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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체력과 지구력의 한계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솔직하게 책이건 다른 종류건 활자가 있는 인쇄물을 본 시간보다 음악을 들은 시간이 훨씬 더 길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런 날양아치의 습성을 주변 사람들이라 해서 모르리라는 법은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어떤 장르의 음악을 듣는가?" "특별히 듣는 장르는 없다.." "그래도 좋아하는 장르가 있을 것이지 않은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좋아하는 장르도 없다." "그럼 음악을 왜 듣는가?" "선호하는 장르가 없느 것이 음악을 들을 때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이런 종류의 허섭한 대화 아니면 "넌 하루 종일 Rock음악만 듣는가?" "절대 아니다." "넌 하루 종일 블루스 음악만 듣는가?" "웃기지 말아라! 그렇지 않다." "재즈만 듣는가?" "지랄하지 말아라! 어떻게 인간이 한 장르의 음악만을 들을 수 있는가? 난 마라톤 선수가 아니다." 그렇다. 한 장르의 음악을 목숨을 걸고 듣기엔 내 지구력은 형편없고 지구력이 형편없는데 체력이 좋을 리 없다. 아시겠수?
2. Dogma
나도 음악을 무지하게 많이 들었다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가끔 하는 질문이 있다. "모짜ㅣ르트나 베토벤이 지금 활동한다면 어떤 음악을 쓸까?"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은 불경스럽다. 베토벤이나 모짜르트가 지금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그 전에 그들의 음악과 같은 음악을 만든 사람이 없었을테고 21세기인 지금 그 음악들이 나왔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고 확신하는가?" "이런 질문을 하는 너의 무식함을 이해할 수 없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는 그렇게 궁금하지 않지만, 고전음악외의 다른 장르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하여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당신들이 미쳐있는 그 장르는 그저 여러 음악들 중 하나의 장르에 불과할 뿐이다." 이 이야기가 불편하다면 아랫 줄부터는 읽지 않아도 좋다.
다시 반복해서 질문을 던져본다. "모짜르트가 지금 태어난다면 과연 어떤 음악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음악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개소리는 빼고 일단 그는 다시 태어나도 음악을 해야만 한다고 가정하자. 이 가정이 왜 중요하냐고? 씨발 모짜르트가 다시 태어나면 음악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도 경우의 수에 포함시킨다면 지금 왜 아까운 전파와 전기를 낭비하면서 이 짓거리를 하겠냐고? 응? 하지만 이런 답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모짜르트가 지금 활동한다면 전혀 다른 개념의 멀티미디어 박스를 발명했을 것"이라는 정도의 답은 충분히 타당하다. 모짜르트는 자신이 태어났을 때, 자신의 환경과 자신의 재능에 의해 18세기 사람들이 간응하닫고 생각했던 것을 뛰어넘는 다른 차원의 어떤 것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그가 지금 활동한다면?
지금 그가 접할 수 있는 악기, 들을 수 있는 음반, 그가 찾아볼 수 있는 공연 이런 음악적인 요소들을 바탕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이 과연 "시대으로 합의된 상상력을 능가하는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 그가 그의 시대에 그의 배경과 그의 재능으로 그런 업적이 가능했다 해서 그 것이 21세기 초에 가능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자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인간이 100% 환경에 좌우되는 동물이 아닐 수는 있겠으나 그를 규정하는 것은 존재이며 그를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변증법적 유물론이나 사적 유물론을 연상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다. 왜 그 것도 설명해 주랴?) 만일 모짜르트가 클래식 음악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수긍할 수 있다면 다음의 이야기도 수긍해야 한다. 물론 하기 싫으면 말고!
