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6일 일요일

아님 말고 1000곡(125)









듣거나 말거나 1000곡

125."Maggie Campbell Blues(1928)" Etc.-Tommy Johnson-

1896년 미시시피주의 Terry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이 사람은 음악을 한 사람이다. 이 정도의 정보만 있다 하더라도 100명 중 60명 이상은 이 사람은 "Delta Blues"와 관련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뭐 아닐 수도 있지 않느냐? 어거지 쓰지 말아라!"라고 주둥이를 처놀리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당장 꺼져 주시고... 어쨌건 오늘 이야기할 사람은 델타 블루스의 전설적인 뮤지션들 중 하나로 꼽히는 Tommy Johnson인데, 이 양반이 특히 유명한 것은 당시로는 파격적이라할만한 시도-시도라는 말이 거슬린다면 연주기법이라고 해도 좋고.-인 가성(영어로는 falsetto voice이라 하니 어디 가서 작업할 때 이용하시려면 하시고...)을 사용하는 창법과 당시 수준에선 감히 다른 이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복잡한 혹은 난해한 기타 연주의 테크닉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한다.

Tommy Johnson은 그가 열네설 되던 해인 1910년 미시시피 주의 Cristal Springs이라는 곳으로 이주했는데 그 무렵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1914년 경엔 그의 형제인 Mager, LeDell과 함께 지역의 사교모임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수입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뭐 쉽게 이야기하자면 오블리 밴드,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행사"를 뛰면서 돈을 벌었다는 뜻이다. 1920년 경 그는 애석하게도 알콜중독자가 되어.... 술을 대단히 많이 마시게 되었지만 Papa Charlie Mcoy의 밴드에 참여하면서 남부 일대를 돌며 연주여행을 다녔고 그 과정에서 대단한 명성을 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추정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내가 그 시대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각종 자료로 추측하는 것이 전부 아니겠는가?) 그리고 강아지가 축음기 옆에 있는 앰블럼으로 유명한 Victor Record에서 1928년 Mcoy와 함께 그의 첫 음반을 발매하게 된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나? 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신 분이 계신가? 아! 물론 난 아주 어렵게 그 영화를 볼 수 있었으나 자세한 과정에 대해선 생략하기로 한다. 그 영화에 Tommy Johnson이름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의 타미 존슨이란 사람은 자신의 기타 연주를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인물로 나온다. 그런데 영화를 보시면 한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것이다. 영화에서 타미 존슨이 연주하는 곡들은 Skip James의 곡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사실은 영화 속의 타미 존슨이라는 캐릭터의 실제 모델은 Tommy Johnson이 아닌 Robert Johnson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혹시나 그 영화를 보셨다면 그 영화 속에서의 타미 존슨과 실제의 타미 존슨을 혼동하지 않기를 바라며 드린 말씀이다. 별 뜻은 없다.

아무튼 누가 뭐라 하더라도 Tommy Johnson을 대표하는 곡은 "Big Road Blues"일 것이고 그 곡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뭐 물론 안들어본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 것은 지들의 문제지 내 문제가 절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남들 다 아는 곡도 못 들었으면서 그런 인간들은 보나마나 개인 정보를 작성할 일이 있을 때 "취미"란에 "독서, 음악감상"이라고 적을 것이다. 빌어먹을 인간들 음반을 사지 않으면서 취미를 음악감상이라 쓰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줄도 모르고 심지어 You Tube이란 놈이 별의별 곡들을 다 백화점처럼 진열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한 번 이용하지도 않았으면서 취미가 음악감상이라는 자들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든지 주둥이를 꿰메든지 해애 2011년엔 사회가 명랑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내 손에 피를 묻히기는 싫고...

이야기가 또 다른 곳으로 삐딱선을 타버렸지만 "Big Road Blues"이라는 곡 못지않게 중요한 곡은 같은 음반 안의 "Canned Heat Blues"이라는 곡인데 심지어 이 곡은 곡의 이름을 딴 "Canned Heat Blues"이라는 밴드가 생기기도 할 정도로 대단히 영향력이 높은 곡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곡인 "On the road again"은 타미 존슨의 "Big Road Blues"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라고 공공연히 알려져 있기도 하다. 2010년의 마지막에 타미 존슨을 소개하는 이유는 블루스의 원형 중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델타 블루스의 원형에 가까운 음악을 소개해드리고자 함이었다. 그냥 열심히 들으시고 2011년에도 별다른 변화 없이 생각날 때마다 그 때 그 때 이 게시물을 연작으로 올릴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게시물이 올라가는 것은 2011년이겠으나 2010년에 작성을 시작했으므로 구글 블로그 기준으로는 2010년 12월의 게시물이 된다.

<추신>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다. 자타칭 "가요계의 레전드"라는 L씨가 작년 가장 화제가 되었던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블루스에 대한 이야기를 설파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다가 거의 쓰러지는 줄 알았다. 블루스적인 부분? 블루스적인 느낌? 이 사람은 블루스를 마이너 펜타토닉 스케일이나 전형적인 모던 블루스의 창법 등 흔히 이야기하는 "Blusy"라는 단어에 얽메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이너 펜타토닉 스케일도 그저 블루스의 일부분일 뿐이다. 블루스라는 것은 곡이 가지는 고유의 느낌이기 이전에 12마디를 기본으로 하는 미국의 대중음악의 한 형식이다. 아마도 그의 귀엔 초창기 블루스 곡들은 절대 블루스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아! 아직도 명랑사회는 말고도 험한 길을 눈앞에 깔아두고 있다. 빌어먹을!!!














2010년 12월 23일 목요일

자해?.... 아니! 자폭!







크리스마스 시즌부터 시작하여 연초까지 이어지는 이 꿀꿀한 기간을 "인생에 더없이 꿀꿀한 기간으로 보냈다. 비교급이 아닌 최상급의 꿀꿀함으로!"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마!이 정도면 가히 크리스마스 이브의 악몽 수분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이브의 자폭 수준일 것이라 장담하며...

1. 우선 시작은 Jeff Buckly의 곡들로... 가사를 음미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 인간이 1968년에 태어나 1997년 불의의 사고로 이 세상과 이별을 고한 그의 일생을 생각하며 "이 빌어먹을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어이없는 사고로 세상을 하직하기도 하는구나... 이 더러운 인생"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나 자신의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인생을 떠올린다.

2. 시동이 제대로 걸렸다 싶을 때에 Damien Rice의 곡들을 듣기 시작한다. 그의 곡들을 들을 때 특히 유의해야할 것은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지지리 궁상스러운가 집중하며 들을 것! 쓰잘데기 없이 그의 가사가 시적이니 어쩌니 그런 사치스런 낭만에 빠지기 시작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그의 지지리 궁상의 극치인 음색에만 집중한다. 이 인간의 음악을 들으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싶었을 때 James Blunt의 음반을 슬슬 꺼내어 준비를 시작한다.

3. 이쯤에서 다른 장르의 곡들도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Pink Floyd의 "Set the controls for the heart of the sun"을 들어야만 한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말의 취지에 제대로 부합하려면 반드시 눈을 감고 들어야 한다. 계속 듣다 보면 왜 내 손이 닿는 곳엔 마리화나도 코카인도 없는 것이냐?를 연발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 바로 이런 느낌을 가지게 된다면 정말 자학의 과정으로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고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4. 이 건 개인적으론 별로라 생각하지만, 이 쯤에서 Gloomy Sunday를 든는다면 아마 당신은 충분히 "자학"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곡이 어째서 그렇게 자학적인 곡이라 불리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쯤에서 남들이 다 알고있는 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고 모닥불에 탱크로리에서 휘발유를 들이붓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태가 될 것이다.

5. 이젠 기타를 들자! 절대 평소에 알고있거나 악보를 가지고 있는 곡이 아니라 어디서 보도 듣도 못한 엄청나게 손가락을 혹사시킬 수 있는 테크닉을 요하는 곡을 귀로 듣고 따서 카피를 하려는 시도를 시작한다. 당연히 잘 될 리가 없다. 이 때쯤이면 당신의 꿀꿀함은 슬슬 분노로 바뀌기 시작할 것이고 마리화나나 코카인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대신 자신이 총기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한탄하게 될 것이다. 아마 총이 있다면 자신의 머리에 대고 그대로 갈겨버리고 싶을 것이다.

