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5일 수요일

Anohni-Hopelessness(2016)





앨범의 자켓 사진이 과도하게 큰 것은 대단한 에러지만 그러려니 하고 보시기 바란다. 이 앨범의 한글 booklet엔 이 음악을 두고 힐링 팝이라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사실 이 음반 자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을 추구하고 있는지 자체가 대단히 모호하다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이 음반을 구성하고 있는 곡들 자체가 대단히 추상적이며 아주 탄탄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곡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아주 딱 짜여진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는 그런 구성의 곡들이 우월하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는 사람은 다들 이미 알고있을 이야기지만 이 앨범은 Anohni라는 아티스트의 앨범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이 Anohni라는 아티스트가 Antony Hagarty의 새로운 스테이지 네임이다. 나중에 딴소리 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 미리 말해두건데 앤토니 해거티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사실!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말지어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혹시나 모를 사람이 있을지 몰라서 결정적으로 이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 힌트를 한 방 날리자면 Antony and Johnson이라고 이야기하면 당연히 무릎을 치면서 아! 그 사람! 이럴 것이다. 물론 이래도 모른다면 넌 무지하게 팝 음악을 안들은 놈이라는 얘기다.

이미 어느 정도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있을 부분이지만 앤토니 해거티 즉 아노니는 특유의 몽환적이면서도 (미국 아이들의 표현 그대로를 빌리자면) Beautiful한 음색으로 은근히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터라 아노니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이 프로젝트 역시 Chamber Pop의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본인의 명성 그대로 사운드의 규모 면에서 그리고 그의 특별한 음색을 통해 앨범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이끌어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버뜨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앨범이 대중들에게 대단히 심하게 "먹힐"수 있는가에 대해선 자신없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매번 어떤 앨범에 대해 엄청난 확신을 가지고 주저리 주저리 떠들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그렇지 않으려는 노력은 굉장히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가끔은 들어보지도 않고 덜컥 산 앨범에서 이런 장벽에 부딪히게 되는 일도 생긴다. 조금 더 여러번 들어보고 이런 소리를 지껄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 대단히 죄송ㅇ하게 생각한다. 뭐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욕하진 말아주기 바란다. 늬들이 내가 써놓은 개소리를 읽는 데에 돈내는 것 아니지 않은가... 대단히 미안하게도 워낙 최신작인지라 유투브 태그는 생략한다.


2016년 5월 23일 월요일

Tangerine Dream-Stratosfear(1976)






일반적으로 탠저린 드림이라는 팀에 대해 대중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을 나타내는 단어를 열거하자면 독일, 트리오, 무그 신서사이저 그리고 에드가 프로제일 것이다. 그렇다. 에드가 프로제(Edgar Froese) 없는 탠저린 드림은 일반적으로 쉽게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어쩌면 다수의 사람들이 에드가 프로제가 팀을 떠난 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심지어는 어느 순간부터 에드가 프로제가 없는 탠저린 드림이 존재했다고 믿는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에드가 프로제는 1967년 팀이 결성된 후 2015년 사망하기 전까지 탠저린 드림이라는 팀을 단 한 순간도 떠난 적이 없다.

사람들이 실제적 사실과 달리 에드가 프로제가 팀을 떠났던 적이 있다거나 심지어 어느 시점에 떠나서 탠저린 드림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에드가 프로제가 그냥 솔로 아티스트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대단히 많은 솔로 프로젝트들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실제로 1990년대엔 탠저린 드림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당시 멤버들이 모두 솔로 활동에 매진한 시기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절대로 에드가 프로제는 탠저린 드림이라는 팀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냥 우리는 에드가 프로제의 그 놀라운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생산성에 주목하면 될 따름이다. (그의 솔로로서의 생산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가?라는 질문에 유치한 답이 될만한 것은 이런 것이다. 심지어 에드가 프로제는 포르노 영화의 사운드 트랙 작업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드가 프로제나 탠저린 드림이 현대 대중음악계에 미친 영향에 비하면 국내에서 에드가 프로제나 탠저린 드림의 인지도나 인기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다들 잘 아는 사실 아닌가? 실상 한국인들은 음악을 심각하게 듣는 것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으며 일부러 어려운 음악을 찾아서 듣는 이들은 극소수다. 탠저린 드림의 음악이 어려운 음악인가? 아닌가?라는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대답은 차치하고라도 30분이 넘는 음반 하나에 보컬도 없이 10분이 넘는 트랙이 존재하는 일이 부지기수인 이 팀의 음악은 사실상 고음역의 보컬에 극도로 민감한 한국의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그다지 큰 매력을 가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잇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버뜨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국내에서 탠저린 드림의 음반들 중엔 그나마 대중적인 인지도가 상당한 음반이라 할 수 잇을 것이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그래도 이 팀이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전세계적으로 그다지 "잘 팔릴" 음악을 하지는 않았어도 나름 전세계적인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음반업계의 괴짜 중 괴짜인 Virgin의 Richard Branson이 일찍이 그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버진 레이블을 통해 이들의 음악을 전세계적으로 유통시켰던 덕분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 앨범도 버진 레이블을 통해 발매된 앨범이기도 하다. 이 앨범이 미국 시장에 출시된 것은 1976년 10월의 일이다.














