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4일 토요일

아님 말고 1000곡(105)






105 Body and Soul Etc.-Coleman Hawkins-
어떤 이들은 이 인물이 1901년에 출생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그에 대해 입증할만한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고 있진 못한 관계로 공식절으로 이 사람은 1904년 11월 21일 생인 것으로 되어있다. 이 사람은 미국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Jazz Saxophonist들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테너 색스를 재즈라는 음악에서 독주 악기로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것만으로도 그의 이름을 반드시 기억애햐할 충분한 명분이 된다는 것이 개인적 견해지만 뭐 그러기 싫으면 그냥 싹 다 잊어버리고 살아도 당신이 밥벌이하는 데에는 1g의 지장도 없으니 뭐 알아서들 하시길 바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재즈에 테너 색스를 사용한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콜먼 호킨스 이전의 테너 색스라는 것이 재즈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테너 색스라는 악기는 최소한 재즈라는 장르에 있어서만은 콜먼 호킨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콜먼 호킨스라는 이 위대한 재즈 뮤지션은 스윙 재즈의 시대를 거쳐 비밥 재즈의 시대에 자신의 만개한 기량을 선보였던 인물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만 할 것이 있다. 이 게시물을 보시는 여러분들 중 대부분은-심지어 얼마 전까지의 티렉스도- 보통 비밥 재즈라는 장르의 이름을 제시하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인물이 있다. 그 이름도 거축한 Charlie "Bird" Parker... 그렇다. 그는 재즈의 역사가 낳은 가장 위대한 천재 색소포니스트들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리고 비밥 재즈를 이야기할 때 만일 이 인물의 이름을 빼놓게 된다면 그는 아마도 비밥 재즈가 뭔지 모르는 인물이거나 비밥 재즈라는 것이 비가 오는 날 밥을 먹을 때는 재즈를 들으면서 먹으면 분위기 죽인다... 라는 불결한 연상을 할만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할 것이다. 하지만, 콜먼 호킨스라는 인물은 비록 찰리 버드 파커만큼의 대단한 천재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비밥 재즈의 시대를 서술하는 데에 있어 찰리와 함께 반드시 거론되어야할 인물임에 틀림없다는 점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당연히 찰리 버드 파커와 콜먼 호킨스가 협연을 한 곡도 있다.(그 둘만 같이 작업을 한 것이 아니었고 그 유명한 Lester Young도 그들과 함께 작업을 했더랬다.) 그의 고향은 미주리주의 Saint Joseph이라는 곳이었는데, 우연치 않게-그 이류가 정확히 서술된 문헌을 발견하지 못한 관계로 이렇게 말씀드린다.- 고등학교를 시카고로 진학하게 되었고 당시 스윙 재즈의 본거지나 다름없었던 시카고에서 그는 (그 학교의 이름이 Topeka Highschool이었다 한다.) 학교에서는 물론 학교를 벗어난 지역에서도 자연스럽게 당시 미국 대중음악의 본거지라 할만한 시카고가 그에게 음악적으로 베풀 수 있는 많은 혜택의 수혜자로서 살아갈 수 잇었던 것이다. 그는 이런 와중에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1921년에 Mamie Snith's JAzzHound이라는 이름의 밴드에 합류하게 되었고 공식적인 그의 음악적 커리어의 시작은 이 밴드와 함께였다 한다. 그 후 호킨스는 이 팀에서 1923년까지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해 호킨스는 뉴욕시에 정착하게 되며 이는 그가 본격적으로 직업 연주가의 길에 들어섰음을 의미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는 1924년부터 1934년까지 뉴욕에서 Fletcher Henderson's Orchestra이라는 이름의 밴드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는데 그 팀에서 그는 자신의 주 연주악기인 테너 색소폰 외에도 클라리넷과 베이스 색소폰(이 악기는 평생 실물을 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까지 연주하며 다중악기주자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특히 1924년부터 그 다음 해까지는 그 유명한 루이 암스트롱의 눈에 쏙 드는 연주로 그의 무대에 항상 서기도 했다.

1934년 Jack Jylton의 밴드에 가입하며 그는 런던으로 무대를 옮기게 된다. 그리고 1939년까지 거의 쉴사이 없는 유럽 투어를 다니게 되었는데 좀 늦은 편이긴 했지만 이 투어를 통해 드디어 그는 soloist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 때 그와 함께한 이 때 그와 함께했던 연주자로는( 놀라지 마시길 바란다.) Django Reinhadr와 Benny Carter등이 있는데, 이 세명이 모두 함께 투어에 참가한 해는 1937년이 유일하지만 그 impact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들의 투어를 중요하게 여겨야할 충분한 이유는 이들의 투어가 지속되고 꾸준한 반향을 얻었던 것을 바탕으로 하여 대륙(당연히 유럽 대륙을 말하는 것이겠지요.)과 신대륙과의 Jazz라는 장르의 시차가 상당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유럽 대륙의 스웨덴같은 재즈 강국이 탄생하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콜먼 루이스가 본격적으로 재즈 신에서 자신의 이름을 각인하긴 했어도 그는 스윙 재즈에서부터 (1928년에는) 루이 암스트롱의 "West and Blues"의 녹음에 참여하는 등, 녹음 작업에 있어선 "자신만의 색채가 다소 약한 연주자"였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랬던 그가 본격적인 "A Class"에 속하게 되는 계기는 미국의 재즈 신에서 Bebop이라는 하위 장르가 말 그대로 휠을 잡던 시기가 열리던 바로 그 사건이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다음 게시물에 이어가도록 한다. 줴길... 한번에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길어졌잖아...오늘 링크를 건 Body and soul이라는 곡은 호킨스가 본격적으로 비밥신에서 휠을 잡기 이전 빅밴드 스타일의 동명의 타이틀의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서 발매 연도는 1939년이다.

Coleman Hawkins - Body & Soul

댓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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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콜먼 호킨스, 레스터 영과 비밥에 대한 얘기들은 다음에 들려주실거죠? 레스터 영도 좋지만 콜먼 호킨스의 열정적인 연주도 참 좋네요. 그나저나 장고 라인하르트와의 투어연주는 한번 들어보고 싶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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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콜럼 호킨스가 본디 레코딩 아티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는 바디&소울 같은 빅밴드 스타일으이 곡들을 연주하다 쫄딱 망했다 하더군요. 말씀하신 장고 라인하르트와 연주한 실황은 동영상은 없는 것 같고 음우너은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콜먼의 비밥 스타일의 연주들은 다음 게시물에서 들려드릴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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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위에 오타입니다 콜런 호킨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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