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Coleman Hawkins - I love you
지난 번에 이어 콜먼 호킨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런저런 뉘앙스가 곧바로 콜먼 호킨스의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다들 알 수 있게끔 되었고 그리고 콜먼 호킨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만큼 그의 연주자와 작곡가로서의 극적인 반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콜먼 호킨스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하지 않느니만 못하기 때문에 콜먼 호킨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의 극적인 인생의 반전의 계기들은 사실상 비밥 재즈의 시대와 점프 블루스의 시대에와 100%의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워낙 천재들이 날뛰던(?) 비밥의 시대를 콜먼 호킨스라는 아티스트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게, 더 나아거서는 그 시대를 자신의 전성기로 만들었는가,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비밥에 대한 이야기를 상당부분 깊이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델로니우스 몽크(Thelonious Monk)와의 만남이 콜먼 호킨스에게 얼마나 크나큰 인생의 반전을 가져왔는지부터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앞서의 게시물에서 마지막부분에 이야기했던 것은 콜먼 호킨스의 처음 레코딩 작업은 빅밴드 스타일의 작업이었다는 이야기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그가 참여했던-사실은 그가 주도했던- 빅밴드 음반들은 대단히 큰 실패를 거두게 되었더랬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그 것은 콜런 호킨스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이거나 시기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무튼 초창기의 빅밴드 스타일의 음반들이 기대에 못미치는 성과를 낸 후 그는 Kelly's Stables와 함께 뉴욕의 맨해턴의 52번가에서 함께 연주를 하게 되는데 그는 이 곳에서 위에서 이야기한 Thelonious Monk, Oscar Pettford, Miles Davis, Max Roach등 당시 Kelly's Stables의 멤버로 활동하던 재즈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인물들을 만나고 인간적인 신뢰를 쌓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것이 그의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인지는 그 자신조차 당시엔 짐작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1944년에 Dizzy Gillespie, Max Roach와 함께 역사상 최초의 비밥 음반이라 불릴만한 스튜디오 작업에 리더로서 참여하게 된다. 문제가 되는 바로 그 작업 후 그는 Howard McGhee와 함께 투어를 떠났고 그 후 JJ Johnson, Fats Navarro와 함께 녹음 작업을 했으며 Jazz at the philharmonic과도 함께 투어를 하기도 했다. 1948년 콜먼 호킨스가 녹음했던 Picasso라는 타이틀의 앨범이 있는데 재즈에 정통한 대중음악사가들은 이 음반을 초창기 무반주 색소폰 음반의 걸작중의 걸작으로 꼽는다. 1948년 이후 콜먼 호킨스는 뉴욕과 유럽을 오가며 프리랜서 뮤지션으로서 녹음작업을 활발하게 하게 되는데 1950년대에는 뉴욕시 맨해튼의 Village Vanguard이라는 유명 클럽에서(이 클럽에 대해 나중에 찾아보시면 이 무대에 서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가를 아시게 될 것이다.) 고정적으로 연주를 하게 된다. 바로 이 시대를 거치는 동안 콜먼 호킨스는 수많은 비밥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고 나중에 대단히 혁신적인 스타일과 탁월한 연주력을 가진 후배 뮤지션들과 함께 무대에 설 기회를 자주 가지게 되는데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 존 콜트레인(John Coltrain)등이 그런 뮤지션들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콜트레인과는 콜트레인이 델로니오스 몽크와 함께 녹음작업을 할 때 (게스타가 아닌 동등한 비중으로) 같이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후 그는 MAx Roach의 We insist-Freedom Now!조곡의 녹음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 후에도 그는 수많은 작업들을 통해 그의 건재함을 과시했고 사망하기 불과 몇해전까지 활동했으나 그 후의 이야기들은 굳이 꺼내지 않는 이유는 흔히들 "천재들의 주도했던 시대"라 불리는 비밥 재즈의 시대가 도래하기까지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여겨지는 "비밥시대의 천재들"에 비하면 천재라는 이야기를 하기엔 무언가 부족한듯한 이 콜먼 호킨스라는 인물이 많은 공헌을 했고 비밥의 전성기에 콜먼 호킨스의 영향이란 것은 어찌보면 그 유명한 찰리 "버드" 파커나 디지 길레스피를 능가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부각시켜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트럼피스트로서는 다소 자질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즈의 전 하위 장르에 있어 그 끝을 알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 했듯, 천재의 시대였다는 평가를 받는 비밥의 시대에 천재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인 콜먼 호킨스가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오래 살고 덜 튀는 것"이 꼭 불쌍한 점(?)은 아니라는 평소의 내 지론과도 일치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알아가게 되는 과정이 바로 한 인간이 음악에 대한 애정을 조금 더 깊게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Coleman Hawkins - I love you
이제 1개의 덧글 핫핫
답글삭제이건 유튜브에서 클립을 못 찾으셨나요? 습관적으로 음악먼저 듣고 댓글 써야지했다가 여지껏 댓글을 못 달았다는..
답글삭제링크가 깨졌나요?
답글삭제아녀요. 제가 잘 못 찾았어요. 듣고 다시 감상 쓸게요.
답글삭제제가 조금이라도 이렇게 좋은 음악을 듣게 된다는건 전적으로 글 써주시는 이 연재 덕분입니다요. 기대 안 하고 있다가 뒷통수 맞은 격이랄까. 아주 좋은걸요.
답글삭제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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