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늬들이 PMRC(Parents Music Resources Center)이라는 잔체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잇을지 모르겠는데 이 단ㄴ체가 창설되는 데에 가장 큰 기여를 하신 것이 바로 프린스 형님이시란 말씀이다. 그리고 바로 이 앨범하고도 연관이 있다.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하다고 여길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한 때 미국 부통령의 부인이었던 Tipper Gore여사를 아시는가 모르겠다. 그렇다 그 분은 바로 Ql Gore 전 미국 부통령의 부인 되시겠다. 티퍼 여사가 어느날 자신의 열한살 난 딸이 바로 이 앨범의 Darling Nikki를 듣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당연히 이 앨범이 발매되었을 당시 공화국에서도 그 선정적인 내용 때문에 방송 금지곡 풀반 금지곡의 영예를 얻으신 곡인데 자신의 열한살 먹은 딸이 이 곡을 듣는 것을 보고 이 단체를 세우게 되신다.
물론 티퍼 고어 여사가 PMRC을 세울 당시에 티퍼 여사는 당연히 부통령의 부인이 아니었지만 이 단체를 세우시고 우리가 해외 직구를 통해 구입하는 음반에서 볼 수 있는 "Parnetal Advisory:Explicit Lyrics"이라는 스티커는 바로 이 PMRC의 권고로 음반을 배포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측에서 자발적으로 붙이는 것으로 되어있다는 말씀이다. 물론 이른바 19금 음반이라는 것을 구입해보신 적도 없으신 이 사회의 밝고 건강한 성인이신 여러분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일테지만 말이다.
아무튼 프린스 형님의 앨범들 중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이 바로 이 앨범인 것만은 틀림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엔 당신들이 모르는 세계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 하나 있다. 같은 날짜에 동시에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와 빌보드 200 앨범 차트 그리고 전미 박스 오피스의 1위 자리에 동시에 자신의 작품을 올린 아티스트는 프린스가 최초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아무도 이 기록은 깨지 못하고 있다. 당시엔 동명의 영화가 100 퍼센트 프린스 자신의 이야기라 알려졌지만 사실 그냥 자신의 이야기에 바탕을 둔 영화였다고 한다.
사실은 앨범에 대한 프로젝트가 먼저 진행되었고 그리고 그 와중에 영화가 제작되었으며 그 뒤 프린스의 흑역사를 장식하게 될 프린스의 두번째 영ㅇ화 작업인
여기서 한가지! 작년 아델의 앨범에 한참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을 때 경향신문에 팝 칼럼리스트 I모씨가 이런 이양기를 하신 적이 있다. 그 분의 이야기인즉, 요즘 차트의 순환이 빠른 이유가 과거에 비해 들을만한 곡 혹은 역작이나 명작이 없어서 그럿다> 근데 어떻게 차트의 순환이 빠른 것과 음악의 퀄러티를 연관시킬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당대의 음반들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 빠른 차트의 순환이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자. 그 분이 그렇게 좋아하시는 classical rock의 명반들도 10주 이상 차트의 정상에 있어본 적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체크해 보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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