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3일 화요일

Elton John-(The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of) The Lion King(1994)

대가가 가장 돋부이는 순간은 아무도 하지 못하는 일을 혼자 해냈을 때가 아니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을 그 중 누구도 쫓아갈 수 없을 정도의 경지의 수준으로 끌어올렸을 때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왜 엘튼 존 아저씨가 천재나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는 말 보다 대가라는 수사가 더 어울린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으반이 아닐까?라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1985년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자신의 평생의 파트너일 것이라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던 작사가 팀 라이스와 결별하고 그 해에 Chess을 발표했다. 물론 그 작품이 그다지 좋은 평을 얻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굳이 재삼 거론하지 않아도 아실 것이다. 오히려 그 둘이 결별한 후 먼저 성공적인 행보를 지속했던 쪽은 팀 라이스였다. 그리고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결별한 팀 라이스의 성공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바로 이 앨범이다. 그리고 그 후 여러번 팀 라이스와 엘튼 존은 같이 작업했다.

물론 지금 이 자리가 팀 라이스와 엘튼 존의 공동 작업의 역사를 논하자는 자리가 아니니 그 이야기는 이 쯤에서 마치기로 하고 아무튼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앨범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여러가지 요인들 중 팀 라이스의 가사라는 부분을 절대로 배제해선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두 명의 힘은 어느 정도는 무너져간다고 생각했던 디즈니의 위세를 1990년대 초,중반의 히트작들을 통해 다시 왕조의 수준으로 재건하는 데에 엘튼 존과 팀 라이스의 공헌도도 상당함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1970년 이후 엘튼 존은 언제나 최고가 아닌 적이 없었고 그가 1970년대 전성기의 제리 리 루이스 조차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피아노를 자신의 주된 연주 악기로 사용하는 뮤지션들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그에게 이 앨범이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이 앨범을 통해 엘튼 존은 자신의 영역을 한층 더 넓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 이후 엘튼 존은 이젠 뮤지컬의 작곡가로 더 활발한 활동을 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엘튼 존이 얼마나 뛰어난 보컬리스트인가를 이야기하고자 했응나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라 그냥 이 부분은 넘어가고자 한다. 엘튼 존의 보컬이랴 말로 두말할 나위 없이 대가의 수준에 오른 보컬이라는 데에 딱히 토를 달 사람도 없을 것 같고 그 것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있겠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는 진정 보컬리스트로서도 그의 곡 쓰는 수준 못지 않게 대가의 반열에 있는 아티스트라 할 것이다.


2017년 5월 16일 화요일

Eric Clapton-Slowhand(1977)

에릭 클랩튼의 본격적인 솔로 커리어는 데릭 & 더 도미노스를 떠난 이후라고 봐도 무방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1970년 Eric Clapton 앨범을 발매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길을 걸었다 할 수 있다. 워낙에 에릭 클랩튼의 인생 자체가(특히나 20대에는) 약에 찌든 인생이었기 때문에 한 때는 에릭 클랩튼이 죽지 않고 살 수 있을까?가 에릭 클랩튼에 대한 가장 큰 이슈였던 적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1970년 이후 다른 어떤 아티스트들 보다도 훨씬 더 꾸준한 활동을 했다 할 것이다.

