가 시기인만큼 이 앨범을 낼 당시 존 레넌의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있었구나"라는...

이 앨범엔 유년시절과 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자신의 정체성 문제의 근원이라 생각되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부터 자신이 비틀스가 되기 전 자신의 정체성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소회, 누가 들어도 요코와의 사랑을 노래했음직한 곡도, 세상의 모든 것들이 허위의식이며 오로지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자기 자신임을 말하는 등 앨범 안에 수많은 존의 모습이 존재하며 그리고 앨범 안에서의 존은 서로 모순되며 서로 충돌하고 서로 화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다분히 정제되지 않은, 특히나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 Double Fantasy와 비교해본다면 특히 심한, 실존의 문제로 괴로워하는 유물론자의 넋두리같은 내용을 담았고 그로 인해 존의 여러가지 모습 중 하나를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거나 그 한가지의 모습으로 평생 존의 지지자가 되기로 맹세한 사람들에겐 지극히 혼란스러운 앨범일 것이다. 롤링 스톤의 견해는 어떤지 모르지만(사실 궁금하지도 않다.)

사실은 며칠 전의 꿈에도 존 아저씨가 나타나 "올해도 내가 골로 간 날 날 팔아먹을 생각이라면 아예 접어라"고 이야기를 하길래 "아저씨가 내게 노트북을 사줘봤냐? 기타를 사줘봤냐? 심지어 pick 하나라도 줘봤냐? 내 손가락은 내 것이다."라고 했더니 "그래 역시 넌 네 머리라는 것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목위가 허전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올려놓은 칼슘과 단백질 석회 등등으로 이루어진 덩어리라는 것을 인정하는구나..."라며 비꼬길래... "머리 기르고 수염 기르기 위한 용도로만 머리와 얼굴을 쓰는 것보다는 그래도 목위의 허저함을 채워주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 낫다"고 같이 비아냥대다 잠에서 깼다. 왜 항상 꿈에 존 아저씨가 나타나면 좀 더 잘해주지 못할까?라는 고민을 했으나 그가 단 한번도 먼저 살가운 말을 건넨 적이 없음을 깨닫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시다시피 12월 8일은 존 아저씨의 30주기다. 줴길...



2010년 12월 1일 수요일

누가 진지하게 듣진 않겠지만... (개소리들)

1971년 네덜란드의 TV 프로그램에선 당시 휠을 잡고 있던(이 표현 양아들이 쓰는 표현인데 계속 쓴다.) 노엄 촘스키와 미쉘 푸코를 초대해 대담 프로그램을 생중계한 적이 있다. 다아시 사회자였던 멜데르스는 푸코에게 "푸코쓰는 정치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이유가 뭐냐?"는 요지의 질문을 던졌는데 푸코는 그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을 했다. "난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자칭 보수라 주장하는 인간들의 흔한 레퍼토리 중 하나가 "왜 그렇게 이념에 대해 집착하는가?"내지는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왜 그렇게 많으냐?"인데 푸코와는 달리 난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거나 이념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 역시 이념적인 것 이닌가?" 거기에다 푸코의 멜데르스에 대한 답을 합치면 "난 내 블로그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자유가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왕 푸코 이야기가 나왔으니 푸코 식으로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정의나 대의명분은 (적어도 푸코에 의하면)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나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내세우는 구호일 뿐이다. 정의를 위해 전쟁을 하거나 혁명을 하는 것이 아니다. 혁명에 대해서는 그다지 경험이 없으니 과거 사례를 전쟁을 통해 이해 하도록 해보자. 전쟁을 할 경우 서로가 정의라는 것을 내세운다. 하지만, 치열했던 전쟁이 끝나고 나면 누가 전쟁에 이겼느냐만 남는다. 그리고 전쟁에 이긴 사람들은 "정의가 승리했다"고 말할 것이다. 이 것은 "이긴 놈이 정의"라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 이야기는 애초에 전쟁이라는 것 자체에 "정의"라는 것이 비집고 들어갈 틈 따위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푸코의 말에 100% 수긍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도 100%라는 수사를 남발할 정도로 수긍한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정의라는 것만이 전쟁의 구실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물론 대의명분이라는 단어를 쓴다면 거의 100% 동조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윗 단락에서 푸코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미 일어난 무력충돌에 대해 북한 새끼 씹새끼! 우리나라 존나 만만세!"라고 하는 것은 이미 개나 고등어나 다 한 이야기니 나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음과 동시에 "다음 번에 또 공격했는데 존나 보복하는데 반대하는 사람?" "아! 씨발 너 반대야? 이 좆같은 빨갱이 새끼 종북주의자 새끼"이런 식의 이야기가 이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대안도 대책도 아놀 수 없는 이야기이니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전제를 미리 깔고 가자는 이야기이다. 어차피 저질러진 문제에 대해 왜 흥분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문제는 가끔씩 잊고 사는 것 중 한 가지가 바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단 스스로를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일 것이라는 점ㅁ이고 그렇기 때문에 주로 이런 관점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점이다.

