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듣거나 말거나 1000곡
116. Ain't no sunshine when she's gone(Freddie King)
Frederick Christian, Freddie King은 모두 같은 사람인데 궁극적으로 이 사람은 자신의 본명이나 음반 작업시 혹은 무대에서 활동할 때의 이름보다는 음악 전문가나 팬들은 이 사람을 "The Texas Cannonball"이라 불렀다. 이 Freddie King은 Albert King, B.B. King과 함께 블루스 일렉트릭 기타의 Three Kings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대단히 애석한 것은 그의 업적이나 연주력에 비해 공화국에선 비교적 덜 알려져있다는 점은 대단히 애석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또 이상하게 생각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이 텍사스 출신의 텍사스를 대표할만한 뮤지션 중 하나인 프레디 킹은 가장 뛰어난 시카고 블루스(Chicago Blues) 뮤지션들 중 한 명으로 꼽힌다는 점이다. 물론 이상하지 않으시다면 말고! 아! 한 마디 덧붙이자면 그의 음악사적 위치가 공화국에서 과소평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그의 곡들을 공화국 인민들이 잘 모른다는 말로 착각하시지 마시라!
이 곡은 아마 심야에 나오는 광고들의 CM으로 대단히 여러번 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서 또! 또! 광고에 많이 쓰인 곡을 쓰고 연주한 사람이니 음악이 가볍겠지! 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런 말씀은 말타는 서부에 가서 하시고! 블루스라는 장르가 그렇게 만만하진 않으니 섣부른 판단은 자제해 주시기 바란다. "Have you loved a woman"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계실까? (제발 브라이언 애덤스의 "Have you really loved a woman"과 혼돈하는 바보짓은...)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곡은 정말 한 마디로 "놀라운 블루스 넘버"라 할 수 있는 명곡인데, 그럼 여기서 또 한가지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그 곡이 그렇게 좋다면서 왜 다른 곡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빠졌냐?" 아! 물론 "Have youloved a woman"에 대한 게시물도 있을 것이다. 다만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곡은 "혹시라도 당신들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블루스에 대한 주눅든 마음"을 좀 풀어주기 위함이다. 아무리 명곡이라 하더라도 너무 어려운 곡들만 듣게 되면 "블루스"라는 단어만 들어도 나가 떨어질 수 있고 그 것은 절대 티렉스가 바라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레디 킹이 대단히 돋보이는 인물이라는 점을 여러분들께 부각시키기 위해 프레디에 대한 첫번째 소개의 게시물에서 이 곡을 선택한 것이다. 왜냐고? 프레디는 당연히 최고의 블루스 기타리스트이기도 하지만, 여러분들께서 아시는 것 이상으로-좀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절대 B.B. King에 뒤지지 않는- 보컬리스트로서의 능력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이ㅑ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목적으로 소개하기엔 이 곡만큼 대중적이면서도 보컬리스트로서의 프레디 킹의 장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곡을 찾기도 그다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시거나 하면 알겠지만, 프레디 킹은 일단 외관상으로 "오래 살기 힘든" 외모를 가지고 있다.(나쁜 뜻이 아니라 절대 건강하게 생기지 않은 외모라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는 30대 초반에 세상과 등을 졌고 그의 활동 기간이 20년이나 되지만 그의 데뷔가 빨랐다는 것과 그의 능력들을 감안햇을 때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 할 정도로 "상대적으로" 짧은 커리어를 가지고 잇는 뮤지션이다.
이야기가 또 딴 길로 간다고? 그렇게 보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B.B. King이나 Albert King과 거의 같은 클래스의 블루스 뮤지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절한 사람이기 땜누에 그의 짧은 인생을 굉장히 밀도있게 살펴볼 필요가 잇고 다프레디 킹에 대한 이야기를 할 다음 번 게시물부터는 얼마나 빡센 상태로 게시물들을 작성해야하는지에 대해 미리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의 빠른 데뷔가 가능했던 이유는 그의 어머니인 엘라 메이(Ella Mae)와 그의 숙부가 그가 여섯살 되던 해부터 기타를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던 탓이라 전해진다. 그기로 그는 가족과 함께 그가 15세 되던 해인 1949년에 시카고 근교로-정확하게는 시카고의 서남부로- 자신이 살던 텍사스의 댈러스를 뒤로 하고 이주하게 된다. 그래서 그가 TThe Texas cannonball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음악사전의 Chicago Blues를 소개하는 챕터에 시카고 블루스의 대단히 중요한 뮤지션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1954년에서 1956년 사이에 프레디 킹은 생애 첫 녹음을 하고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데뷔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리고 그의 이름에 관한 일화가 하나 전해지는데 그가 자신의 성을 "King"으로 바꾸게 된 것 역시 이 시기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직업적인 연주가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B.B> King"처럼 성공한 블루스 뮤지션이 되는 것으로 삼았고 그런 자신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 자신의 성(Sur name or family name)을 "King"이라 했다는데 이 역시 내가 직접 들은 말이 아니니 확인할 길은 없으나 미국의 팝저널리스트들이 일부러 뻥을 쳤을 리는 없으니 그냥 믿어보는 것은 어떨지? 일단 프레디 킹에 대한 이야기는 또 하기로 하고 일단은 딱치고 즐감하시기 바란다.
추신>
머디 워터스 할배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멀리 한국까지 가서 너같은 놈의 허섭한 블로그에 자주 나오려니 체력이 달린다. 좀 쉬겠다." 뭐 돌아가신 분의 소원이라 가뿐하게 들어드렸다. 그러니 심하게 불만 가지지 마시기 바란다.
달려라! 덧글! 얍!
답글삭제프레디 킹 할배가 가세했군요. 흥미진진해집니다.
답글삭제어우.. 저 젊었을때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니 대단한 포스입니다. 노래도 잘 해요. @.@ 더 오래 살았으면 어떨까 궁금하네요. 건강 관리 좀 잘 해서 (왜 일찍 가셨는지 모르겠지만) 오래 살고 좋은 작품 더 많이 내지.
답글삭제프레디 킹의 저 체격으로 오래 살았다면 이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찍 죽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요.
답글삭제흥미진진이라 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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