6. 중요한 것은 오늘저녁부터 위의 과정을 실행할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결말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영화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식으로 보내야하는 스스로를 한탄하면서 1번부터 차례로 시행하게 될 것 같다...빌어먹을!

2010년 12월 11일 토요일

니미 닭튀김 못 처먹어서 죽은 귀신들이 씌었나?(개소리들)

도대체 첫 문장을 다시 썼다 지우고 한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별의별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까에 대한 고민을많이 했다. 당연히 이 게시물의 마지막 줄을 끝냈을 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다. 게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심지어 롯데마트는 그 빌어먹을 "통큰 치킨"을 15일까지만 판매한다고 했고 이마트는 치킨과 피자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신들을 죽어도 팔겠단다. 물론 그 덕에 이야기할 거리가 늘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나 그 더러운 이병철의 후손들 혹은 범 삼성가의 더러운 짓거리에 대해선 분노 게이지가 훨씬 더 올라갔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게 되기도 했다. 더럽다...는 단어 하나로 그냥 이야기를 끝낼 수도 있지만 나름 블로그란 곳을 그런 용도로 쓰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라 그 정도로 끝내주진 않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마트 피자가 나왔을 때에도 그랬고 롯데마트 치킨이 나왔을 때에도 그랬고 이 문제를 "자타칭 진보언론"인 한겨레나 경향까지도 단순히 거대자본의 횡포 정도의 "낭만적 레토릭"의 선정적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고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족"인 공화국의 밤의 주둥아리들 역시 소비자의 권리를 씨부리며 롯데 매트 닭을 당장 다시 살려내라(처음 이 게시물을 쓰기 시작한 후 중간에 벌어진 일들이 꽤 많이 있다. 롯데 마트의 닭은 사라졌으며 빌어먹을 정용진 새끼의 이마트는 피자를 계속 팔겠단다. 그리고 원가 논쟁이니 뭐니 하는 일들이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며 웃기지도 않는 닭짓을 하고 있는 중이다. 다들 가격이 어쩌고 하는 동안 내가 했던 생각은 좀 다른 것이었다. 왜 이미 아시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이 다들 할만한 이야기는 내가 굳이 하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거대자본 중 하나인 애플이 아이폰 시리즈를 내고 삼성이 아이폰에 대항한다며 갤럭시 시리즈를 낼 때 그 잘나빠진 공화국의 인민들은 그들이 제시하는 "어차피 원가와는 전혀 상관 없을" 가격에 상관없이 그에 열광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아무리 그들도 대자본이라 한들 상대도 되지 않을 피자 체인이나 치킨 체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엄청나게 "충격적인" 가격에 피자와 치킨을 출시하면 또 그에 열광한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는가? 지금은 거의 없어진 파격적인 가격의 동네 치킨집들은 왜 당시 그 동네를 싹쓸이 하지 못했는데 거대자본의 이런 빌어먹을 짓에는 동네마다 수없이 존재하는 치킨집들이 다들 울상이며 심지어 한 때는 롯데 카드로 결재하는 손님에겐 닭을 팔지도 않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는가? 여기서 한 번 시작을 해보자는 이야기이다.

즉, 과연 우리들에게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우리의 의지대로 소비할 자유가 있는가?"라는 문제와 "우리의 의식까지 대자본들이 지배하고 있는데 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자는 이야기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라는 생각을 우선 해보았더니 공화국의 가요계라는 답을 얻었다.(물론 나름대로) 항상 준비되어 있는 소비자는 그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든지 간에 SM, JYP, YG,에서 나오는 신인 가수들을 기다리고 있다 "Ready! Start!"라는 소리와 동시에 그들에게 미친듯 열광한다. 심지어 그들의 음반이 나오기 전-음반이 나오기는 하나?-부터 그런 분비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자신들은 개념에 가득찬 척 해대며 "개념없는 빠순이들"을 욕하는 20대 이상의 소비자들은 애플과 삼성의 제품에 같은 태도를 보인다.

아이폰과 갤럭시의 경우는 높은 가격에 상관없이 소비하는 경우겠지만, 과연 이마트 피자나 롯뎁마트의 치킨이 아니라 수많은 연세대 부근의 자취생들의 마음의 고향인 그랜드 마트에서 그런 치킨을 내놓고 미아트와 같은 가격에 피자를 판매한다고 해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럴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폰의 예이건 이마트 피자의 예이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짜 경쟁력은 "가격"이나 "품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시장에서의 지배적 위치에서 기반하는 비교할 수도 없는 힘인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의지나 영혼 따위에 대한 생각도 저항도 없이 그 엄청난 시장 지배력의 품에 안기며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원가 논쟁? 그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 이마트 피자의 납품 업체는 상장도 되지 않은 신세계 일가의 "개인회사"다. 그리고 롯데 마트의 구조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 그들이 요구하는 가격에 맞추려면 아마도 납품업체는 허리가 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잊고있는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정용진 새끼의 말처럼 "좋은 제품을 싼 가격에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유통업의 존재 이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통업의 존재 이유는 "그냥 그 상태로는 상품이 되지 않는 재화를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점이다. 유통업은 자본주의에서 종사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일종의 긍정적 서비스"가 아닌 "착취 구조가 시작되는 지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똑같은 장사꾼 새끼는 "나도 2주에 한번 꼴로 배달 치킨을 시켜먹는데 가격이 좀 비싸다는 생각을 한다. 영세상인 보호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싼 가격에 치킨을 먹을 수 있는 권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떠들겠지만 말이다.

2010년 12월 5일 일요일

아님 말고 1000곡(124)








듣거나 말거나 1000곡

124. God-John Lennon/Plastic Ono Band(1970)

1970년 발매된 John Lennon/Plastic Ono Band이라는 타이틀의 음반은 아주 단순하게 본다면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존의 곡 중 하나인 "Love"이 들어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이 음반이 중요한 이유를 꼽으라면 Phil Specter, Billy Preston이 각각 "Love"과 "God"이 두 곡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는 점에서 이 음반은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 할 것이다. 두 사람 다 비틀스 시절 존과 함께 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것은 이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의 드러밍을 링고가 했다는 점이다. 폴도 없고 조지도 없지만 이 앨범이-비틀스 시절의 존의 곡들과는 확실히 다르긴 하지만- 대중들에게 익숙하게 들릴 이유가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 "Rolling Stone"지로부터 이 시대에 가장 위대한 앨범에 스물 한번째로 이름을 올린 이 앨범은 1970년 12월 11일 발매된 "실질적인 존 레논의 첫번째 대중음악 앨범"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존은 요코와 함께 이전에 세 장의 음반을 공개한 적이 있었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비틀스의 리더(라고 하면 폴이 삐칠지 모르지만)로서 그리고 20세기 가장 중요한 팀의 멤버로서의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 아니라 미술가인 동시에 행위 예술가지아 사회운동가였던 자신의 부인인 요코 오노와의 접점을 과시하는 듯한 일종의 실험적 프로젝트였다고 보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존 레넌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정도의 실험적 프로젝트였닫고 할 수 있을 것이다.(오해가 있을 듯 싶어 덧붙인다면 오로지 그런 프로젝트만을 하는 사람은 음반을 세상에 내놓을 내놓을 정도로 무모한 음반사와 계약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할 것이다.)

참고적으로 이 앨범은 세 가지의 버전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하는데, 그 이유는 앵초 A Side와 B sibe로 이뤄져있던 오리지널 Vynil LP 버전엔 12곡이 수록되었다. 2000년에 재발매된 디지털 리매스터드 버전엔 13번과 14번 트랙에 "Power to the people" "Do the Oz"가 수록되었으며 2010년, 즉 올해 또 다시 발매된 버전의 앨범엔 이 13번과 14번 트랙이 다시 사라졌다. 이런 말을 하기 다소 꺼려지긴 하지만 역시 아직까지도 인류에게 있어 가장 상업적으로 안전빵인 아이템은 비틀스와 그 멤버들이란 사실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앨범을 여는 "Mother"에서부터 B side의 마지막 곡인 "My mummy's dead"의 전곡을 듣다보면 한 가지 추론가능한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것이다. "시기가 시기인만큼 이 앨범을 낼 당시 존 레넌의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있었구나"라는...

