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9일 일요일

듣거나 말거나 1000곡(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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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님 말고 1000곡

132. Walk on the wild side-Lou Reed(1972)-

1972년 루 리드는 자신의 두번째 솔로 앨범인 Transformer을 발매한다. 그리고 이 앨범엔 바로 이 곡인 Walk on the wild side이 수록되어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그 곡이 그 앨범에 들어있지 않으면 할 일이 없어 그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까? 위키피디아나 MTV 사이트의 검색을 통해서 루 리드에 대한 내용을 보게 되면 그의 음악을 포괄할 수 있는 장르를 나열해도 무려 10가지 이상이 된다. 그 중에서 조금 생소한 장르라 생각될만한 것들을 이야기하자면, Noise Music, Drone Music, Protopunk, Spoken Word 정도? 나름 전문가라 할만한 사람들도 음악들 들려주면 "그게 그거야?"라는 말을 하게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특히나 Spoken Word이라는 장르를 빌어 루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주류 음악의 평단에서 루의 음악을 "시적인 음악"이라는 것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이 Spoken Word이라는 이름의 장르에 대해 조금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기원을 굳이 이야기하자면 1920년대에서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당시 뉴욕의 할렘가를 중심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문화적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 크나큰 파급력을 가진 시대의 조류가 되었는데 이를 "할렘 르네상스"라 한다. 이 때 문학과 음악에 걸친 융합적 장르의 Spoken word poetry라 하는 새로운 장르의 운문문학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이 스포큰 워드 포에트리에 1900년대 초반부터 미국 전체에 전해져 내려오던 블루스 음악의 전통이 더해진 것이 Spoken Word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장르다.

루 리드의 곡들을 세심히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많이들 느꼈겠지만, 루 리드의 곡들은 가사 자체가 시적 요소-힙합에서 이야기하는 라임이 아닌 문학적 의미에서의 라임-로 가득 채워진 곡들이지만, 레너드 코헨이나 그 외의 American modern folk 계열의 아티스트들과는 상당히 다른 음악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애매한 표현이 "정말 애매하"긴 하지만, 루 리드의 곡들은 대단히 멜로딕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비트가 대단히 강하다는 느낌을 주다가도 또 그렇지 않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전혀 대중적인 요소들은 없이 오로지 실험성을 강조한 음악을 하는가 싶다가도 어떤 곡들은 또 특별히 대중적으로 들리는 곡들도 있기도 하고...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음악의 "양가적 가치"를 뛰어넘는 "다츠층적 가치"를 추구하거나 혹은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 견해다.

 이 곡은 루 리드의 솔로 곡들 중에선 대중적으로 대단히 성공을 거둔 곡인 동시에 여러분들이 루 리드가 연주하는 Spoken Word이라는 장르가 어떤 특성을 가지는가에 대해 여러 긴 설명 필요없이 간단하게 깨달을 기회를 제공하는 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 앞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루 리드가 태어난 곳이 뉴욕의 부르클린이다. 지금이야 부르클린보다도 브롱스가 더 뉴욕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대표하는 지역이지만, 루 리드는 태어나면서부터 할렘 르네상스의 문화적 세례를 받을 기회를 가졌던 사람이고 그로 인해 어찌 본다면 스포큰 워드가 루 리드에겐 대단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리라는 점을 부연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루 리드와 벨벳 언더그라운드에 대해선 나중에 더 설명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2012년 4월 9일 월요일

이건대박이다(Soundless Music)






Some Night-Fun(2012)-

어휘력이 이 것밖에 안되는 점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이 앨범 대박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정말 대박이다. 2009년 Aim and Ignite로 정식 데뷔를 했을 때 이 팀이 이 정도의 팀이 될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은 아마 그 자신들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100% 그럴 것이다. 빌보드 차트는 분명 상업적 성공의 척도이긴 하지만, 그 것은 Hot100 싱글 차크나 빌보드 200 앨범 차트의 경우고 장르 차트의 경우는 모든 차트에서의 진입이 그 자체로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한다. 예컨데 흑인음악과 관련된 차트나 컨트리 & 웨스턴 차트에서 50위 안에 든다면 그 것은 나름 상업적으로 그다지 꿀리지 않는 성공이라 할 수 있으나  Rock 차트에서 50위권이라 하면 대단히 애매모호한 자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팀도 그랬다. 데뷔 앨범인 Aim and Ignite은 앨범 차트에서 71위 Art 차트에서 20위  Rock 차트에서 23위 정도의 애매모호한 성적을 냈던 팀이다. 주료 Mainstream을 벗어난 음악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리뷰를 싣는 웹진인 Allmusic에서는 이 앨범을 일컬어 "Progressive but possible way"이라는 평을 했다. 물론 앨범을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실제로 이 팀의 음악에 대해 이처럼 간결한 평가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이 팀의 데뷔 앨범은 전 곡을 다 듣지 못해 사적인 견해를 100% 밝힐 수는 없는 입장이다. 다만, 그들의 음악이 데뷔 앨범에서 그다지 크게 변한 것이 아니라면 "가능한 방법으로서의 프로그레시브한 음악"이라는 문제의식에 대해 동의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 본다.

