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님 말고 1000곡
139. Hoochie Coochie Man-Muddy Waters-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 물론 대단히 어리석은 질문이긴 하지만 그 충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기 때문에 고심에 고심을 하다 답을 해주긴 하는 그런 질문,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재즈 아티스트가 누구인가?" 이런 류의 질문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보다도 훨씬 더 짜증나는 질문임을 이 블로그를 들락날락 하시는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어이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반발을 하거나 "네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 이야기를 못한다. 진정한 고수는 항상 하나인 법"이라는 류의 말을 해대는 새끼들도 존재한다. 그래서 답은 항상 '고심하는 척 하다' 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적어도 내 대답은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눈물을 머금고 "듀크 엘링턴이 아닐까 합니다."다. 마찬가지로 (다행히도 사람들은 블루스에 대해선 재즈에 대해서보다 둔감하다.) 블루스 아티스트에 대해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역시 눈물을 머금고 대답해야 한다. "Muddy Waters"
물론 블루스의 초창기 멤버들이 대단히 훌륭한 음악을 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블루스 음악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대중음악이라는 것이 시장에서의 상품이 되고 그 것을 소비자는 물론 다른 아티스트들까지 소비하게 되면서부터는 그 사람의 비중이라는 것을 음악의 완성도나 어떤 것의 최초... 라는 류의 기네스북적인 사고를 가준으로 판단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상업적인 성공이라는 측면도 대단히 중요하고, 상업적인 성공이 있어야 그 사람의 영향력이 클 수 박에 없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음악적인 완성도는 계속해서 중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으로 인해 당대의 대중음악 신(Scene)이 질적인 동시에 양적인 변화가 가능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블루스가 미국의 음악이고 지금 전세계의 대중음악을 미국 시장이 좌우하기 때문에 블루스라는 대중음악 장르에 숱한 대가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단 한 사람을 꼽으라 한다면 머디 워터스인 이유는 위의 세 조건을 동시에 가장 높은 정도로 충족하는 아티스트기 때문이다.
머디 워터스를 나타낼 수 있는 말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이 게시물의 태그를 보시면 알 수 있겠지만, 블루스의 가장 대표적 이름이라 할 수 있는 Chicago Sound 혹은 Chicago Blues은 머디 할아버지에 의해 완성되고 만개한 블루스의 하위 장르일 것이다. 흔히들 이 불초 티렉스가 이 곳에서 소개할 정도의 인물들은 이미 10대에 비상한 재능을 보이면서 20대 초중반에 일가를 이룬 인물들이 대부분이지만,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머디 할아버지는 30대가 넘어서면서 겨우 안정적인 전업 뮤지션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했고 40대에 들어서야 제대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에게 상업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안겨다준 "Hoochie Coochie Man" "I just to make love to you" "I'm ready"등이 연달아 차트의 상위권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그가 만으로 40세가 되는 해였던 1953년 이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아직 만으로 40이 되지 않았고 음악을 하며 상업적으로 히트한 곡이 없는 사람들은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 되시겠다. 상업적인 성공이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내겐 음악만 있으면 된다. 그런 자세로 열심히 음악에 매진하시면 머디 할아버지처럼 40이 넘어 휠을 잡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다.(절대 비아냥거리는 이야기 아님을 아셨으면 한다. 워낙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다들 비아냥댄다고 해서...)
위에서 제시한 조건 중 대단한 상업적인 성공이라는 부분은 바로 앞의 단락에서 어느 정도 제시를 했으니 이젠 그의 음악적인 완성도에 대해 이야기를 할 차례다. 이 점을 기억해보자. 음악사에 대한 사전을 편찬할 일이 생긴다면 다른 부분들에선 내 견해를 집어넣을 수 있더라도 이런 것들을 내 마음대로 뒤집거나 할 수는 없다. "시기적으로 델타 블루스는 시카고 블루스에 선행한다. 그리고 시카고 블루스라는 것은 델타 블루스에서 파생되어 나간 장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시카고 블루스의 완성자인 머디 할아버지의 음악적인 기반은 시카고 블루스가 아니라 델타 블루스 되시겠다는 말씀이다. 시카고 블루스를 그렇게 정의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좀 더 서술 범위를 좁혀 이야기한다면 "머디 워터스의 사운드는 델타 블루스를 일렉트릭 악기에 맞도록 변형시킨, 혹은 일렉트릭 악기를 가지고 델타 블루스의 영역을 확대시킨 사운드"다.과거에 일렉트릭 기타나 일렉트릭 베이스를 블루스라는 장르에서 사용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머디의 일렉트릭 악기의 사용은 블루스에 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것이 어떤 것이냐고?
머디 할아버지는 1958년 잉글랜드로 가게 되는데, 그 것이 얼마나 큰 일이 될지는 머디 할아버지가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도 몰랐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잉글랜드로 가 잉글랜드의 청중들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트린 것이 계기가 되어 1960년대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가 인기의 정점을 달리던 시절에 영국에서 일어났던 소위 British Blues Explosion의 도화선이되었는데, 실제로 잉글랜드에서의 활약상이 어땠는지를 직접 귀로 확인하시고 싶으시면1960년 New Port의 Jazz Festival에서의 그의 연주가 실황 음반으로 발매되기도 했으니 어떤 식으로든지 들어보시길 권한다. 그의 잉글랜드에서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인해 가능했던 것들을 몇가지 열거해본다면 The Yard birds의 출현, John Mayall and the Blues Breakeers의 출현 그 유명한 블라인드 페이스의 멤버가 되는 스티브 윈우드 릭 그레치, 에릭 클랩튼 등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 초중반을 휩쓸었던 영국의 Blues Rock의 출현 등이다. 만일 그들에게 머디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그들은 그런 음악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내 이야기다.
머디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한 번 더 간다. 좀 가벼운 소재로...
앗! 머디 할아버님이 이제 나오시는군요!!
답글삭제이제서야... ㅜㅜ
삭제흐어억. 전설의 등장이네요. 후치쿠치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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