이 앨범엔 유년시절과 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자신의 정체성 문제의 근원이라 생각되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부터 자신이 비틀스가 되기 전 자신의 정체성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소회, 누가 들어도 요코와의 사랑을 노래했음직한 곡도, 세상의 모든 것들이 허위의식이며 오로지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자기 자신임을 말하는 등 앨범 안에 수많은 존의 모습이 존재하며 그리고 앨범 안에서의 존은 서로 모순되며 서로 충돌하고 서로 화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다분히 정제되지 않은, 특히나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 Double Fantasy와 비교해본다면 특히 심한, 실존의 문제로 괴로워하는 유물론자의 넋두리같은 내용을 담았고 그로 인해 존의 여러가지 모습 중 하나를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거나 그 한가지의 모습으로 평생 존의 지지자가 되기로 맹세한 사람들에겐 지극히 혼란스러운 앨범일 것이다. 롤링 스톤의 견해는 어떤지 모르지만(사실 궁금하지도 않다.)

사실은 며칠 전의 꿈에도 존 아저씨가 나타나 "올해도 내가 골로 간 날 날 팔아먹을 생각이라면 아예 접어라"고 이야기를 하길래 "아저씨가 내게 노트북을 사줘봤냐? 기타를 사줘봤냐? 심지어 pick 하나라도 줘봤냐? 내 손가락은 내 것이다."라고 했더니 "그래 역시 넌 네 머리라는 것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목위가 허전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올려놓은 칼슘과 단백질 석회 등등으로 이루어진 덩어리라는 것을 인정하는구나..."라며 비꼬길래... "머리 기르고 수염 기르기 위한 용도로만 머리와 얼굴을 쓰는 것보다는 그래도 목위의 허저함을 채워주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 낫다"고 같이 비아냥대다 잠에서 깼다. 왜 항상 꿈에 존 아저씨가 나타나면 좀 더 잘해주지 못할까?라는 고민을 했으나 그가 단 한번도 먼저 살가운 말을 건넨 적이 없음을 깨닫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시다시피 12월 8일은 존 아저씨의 30주기다. 줴길...



2010년 12월 1일 수요일

누가 진지하게 듣진 않겠지만... (개소리들)

1971년 네덜란드의 TV 프로그램에선 당시 휠을 잡고 있던(이 표현 양아들이 쓰는 표현인데 계속 쓴다.) 노엄 촘스키와 미쉘 푸코를 초대해 대담 프로그램을 생중계한 적이 있다. 다아시 사회자였던 멜데르스는 푸코에게 "푸코쓰는 정치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이유가 뭐냐?"는 요지의 질문을 던졌는데 푸코는 그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을 했다. "난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자칭 보수라 주장하는 인간들의 흔한 레퍼토리 중 하나가 "왜 그렇게 이념에 대해 집착하는가?"내지는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왜 그렇게 많으냐?"인데 푸코와는 달리 난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거나 이념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 역시 이념적인 것 이닌가?" 거기에다 푸코의 멜데르스에 대한 답을 합치면 "난 내 블로그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자유가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왕 푸코 이야기가 나왔으니 푸코 식으로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정의나 대의명분은 (적어도 푸코에 의하면)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나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내세우는 구호일 뿐이다. 정의를 위해 전쟁을 하거나 혁명을 하는 것이 아니다. 혁명에 대해서는 그다지 경험이 없으니 과거 사례를 전쟁을 통해 이해 하도록 해보자. 전쟁을 할 경우 서로가 정의라는 것을 내세운다. 하지만, 치열했던 전쟁이 끝나고 나면 누가 전쟁에 이겼느냐만 남는다. 그리고 전쟁에 이긴 사람들은 "정의가 승리했다"고 말할 것이다. 이 것은 "이긴 놈이 정의"라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 이야기는 애초에 전쟁이라는 것 자체에 "정의"라는 것이 비집고 들어갈 틈 따위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푸코의 말에 100% 수긍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도 100%라는 수사를 남발할 정도로 수긍한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정의라는 것만이 전쟁의 구실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물론 대의명분이라는 단어를 쓴다면 거의 100% 동조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윗 단락에서 푸코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미 일어난 무력충돌에 대해 북한 새끼 씹새끼! 우리나라 존나 만만세!"라고 하는 것은 이미 개나 고등어나 다 한 이야기니 나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음과 동시에 "다음 번에 또 공격했는데 존나 보복하는데 반대하는 사람?" "아! 씨발 너 반대야? 이 좆같은 빨갱이 새끼 종북주의자 새끼"이런 식의 이야기가 이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대안도 대책도 아놀 수 없는 이야기이니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전제를 미리 깔고 가자는 이야기이다. 어차피 저질러진 문제에 대해 왜 흥분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문제는 가끔씩 잊고 사는 것 중 한 가지가 바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단 스스로를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일 것이라는 점ㅁ이고 그렇기 때문에 주로 이런 관점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점이다.

"바보가 아닌 사람에게 밥보라고 하면 그냥 웃어 넘길 수 있으나 정말 바보에게 넌 바보라고 이야기하면 그 것은 욕이고 생각했던 것 이상의 반응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 -물론 내가 처음 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실제로 많은 경우에 기가 막히게도 적용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학생 시절에 노동운ㅇ동을 현장에서 하시는 분들에게 어설픈 저학번 혹은 저학년 아해들이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서 노동현장을 지켜나가시느라 정말 힘드시고 어쩌고 저쩌고..."이런 식의 지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건낼 경우 노동조합의 관계자들이 학삐리들에게 보내던 차가운 시선을 아직도 기억할 정도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진정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선행학습이나 스스로의 경험 없이 함부로 지껄이는 것은 그 혹은 그들과의 대화 자체를 단절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며 실제로 그런 반응이 오더라는 것이다.

이 정권은 사회복지라는 것을 인격이 고매한 부자가-이런 모순형용은 가끔 지겹기까지 하지만-자신들이 먹다 남은 밥상의 고기반찬을 지나가던 거지에게 던져주고 그 거지들은 그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황송해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사회복지라는 것은 그런 적선의 개념이 아니라 "사회 안전망의 구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데 "아이들은 스스로 노동할 수 있는 연령에 잉르기 까지는 국가가 그들의 성장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것들에 대해 책임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세금으로 부잣집 아이들의 밥을 무료로 줘야하나?"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북한이라는 존재를 "왜 길거리의 거지취급하려 하는가?"라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그에 대한 답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건 마치 길거리의 노숙인이나 구걸하고 있는 사람에게 "난 거지고쓰레기 인생이며 사회의 암적 존재다라고 크게 이야기하면 만원 줄께 그렇게 해봐!"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문제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저런 거지떼들같은 북한 사회가 붕괴되지 않고 유지되는지 아는가"라고 물어본다면 "편집증 환자인 김정일 집단의 거짓 선전과 억압에 의해 가능하다"는 말만을 되풀이할 따름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탈북이라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지긴 했어도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시스템이 그대로 작동한다면 "남한이나 제 3국으로의 엑소더스로 국경의 철책선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북한을 북괴라 이야기하며 국가도 아닌 것처럼 이양기하길 좋아하나 엄연히 UN에 동시에 가입되어 있는 별도의 독립국이란 이야기이다.(왜 두 개의 조선 책동하는 미국놈들 몰아내자고 외치던 주사위들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했는지는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도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너무 장황하다고? 물론 장황할 수밖에 없다. 내가 머리가 나쁘다보니...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공화국엔 북한이라는 국가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는 것이다. 왜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게닥다 사회주의에 대한 엄청난 배신행위까지 한, 북한이라는 국가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없었다는 점이 현재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이라는 것이다. 한 번 묻고 싶다. 도대체 변절의 아이콘 뉴라이트들은 이명박의 주위에서 뭘 했는가? 그들이 자신들이 개척하려는 신천지에서 인정받기 위해 주체사상을 버리면서 그렇지 않아도 운동권 내에서도 "우파"로 불리던 주사위였던 주제에 이명박이나 이회창보다도 훨씬 더 오른쪽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경쟁적으로 보여주기만 했을 뿐 아무도 "항상 위협으로 존재하는" 북한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도뭉을 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잉른바 학삐리 시절에 주사위들의 수적인 우세에 시달리며 그들에게 "당하고 살았던" 세칭(이 표현 싫어하지만) 범 PD 계열의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현재 공화국의 이른바 "안보라인"에 속해있는 인간들보다 권력이라는 의미로서 그리고 국가 시스템이라는 차원에서의 북한을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항상 당해본 사람들은 적응력이나 적의 실체에 대해 빨리 파악하기 마련이다.) 요즘엔 트위터에 누가 멘션을 올려도 추적이 되는 세상이니 구글 블로그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어 하고 싶은 말을 100% 할 수는 없으나 결론은 이렇다. "공화국의 안전을 위해서도 거지취급이나 조롱이 아닌 진지한 북한에 대한 연구와 공화국 자신에 대한 성찰을 회피하면 이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왜 이런 소리를 하느냐고?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전쟁잉라는 것이 난다면 어느 쪽이 당연히 손해이겠는가?" 당연히 그렇게 자랑해대는 몇십배 혹은 백배가 넘는 경제규모를 가진 쪽 아니겠는가? 전쟁? 전쟁을 수행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40대 이상에서 65세 까지의 인간들이 반드시 참전해야 한다고 명문화 해봐라.... 전쟁이란 이야기를 몇 배의 보복이란 이야기를 그렇게 한 시간 이상 씹은 껌 아무 생각없이 길거리에 뱉듯 내뱉을 수 있겠는가?