Slowhand이 에릭의 별명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때는 이 별명으로 인해 국내에서 에릭 클랩튼은 보기 드물게 "느린 주법을 주로 구사하는 기타의 신"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 걱정할 일은 없다. 에릭처럼 속주에 능하고 빠른 코드 전환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냥 별명은 별명이다. 이에 대해서 별명이 슬로우핸드니 주법이 느릴거야!라는 쓸 데 없는 연상을 할 시간에 이 별명을 에릭에게 붙인 사람이 에릭 자신이 Master이라 했던 JJ Cale이라는 사실을 외우는 것이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훗날 언젠가 이 사람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일단 긴 소리는 하지 않고 이야기하자면 이 앨범의 1번 트랙인 Cocaine이 바로 JJ Cale의 곡이라는 점 정도만 이야기하도록 하자. 다들 잘 알테지만 이 앨범은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둔 앨범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일본과 한국의 팬들이 환장을 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무려 8분 45초에 달하는 6번 트랙 The Core이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이고 어찌 보면 1970년대의 에릭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시그니처 사운드라 할 수도 있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국내의 팬들의 2번 트랙인 Wonderful Tonight에 대한 사랑은 도가 지나칠(?)정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자신이 별 생각없이 주구장창 "역시 원더풀 투나잇"을 외쳐댔던 사람이라면 큰 맘 먹고 The Core을 딱 세 번만 연속해서 들을 것을 권한다. 원더풀 투나잇"만" 열심히 듣고 "에릭 클랩튼의 주법은 느린 주법이 맞는데 뭘 개소리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트랙이 얼마나 에릭의 음악에 있어 이례적인 곡인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실상 이 트랙은 기타의 프레이즈와 색소폰은 물론이고 드럼의 심벌즈 사용까지 단 1초도 낭비라 할만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꽉 짜여진 곡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 곡이 주는 긴장감의 극치를 한층 더 높은 곳의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에릭 클랩튼과 이본 엘리먼의 보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데릭 & 더 도미노스 시절의 에릭이 야드버즈와 딜라니 바니 & 프렌즈나 존 메이올스 블루스 브레기커스 데릭 & 더 됨노스를 거쳐 블루스 아티스트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완성시켜놨는지를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시기였고 그런 20대 중반까지의 에릭의 잠재력이 폭발한 것이 Derek and the Cominos의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 앨범이었다면 솔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의 에릭이 음악적으로 훨씬 더 유연해졌으며 그런 부분이 에릭 본연의 블루스 음악 역시 훨씬 더 탄탄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ㅇ체험할 수 있는 음반이 바로 이 음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유명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초판의 마리아 막달레나 역으로 유명한 Yvonne Elliman이 앨범에 배킹 보컬 및 보컬로 참여하고 있으며 Lay Down Sally와 The Core의 경우 이본의 공헌이 없었다면 이 정도까지 대단한 트랙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The Core의 그 긴장감이 넘치는 강렬함 뒤에 이어지는 May you never이나 4번 트랙인 Next time I see her등 정말 버릴 트랙이라고는 하나 없는 완벽에 가까운 앨범이라 하는 것이 입이 아플 정도의 앨범이라 해도 그리 큰 과장은 아니리라는 생각이다.


2017년 4월 5일 수요일



Wikco-Yankee Hotel Foxtrot(2001)

이 앨범을 한국어 구글에서 검색할 경우 아마도 발매일이 2002년 4월 23일로 나올텐데 그 것은 이 앨범이 CD에 담겨 음반의 형태로 발매된 날짜고 맨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그보다 훨씾 전인 20019월 18일 즉 911 테러로 미국의 심장부가 공격받은 후 정확히 한 주 후에 온라인 상에서 스트리밍으로 대중에게 발표되었다. 둘 중 어느 날을 이 앨범의 공식적인 발매일로 생각하건 그 것은 늬들 자유지만 공식적으로는 이 앨범은 2001년의 음반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만 같이 기억하고 있으,면 별 문제 없을 것이다.

언제나 그래돴듯 이 곡의 모든 곡들은 철저하게 팀의 프런트맨인 Jeff Tweedy와 Jay Bennett이 공동으로 쓴 곡들이다. 다만 1, 7 그리고 마지막 트랙인 11번 트랙은 Heff Tweedy 혼자 쓴 곡이고 트랙의 가사는 그야말로 언제나 그랬듯 제프 트위디 개인의 작품이다. 여기서 언제나 그랬듯 제프와 제이의 공동작곡이라는 이야기는 이 앨범까지의 기록을 기준으로 하는 말이니 착오가 없도록 하자. 현재는 Jay Bennett 역시 팀을 떠난 상태이므로 언제나라는 말이 지금 시점까지 통용되는 말은 아니다.

또 한가지 알아두면 건강에 해롭지 않ㅇ느 사실 하나는 이 앨범 하면 떠오르는 상징과도 같은 커버의 사진의 건물은 양키 호텔로 알고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사실은 이들의 고향이자 활동무대인 Chicago의 Marina Tower이다. 그리고 정말 의외인 사실은 처음부터 현재까지 윌코를 떠나지 않고 있는-이 팀은 워낙 멤버 교체가 잦기로 유명한 팀인 것 정도는 알아두도록 하자.-의외로 John Strratt으로 팀의 결성부터 지금까지 다소는 성질이 까다롭다고 알려진 Jeff Tweedy의 바로 옆에서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는 멤버다.