이 팀이 요즘 주목받는 이유는 저스틴 비버가 첫 주에 무려 2위로 싱글 차트를 치고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1위를 지켰기 때문이고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이 팀의 We are young이 싱글차트의 정상에 올라갔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이 팀의 음악은 정말 "가능한 방법"을 사용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팀은 스티브 하우나 트레버 레빈같은 현란한 기타리스트가 있는 것도, 릭 웨이크먼이나 키스 에머슨 같은 "천재적인 건반 연주자"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히 동시대의 Rock음악들에 비해 대단히 폭이 넓은 스탠스를 가지고 있는 음악을 들려준다. 팀의 구성이 화려하지 못한 나름의 단점을 대대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이나 비트의 보완으로 해결한다.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 팀이 만드는 비트의 방식은 주목할만하다. 탐탐이나 하이햇을 현란하게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흔히들 킥이라고도 하는 베이스 드럼을 대단히 현란하고 현명하게 사용한다. 분명히 정박의 드럼을 치고 있다고 생각할 때짬 미묘한 변화를 주는 식으로 자신들의 음악에 화려한 색을 입히는 것이다. 이는 킥의 강도의 미묘한 변화나 한 마디에 들어가는 킥의 횟수의 미묘한 변화 등으로 "누구나 생각할 수 있으나 작업에 임하기 전 사전적으로 생각하기엔 쉽지 않은 방식"을 사용한다 할 것이다. 나중에 처죽기 전에 들어야할 1000곡에 들어가야할 수도 있을만한 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잉런 재기발라랗ㄴ 팀의 음악을 즐겨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2012년 4월 6일 금요일

듣거나 말거나 1000곡(131)






아님 말고 1000곡

131.Tapestry-Carole King(1971)-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The Beatles의 폴 매카트니가 필 스펙터와 Let it be의 작업을 마친 후 조지 마틴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는 마지막 앨범을 녹음할 것"이라는 말을 하며 Abbey Road의 작업에 들어가던 그 순간 팝음악은 하나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 전환점에 서있던 것이다. 1970년은 그래서 중요한 해다. 실질적으로 비틀스는 그 해부터 자신들의 팀의 이름을 걸고 공식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고 이른바 팝음악계에 새로운 틈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잉른바 비틀스 키드라 불릴 수 있는 세대들이 팝신의 전면에 나설 토대가 마련되기도 했거니와 그간 비틀스에 눌려 2인자 그룹을 형성하던 아티스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기기도 한 해가 바로 1970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님 말고...

흔히들 이야기하는 Rock음악의 르네상스 시대의 토대는 이렇게 열리게 되지만 그 르네상스라는 것은 단지 Rock음악이라는 장르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어찌 본다면 American modern folk이라 불리는 장르는 위에서 이야기한 "틈새"라는 것을 가장 잘 비집고 들어가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는 작업에 가장 수월하게 성공한 장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문제는 American modern folk이라는 장르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가?라는 점이 되겠지만 애초에 포크라는 것은 특정한 음악적 형식이나 기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잉런 주장을 하면서 크게 죄책감을 느끼거나 할 필요는 없다고 자위해도 괜찮을 듯하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곡이야말로 미국의 모던 포크라는 장르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보여준 결과물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곡이기 때문에 적어도 캐롤 킹의 성공에 국한해서 이야기해도 이런 주장은 무리없이 통할 듯하다는 생각이다.