2016년 5월 20일 금요일

T. Rex-The Slider(1972)





연초 우리가 접했던 21세기의 가장 안타까운 팝계의 비보가 될 수도 있는 지기의 사망 소식으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이 팀의 이름이 여러번 거론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얻어야만 하는 결론은 쓸 데 없이 상상의 나래를 펽치지 말라! 그럴 경우 실망만 너의 몫이 된다. 세상은 네 상상 따위와는 관계 없이 돌아간다. 뭐 대충 이런 것 아니겠냐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남들이 이 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내가 하면 될 일이다. 상처 따위 받을 필요 없이.

다들 잘 알고 있듯 1947년 생으로 지기와 동갑이던 Marc Bolan이 이끌던 이 팀은 1977년 마크가 이제 겨우 30세가 되던 해의정확하게는 1977년 9월 29일인 그의 서른번째 생일을 정확히 2주 앞두고-9월 15일 조금은 어이없는 자동차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고 만다. 그리고 그 것이 지기와 함께 Glam Rock Scene을 양분했던 티렉스의 종말이 되고 만다. 그 후로 근 4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비공식적으로 팀의 재결성과 활동의 재개에 대한 논의가 수차례 진행되었으나 결국은 1977년 9월 15일이 한 때는 세계 최고 밴드 중 하나였던 티렉스의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1967년에 결성된 팀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그들은 그들의 결성 초기에 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1967년은 정말 두드러지는 사이키델릭의 약진의 해였고 사회 문화적으로는 한 마디로 히피 문화라는 것이 전지구적 현상으로 대두되던 시기였다. 1967년 결성된 티렉스 역시 팀을 결성한 초창기엔 말 그대로 그 시대를 대표할만한 20대들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이키델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히피의 생활을 동경하고 몸소 실천하던 영국의 청년들이었다. 그들이 팀을 결성햇을 때 팀이 Glam Rock을 대표하는 이름이 될 것이라는 것은 그들조차 몰랐을 수도 있었단 말씀이다.

시간이 허락하면 그들이 아직 티라노사우르스 렉스였던 시절의 이야기는 따로 하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이 앨범에 대해  이야기의 폭을 좁혀보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 앨범은 이례적으로 영국에서보다 미국에서의 반응이 훨씬 좋았던 앨범이다. 그냥 사실관계만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빌보드 200 앨범 차트에서 이 앨범은 4위까지 올라갔던 반면 UK 차트에선 겨우 17위에 머물렀다는 말씀이다. 당시에 영국에소 미국에도 살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이야기 아니겠는가? 뻥 따위는 1 밀리그램도 들어가지 않은...

이 앨범의 커버는 바이널 판의 앞면엔 마크 볼란의 앞모습을 찍은 사진ㅇ니 뒷면엔 마크 볼란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는데 대단히 특이하게도 이 두 장의 사진을 찍은 사람은 당신들이 익히 알고있는 바로 그 링고 스타라는 사실! 대단하지 않냐? 링고 스타로 더 잘 알려진 우리의 리처드 스타키 선생에게 이런 재주도 있었다니 말이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이렇게 대단히 큰 성공을 거둔 앨범에서 싱글로 커트된 곡은 A side의 첫번째 트랙인 Metal Guru와 B Side의 첫번째 트랙인 Telegram Sam 두 곡 뿐이라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앨범의 다소 특이한 점은 이전 앨범과 비교될 정도로 오케스트레이션에 대단히 큰 공을 들인 앨범이라는 것이다. 이 앨범의 오케스트레이션 어레인지먼트 작업을 맡은 사람은 Toni Visconti라는 사람인데 공교롭게도 토니 비스콘티는 지기의 두번째 앨범에서부터 최근작인 Blackstar에 이르기까지 함께 작업했던 인물로 유명하다. 물론 토니 비스콘티를 유명인이라 부를만한 근거가 보위와의 작업 하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아무은 그런 섬세한 부분에 까지 공을 들인 깓락인지는 몰라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All Nusic은 이 앨범에 별 다섯개 만점을 주는 등 평단에서도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은 앨범이 되고 말았다.

