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0일 월요일

내 첫 곡은 그랬다.(Soundless Music)

1.
"이건 뭐! 완전한 짜깁기잖아!!!"
지금은 정확한 날짜도 기억나지 않지만(사실은 기억한다. 그러나 나도 쪽팔림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에 대해선 아는 사람인 관계로 일부러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쓴 곡의 악보를 보여줬을 때 들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난 전혀 그 누구의 곡도 참조한 적이 없었더랬다. 그래서 억울했냐고? 물론 그렇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처음으로 곡을 써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주변의-절대 우리 학교 새끼들은 아니었다.-이야기는 이런 것들이었다.
"네가 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 걱정되는 건 네가 지나치게 많은 음악을 들었다는 점이다. 음악을 대단히 많이 들은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문제 중 가장 큰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의도하지 않은 표절곡이 나온다는 거야."
지금처럼-물론 지금도 난 신서사이저가 없고 미디 프로그램도 없다. 전엔 썼지만- 장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어떤 사운드가 나오는지 대략 확인해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저 머릿속의 곡과 겉으로 나오는 곡이 어느 정도 비슷하기만을 바라며 잘 쓰지도 못하는-아시겠지만 워낙 유명한 악필이고 악보를 그린다고 해서 악필이 명필이 되진 않는다.- 악보를 써가며 만든 내 첫 곡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맨 앞 문장 저거 딱 한 줄이었다는 말씀!

2.
우스개소리였을 것 같다면 미안하게도 절대 아니다. 실제 내가 처음 쓴 곡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지게 되었으며, 내 일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가정한다면 굉장히 슬픈 일에 속한다고 할만한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때의 일은 지금도 뭔가 끄적거린 것을 절대 남한테 보여주지 않는 악습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앞서 이야기한 정도의 굴욕적인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당시는 고삐리 시절 아닌가? 지금은 최소한 고삐리는 아니라는 점에서 자그마한 위안을 삼고자 한다. 고삐리인가? 아닌가?가 왜 중요하냐고?
물리적인 나이가 고삐리의 나이가 아니라는 것보다 고삐리들이 흔히 음악에 막 다이브했을 때 겪게되는 오류들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런 오류들이 어떤 지점에서 비롯하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점이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아주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음악은 가오에서 시작하지도 가오로 끝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전엔 하나도 모르던 화성의 진행이라는 문제에 대해 다소의 이해가 생기면서 말도 되지 않는 널뛰기 멜로디를 가지고 "곡을 썼다"는 말을 과감하게 할 용기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되시겠다.
나이를 처먹으면 처먹을수록 머릿속에 뭔가 좀 더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것이 뭔가 새로운 것의 재료가 되거나 하진 않는 것 같다. 항상 이야기하지 않는가? 경제에 대해 가장 미친 듯 떠들어제끼는 시기는 "막 경제원론 수강을 끝냈을 때"라고... 물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 따위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늙으면 늙을수록 쪽팔리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다.

3. 물론 지금은 과거에 비하면 훨씬 더 매끄러운 뭔가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다. 순전히 미디 작업을 하기 힘들어 편곡까지 완성되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뭔가 막 떠오를 때 계속 기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날아가는 것들도 굉장히 많고...
문제는 얼마나 뻔뻔해지는가....일 것이다. 하지만, 뻔뻔해지려면 쪽팔릴 것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 법... 그러나 이제 쪽팔림을 모르기엔 귀가 좀 발달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날이 느는 것은 다른 인간들의 곡들을 까대는 일일 것이다. 아! 넌 발표도 못했거나 네 말을 충분히 받아들여 안한 주제에 왜 남들을 까냐고? 허허허... 어째서 다른 사람들의 곡을 평가하는 시간만큼 자신이 뭔가 완전한 것들을 표본으로 삼고 "이 정도면 되겠지..." 가 아닌 "반드시 이런 것들은 충족시켜야 해..."라는 음악적 미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실까?


그냥 주저리 주저리...

댓글 4개:

  1. 자미로콰이의 제이케이가 요즘엔 나이 들어서 작업하는 것과 공연하는게 한꺼번에 잘 안 된다. 최근엔 곡을 쓰고 노래를 녹음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라는 요지의 말을 했더군요.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생산성은 나이와 반비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 인터뷰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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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콕 박힙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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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지막 문장이라면... 그냥 주저리 주저리... 제가 쓸 수 있는 최고의 명문입니다. 음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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