상업적인 측면만을 이야기하더라도 캐롤 킹의 Tapestry 앨범은 빌보드지가 창간되고 차트를 발표하기 시작한 후 차트를 가장 화려하게 달궜던 몇 안되는 앨범의 하나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1971년 1월에 A&M 스튜이오에서 작업해서(정확한 기록은 아니지만 1개월까지 걸렸던 작업은 아니었던 듯하다.) 1971년 2월 10일에 Ode라는 그다지 크지 않은 레이블에서 발매된, Lou Adler(아들러라는 이름에 흥분하시는 분들... 제발 좀 참아주시기 바란다. 이 아들러는 당신들이 아는 그 아들러가 아니다.) 빌보드 앨범 200 차트에서 무려 15주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이 기록은 그 후로 만 40년을 조금 넘게 여성 솔로 아티스트의 앨범으로는 가장 오랜기간 차트의 정상에 머물렀던 앨범으로 기록된다. 이 기록을 깬 것은 여러분들의 예상과는 달리 마돈나도, 위트니 휴스턴도, 머라이어 캐리나 토니 브랙스턴도 아닌 아델에 의해 작년에 비로소 깨지게 된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비틀스의 팝음악에서의 공헌 중 하나로 Singer-Siongwriter의 시대를연 것을 꼽는다. 그건이론의 여지 없이 당연한 이야기지만,그 것을 공고하게 만든 대표적인 주자 중 한명이 바로 캐롤 킹이다. 1942년 2월 생으로 올해 만으로 70세가 된 캐롤 킹은 폴 매카트니와 동갑인 것은 물론이고 아직 만으로 19세도 되기 전인 1961년 1월에 "Will you love me tomorrow"로 데뷔했으니 비틀스 키드라기 보다는 비틀스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던 아티스트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출생지가 미국의 뉴욕시라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그 것은 그야말로 새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캐롤 킹이 뉴욕시 출신이라는 것이 왜 중요하냐고? 뉴욕은 과거 대도시였던 시카고나 뉴올리언즈 그리고 서부의 도시들과는 달리 "그들을 대표하는 음악"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도시다. 물론 모던 포크라는 장르 자체에 대해 뉴욕이 대표성을 가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도시 거주의 청년들의 삶이 하나의 음악적 주제로 부상하게 된 것과 뉴욕 그리고 모던 포크라는 장르의 확장 이런 요소들이 어느 정도는 유기적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많은 이들이 이 앨범의 대표곡을 "It's too late"이라 생각하지만, 물론 말도 한다, 누가 뭐라 하더라도 이 앨범의 대표곡은 이 Tapestry라는 것이 사적인 견해다. 가사의 문학성 혹은 상징성이나 캐롤의 보컬, 그리고 연주 등을 모두 고려햇을 때 이 앨범에서 단 한 곡을 들어야 한다면, 이 곡을 들어야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이 앨범을 사서 전체를 다 들어보시는 것이리라...정확하게 61년에 완성된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는 캐롤의 곡이지만 캐롤이 가장 먼저 세상에 발표한 "자신이 작곡한 곡"이니 혼돈이 없으시길...

2012년 4월 3일 화요일

집에 모든 것을 집중하라!(영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말씀드릴 것이 있다. "첫사랑이 어쩌고"하는 류의 이야기라든지 "수지가 예쁘다"든지 하는 류의 이야기를 기대하신 분들이라면 잽싸게 이 블로그를 나가실 것을 권한다. 굳이 튀려고 해서도 아니고 내가 잘낫다는 이야기도 아니라 <건축학개론>을 이야기함에 있어 미숙하고 어려 오해로 떠나보낸 첫사랑과 다시 찾아온 첫사랑을 마주한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대단히 상투적일 뿐더러 아주 자랑스럽게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한 강명석의 글조차도 진부하기 짝이 없는 성장영와 어쩌고 하는 선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문장의 질이나 게시물의 완성도를 떠나 다른 측면에서 볼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나저나 강명석에겐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와 함께 지내기 위해 제주도 고향집으로 내려와 사는 것"이 고전적인 여성상으로의 회귀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일까?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자신만 할 수 있는 이야기"로 포장하려면 그런 수고가 필요했을 수 있기도 하겠다. 이런 어설픈 패미니즘이라니...참고적으로 경향신문에 이용주 감독의 인터뷰가 실렸으니 그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미리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용주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관계 혹은 사랑이라는 것이 집을 짓는 과정과 유사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 이 영화는 그런 비유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고 집을 짓는다는 행위나 집 그 자체에 대해 굉장히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단순히 주인공들의 감정의 흐름이나 관계에 대한 비유로서가 아니라 이 영화에선 집이라는 것 자체가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풀어가는 열쇠인 동시에 건축학개론 자체가 하나의 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영화의 주된 소재를 풀어나가기 때문이다.다른 많은 리뷰에서 했던 이야기들은생략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한다. 물론 다른 리뷰들이 제시했던 문제들에 대해선 마지막에 추신의 형식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우선 간단히 끝낼 수 있는 것들부터 이야기하도록 하자. 집이란 것은 승민과 서연의 사이를 이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둘은 집이 같은 동네라는 이유로 건축학개론의 과제를 같이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동네인 성북동의 한 빈 한옥을 그들만의 공간으로 만들게 된다. 그 공간에 대한 애착은 승민보다 서연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데, 서연은 좀 거차창하게 이야기하자면 경계인-누가 이 표현을 썼더라?-이며 한 때 유행하던 튜니티 시리즈의 제목을 빌어 말하자면 무숙자인 셈이다. 서연은 자신의 집이 필요했고 누군가에게 얹혀 사는 것이 아닌 반지하라도 좋으니 자신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만한 물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승민이 빈 집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주저할 때 서연은 승민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일 수 있던 것이리 할 수 있다.(여기서 그렇게 쉽게 문을 열 수 있는 빈 집이 동네 아이들의 차지가 아닌 그들의 차지가 되는 것이 가지는 비현실성은 슬쩍 눈감아 주도록 하자.) 그 집을 둘이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들의 관계는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생의 수준을 벗어났음을 말해준다.