이 앨범에 대한 찬사는 인터넷을 뒤지면 차고 넘치는 것이니 다른 측면의 이야기를 하자면 이 앨범으로 음악적으로 정점을 찍은 후 그 후엔 이 수준의 앨범을 내지 못하고 있는 Wilco의 현재 음악적 위치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앨범이 이 앨범이기도 하다 할 수 있다는 점인데 애초 창단멤버가 아니었던 Jay는 팀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고 특히나 믹싱 작업에 있어서는 전문적인 엔지니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능력으로 이 앨범을 2000년대 초반의 가장 중요한 앨범의 위치에 끌어올린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Jay와 Jay의 나름 오랜 음악적 동료인 Jim O'Rouke에게 일종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윌코를 같이 하던 내내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희대의 명반이라 불리는 이 앨범을 끝으로 제프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 현재까지 보편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이전의 윌코의 앨범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있는지는 각각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 앨범은 자신의 다른 프로젝트였던 Loose Fur의 사운드를 윌코의 음반에 표현하고 싶었던 Jeff의 기획하에 진행된 프로젝트이고 2001년 초 팀의 드러며였던 Ken Coomer을 Glenn Kotche로 교체한 후 본격적으로 페즈의 이런 구상을 구체화했으며 Loose Fur의 멤버인 Jim O'Rouke의 음악적 영향이 음반의 여러 군데에서 드러나는 것 역시 이 음반의 기획단계에서부터 비롯된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전 앨범에서의 윌코의 사운드가 얼터너티브에 훨씬 더 가까웠다면 이 앨범의 음악은 그보다는 훨씬 더 Art Rock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각종 매체에서 2002년 최고의 음반으로 이 앨범을 선정했고 특히나 다소 그 일관성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롤링 스톤에선 2012년에 급기야 이 앨범을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중요한 500 장의 앨범의 하나로 꼽기도 했을 정도로 2001년 2002년 두 해에 걸쳐 비평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앨범이기도 했고 어떻게 본다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르는 영국의 Art Rock 앨범들의 음반 스타일과 대단히 유사한 것으로 영겨지지만 그 것이 당시엔 오히려 대단히 실험적인 시도로 평가를 받았던 앨범이다. 언제 들어도 좋다는 것은 덤이지만






2017년 3월 23일 목요일

Vinyl은 음악시장의 대안이 될 것인가?

Vinyl은 음반업계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일단 많은 사람들이 쓰는 LP이라는 용어는 이 음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LP이라는 단어는 Long Play의 약자로 SP, EP그리고 LP이 세 가지의 음반의 재생시간의 길이로 음반ㄴ의 종류를 구별할 때 재생시간이 가장 긴 음반-흔히 이야기하는 앨범-을 의미함을 기억해 두자.

현재 많은 아티스트들이새로운 음반을 낼 때 Vinyl을 같이 발매하거나 자신의 과거 음반도 Vinyl으로 재발매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된 것 같은데, 사실 이런 유행이 언제 시작된 것인지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대단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있었는지 혹은 디제잉 하는 사람들이 Vinyl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 수요가 생기겟다는 판단으로 음반사들이 시작한 일인지 그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아는 바가 없으므로 일단 넘어가자.

일단 다음의 세 가지를 살펴 본 후 다시 예측을 해보도록 한다.

1. 녹음 방식의 문제
지금 현재 발매되고 있는 바이널의 경우 대부분 지금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방식의 소스를 바이널로 만드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바이널이 CD이나 다른 저장장치에 비해 확실히 앞서는 점은 음의 재생대역이 다른 저장장치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데에 있다. 그 유명한 페퍼상사 앨범의 마지막 부분에 존 레넌이 넣었다는 사람은 들을 수 없고 개는 청취가 가능한 음역대의 소리가 CD 발매 이후에는 더 이상 화제거리가 되지 않는 것도 이런 데에 있다.

문제는 바이널의 이런 장점을 그대로 살리려면 애초에 소스 자체를 릴 카세트 녹음기로 녹음해야 하는데-흔히 이야기하는 데모 테입도 이 릴 테입 작업을 통해 만든다.- 이 릴 데크라는 것이 의외로 장소를 많이 차지한다. 지금 대형 기획사의 경우에 조그만 사무실 하나 정도의 스튜디오를 자신들이 고용한 프로듀서 당 하나씩 주고 거기서 작업을 하는 시스템의 경우 건물의 크기를 넓히거나 프로듀서 몇 명을 해고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과연 음향기기를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들-특히나 그들의 카세트 데크로 유명했던 REAC 같은 회사-들이 릴 데크의 생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중요한 것은 지금처럼 디지털 방식으로 녹음 된 소스를 그냥 Vinyl에 옮기는 방법으로는 바이널의 가장 큰 장점이라 이야기하는 거의 무한대의 음역대-무한대라는 말에 대해 오해 없기 바란다. 실제로 무한대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청각이 가장 예민하게 발달한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 범위를 거의 100 퍼센트 활용해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를 재생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전혀 활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나중에도 이야기하겠지만 공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달한 기술이 다시 공간을 더 많이 필요하게 되는 방식으로 역주행한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경험에 의해 도출해낸 생각이라면 바이널의 대대적인 유통을 위해 다시 릴데크를 사용해서 데모를 만들고 하는 번거로운 일을 하게될지는 미지수일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화지 않을까?

