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3일 화요일
집에 모든 것을 집중하라!(영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말씀드릴 것이 있다. "첫사랑이 어쩌고"하는 류의 이야기라든지 "수지가 예쁘다"든지 하는 류의 이야기를 기대하신 분들이라면 잽싸게 이 블로그를 나가실 것을 권한다. 굳이 튀려고 해서도 아니고 내가 잘낫다는 이야기도 아니라 <건축학개론>을 이야기함에 있어 미숙하고 어려 오해로 떠나보낸 첫사랑과 다시 찾아온 첫사랑을 마주한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대단히 상투적일 뿐더러 아주 자랑스럽게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한 강명석의 글조차도 진부하기 짝이 없는 성장영와 어쩌고 하는 선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문장의 질이나 게시물의 완성도를 떠나 다른 측면에서 볼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나저나 강명석에겐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와 함께 지내기 위해 제주도 고향집으로 내려와 사는 것"이 고전적인 여성상으로의 회귀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일까?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자신만 할 수 있는 이야기"로 포장하려면 그런 수고가 필요했을 수 있기도 하겠다. 이런 어설픈 패미니즘이라니...참고적으로 경향신문에 이용주 감독의 인터뷰가 실렸으니 그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미리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용주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관계 혹은 사랑이라는 것이 집을 짓는 과정과 유사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 이 영화는 그런 비유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고 집을 짓는다는 행위나 집 그 자체에 대해 굉장히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단순히 주인공들의 감정의 흐름이나 관계에 대한 비유로서가 아니라 이 영화에선 집이라는 것 자체가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풀어가는 열쇠인 동시에 건축학개론 자체가 하나의 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영화의 주된 소재를 풀어나가기 때문이다.다른 많은 리뷰에서 했던 이야기들은생략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한다. 물론 다른 리뷰들이 제시했던 문제들에 대해선 마지막에 추신의 형식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우선 간단히 끝낼 수 있는 것들부터 이야기하도록 하자. 집이란 것은 승민과 서연의 사이를 이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둘은 집이 같은 동네라는 이유로 건축학개론의 과제를 같이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동네인 성북동의 한 빈 한옥을 그들만의 공간으로 만들게 된다. 그 공간에 대한 애착은 승민보다 서연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데, 서연은 좀 거차창하게 이야기하자면 경계인-누가 이 표현을 썼더라?-이며 한 때 유행하던 튜니티 시리즈의 제목을 빌어 말하자면 무숙자인 셈이다. 서연은 자신의 집이 필요했고 누군가에게 얹혀 사는 것이 아닌 반지하라도 좋으니 자신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만한 물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승민이 빈 집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주저할 때 서연은 승민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일 수 있던 것이리 할 수 있다.(여기서 그렇게 쉽게 문을 열 수 있는 빈 집이 동네 아이들의 차지가 아닌 그들의 차지가 되는 것이 가지는 비현실성은 슬쩍 눈감아 주도록 하자.) 그 집을 둘이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들의 관계는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생의 수준을 벗어났음을 말해준다.
둘의사이가 가까워지며 서연이 승민에게 털어놓는 것도 결국 "자신의 집"이 없거나 "자신의 집이라 여길만한 그 어떤 것이 없음"에서 비롯되는 서연의 자의식들이다. 그렇게 집이라는 것이 가지는 현실적 그리고 상징적 의미에 대해 승민보다 일찍 눈을 뜨게 된 서연이 강남의 반지하 방에 기뻐하고 자신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 서울 명문대학교의 음악대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그의 이러한 자의식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서연이 자신의 마음을 우회적으로 승민에게 털어놓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싶은 집"의 그림을 그리고 그런 집을 "네가 공짜로 지어달라"는 것으로 대신한다. 여기서 또 이렇게 생각하자. 아무리 눈치가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집을 공짜로 지어달라"는 이야기를 못알아 듣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물론 그 정도 눈치가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비현실적이긴 하다. 그러나, 이 것은 영화 아닌가?
15년이 흐른 뒤 그들에게 집이란 것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확인하는 과정"이다. 집이란 것으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그들의 과거의 관계에 대한 복기의 역할을 하는 것이 15년이 지난 2011년 서연의 집짓기인 것이다. 15년이란 시간만큼 그들의 관계는 매끄럽지 못하다. 그 것을 보여주는 것이 승민의 디자인에 대한 서연의 계속적인 거절을 통해 관객에게 제시하고 있는 "과거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의 차이" 혹은 "현재 시점에서 두 사람의 둘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결국 서연은 애초 자신이 살던 집을 개축하는 것이 아닌 증축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그에 동의하면서 비로소 승민 또한 과거 서연과의 관계에 대한 기억들을 복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보고 "두 사람이 옛날의 감정을 떠올리며 과연 그들의 첫사랑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이 영화를 읽어내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 왜 그런지 이제부터 설명하고자 한다는 말씀!
주의깊게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애초 서연이 그린 그리고 그 것을 기초로 승민이 만들었던 집의 모형과 실제로 완성된 서연의 집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승민은 서연의 제주도 집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서연의 과거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리고그 과정에서그 둘은 과거에 대해 조금씩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물롱 애초에 서연은 둘의 과거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승밍을 찾아왔을 것이다.그 둘이 알아낸 것은 그들의 현재의 상대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15년전그 둘의 감정이다. 관객들은 서연의 그림과 승민이 증축한 서귀포의 서연의 집에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며 그들의 첫사랑이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과거의 그들은 승민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서연이 이야기한 집의 모형을 선물하려 했고 결국 그는 그 것을 버렸지만 서연은 그 것을 받았고 서연은 그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을 포터블 CD 플레이어를 사실은 승민이 받았다는 것과 그 사실을 마지막에 확인하는 것이다. 그 둘의 현재의 관계는 연인도 아니고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그들이 확인한 것은 그 둘의 과거의 첫사랑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추신>
유독 강명석의 리뷰에 대해 반감을 가졌던 이유는 강명석의 지적한 "전통적인 젠더의 문제"로 회귀한 것은 서연이라는 점에 대해 절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병들어 시한부의 삶을 사는 아버지르 따라 고향에서 사는 것이 전통적인 여성상으로의 회귀라면 상대방 여성의 순결에 집착하고 상대방을 "쌍년"으로 만드는 승민은 젠더의 문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점에 대해선 주간경향의 허지웅의 리뷰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니 그의 리뷰를 찾아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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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결국 전세대란의 사회상을 반영한 영화였군요.
답글삭제얼굴책에 링크 걸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혹시 아시나요?
답글삭제사랑 어쩌고 하실걸로 기대하고 왔는데.. 공간 이야기라서 맘에 듭니다. 영화를 안 본 입장에선 이런 글이 더 좋아요.
답글삭제전세대란의 사회상을 반영한 영화라는 데에 엄처청나게 공감합니다. 얼굴책에 링크를 거는 방법을.... 모르지요.... 죄송합니다. 찾아보겠습니다.
답글삭제댓글을 달 수 있을까? 흑흑
답글삭제이 모든건 MS의 음모군요. 크롬느님 만세!!
삭제크롬만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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