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지상파 언론 혹은 제도권 언론이란 이른바 타블로이트 신문들보다 훨씬 더 우월한 위치를 이용해 타블로이드판 신문들보바도 훨씬 더 저급하고 짜증나는 이슈들을 "손가락질을 덜 받으며" 만들어낼 특권을 지니고 있다. 그 것이 바로 지상파 미디어의 힘이다. 물론 지상파라는 이름은 지상파 방송 3사는 물론 이른바 중앙 일간지들-그 것이 6대 일간지이건 8대 일간지이건 간에- 역시 이르는 말이다. 애초에 선정성 자체가 가장 큰 무기인 3대 일간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끔은 특정한 결론을 미리 정해놓은 뒤 그 것을 계몽적 지도자의 위치에서 대중에게 강요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마디로 해선 절대 안되는 "쓸 데없는 선생질"을 하고 자빠진 경우가 허다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어이없는 일들이 가능했던 것 중 하나가 소위 "문화 특히나 대중문화 분야"인데 내 다른 분야는 거론할 여력이 안되고-물론 영화에 대해선 굉장히 생산적인 담론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음악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첫 단락에서 신문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나, 사실 신문 그 자체에 대해 뭐라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듯해 보이는 언론 역시 선정적이긴 마찬가지고 그 것이 언론의 속성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른바 주류 대중음악 비평계의 스타들을 만들어낸 것이 모 신문사이고 그리고 그들로 인해 그들이-어느 그가 어느 그인지 알아맞혀 보세요!- 그 바닥에서 권위를 얻게 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책임은 인정해야할 것이란 생각이다. 내가 이야기하려고 한 것은 그-누군지 대놓고 이름을 말할 수도 있으나 뭐 어차피 다 아는 K씨 L(I?)씨인걸 뭐 새삼스레...-들이 줄기차게 제기해왔고, 그래서 이런 요소들이 빠지면 제대로 된 한국 대중음악 평론이 아닌 것처럼 되어버린-소문에 의하면 누구는 가요평론가라는 직함을 무지하게 혐오하신다 하여...-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경향신문의 모씨와 모 기획사의 대표 모씨와의 대담을 찾아 읽어보시려면 보시고 마시려면 마시고 링크는 생략하도록 한다.
1. Rock and roll에 대한 편집증
Rock음악에 대한 대단히 큰 오해가 있는데, 그런 오해가 가장 심한 곳은 공화국일 것이다. 필히 지적해야 하는 오해라는 것은 서구, 특히 영미의 음악, 더 좁게는 미국의 대중음악 필드에서 휠을 잡고 있는 장르가 Rock 음악이라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미국에서 Rock이라는 이름의 음악장르가 미국 대중음악 전체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는 점이다. 공화국과는 달리 장거리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공화국의 차들이 기본 옵션으로 제공했던 카 스테레오의 카세트 데크마저 옵션인 미국이라는 국가에서 FM방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놓고 그들의 방송은 공화국의 FM방송이 유명 엔터테이너 DJ의 잡담이 주가 되는 것과 달리 Station 자체가 하나의 장르의 음악만을 방송하며 음악이 방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진행자의 뻐꾸기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월등히 높다. 왜 갑자기 라디오 방송국 이야기를 하는가? 궁금하실 수 있을텐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차피 전국방송이라는 것의 영향이 공화국보다는 덜 압도적인 동시에 케이블 텔레비전의 가입률이 낮은 미국에서 FM Station의 전문 음악 방송 채널들 중 어떤 장르가 가장 많은가?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르-인기라는 것이 한 가수나 한 곡의 월등한 시장지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상적으로 듣는 음악들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음악을 말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인가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된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것은 곧바로 시장의 규모와도 무관하지 않다. 한 곡을 틀 때마다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수입이 배분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공화국의 몇몇 주류 대중음악 평론가들의 바람과는 달리 미국에서 가장 많은 스테이션에서 방송되는 장르는 rock음악이 아니라 Country and Western이다. 