"바보가 아닌 사람에게 밥보라고 하면 그냥 웃어 넘길 수 있으나 정말 바보에게 넌 바보라고 이야기하면 그 것은 욕이고 생각했던 것 이상의 반응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 -물론 내가 처음 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실제로 많은 경우에 기가 막히게도 적용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학생 시절에 노동운ㅇ동을 현장에서 하시는 분들에게 어설픈 저학번 혹은 저학년 아해들이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서 노동현장을 지켜나가시느라 정말 힘드시고 어쩌고 저쩌고..."이런 식의 지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건낼 경우 노동조합의 관계자들이 학삐리들에게 보내던 차가운 시선을 아직도 기억할 정도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진정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선행학습이나 스스로의 경험 없이 함부로 지껄이는 것은 그 혹은 그들과의 대화 자체를 단절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며 실제로 그런 반응이 오더라는 것이다.

이 정권은 사회복지라는 것을 인격이 고매한 부자가-이런 모순형용은 가끔 지겹기까지 하지만-자신들이 먹다 남은 밥상의 고기반찬을 지나가던 거지에게 던져주고 그 거지들은 그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황송해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사회복지라는 것은 그런 적선의 개념이 아니라 "사회 안전망의 구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데 "아이들은 스스로 노동할 수 있는 연령에 잉르기 까지는 국가가 그들의 성장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것들에 대해 책임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세금으로 부잣집 아이들의 밥을 무료로 줘야하나?"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북한이라는 존재를 "왜 길거리의 거지취급하려 하는가?"라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그에 대한 답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건 마치 길거리의 노숙인이나 구걸하고 있는 사람에게 "난 거지고쓰레기 인생이며 사회의 암적 존재다라고 크게 이야기하면 만원 줄께 그렇게 해봐!"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문제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저런 거지떼들같은 북한 사회가 붕괴되지 않고 유지되는지 아는가"라고 물어본다면 "편집증 환자인 김정일 집단의 거짓 선전과 억압에 의해 가능하다"는 말만을 되풀이할 따름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탈북이라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지긴 했어도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시스템이 그대로 작동한다면 "남한이나 제 3국으로의 엑소더스로 국경의 철책선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북한을 북괴라 이야기하며 국가도 아닌 것처럼 이양기하길 좋아하나 엄연히 UN에 동시에 가입되어 있는 별도의 독립국이란 이야기이다.(왜 두 개의 조선 책동하는 미국놈들 몰아내자고 외치던 주사위들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했는지는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도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너무 장황하다고? 물론 장황할 수밖에 없다. 내가 머리가 나쁘다보니...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공화국엔 북한이라는 국가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는 것이다. 왜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게닥다 사회주의에 대한 엄청난 배신행위까지 한, 북한이라는 국가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없었다는 점이 현재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이라는 것이다. 한 번 묻고 싶다. 도대체 변절의 아이콘 뉴라이트들은 이명박의 주위에서 뭘 했는가? 그들이 자신들이 개척하려는 신천지에서 인정받기 위해 주체사상을 버리면서 그렇지 않아도 운동권 내에서도 "우파"로 불리던 주사위였던 주제에 이명박이나 이회창보다도 훨씬 더 오른쪽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경쟁적으로 보여주기만 했을 뿐 아무도 "항상 위협으로 존재하는" 북한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도뭉을 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잉른바 학삐리 시절에 주사위들의 수적인 우세에 시달리며 그들에게 "당하고 살았던" 세칭(이 표현 싫어하지만) 범 PD 계열의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현재 공화국의 이른바 "안보라인"에 속해있는 인간들보다 권력이라는 의미로서 그리고 국가 시스템이라는 차원에서의 북한을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항상 당해본 사람들은 적응력이나 적의 실체에 대해 빨리 파악하기 마련이다.) 요즘엔 트위터에 누가 멘션을 올려도 추적이 되는 세상이니 구글 블로그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어 하고 싶은 말을 100% 할 수는 없으나 결론은 이렇다. "공화국의 안전을 위해서도 거지취급이나 조롱이 아닌 진지한 북한에 대한 연구와 공화국 자신에 대한 성찰을 회피하면 이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왜 이런 소리를 하느냐고?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전쟁잉라는 것이 난다면 어느 쪽이 당연히 손해이겠는가?" 당연히 그렇게 자랑해대는 몇십배 혹은 백배가 넘는 경제규모를 가진 쪽 아니겠는가? 전쟁? 전쟁을 수행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40대 이상에서 65세 까지의 인간들이 반드시 참전해야 한다고 명문화 해봐라.... 전쟁이란 이야기를 몇 배의 보복이란 이야기를 그렇게 한 시간 이상 씹은 껌 아무 생각없이 길거리에 뱉듯 내뱉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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