B Side의 Ballrooms of Mars의 경우엔 The Bongos의 Richard Barone이 1997년 리메이크 했는데 리메이크라기 보다는 커버 버전에 가깝다는 것이 평단의 평가다. 그리고 이 앨범 전체가 1994년에 CD 버전으로 재발매 되었는데 심지어 2002년엔 디지팩으로 재발매 되기도 했다. 음악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1994년과 2002년 이 두 해엔 모두 월드컵이 열린 해였다. 물론 이 것은 이 포스트의 내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Glam Rock이라는 음악이 조금은 기괴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선입견으로 듣기를 꺼리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들어보라 권해주고 싶은 음반이다.  불금!




2016년 5월 17일 화요일

Elton John-Empty Sky(1969)

가장 먼저 밝혀두고자 하는 것은 유투브에 올라와있는 이 스트리밍은 오리지널 보전이 아닌 1995년 재발매된 앨범의 버전으로서 애초 Vinyl 버전엔 실려있지 않던 트랙이 네 개가 추가된 버전이다. 또한 애초에 이 앨범은 미국에선 발매되지 않았고 앨범 자켓의 사진을 다른 사진으로 교체한 뒤 1975년에 발매되었다고 한다.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들 알고있을 이야기지만 엘튼 존은 국내 팬들이 알고있는 것과 달리 자신과 동갑인 지기 못지 않게 당시로선 대단히 파격적인 음악을 선보이던 "무서운 신예"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이며 혜성과 같이 영국의 Pop Scene에 나타났다 할 수 있다.

물론 자켓의 그림엔 지금은 적응이 어려운 엘튼 존의 20대 초반 시절의 풍성했던 머리카락을 그림으로나마 볼 수 있다. 애초에 그의 아버지는 엘튼 존이 은행가-모두가 은행가가 되지는 않지 않는가? 그냥 은행원 정도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와 같은 일을 하기 원했다고 한다. 엘튼 존의 아버지가 공군 장교 출신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지극히 당연한 아들에 대한 바람이었다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정작 엘튼 존의 음악적 재능은 자신의 아버지 쪽으로부터 받은 것이라 할 수 잇다는 점이다. 엘튼 존의 아버지는 공군으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중에도 Bob Miller의 밴드에서 트럼펫 연주잦로 활동했던 인물이었고 아버지의 그런 음악적인 재능과 음악에의 관심과 열정이 엘튼 존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 아버지의 보수적인 성향보다 훨씬 더 강하게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란 생각이다.

나중에 까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앨범에 대한 대략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밝혀야만 하는데 이 앨범-정확하게는 유투브 스트리밍-당신들이 가장 주목해서 들어야할 트랙은 2번과 9번이다. 다른 트랙들이 구리다거나 후지다거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2번 트랙에서는 엘튼 존의 하프시코드 연주를 들을 수 있고 9번 트랙은 당신들이 이전에는 들은 적이 없었을 확률이 90% 이상이고 앞으로도 듣기 힘들 구성의 곡이기 때문이다.ㅣ 그 구성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안들을 것이 뻔하므로 직접 들어 확인하기 바란다.

앨범은 런던의 Dick James Music Studio에서 1968년 12월에서 1969년 4월까지 상당히 장기간에 걸쳐 녹음되었고 발매는 한국으로 따지면 현충일인 1969년 6월 6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에 대한 평단의 평가는 그지같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All Music의 경우엔 별 다섯개 만점에 겨우 두개를 주는 아주 박한 평가를 내렸고 물론 평단의 싸늘한 반응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겠으나 발매 당시 UK 차트에선 순위에 오르지도 못했으나 1975년 미국에서 발매되었을 당시엔 빌보드 팝 앨범 차트에서 무려 6위에 올랐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 때는 이미 엘튼 존읭 이름이 알려질 만큼 알려진 후였다.