그리고 시장의 상황이 대단히 많이 바뀐 지금까지도 흑인음악이 대약진하며 컨트리 웨스턴의 위치를 위협하는 평세지 rock 음악 전문방송의 숫자는 컨트리 & 웨스턴 전문방송의 숫자보다는 감소폭이 덜하지만 가장 많다는 이야기를 하기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이다. 이 것은 쪽팔리긴 해도 공화국의 수많은 라디오 방송들 중에서 나오는 음악의 장르들 중 트로트 곡들이 결국엔(심심하시면 일요일 정도에 하루 종일 이 채널 저 채널 라디오를 돌려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으실 것이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가 트로트라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첫번째 이야기의 결론이 Rock음악이 미국의 대중음악을 주도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것이고 미국 사회 전체로 보면 컨트리 & 웨스턴, 음반 시장을 보면 흑인음악이 휠을 잡고 있는 장르라는 점을 이야기한 것이라면 두 번째 이야기는 "그들이 그렇게도 오매불망하는 rock이라는 장르"가 그들의 바람대로 과연 "저항적이며 사회적인 메세지로 충만한 음악인가?"라는 점이다. 가장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Rock and Roll의 태생이 과연 사회적인 메시지를 음악에 담기위한 수단으로서 음악을 사고하던 사람들의 시도였던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불초한 티렉스의 게시물들에서 이미 수차례 언급했지만 Rock and Roll은 흑인 음악에서부터 파생되어 나온 장르이며 그 뿌리가 블루스에 있긴 하나 블루스에 비하면 문학적 성격이 대단히 약한 장르라 할 것이다. 블루스와는 달리 대부분 초창기 록앤롤 곡들의 가사를 보면 대단히 직설적이고 좀 심하게 보면 "개념없는 노는 아이들의 푸념"에 가까운 내용의 가사들임을 아실 수 있을 것이다. 더우기 1950년대 일렉트릭 기타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백인 아해들이 이 장르에 뛰어들면서 그런 상황은 더 심해졌다.
머리에 글리스를 잔뜩 바르고 가죽 자켓을 걸친 아해들이 무리들 중 한 놈의 집의 차고(Garage 거라쥐라고 발음한다나 뭐라나)에 모여 연주를 하던 아해들은 대부분 "학교 가기 싫어하는 양아"들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척 베리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그들보다 한참 후배인 엘비스나 비틀스의 초창기 음악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록&롤 음악이 베트남전 반대 운동, 히피 무브먼트,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유행이라는 세가지 요소와 결합되며 "저항적인 색채를 가지게 되었"던 것은 인정한다. 그 것까지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 식자층들이 rock이라는 장르에 뛰어 들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곡들을 양산해내기도 했지만, 그런 팀들의 음악에서 보여지는 저항의식이나 사회적 메시지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 효과의 하나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것은 모든 헤비메탈 음악이 사타니즘과 관련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으로 이어서 이야기하게 될 내용이지만, 음악에 대한 비평 담론이 자꾸 이런 식으로 "가사의 사회적 의미"에 치우치면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할 것이다.
(심하게 길어졌고 본디 계획이 그랫던 관계로 다음 번에 이야기 이어지겠다.)
퇴근길에 철수아저씨 방송을 자주 듣습니다만.. 음악평론가 임선생의 락스피릿.. 등등의 말들은 질려도 좀 많이 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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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아저씨와 의 꿈얘기가 흥미진진합니다. 마이클 스타이프 뒷담화 깐 얘기 좀 더 풀어주시죠.. ^^;
보기보다 순진한 티렉스님~ 꿈이 상당히 버라이어티하군요.
답글삭제글구 저두 며칠 전에 우연히 봤어요.
티렉스님의 상쾌한 아침을 여는 청순하면서두 귀엽고 예쁜 그녀요.^^
허밍님, 오잉? 설마 저를...? *^^*
답글삭제어느 정도 공감하는 이야기네요. 그리고 다른 분들 말씀처럼 꿈이야기가 참 재밌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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