2010년 11월 4일 목요일

아님 말고 1000곡(123)








듣거나 말거나 1000곡

123. Like a rolling stone-Bob Dylan(1965)-

이 게시물을 쓰던 중에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이 세상을 떴다. 그 바닥에서 워낙 다혈질이고 오버쟁이로 소문난 김작가는 참고 참았던 공화국 음악시장구조의 좆같음에 대해 울분을 토하며 그 것이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이 세상을 뜨게 한 원인이라며 분노하고 있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중요한 것은 재주소년의 해체나 달빛요정의 죽음이나 꽤나 찝찝 혹은 허찰한 일임엔 분명하다. 그렇게 음악 좀 듣는 척하면서 그들의 엄청난 팬이라며 주둥이질 하던 것들은 그간 뭐하고 있었는지...

123이란 숫자가 뭔가 의미심장해 보이지 않는가? 아님 말고... 애초에 123, 234, 345 이런 순서엔 나름 굉장한 의미가 있는 곡에 대해 지껄이려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던 만큼 적어도 이 게시물은 1번 게시물을 썼을 때부터 123번은 이 곡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는 것은 하늘에 맹세코 거짓이 아니다.(물론 안다. 하늘에 맹세하는 것만큼 뒤집기 쉬운 말은 없다는 것 정도는...) 오늘 이야기할 곡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가 살고 있는 2010년까지 미국-혹은 영어권-의 대중음악은 지금 현재 음악사가 기록하고 있는 것과는 엄청나게 다른 경로를 거쳐왔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한 곡과 아티스트에 대한 게시물이니 외울 필요까지는 없으나 가능하면 성심성의껏 읽어주셨으면 한다.(곡목을 위에 써 놓았으니 이런 뜸을 들이는 것이 좀 우습긴 하다.)

좋으나 싫으나 그 권위와 영향력을, 더 근본적으로는 잡지라는 것을 만드는 기본 자세의 충실함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Rolling Stone지에서 매년 발표하는 차트 중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popular song이란 것이 있는데 내 눈으로 확인을 했던 해들 중 이 곡이 1위를 하지 않았던 기억은 없다. 그리고 공화국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미권의 대중음악 감상자들 중에서 이 회사의 다분히 진부해보일 수도 있는 이런 선정에 대해 별다른 반발을 나타내는 사람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 모를 일이다. 잡지의 제호와 곡목이 좀 심하게 유사하기 때문에 그들이 그러는지도... 하지만 이 곡을 차트의 맨 꼭대기에 올려놓는 데에 대해 집단적인 반발을 하거나 그로 인해 Rolling Stone지의 권위가 떨어지거나 했다는 소식을 접한 적도 없다.중언부언했지만 다시 말하자면 이 곡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수긍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사적인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소소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는ㄴ데 Warner Bros.에서 bootleg series의 아홉번째 시리즈로 Bob Dylan의 트랙드을 두 장의 CD로 디지털 리매스터링 버전으로 발매했는데 1962년에서 1964년에 이르는 시기에 발표되었거나 발표되지 않았던 트랙들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Like a rolling stone의 발표연도가 1965년이라는 것과 이 음반의 발매가 무관하지 않다 생각하는 것은 이 프로젝트가 단순히 워너의 독단적 결정에 의해 시행되었을 리는 없고 어떤 식으로든지 Bob Dylan의 의견이 포함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965년이라는 연도가 그의 경력에 있어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 견해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티렉스는 이 곡에 대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단 먼저 밝힐 것이 있다. "취향이란 것은 개인의 몫이므로 너 따위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라고 지껄이실 작정이라면 어금니 꽉 깨무시기 바란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은 취향이란 것을 뛰어 넘는 이야기라는 점 미리 밝힌다는 뜻이다. Bob Dylan을 기점으로 특히나 Like a rolling stone을 기점으로 대중음악은 더 이상 "아이들의 소일거리나 맥주병을 든 사람들의 고성방가나 격식을 차리고 클럽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위한 배경"등등의 위치에서 벗어나 여지껏 대중음악을 자신들의 "고상한" 모임의 배경 정도로 생각하던 이들에게 탄압을 받는 그런 위치가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밥 딜런 이전에 거스리 부자도 있었고 피트 시거 할아버지도 계셨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그 정치적인 내용에 있어서의 급진성과 파격에도 불구하고 태풍과 같은 위력으로 부르주아지들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그 것은 그들의 노래들은 지나치게 직설적이었기 때문에 "운동가요" 정도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었던 데 기인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Bob Dylan의 등장으로 인해 이제 popular song은 그들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의 역할을 할 수 있게끔 되었다. 중년층에서부터 10대 아이들까지 그의 노래를 통해 "팍스 아메리카나"를 꿈꾸던 미국의 부르주아지들에게 우회적인 공격을 하게 되었고 미국의 인민들이 그의 노래를 더 많이 알게되고 부르게 될수록 미국이라는 거대한 부조리는 미국의 지식인들의 뇌속을 뛰어 넘어 미국의 청년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고 태평양도 대서양도 더 이상 미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폭력적인 국가"라는 사실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힘은 미국에서 히피 무브먼트를 가능하게 했고 대대적인 반전운동을 가능하게 했고 대륙에서의 68년의 기운이 미국에까지 미치게 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런 Bob Dylan의 상징성을 잉해한다면 그가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섰을 때 대중들이 느꼈을 배신감도 이해가능한 것이 된다.

물론 Bob Dylan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곡을 잘 쓰는 사람인가? 노래를 잘 하는가? 그의 곡들이 음악적인-특히나 테크닉적인 면에서-측면에서 최고인가?를 자세히 따지자치면 뭐 결국엔 취향이 어쩌고 하는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밴드를 비틀스로 꼽고 그보다 기타를 더 잘치는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Jimi Hendrix가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타리스트라는 점들은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대중음악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곡으로 Like a rolling stone을 꼽는 것은 대중음악이라는 단어에서 "대중"이라는 수식어가 가지는 기표를 다른 차원의 것으로 이끌어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눈 내리 깔고 어금니 꽉 깨물기 바란다.