2016년 5월 16일 월요일

Queen-A night at the Opera(1975)










한국에서의 인기가 궈낙 압도적이기 때문에 퀸의 앨범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앨범을 고르라 한다면 공화국 인민들은 당연히 이 앨범을 꼽을 것이고 그 것이 알게 모르게 공화국의 퀸의 팬들의 바람일 수도 잇다. 하지만 퀸이 말 그대로 월드 클래스의 밴드가 된 것은 이 앨범이 발매된 지 무려 5년이나 지난 후에 나온 "The Game" 앨범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늬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플래티넘+을 기록한 앨범이 당연히 그들의 대표작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미 다 알려져있어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지만 이 역사적인 퀸의 앨범 타이틀은 이 앨범이 발매되기 부려 40년 전인 1935년에 Marx 형제의 의해 제작되고 연출된 동명의 영화로부터 따왔다. 이 역시 공화국의 퀸의 광팬들을 실망시킬지 모르나 사실인 걸 어떻게 하겠냐 말이다. 이런 것이 바로 손석희의 뉴스에서 하는 그 유명한 "팩트 체크"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까지는 없다.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이 이 앨범이 아니라고 해서 이 앨범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이 앨범은 당연히 UK 차트에선 1위를 총 4주간 했고-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연속 4주간이 아니라 띄엄띄엄 4주란 말씀이다.- 그리고 빌보드의 200 앨범 차트에선 4위까지 올라가며 당연히 드디어 미국 시장에서의 연착륙에 성공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하는 그들에겐 5년 뒤의 전세계적인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는 앨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앨범 타이틀에서 풍기듯이 일봄과 한국에서의 그들의 이미지, Operatic Rock밴드라고 흔히들 이야기하는,를 확고하게 하는 데에 기여하게 된다.

이미 예전에 이야기한 바 있듯 퀸이라는 팀의 영미에서의 이미지는 "하드하고 때로는 헤비한 사운드를 구사하는 밴드"고 이 앨범 역시 가장 주된 부분은 이런 사운드가 담당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물론 공화국 인민들이 환장하는 "Love of my life"와 같은 전형적인 팝 장르의 곡이라 할만한 곡도 있다. 마치 오페라의 한 작품이 지나치게 일관성있는 곡으로만 이뤄진다면 극적인 구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듯 이 앨범 역시 장르의 폭이 다양하다 .

아마 국내의 퀸의 라이트한 팬들이 들으면 "정말 이 곡이 퀸의 곡이야?"라고 할만한 곡인 "I'm in love with my car"와 같은 트랙은 반드시 한 번 정도 들어볼 것을 권한다. 물론 싫음 말고... 지나치게 당연해 보이는 이 앨범을 발매된 지 무려 40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 반드시 다시 들어봐야 한다는 개소리를 하는 이유는 퀸이라는 밴드가 애초에 가지고 있던 대단히 강렬한 사운드와 그 바탕에 있는 존 테일러와 브라이언 메이와 존 디콘의 기여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한다는 바람에서다.













2016년 5월 4일 수요일

Overkill-The Years of Decay(1989)

이 앨범의 자켓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긴 설명이 필요 없는 헤비메탈 밴드다. 그 것도 쓰래쉬 메탈 음악을 하는 팀이다. 왜 굳이 이 앨범을 오늘 택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바로 1989년은 메탈리카가 그들이 Thrash Metal 씬에선 더 이상 자신들의 적수가 없음을 확인한 "...And justice for all" 앨범을 발매한 것이 바로 이 해이고 그냥 단순히 메탈리카가 그들의 정점을 찍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1989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에 부여하자면 이 시기가 바로 Thrash Metal 이라는 장르 자체가 정점을 찍은 시기라는 점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앨범은 당대 "...And justice for all" 정도는 아니더라도 Thrash Metal 장르에서 거둔 커다란 성과로 찬사를 받던 앨범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당연히 그러니까 80년대 말이 장르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냐마는... 뭐 그렇다. 이 팀이 결성된 것은 1980년 뉴저지 주의 Old Bridge Township이라는 곳이란다. 1980년 결성된 이후 83년 까지는 주로 동네 밴드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할지 몰라도 이 팀은 애초에 결서오디었을 당시는 펑크 밴드였다는 점 기억해주시기 바란다. 물론 아님 말고!

