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4일 목요일

아님 말고 1000곡(110)







<나름대로 특집 1>
특집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 것들을 끝낸 후 입을 씻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와 동의어 되시겠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말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요걸 쫑으로 만들어보겠다는 말씀은 아니니 혹시라도 이 게시물을 계속 기대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별 걱정 안해도 되시겠다는 이야기이다. 뭐 대통령도 청와대 수석도 대국민 협박을 하는 마당에 이 정도는 애교지 뭐...

110. Gaucho-Steely Dan(1979)-

티렉스를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이라면 지겨우실 것이다. 항상 입술에 쥐가 나도록 했던 이야기 여지껏 인류가 대중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했던 음반들 중 가장 훌륭한 음반을 꼽으라고 한다면 항상 첫손에 꼽는 음반이 바로 이 음반이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사적으로도 이 음반을 접했던 1990년을 기준으로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다 생각할 정도로 음악을 듣는 귀가 전혀 다른 수준에 올라갔다고 자부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음악 감상자로서의 클래스가 다른 차원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다. 이 음반을 접하기 전의 티렉스가 그저 음악이 좋아서 똥오줌 못가리고 까불대던 꼬마였다면 스틸리 댄의 가우초를 접한 이후의 티렉스는 그 어느 곡을 들어도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경지에 잉르렀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전에 노토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스틸리 댄은 자신의 정서엔 맞지 않는다."고... 사실 스틸리 댄이나 보즈 스캑스나 하는 그런 류의 음악들은 한국의 대중음악 팬들에겐 다소 버거운 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런 음악들은 지나치게 미국적인 것"이기 때문일텐데 사실 그런 점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미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선 흑인들의 음악에 베이스를 둔 백인의 음악이 가장 덜 소개된 음악장르이기 때문에 노토리의 반응이 그랬던 것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특히나 그런 부류의 아티스트들이 추구하는 음악들은 대부분 장르의 구별이 대단히 애매한 관계로 체감하는 낯섦은 더욱 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과학적 설명 등을 기대하진 않으셨으면 한다. 이런 것들이 과학적으로 설명된다면 티렉스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탈 때 어떤 때엔 왼발을 먼저 올리고 어떤 때엔 오른발을 먼저 올리는 것까지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과연 스틸리 댄의 앨범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지극히 평작에 그쳤던 Two against nature이 발매된 2000년보다 무려 20년 전인 1980년에 발매된 스틸리 댄의 Gaucho는 스틸리 댄이 재결성 되기 전 마지막으로 출반되었던 스튜디오 앨범이었다. 그리고 이 앨범이 나오기 전까지의 과정을 굳이 이야기하자면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져도 충분하리만치 극적인 동시에 막말로 안구에 엄습하는 쓰나미 없이는 들을 수도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본디 이 앨범의 작업이 시작된 것은 1978년이었다. 여기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함은 앨범을 구상하고 곡작업에 들어간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스튜디오 작업에 착수한 시점이 1978년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티렉스 색히가 스틸리 댄을 좋아한다더니 스틸리 댄은 완벽주의자들이 모인 팀이구나!"라고 말씀하신다면 내 대답은 딱 한 문장이다. "나도 그런 이유였다면 무지 좋았겠다. 임마!"

1978년부터 1980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Walter Becker이라는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은 스틸리 댄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이며 베이스도 치며 팀에서 공동 작곡자와 공동 제작자로도 활동하는 인물이다. 그는 앨범 작업에 들어간 이후 교통 사고를 당한다. "아! 빌어먹을 월터의 교통사고 때문에 이 앨범의 출반이 늦어졌구나!"라고 말씀하신다면 티렉스는 또 이렇게 답하고자 한다. "설마 그게 다겠어?" 그렇다면 월터 베커에겐 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 기간 동안에 (이름은 밝히지 않도록 한다.) 월터는 그의 여자친구의 가족들로부터 피소된다. 이유는 월터의 여자친구의 약물중독과 약물남용에 대한 책임이 월터 베커에게 있다며 그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었던 것이다. 재판의 결과가 정확하게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맞기겠지만 아무튼 그 일로 월터는 감옥에 가진 않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무죄였는지 합의를 했는지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 앨범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이 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면 "걸작은 피눈물이 없이는 절대 탄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잘난척하며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앨범에 얽힌 안구에 쓰나미 몰려올 이야기는 아니 쓰나미가 떼로 몰려올 이야기는 또 있다. 이 앨범에 대한 소유권을 대상으로 MCA Records와 Warner Bros. Records이라는 메이저 음반회사가 법정다툼까지 벌이게 된 것이다. 여기서 끝나면 얼마나 좋겠난가만 사고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음반의 엔지니어링을 담당한 엔지니어가 전곡의 완성 녹음본이 들어있는 테입을 통째로 분실한 것이다.(그 후에 그 테입을 찾았던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울터 베커와 도널드 페이건은 어쩔 수 없이 이 앨범의 편곡 작업을 통으로 새로 시작하여 완성하게 된다. 이에 대해 후대의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좀 더 대충하더라도 별 상관이 없었을 일을 음반 작업에 있어서의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두 멤버에 의해 앨범 작업이 더 힘들어지고 발매가 더 늦어지게 된 것이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곡은 아니지만 이 앨범의 타이틀 트랙이자 비닐판으로 발매되었을 때 사이드 B의 첫번째 트랙이었던 Gaucho는 월터 베커, 도널드 페이건 그리고 키스 제릿(Keith Jarret)세 명의 공동 작곡으로 완성된 곡인데 이 곡은 키스 제릿에게 헌정하는 곡이기도 하다. 유일하게 싱글로 싱글로 히트했던 곡인 Hey Nineteen은 빌보드 팝 싱글 차트에서 10위까지 올라가기도 했고 1981년 그래미는 이 앨범을 "비 클래식 분야의 최고 엔지니어링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발매한지 무려 30년이나 지났으나 아직도 스튜디오 음반 작업의 전범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앨범이다. 차례대로 다 링크를 하려 하니 모두 다 들어보시기 바란다. 유투브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트랙들로서는 나름대로 굉장히 음질이 훌륭한 편이다. 후대의 평론가들이 이 앨범에 대해 보낸 찬사인 "인류 역사상 가장 스타일리쉬한 음반"이라는 찬사는 덤 정도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01 Babylon Sisters

02 Hey Nineteen

03 Glamour Profession

04. GAucho

05 Time out of Mind

06 My Rival

07 Third World Man

댓글 5개:

  1. 이런! 초안 작성 날짜가 이게 먼저라 두번째로 올라가있군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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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제야봅니다. 티렉스님이 아끼시는 스틸리 댄이 숨어있었네요. ^^;
    배철수형아가 강추하면서 자주 스틸리 댄 음악을 틀어주시는데, 들을수록 묘한 감칠맛이 있더군요. 이제 좀 빠져봐야겠습니다. 그리고 키스 자렛 트리오가 올가을 온다는데 이런 젠장! 평일공연입니다. 지방서민의 설움이 이런걸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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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서울도 문제는 문제인 것이 재즈 공연들은 유독 대관료가 비싼 공연장에서 하다보니 말도 안되게 표값이 뛰고 서울 살아봤자 역시 문제는 경제력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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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제서야 봤어요. 정말 더 이야기하면 입아프죠. 닥치고 감상하겠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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