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듣거나 말거나 1000곡
115. They call me Muddy Waters(Muddy Waters. 1971)
시절이 좆같고 세상이 엿같아 응당 가누가 나갔어야 하는 음악 프로그램에 빙상의 여왕씨가 나와 초등학교 학예회 분위기를 만들며 세 곡이나 부른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 그 가수가 "국민 여동생을 건드린 죄"로 빙상의 여왕씨를 그리며 두루마리 휴지를 밤새 애용했을 찌질이들에게 욕을 먹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으니 티렉스라 해서 어찌 키보드를 두드릴 힘이 생기리요? 허나 이런 좆같은 상황일수록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다름 아닌 "음악"이요 그 중에서도 티렉스와 제일 친하다 할 수 있는 "블루스"아니겠는가? 빙상의 여왕씨와 서울방송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어도 음악은 절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씀!
먼저 사적인 이야기 하나 쌔우시겠다. 오늘 말씀드리려는 분과 같은 1915년생인 우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이 빌어먹을 세상에 계시지 않아 가끔 "고아가 된 우리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쌓여가고 있는데 웅리 외할아버지 보다는 24년 외할머니 보다는 무려 26년 씩이나 먼저 저 세상 사람이 디ㅚ셨으나 살아있는 그 어떤 뮤지션들 보다도 후대의 모든 뮤지션들에게 장르 불문하고 수없이 영감을 주셨고 지금도 그러고 계신 분, 어떤 새끼들은 운이 좋은지 실력이 좋은 것인지 20대부터 그래미상을 휩쓸고 개 난리를 치지만 56세 되시던 해인 197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래미 트로피가 어떻게 생겨먹은 물건인지를 육안으로 확인하신 분, 그 이후로는 1970년대에만 다섯 번의 그래미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받으셨던 그 분, 심지어 1993년엔 미국의 우표에까지 얼굴을 내미셨던 그 분이 바로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Muddy Waters 할배 되시겠다.
일단 머디 워터스의 1950년ㄴ에서부터 60년대 말에 이르는 수많은 히트 싱글들을 뒤로 하고 오늘의 이 곡인 "They call me Muddy Waters"을 고른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Rollin' Stone, Rollin and Tumblin, Country Blues, I am your hoochie coaching man 등등등의 수많은 주옥같은 싱글들이 아닌 어찌 보면 전성기가 지난 50대에 발표했던 곡이냐? 우리가 머디 워터스도 모르는 바보로 아느냐?라고 하시더라도 난 꿋꿋이 할 이야기가 있다. "ㄴThey call me Muddy Waters"을 자신의 앨범의 타이틀이자 곡명으로 할만한 개건방을 떨어도 욕을 먹지 않을 정도의 클래스에 있는 뮤지션이 대중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몇 명이나 될 것 같은가? 누가 뭐래도 머디 워터스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인물이고 이런 개건방으로 인해 욕먹지 않아도 될 인간이라는 점 밝히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머디 워터스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지겹게 할 기회가 많을테니 오늘은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해 보도록 하자. "머디 워터스가 왜 수많은 블루스 뮤지션들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문장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당연히 rock and roll이 블루스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만큼 그 어느 클래시컬한 블루스의 대가도 백인들의 음악에 영향을 안미친 경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머디 워터스의 경우는 특별한데 그가 1958년 43세의 나이에 미국을 떠나 잉글랜드에 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잉글랜드에서 대중 앞에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Sonny Terry & Brownie Mcghee Big Bill Broonzy등 어쿠스틱 기타를 사용하던 블루스 혹은 포크 뮤지션들 외에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잉글랜드의 무대에 섰던 "정통 아프리카계 미국인 블루스 뮤지션"으로서는 머디 워터스가 최초였고 그의 공연은 수많은 잉글랜드의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주게 된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의 "백인 믈루스"가 어쩔 수 없는 음악적 환경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장르였다면, 잉글랜등-ㅔ서 "백인 블루스"가 발전하게 된 데에 최우선적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이 머디 워터스 할배라는 사실이 대중음악사에서 그의 위치를 특별하게 하는 "그만이 할 수 있던 음악적 기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혹은 잉글랜드의 "백인 블루스"도, 머디 워터스의 음악과 그의 음반들도 워낙 할 이야기가 많아 오늘은 머디 워터스의 일생에 있어 가장 드람마틱했던 사건들 중 하나로 불리는 일인 그의 1958년 잉글랜드 행에 대한 운을 띄우면서 여러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에서 이 게시물을 마쳐도괜찮을까요? 뭐 괜찮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이 게시물은 내가 끝내고 싶으면 내가 끝내는 것이니 말이다...
머디 워터스 안나오나 했습니다. 할 얘기 많으실테니 천천히 풀어주세요. ^^/
답글삭제천천히 오래오래 해주시지요.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뒷글 시카고의 will you still love me?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인데 댓글 달기가 안되네요. 피터 세트라의 공백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의 보컬이었죠. 음색도 거의 비슷해서 구별하기도 힘들 정도였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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