이 팀이 가장 확실하게 휠을 잡았던 시기는 1987년의 "Taking Over" 1988년 발매된 "Under the Influence" 그리고 이 앨범으로 활동하던 시기인 1990년까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라고 한다. 1991년 이후로는 다소 정상권에선 멀어진 밴드가 되고 말았다고 할 수 있는데 가장 큰 이유로 꼽는 것은(물론 미국의 전문가들이) 지나치게 잦은 멤버 교체로 인한 팀 자체의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꼽는다. 그래도 정말 대단한 것은 메탈리카나 메가데스 앤스랙스 슬레이어의 이른바 빅 4 밴드들이 1980년대의 헤비메탈 키드들이 보기엔 배신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며 음악 씬에서 그들의 이름값을 유지한 것에 비하면 이 팀은 끊임없이 죽으나 사나 THRASH! 이 정신으로 버틴 팀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 앨범을 끝까지 들어서 절대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앨범이 발매되었을 당시인 1989년에 빌보드 200 앨범 ㅁ차트에서 물며 155위까지 찍었으며 그 땨나 지금이나 팀의 간판인 Bobby "Blitz" Ellsworth이 팀의 리드보컬과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은 앨범이다. Bobby Gustafson의 기타도 아마 당신들의 기대 이상의 연주를 들려줄 것이라 자신한다. 쓸 데 없이 야구 끝나고 드라마나 쳐보지 마시고 이 앨범이나 듣다가 고이 주무시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개인적 생각이다.









2016년 5월 2일 월요일

Osamu Koich-The Chord(2006, King Record)




읹간의 일이라는 것들이 다 그렇다. 뭐 넌 블로그가 얼굴책보다 어울린다. 생각 잘했다. 다시 블로그를 살렸구나 이런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 중 여기 와서 그 흔하디 흔해빠진 리플 하나 남기는 닝겐들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들을 데려다 전주 풍년제과의 초코파이 하나 씩을 앵기면서 제발 여기 와주세요라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게 모양 빠지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여지껏 대충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일관성이 잇는 일이라 생각한다.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이 앨범을 바램한 킹 레코드는 일본의 음반사-특히나 재즈를 전문적으로 출반하는- 1989년 당시 이문세의 다섯번째 앨범을 당대의 가격에 두 배 이상을 받아서 물의를 일으켰던 그 킹 레코드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회사다. 물론 킹 레코드라는 말에 그 당시의 사태를 떠올리며 분노가 앞서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문제의 이 앨범은 바로 이 킹 레코드가 특별기획으로 시리즈로 출반한 "저음 시리즈" 연작 중 한 앨범이다. 물론 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 06년에 발매한 앨범이 지금 한국에 수입되는 것 아니겠는가?

http://www.osamukoichi.com/profile/english.html

위에 링크한 사이트는 바로 이 오사무 코이치 형님의 공식 웹사이트-그 것도 영어다-되시겠다. 모든 재즈 음반들이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지만 이 앨범은 2005년 9월 28일과 29일 양일간ㅇ네 걸쳐 토쿄의 세키구치에 위치한 킹 레코드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한다. 물론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 재즈라는 음악은 특성상 각자 다른 채널에 각자 다른 악기를 따로 녹음하여 그 것을 스위치를 들어올려 합치는 작업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어로 Improvisation 한국에서 많이 쓰는 단어로는 애들립이 곡의 연주에서 주가 되는 만큼 다른 장르가 하는 방식의 작업 보다는 과거 방식의 작업을 할 수밖에 없고 또 그런 면에서 의되하지 않은 (다른 장르에 비해) 음질의 저하현상이 나타날 수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장점은 스튜디오에서 녹음 시간이 굉장히 절약된다는 점일 것이다. 

여기서부터 이 시리즈의 핵심을 얘기할테니 필요하면 받아 적거나 줄을 치시기 바란다. 이 앨버의 수록곡들의 리스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기존에 베이시스타가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곡들을 베이시스트가 팀의 리더로서 다시 해석하고 편곡하여 녹음을 한 연작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 연작의 기획이 저음이라는 말로 대표될 수 있는 것이고 연주력이야 당연히 검증받고도 남을 사람들이 참여한 것이니 연주가 어디가 좋느니 어디가 아쉽느니 이런 이야기들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그냥 조금 더 새로운 해석의 연주를 접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잇는 시리즈다. 한가지 특이한 사실은 오사무 코이치 선생은 더블 베이스를 굳이 우드 베이스라고 부르신다. 


  • 1-1. Actual Proof
  • 1-2. Bud Powell
  • 1-3. Three Views of a Secret
  • 1-4. I Wish I Knew
  • 1-5. Donna Lee
  • 1-6. Some Skunk Funk
  • 1-7. Mood Indigo
  • 1-8. Ladies In Mercedes
  • 1-9. I Wish
  • 1-10. Everything Happens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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