지금 어느 누군가들이 그렇게 고귀하고 고상하게 생각하시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당시 지배계급이 좋아하고 그래서 그들의 경제력으로 지원을 받았던 음악ㄱ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은 그 때와 음악을 소비하는 패턴이 다르고 댖우들의 인식고 다르고 더더군다나 음악이라는 것의 사회적인 존재의 형식이나 내용이 다르기때문에 그 때와는 달리 클래식 음악이 주류 장르가 아닌 것이다. 이 것을 두고 21세기의 우매한 대중들 때문에 클래식 음악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거나? 현대인들은 공부를 하기 싫어해 무식한 관계로 클래식 음악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가슴 아파한다면 그냥 그 것은 당신들의 정신건강을 갉아먹는 일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음악학이나 음악 이론에 비추어 높은 완성도를 가지는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서양의 고전음악이 정한 음계가 12음계라 해서 "특정 음정으로 특정 음예가 존재하지 않는 임도의 음악"이 미개하다거나 "반음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의 고전음악 혹은 국악은 그 표현에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한 마디로 "어디 가서 너맡 병신 되는 일"인 것이다. 그래야 어느 특정한 모임에 짚단처럼 구석의 자리를 챙기다가 "클래식을 주로 듣지 않는다"는 말에 상대방이 깜짝 놀라며 침묵의 시간이 흐르다가 "혹시 재즈는 들으세요?"라는 질문에 대해 긍정의 답을 날리면 "아! 그래도 음악을 듣지 않으시는 건 아니네요"라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듣는 불쾌감 따위는 없어질 것 아닌가?
3. 불편한 진실?
정확하게 1993년에서 1995년을 지나가는 동안에 내가 결심하게 된 것은 "더 이상 차트를 신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시 컬럼비아 에픽의 위트니 휴스턴, CBS Sony의 머라이어 캐리, 유니버설의 셀린 디온은 이른바 "세계 최고 레이블들의 대표선수"들이었다. 그 빌어먹을 놈의 최고 레이블들이 대표선수라는 것을 눈에 띄게 밀어준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Hot shot debut"이라는 말들을 심심치 않게 사용하게 되었는데, 말 그대로 빌보드 Hot 100 싱글 차트에 등장하는 첫 주에 1위를 차지하는 일이 빈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1970년 비틀스의 The long and winding road이 첫 주에 6위 둘째 주에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 이후엔 어떤 차트도 밎지 않았다. 물론 일종의 인기투표였던 공화국 지상파 방송국들의 가요차트는 그 이전부터 믿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즘에 D모 라는 이름의 팀의 K모씨가 이야기한 "우리는 회사가 작아서 1위를 못했다"는 발언을 했고 그로 인해 그에 대해 애초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밤의 주둥아리들이 욕질을 해대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항상 이야기하듯, 이런 상황에서 "넌 그런 말을 하면 안 돼!"라는 욕질은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의 윤리적가티를 따지는 것은 차후의 문제이고 그는 그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과거에 사회면에 많이 등장해서 안된다고? 쌈질을 좀 하고 다녀서 입 닥치라고? 다 좆까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불편하겠지만 그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물론 그들도 같은 방식을 썼다. 티저를 올리고 음원 공개일을 미리 밝히고... 하지만, 그들이 1위를 하지 못하게 했던 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항상 Ready to buy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수십만의 팬클럽 회원들과 음원 출시일이면 업무를 중단하고 법인 카드나 법인의 통장을 이용하여 자사 가수의 음원을 사들이는 직원들, 그리고 소매시장에 내기도 전에 미리 회사의 창고에 "도매로 판매된 것으로 정리되어 있는 상태로 다시 일반 소비자들의 주문이 오기를 기다리며 투자용 재고로 활용되고 있는 첫번째 프린트들..."이 미국 뿐 아니라 공화국 가요계의 현실이기도 하다. 불편하지만 사실인 이 문제를 넘어서야 진정 명랑사회가 가까이 올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내가 너무 뻔한 이야기들만 했나? 줴길...
그래도 음악을 듣지 않는건 아니네요? ㅎㅎㅎ 어떤 빙신이 그런 소리를. ㅋ쿠ㅋ 근래에 들어본 소리 중에 네가 짱 먹어라..네요.
답글삭제그런 교조주의자들이 실제로 존재하더라능...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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