2010년 10월 27일 수요일

잘못 배달하셨습니다.(개소리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몇가지 가벼운 이야기를, 그리고 매우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선, 살아오면서 육체적으로 가장 난감한 상황은 딱 두가지였다. 콧등에 모기가 물리면 코가 엄청나게 부어오르고 그 통증은 마치 코가 터저버릴 것 같을 정도다. 이 때 무척 난감하다. 또 하나는 재채기가 나오려는 순간 사래가 들려 기침이 터지기 시작할 때... 이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현재 오른쪽 엄지발가락의 발톱이 쉽게 잉갸해서 "까맣게 죽어있는 상태"다. 언제 다쳤는지는 모르지만 다쳤 것이 아닌 발을 많이 움직이는-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에게킄 특히- 놈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증세교 일부러 마취를 한 뒤 발톱을 뽑지 말로 새 발톱이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현재의 발톱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편이 덜 고통스럽고 말을 쓰는 데에도 무리가 덜 온다고 한다. 이 두 이야기를 왜 하느냐? 대단한 이유는 아니고 앞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의 상황에 처했거나 발을 잘 못 건드렸을 경우 털끝하나만 건드리면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위의 두 뻘소리는 잊어버리고 본론으로 들어가보도록 하자...는데 위와 같은 상황 못지 않게 털끝 하나만 건드려도 욱학레 만드는 상화에 대한 이야기인 것은 마찬가지이니 앞의 두 이야ㅣㄱ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이야기나 시작해보자.

분명히 이른바 "주일성수"라는 것을 지키려 애쓰고 개신교와 무관하지 않은 단체의 후원을 하고 있으며 짬짬이 Holy Bible을 읽기도 하며 다른 종교의 의식에 참여한 적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며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개신교 교회라는 곳을 다니기 시작한 나라는 인간은 분명히 Christianity라는 단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Christianity라는 단어는 참고삼아 말씀드리자면 Christian보다 훨씬 더 폭넓은 의미를 가진 단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이야기하자면 난 무신론자다. 적어도 근본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을 감시하고 벌을 주고 인간과 같은 형상을 했으며 사소한 인간의 일상들을 모조리 관장하는 역할을 하는 신이란 것은 존재하기 않는다고 믿는다.

분명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무신론적 신념을 남에게 설파하거나 하진 못하는데 우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는 분명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편을 하건 코카인을 하건 LSD을 하건 그 것은 그의 자유라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종교 서전의 자유 역시 존중하기 때문에 특정 종교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이른바 "신념적 무신론자"들이 종교-이 경우 대부분 기독교를 지칭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기독교라는 단어는 구교와 신교 모두를 가리키는 단어다. 이 기됵교라는 단어를 개신교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에 대해 가하는 비판의 번지수가 잘못 되어있어도 심하게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양심적 무신론자들은 대체적으로 리처드 도킨스의 허친스의 방법을 따른다. 제일 간단하지만 가장 허무한 방법 "이른바 창조론의 허구성을 공격하여 기독교를 깔아 뭉개려는 방법"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식의 공격이 기독교 신자들을 근본에서부터 회의하고 그들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외의 다른 그 어떤 정교도 대부분 "천지창조"라 할만한 신화를 모두 가지고 있다. 이 것은 그리스-로마 신화에도 있으며 조로아스터교에도 있으며 그 외 이루 셀 수 없는 많은 종교에서 태초의 무질서로부터 세상이 생겨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신화는 신화의 영역일 뿐 기독교도들 모두가 실제로 "여호와 하느님"이 찰흙으로 빚어 사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자체를 믿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생물학적인, 인류학적인 증거들이 창조론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뿔뿔이 흩어지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상대방이 반응하지도 않을 "아기 손으로 허벅지 때리기"를 해놓고 "한 방에 상대를 Knock out시켰다"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창조론이 옳은가 아니냐는 종교적 논쟁의 포인트가 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데에 그들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환인의 아들인 환웅이 어쩌고 하면서 시작해서 단군왕검이 조선을ㄹ 세웠다."라고 끝나는 단군신화 역시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것을 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공화국 전체가 우스갯거리밖엔 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서로 "이건 신화야! 족교 경전의 이야기야! 이걸 그대로 믿으면 넌 찌질이야!"라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난 창조론이 과학적으로 황당무개한 이야기임을 밝혔으니 내가 완승했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루런 의미가 없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란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애초 종교라는 것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출발하여 "특정 종교가 가지는 총체성의 문제"를 건드리려 하지 않는 이상 창조론이 과학적인 허구임을 증명했음으로 기독교는 개구라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허공을 향해 자위행위를 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종교가 왜 더 이상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가?"를 파편적인 성경의 문구나 특정 교회 사업가의 예를 들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짐이 되고 인간을 억압할 수 있는 종교가 되어버린 기독교의 총체성 내에서의 문제가 어떤 것인가?를 파고들어야 양심적인 무신론자들이 원하는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뭐 이쯤 되면 내게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그게 무너지 이야기해 봐라!"라고 하지만 당신네들은 한가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무신론자이긴 하지만 스스로 기독교와 완전히 무관할 수는 없는 인간이라는 점을...

이 정도의 힌트를 줬으면 그 나머지는 당신네들 스스로 하는 버릇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 이상 이야기하는 것은 영업상의 비밀을 가르쳐주는 행위에 해당함으로 사절이다. 왜 텔레비전의 맛집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이건 우리만의 비법이여! 촬영 안돼!"라고 하면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카메라를 끄지 않는가!

2010년 10월 20일 수요일

아님 말고 1000곡(122)








듣거나 말거나 1000곡(122)

How high the moon-Les Paul and Mary Ford(1951)-

자신의 이름이 두고둗고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은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많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통칭 "유명인"이라 할수 있을텐데 사실은 툭하면 사고 치고 "공인응로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 거의 대부분은 공인이라기 보다는 "유명인"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권상우가 뺑소니 사건을 일으키고 "공인으로서 죄송"하다 했는데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권상우에게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지위"를 준 적이 있다는 말인가? 알고봅보면 그는 배우라는 직업으로 스스로를 위장한 정보기관의 요원인가? 대략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말라고 전해라! 당신들은 그냥 유명인에 불과할 뿐이다. 당신들이 공인이면 마이클 잭슨은 유엔주재 미국 대사 정도 된다는 말인가?

또 뻘소리로 서두를 꺼냈지만 크루이프 턴이니 드가체프 내리기니 하는 스포츠의 기술들의 공통점은 "실존했던 플레이어의 이름을 딴 기술"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업계에 종사했던 사람으로서 이런 정도의 유명세를 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요한 크루이프 급이나 되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Wilson Arthur Ash처럼 스포츠 용품에 유명선수의 이름을 붙인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크루이프 턴이니 하는 것들보다는 좀 덜한 영예일지 몰라도 이 역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 용품의 모델에 실제 플레이어의 이름이 들어간 것보다 훨씬 더 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이름이 있으니 기타의 body의 한 형태로 가장 많이 쓰이는 일렉트릭 기타의 바디 타입 중 하나인 Les Paul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들어보지 못하신 분들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이 바로 그 Les Paul이다.

혹자는 흔히들 말하는 레스-폴이라는 것이 人名이라는 것을 몰랐다고들 한다.-그렇다. 내 주위엔 이런 무식한 놈들이 널렸다.- 하지만 그들도 Rock and Roll의 기타 사운드라는 것이 이전의 어쿠스틱 기타와도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고 Semi-Accoustic이라고도 불리는 Hollow Body Guitar와도 차이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물론 그 것도 모르는 놈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녀석들까지 여기서 고려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기타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지만 아무튼 Solid Body Guitar들이 주로 Rock and Roll 음악에 쓰이는데 이런 rock and roll의 기타 사운드를 가능하게 해 준 선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Lester William Polstuss 세상에 주로 알려진 이름으로는 Les Paul인 사람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가 Les Paul Body의 발명자라는 이야기이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그가 연주했던 장르는 Jazz , Blues, Country and Western이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곡들을 들어보면 이 세 장르의 속성들이 곡마다 모두 한꺼번에 녹아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좋게 이야기하면 Cross-over 나쁘게 이야기하자면 잡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는 분명히 Les Paul 기타의 발명자라는 타이틀 만으로도 대중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Les Paul 기타를 애용하는 기타리스트들의 이름만 대도 레스 폴의 "엄청나다고 하기엔 뭔가 허전한 음악성"에 대한 뒷담화 따위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일명 Sound on sound이라고도 하는 Over dubbing 테크닉을 보편화시킨 인물이기까지 하다.((사실 이 점에 대해선 다소 논랑의 여지가 있다. 오버더빙이라는 기술 차제가 레스 폴 이전에 분명히 존재핬고 실제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스 폴에 의해 대중화된 것만은 부정하기 힘들다.)