2. 재생기기

일단 아주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럴만한 사람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일단 바이널 음반은 휴대용 재생기라는 것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절대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누가 알겠는가? 붐박스를 들고 다니듯이 바이널 음반과 그의 재생에 필요한 도구들을 가지고 다니면서 듣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열어 두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할만한 사람은 특수한 목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거의 없다고 보아도 상관없을 것이다. 물론 이 것으로 이미 이 소제목에 대한 이야기는 끝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그 것은 좀 과하게 무성의한 일이고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흔히 턴테이블이라 불리는 바이널 음반을 위한 플레이어는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보급될 확률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클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문제가 기승전 음질이 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앰플리파이어의 출력과 무관하게 어느 정도 바이널 음반이 재생하는 음악을 제대로 즐기려면 피할 수 없는 것이 기기가 커져야 한다는 점이고 그 중에서도 당연히 커져야만 하는 것은 스피커다. 그리고 안타까운 점은 스피커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 좋은 환경에서 바이널에 수록된 음악을 더 쾌적하게 재생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려면 스피커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스피커가 무거워져야 한다는 점이 가장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과거 대형 스피커를 사용해 봤다면 알겠지만 소리가 바닥으로 흡수되는 것을 막기ㅣ 위해 스피커의 하단에 모래나 그 밖의 충전재를 사용해야만 한다는 점이고 이렇게 되면 당연히 스피커는 무거워질 수 밖에 없다.

물론 말년에- 주로 일본 제품들을 중심으로 저음을 위한 스피커인 우퍼나 고음질을 위한 스피커인 트위터의 크기를 줄이고 지금은 쓰지 않는 석면을 스피커 내부에 사용해서 스피커가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소형의 고출력 스피커들이 출시 되기도 했다. 90년대 초까지 아이와와 소니는 이 쪽의 경쟁을 엄청나게 했더랬다. 이 것으로 스피커가 무거워지고 커지는 것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은가?라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일견 이 이야기는 근사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확률이 전혀 낮은 것도 아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엔 또 다른 문제가 존재한다.

현재 스피커라 불리는 음향기기의 주류는 이미 블루투스 기기로 넘어간지 오래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그나마 홈 씨어터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던 대형 스피커들도 사운드바라 불리는 제품들로 대체되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단순히 크기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블루투스 스피커가 많이 팔리고 시장의 대세가 되어가고-심지어 JBL이나 BOSE 까지도 블루투스에 자신들이 사활을 걸고있지 않은가?-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그 정도의 음질에 사람들이 더 이상 불만을 갖지 않는다는 이야기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바이널 음반을 같이 출시한 경우 바이널은 초도 물량이 소진된 후 재생산을 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3. 너희 집 엄청 크니?

대부분의 음반 매장의 경우 바이널 음반도 책장과 같이 생긴 진열장에 그 매장 나름의 분류 방식에 따라 제품들을 전시해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기서 늬들이 잘 모를 수도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이널 음반을 이런 식으로 보관하는 것은 바이널 음반의 상태를 오랫동안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과는 거리가 먼 방식이다. 이럴 경우 바닥에 닿게 되는 원의 한 점에 지나치게 많은 중량이 실리게 된다는 점이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태로 오래 둘 경우 바이널이 휘어지게 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위에서 이야기한 방법으로 보관하기만 했는데 바이널 음반을 꺼내 보면 음반이 휘어져 있는 경우를 접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바이널 음반들을 보관하는 데에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은 10장에서 15장 사이의 음반을 테이블의 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은 후 가능하다면 맨 위에 무게가 좀 있는 책을 올리는 방법을 이용하여 보관하는 것이 가장 길게 최적의 음반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너희 집이 엄청 크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쪼 한가지의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바이널의 낭만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이른바 "빗소리"라고도 하는 바이널 특유의 찍찍 거리는 논이즈들인데 일단 이 점부터 알아야 한다. 이 소리는 절대 바이널의 특권이 아니다. 갓 출시되거나 보관이 완벽한 음반에선 이런 소리를 발견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바이널의 소재 자체가 정전기에 지극히 취약하고 먼지가 잘 앉기 때문에 바이널의 관리 상태가 안좋다는 이야기이고 만일 이 소리를 들으며 "음 역시 이 소리가 있어야 음악을 들을 맛이 나지"라 이야기하는 놈이 있다면 그런 놈은 바이널은 고사하고 기본적으로 음반을 통해 음악을 들을 자격 자체가 없는 놈이다.

이를 피할 수 있는 법은 꾸준히 청소를 해주는 것 뿐인데 대부분 처음엔 열심히 하다 시간이 지나면 관두는 경우도 있고 이 것이 음반의 표면에 직접 흠을 내면서 소리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음반이 제작되기 때문에 청소를 잘못하다가 이 홈을 잘못 건드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접어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 되시겠다. CD의 경우 바이널을 급속하게 대체하면서 음반시장의 대세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점도 음악을 입력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보관과 관리가 용이했던 점 $때문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시 바이널의 시대가 올 것인가?에 대해선 다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바이널의 재생산이 활발해지는 것을 전체적인 음반시장이 살아나는 것으로 해석하기엔 한 번 더 조십스러워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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