둘의사이가 가까워지며 서연이 승민에게 털어놓는 것도 결국 "자신의 집"이 없거나 "자신의 집이라 여길만한 그 어떤 것이 없음"에서 비롯되는 서연의 자의식들이다. 그렇게 집이라는 것이 가지는 현실적 그리고 상징적 의미에 대해 승민보다 일찍 눈을 뜨게 된 서연이 강남의 반지하 방에 기뻐하고 자신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 서울 명문대학교의 음악대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그의 이러한 자의식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서연이 자신의 마음을 우회적으로 승민에게 털어놓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싶은 집"의 그림을 그리고 그런 집을 "네가 공짜로 지어달라"는 것으로 대신한다. 여기서 또 이렇게 생각하자. 아무리 눈치가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집을 공짜로 지어달라"는 이야기를 못알아 듣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물론 그 정도 눈치가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비현실적이긴 하다. 그러나, 이 것은 영화 아닌가?

15년이 흐른 뒤 그들에게 집이란 것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확인하는 과정"이다. 집이란 것으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그들의 과거의 관계에 대한 복기의 역할을 하는 것이 15년이 지난 2011년 서연의 집짓기인 것이다. 15년이란 시간만큼 그들의 관계는 매끄럽지 못하다. 그 것을 보여주는 것이 승민의 디자인에 대한 서연의 계속적인 거절을 통해 관객에게 제시하고 있는 "과거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의 차이" 혹은 "현재 시점에서 두 사람의 둘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결국 서연은 애초 자신이 살던 집을 개축하는 것이 아닌 증축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그에 동의하면서 비로소 승민 또한 과거 서연과의 관계에 대한 기억들을 복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보고 "두 사람이 옛날의 감정을 떠올리며 과연 그들의 첫사랑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이 영화를 읽어내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 왜 그런지 이제부터 설명하고자 한다는 말씀!

주의깊게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애초 서연이 그린 그리고 그 것을 기초로 승민이 만들었던 집의 모형과 실제로 완성된 서연의 집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승민은 서연의 제주도 집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서연의 과거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리고그 과정에서그 둘은 과거에 대해 조금씩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물롱 애초에 서연은 둘의 과거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승밍을 찾아왔을 것이다.그 둘이 알아낸 것은 그들의 현재의 상대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15년전그 둘의 감정이다. 관객들은 서연의 그림과 승민이 증축한 서귀포의 서연의 집에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며 그들의 첫사랑이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과거의 그들은 승민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서연이 이야기한 집의 모형을 선물하려 했고 결국 그는 그 것을 버렸지만 서연은 그 것을 받았고 서연은 그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을 포터블 CD 플레이어를 사실은 승민이 받았다는 것과 그 사실을 마지막에 확인하는 것이다. 그 둘의 현재의 관계는 연인도 아니고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그들이 확인한 것은 그 둘의 과거의 첫사랑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추신>
유독 강명석의 리뷰에 대해 반감을 가졌던 이유는 강명석의 지적한 "전통적인 젠더의 문제"로 회귀한 것은 서연이라는 점에 대해 절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병들어 시한부의 삶을 사는 아버지르 따라 고향에서 사는 것이 전통적인 여성상으로의 회귀라면 상대방 여성의 순결에 집착하고 상대방을 "쌍년"으로 만드는 승민은 젠더의 문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점에 대해선 주간경향의 허지웅의 리뷰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니 그의 리뷰를 찾아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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