오버 더빙보다 더 큰 범주에 속하는 용어로는 Multitrack Recording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쉽게 이야기하자면 오버 더빙은 멀티트랙 레코딩의 부분집합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레스 폴과 멀티트랙 레코딩과의 관계를 찾자면 그 연원은 무려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사세가 대단히 위축되었지만-혹시 파산했는지도 모르겠다.-Capitol Records는 레스 폴의 자택 차고에서 한가지 실험을 하게 되는데 트랙을 레코딩 과정에서 녹음 속도를 정상 속도의 절반으로(half-speed)한 다음 그 트랙을 재생시키게 되면 두 배의 속도(double-fast)로 빨라진다는 점을 이용하여 이를 정식으로 음반을 발매할 때에도 사용했던 것이다. 레스 폴이 높게 평가받는 점은 바로 이런 그의 녹음과정에서의 실험적 시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그의 시도는 굉장히 예가 풍부한 관계로 이 게시물에선 생략한다.

1945년 레스 폴은 Country and Western Singer인 Colleen Summers와 조우하게 되고 그 후 그는 자신의 무대명(Stage Name)을 Mary Ford이라 붙이게 되는데-개인적으로 본명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 아님 말고!-그 후 그는 그가 쓴 수많은 곡들의 보컬을 그에게 맡기게 되었고 레스 폴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같이 거론되는 이름이 되었던 것이다. 레스 폴과 메리 포드와의 작업에서도 많은 실험적인 시도가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여기서 시시콜콜 늘어놓기엔.... 내가 귀찮다. 여러분들이 알아서 찾아보시기 바란다. 링크시킨 트랙 역시 보컬은 Mary Ford이며 노래가 시작되기 전 인터뷰에 멀티트랙 레코딩에 대한 언급이 있다. 리스닝이 좋으신 여러분들이라면 충분히 해득하실 수 있으리라 본다. 또한 사진은 레스 폴 기타의 사진이 아닌 레스 폴의 사진을 올려놓았다. 설마 레스 폴 기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으려구?...




2010년 10월 16일 토요일

잘하는 것을 잘할 수 있게 내버려 두지?(Sundless Music)







일단 먼저 전제해야할 것이 있다. "Joon Han Yoon, JayHYoon, Jay the garbage 그 중 어떤 것으로 불러도 좋으나 변하지 않는 것은 나는 지구 최고의 무개념 밴드이자 악보도 없이 순전히 귀로 따온 연주를 하기도 하는 Jay and the Blues Shakers의 보컬이다. 물론 그 것이 자랑스럽다거나 하지 않을지다로..." 이 게시물의 끝에 가서 이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아시게 된다면 다행이고 언제나 그랬듯 아니 ㅁ말고... 그리고 심지어 이 이야기가 이 게시물과 관계가 없을 수도 있고....(물론 절대 그 렇진 않겠지만...)

작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건 그렇지 않건 현재 공화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있는 것은 누가 무래도 "Super Star K2"일 것이다. 이건 이미 아님 말고 수준은 넘어선 것 같다. 특히나 트위터의 세계에선 정치적 이슈를 압도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프로그램에 대한 언급들이다. 사실 가장 먼저 제기해야할 의문 중 하나가 과연 이 프로그램에서 배출한 최후의 승자가 진정 Super star이 되었는가?여야겠지만 기껏 한 시즌 혹은 1년을 했고 두번째 시즌을 진행중인 프로그램이니 그에 대한 언급은 몇 년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중독성은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다. 워낙 개나 고등어나 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떠들기 때문에 절대 이 프로그램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어절 수 없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 계기는 "장재인"이란 친구의 탉락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당연히 예견되던 일이었다. 어차피 그 프로그램은 일종의 인기투표이자 학예회 성격의 프로그램이지 "최고의 음악적 재능을 가진 사람을 뽑는" 성격의 프로그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느 지점까지 흥미를 가졌던 이유는 "누군가가 들려주거나 가만히 있어도 들리는 음악들을 듣고 자란 아이들"과 차별되는 "자신이 음악을 찾아 듣고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운 아이"들이 공존할 수 있는 오버 그라운드의 여건이 조성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서였다. 게다가 장재인이라는 친구가 수없이 들었을 것이고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음악은 "공화국에서 가장 취약한 장르"라 할 수 있는-그리고 개인적으로 대단히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다.-"네오 포크"가 아니던가? 만일 장재인이라는 친구가 우승을 했더라면 그는 소수의 바람, 그리고 그 자신의 바람대로 네오 포크에 기반한 음악을 할 수 있었을까?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점을 두 가지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기타를 가지고 생전 처음 듣는 곡의 멜로디와 코드를 따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스스로 곡을 쓴지도 꽤 되는 이 친구에게 자꾸 "이문세"의 노래를 하라든지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하란다. 그리고 이야기하는 심사평이 "우리의 기대치에 못미쳤으니 점수를 최고점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그리고 다른 어떤 출연자에겐 "기대보다 잘 해서 최고 점수를 준"단다. 애초에 뽑아놓지를 말든지... 아니면 기타를 들고 자신의 곡을 쓰는 사람은 나오지 말라고 하든지... 재능을 보기 위한 것이 오디션이라한다면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만 마련되면 충분하다. 프로가 아닌 그들을 "생방송"이라는 우스운 형식으로 "이미 있는 곡들을 가지고 기존의 프로들과는 차별되게 그러나 튀지는 말게" 대중에게 보여달라고 한다. 이 것은 애초에 그들이 원하는 것이 음악적 재능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 가지 측면은 대중들의 평가라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리는 의문이다. 일단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생방송중에 유료문자 서비스를 이용해서 투포를 집계한다는 것은 공화국에선 "여성 참가자들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시스템"이다. 유료로 문자를 보낼 정도의 "빠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여성이 압도적이며 그들에게 동성보다는 이성에게 투표하기 쉬운 것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이런 인기투표식의 선발 방식은 "어쩌고 저쩌고 한 단 하나의 목소리"라는 프로그램의 헤드카피와도 상충된다. 대부분의 대중들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음악성이 아니라 "얼마나 예쁘게 고음을 뽑아내는가?"라는 것이다. 대중들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공화국의 취향이 그렇고 음악적인 트레이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라 할 것이다.

애초에 프로그램의 취지를 살리려 했다면 흔히 이야기하는 전문가-과연 그들의 평가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자신이 없지만- 들의 평가를 최우선에 두는 방식이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거라면 그냥 처음부터 까놓고 인기투표라는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애매한 방식이 시청률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제 막 음악을 진지하게 시작하려는 어리거나 젊은 친구들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오랜 기간을 음악을 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고 "음악에 대한 존경심"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주변의 어른들이다. 이 것도 해보고 저 것도 해보고 하는 식의 것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그들이 알게 될 때는 이미 너무 때가 늦었을지도 모른다.

특정한 장르의 음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고 쉬어야 할 때는 좀 쉬기도 하면서 그 기간에 다른 사람들의 음윽을 진지하게 듣기도 하는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음악이라는 것은 물론 "목숨을 걸고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긴 하지만, 놀멘 놀멘 하지 않으면 음악이 싫어질 수도 있다는 것은 어려서 배우기 싫은 피아노를 배워본 분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래서 Jay and the Blues Shakers와 같은 팀들이 여러 팀들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냥 내키면 언제든지 팀의 이름으로 무대에 설 수도 있고 심심하면 합주실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가 진짜 못견디게 뭔가 보여주고 싶을 때 자신들의 것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왜 아이들에겐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한가?를 생각하면서 이젠 Super Star K2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더 이상 보지 않기로 한다.

2010년 10월 12일 화요일

굳이 장난을 원하신다면 한 번?

과거 학교를 다니던 시절 까놓고 이야기해서 티렉스는 주사위들에게 "WANTED" 그 자체였다. 아마 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나라였다면 총을 맞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뭐... 내가 대단한 활동가도 아니었고 심지어 이른바 "우리쪽" 동기녀석이 "너 그렇게 엉성한 활동을 하려면 이 쯤에서 그만 둬라!"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아님 말고 식의 "낮은 참야도를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주사위 선배들에게 찍혀 엄청나게 힘든 학교생활... 을 하지는 않았으나 찍혔는가? 물론 다름 아닌 특유의 깐죽댐이 그 원인 되시겠다. 그리고 난 대놓고 "이 문제에 대한 주사파의 근본입장은 어떻게 돼요?"라는 질문도 꺼리지 않았으니 뭐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잡으러 다녔다 하더라도 억울한 일은 아니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지금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 중 하나가 "NK의 권력세습에 관한 진보진영(?)의 입장을 밝힐"것을 요구했던 언론이나 인사들과 민주노동당 사이에서 벌어지는 설전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아무런 관심이 없으신 분들도 계싣겠지만... 어찌되었건 지금 공화국 북쪽에선 현존하는 국가들 중 입헌군주제나 절대왕정을 표방하는 국가들을 제외하곤 유일하게 한 가문에 의한 권력의 세습이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공화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설전의 당사자인 경향신문과 손호철 이대근 이정희 등의 메이저급의 이야기와 자신은 메이저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님이 분명한 강정구나 김기협의 이야기들은 굳이 이 자리에서 요약 정리해드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하므로 그에 대한 밑줄치기식의 리뷰는 생략하고 내 할말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인 결론은 이미 가지고 있다. 성미가 급하신 분들이라면 지금 당장 보고 싶으시겠으나 무척이나 긴 게시물이 될 것인이 미리 결론을 말하면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가? 지겨우시더라도 끝까지 봐주시면 감사하겠고 바로 그 지겨움이 티렉스의 가학적 즐거움의 바탕이 되니 이 재미없는 세상 티렉스가 재미를 좀 느끼려 하는 것에 대해 관대하게 넘어가주시기 바란다. 이 문제를 이런 관점에서부터 시작하고 싶다. "통일의 주체는 결국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현재 공화국의 정권이건 공화국의 주사위들이건 공화국 북쪽의 입장이건 공화국 북쪽 인민들의 이야기이건 한결같이 "통일의 주체는 7000만 겨레의 문제"라 답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답부터 말씀드리고자 한다. "통일의 추제가 7000만 겨레라고? 한 마디로 좆까고 자빠진 소리하지 말 것"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를 백년 천년 불러봤자 이런 "낭만적 행위"는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모두에게 통일이라는 개념에 대한 실체적 접근을 방해할 따름이다. 통일이라는 것이 현실이 될 전제 조건은 "남한과 북한의 양쪽 정권이 통일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그 것을 정치적인 방법으로 풀려는 시도를 할 때"에 비로소 이슈화되며 바로 그 정치적 접근에 이한 해결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현실이 되는 것이다. 통일의 방법에 대해 공화국과 공화국의 북쪽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통일이 현실이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쪽의 정권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 더 근본적으로는 양쪽의 정권의 토대가 어떤 것인가?가 가장 우선되는 문제인 것이다.(이런 빌어먹을 이야기를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도대체 이 게시물이 얼마나 길어질지 생각을 하지 않았다.역시 난 바보!)

위 단락까지 써놓고 그냥 이 게시물은 완성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할 이야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요즘 하는 뻘짓에 방해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에서다. 오랜만에 기타를 잡고 끝없는 ㅣ환상에 빠지고 있는 나름대로 바닥인 체력을 보충해줄 아드레날린을 스스로 찾아내고 있는 이 시점에 이런 칮칮한 게시물은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지금 기타만 다시 잡고 연습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뭐 굳이 이야기하자면 김창현 열라붕이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에서 경향신문 절독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이며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달라고 주장하는 마당에 "감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나는 주사위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장신들이 이야기하는 진보에 더 어울린다는 말을 하고 싶을 따름이며 당신들이 주사위라는 것을 탓하고자 하는 마음은 절대 없으나 그 진정 진보이길 원하면 "너희가 우리를 주사위라 하는 것은 매카시즘적 행동"이라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공화국을 주사위도 아무런 문제없이 길거리를 다닐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 진보주의자의 진정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 10월 2일 토요일

Wanna be(r개소리들)









공화국에서 스스로 메인스트림이라고 생각하거나 그에 속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몇 부류로 나눈다면 그중 가장 큰 무리들은 아마도 이미 어메리컨 키드이거나 워너 비 어메리컨 키드 두 부류들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할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미 어메리컨 키드인 사람이라면 쉽게 이야기해서 미국물을 먹고 그 것으로 자신은 공화국의 다른 인민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편의상 정의하도록 한다.(물론 이 게시물 안에서만...) 그리고 워너 비 어메리컨이라 하는 놈들은 말 할 필요도 없이 그런 놈들이 되고자 하는 무리들을 이야기하게 되시겠다. 오히려 유러피언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공화국에선 메인스트림이라기 보다는 잠재적이거나 이미 충분히 사회불만세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좀 나중에 하고...

오해가 없기 위해 지금 분명히 해야할 이야기가 있다. 어메리컨 키드라는 것이 반드시 미국물을 먹은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어메리컨 키드라 불릴 사람들은 공화국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그런 것이 이제 의미가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에 편입시켜 오로지 미국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안전한 길에 자신들을 의탁하고 그런 공화국의 행보를 주도함으로 인해 자신들의 독점적 위치를 사수하는 데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아마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공화국이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51번째 주의 위치를 점하고 있으나 형식적으로라도 공화국이 독립국의 지위를 지키는" 것이리라. 아무리 그들의 생각에 미국외에 다른 것은 없다 하더라도 1개 주의 주지사보다는 일국의 대통령이 가질 수 있는 자의적으로 행사가능한 권력의 힘이 더 광범위하고 막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은 적어도 공화국에서는 1948년 이후 변한 적이 없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들은 포괄적으로는 미국에 대해 무한소의 거리를 유지하기 원하면서도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공화국 개개의 인민들은 미국에 대해 정신적인 맹종의 태도를 취하되 미국을 독점함으로 인해 자신들이 누리는 지위에 대해서는 근접할 수 없게 만들어야하는 2중적인 역할로 노심초사하는 중이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런데 진정 공화국에서 어메리컨 키드의 문제라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 지배권력보다는 그들로부터 소외당하는 인민들에게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나타낸다. 바로 이 것이 공화국의 상황을 이슬람권이나 남미와는 판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는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절대다수의 공화국 인민들은 어메리컨 키드라 여겨지며 나름의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사람들에 대해 강한 반발을 보이면서도 때로는 스스로 그런 것들을 이용할 수 없는 자신들에 대한 자책을 어메리컨 키드라 여겨지는 이들에 대해 공격적 태도를 취하면서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를 밖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스스로도 어메리컨 키드가 되길 원하거나 그렇게 되지 못한 자신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서도 자신들이 어메리컨 키드의지위를 이용해 성공했다 생각하는 인물들에 대핵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이러한 이중적인 행위를 가능하게 그 것도 별다른 최책감없이 행할 수 있게 해주는 안전빵의 장치가 공화국에 존재하는 것이 이런 것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데 그 것은 바로 "국민의 신성한 의무"라는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는 "병역의 의무" 혹은 "군필"이라 불리는 단어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

스스로의 욕망을 숨기는 것과 표출하는 것이 동시에 가능하게 되는 이 모순적인 상황이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아마 유승준의 군문제가 시초였을 것이다. 인민대중은 스스로 권력을 가진 계급이 이런 방식으로 미국과 공화국 사이를 이현령비현령의정신으로 줄타기하는 것은 스스로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대단히 영악하게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들이 만만하게 선택한 공격의 대상이 바로 엔터테이너였던 것이다. 아마 그들의 눈에는 그들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 가장 큰, 혹은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미국태생"이라는 것외엔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게다가 그들은 "딴따라" 아니던가? 공화국의 특정상황에 기반하여 군대라는 문제는 "타자화"의 차원을 넘어 인간 하나를 소리 없이 보내는 데에 더없이 손쉬운 방법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와중, 더 심각한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말았다. 그 사건이 누구의 사건인지 굳이 이 문단에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블로그에 오신 분들은 다 눈치채셨을 것이다.

타블로의 문제가 다른 경우-말 그대로 딱 찍어 이야기하자면 유승준의 경우-와 다른 것은 공화국 인민들이 말만 들어도 뒤로 넘어갈만한 "Stanford"이라는 수식어가 그의 앞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외국학벌에 대한 맹신" "국적문제로 인한 병역의 문제"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는 "또라이들의 개드립"등 여러가지 문제가 하나로 녹아있는 문에인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길어질수록 늘어나는 것은 불쾌감인데, 미국의 명문대에 대한 맹신이라는 공화국의 고질병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놓여있는지를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타블로의 학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정도를 넘어 법적인 대응까지도 과감하게 감행했던 그들에게 이 점에 대해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당신들은 다른 아무런 정보 없이 팀의 리더 혹은 솔로 아티스트의 출신학교를 보고 그의 음악을 듣거나 음반을 구입하는가?"

더 답답한 것은 그들이 "타블로가 학력을 위조해서 경제적 이익을 취할목적으로 대중을 기망했기 때문에 사기죄에 속"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아! 물론 개인적으로 타블로가 속한 팀인 에픽 하이의 음악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 인정하게 된다면 무려 백년 가까운 시간동안 공화국에서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나 대중음악 감상자들이나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아무 것도 한것이 없는 셈"이 되어버리고 만다. 혹시라도 세간을 놀라게 했던 "신모씨 사건"을 예로 들어 개드립을 치려할 수도 있겠으나, 그 사건은 이 사건과 같은 부류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교수로 취업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학력과 학벌이 필요하고 가장 크리티컬한 부분을 속여 자신의 이익을 취한 것이 분명"한 데에 반해 타블로긔 경우 "음반을 내는 데에 (적어도 수사학적으로는) 일정수준 이상의 학력을 필요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열심히 토플 공부하고 그 외 유학에 필요한 여러가지 노력을 해서 가장 쉽게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방법은 "자신의 학교를 내세워 가수를 하는 것"이며 공화국의 음반제작자들은 서류심사 만으로 자신들이 제작할 음반에 누구를 참여시킬 것이낙를 결정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더욱 슬픈 것은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한다는 드립을 치는 놈들"은 아마도 미국의 명문대를 나온 놈들은 음악도 더 잘만들 것이라 믿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음반판매순은 학교 랭킹순이라 믿는 사람들일 것이다. 물론 타블로가 데뷔를 하고 명성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언론에서 지나칠 정도로 그의 학력과 학벌에 대한 드립을 과하게 친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은 정 반대의 방식으로 "딴따라에 대한 천시"로 나타나기까지 했다. 타블로의 문제에 대한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제발 아가리들 닥치고 음악이 뭔지도 모르는 놈들이 좋은 학교 출신들은 다른 것도 당연히 잘할 것이란 열등감에서 빠져나오길 바란다"는 것이다. 음악에 대해 할 이야기 없으면 그저 자빠져 처주무시거나...

드디어 마지막 이야기를 할 시간이 왔다. 자! 한 번 보자! 지금처럼 해외, 특히 미국,에 나가거나 하는 일들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빈번해질수록 원조 어메리컨 키드들의 배타성은 심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은 공화국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 대한 맹종의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란 것이 개인적인 추측이다. 처음엔 탑즐로의 일이 그냥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으나 갈수록 심해져가는 한심한 드립들을 보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우리의 소원은 공화국의 완전한 미국화"라는 누군가들의 드립이 빈도에 있어서나 강도에 있어 점점 극한을 치닫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은 이미 납량특집 따위는 저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어 하루하루 추위를 참아내고 있는 티렉스에게 짜증나는 일이 될 것이다. 뭐 조만간 이 점에 대해 이야기를 더 압축해서 해도 좋고... 아님 말고...

2010년 9월 13일 월요일

아님 말고 1000곡(121)








듣거나 말거나 1000곡

121. Comfortable Etc.-John Mayer(1999)-

Allmusic에선 이 앨범에 세개의 별을(물어보나 마나 다섯개가 최고다.) Rolling Stone지 역시 세 개의 별을 부여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견해는 다르다. 이 앨범으로 인해 존 메이어가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메이저 신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존 메이어를 알게 되었다는 것 자체로 4/5 정도는 되는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음반이다. 물론 아님 말고... 어차피 대신 타자를 쳐주는 것도 아니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선생질 하실거면 바로 이 블로그에서 나가주시기 바라는 것이 소박한 소원 되시겠다. 사실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1000곡(사실은 1000개의 음반에 가깝지만)을 이야기하다보면 최근 발매된 음반이 배제될 확률이-고의적으로는 아니지만- 높아지고 이래저래 1000이라는 숫자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으므로 나름 1000이라는 수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려면 가끔은 최근의 음반부터 거슬러 내려갈 필요도 있을 것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 앨범(사실 Extended Play음반을 앨범이라 하는 것이 익숙한 일은 아니다.)이 처음 세상에 나온 1999년이지만 처음 존 메이어 자신이 Self-Release으로 발매했을 때보다 2002년 Columbia에서 재발매한 후 이 앨범이 주목받게 된 것을 보면 자본과 조직의 힘이라는 것에 대해 새삼스럽게 놀라게되 되고 그래서 씁쓸하기도 하다. 그리고 컬럼비아에서 음반을 재발매하기로 결정된 후 몇 곡(Neon 12:47 AM등의 몇 곡이 수정이나 추가 등의 이유로)의 녹음 작업을 걸쳐 2001년 발매된 앨범은 타이틀이 "Room for square"으로 바뀌어 나오게 되었고 2002년 8월 4일엔 오리지널 버전 역시 몇 가지의 수정작업을 거쳐 컬럼비아에서 재발매 되게 된다. 내가 쓰고도 말이 이상해 다시 정리하자면 컬럼비아에서는 "Inside Wants out"을 수정해서 2001년에 "Room for square"이라는 타이틀로 재발매한 후 반응이 워낙 좋았던 관계로 애초 독립배급형식으로 발매된 오리지널 버전의 "Inside waants out"을 조금 수정해서 컬럼비아의 이름으로 재발매하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존 메이어는 또래의 아티스트들이 정규 음악교육을 받지 않은 경우가 허다한 것에 비하면 애초에 음악으로 벌어먹고 살고자 한국인들이 "엄청난 곳으로 알고있는" Berklee College of Music에 19세의 나이에 입학하여 정식 음악교육을 받게 되는데 딱 두 학기를 다닌 후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않겠다며 버클리에서 만난 친구이자 이 앨범에 기타와 배킹 보컬로 참여한 Clay Cook을 꼬셔 밴드를 결성한 후 프로페셔널한 음악생활을 하게 된다. 과거 "존 메이어가 학교를 박차고 나오기 전 성적이 어땠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런 것을 알고 싶으면 흥신소에 이야기학길 바란다. 난 흥신소 직원이 아니다."고 답한 기억이 있다. 아! 그래서 그가 Cook을 꼬셔 데리고 간 곳은 Georgia주의 Atlanta 였다. 그래서 이 앨범의 오리지널 버전으 녹음 작업 역시 애틀랜타 시의 Orphan Studio에서 이뤄졌다.(단어 자체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이 아니고 스튜디오의 이름으론 어딘지 어색한 것만은 사실이다.)

만일 지금의 존 베이어...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가 John Mayer trio를 결성한 초기의 음악과 비교하더라도 이 음반과 엄청난 괴리가 있음을 금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알 사람들은 알고 있는 이야기이고 모르는 사람들은 모를 이야기지만 지금 존 메이어는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서 스탠딩 코미디-여러분들이 익숙할 용어로는 "개그"-를 하기도 하고 작가로도, 컬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디자이너로도 활동하고 있는 동시에 당연히 본업인 작곡과 편곡, 연주, 레코딩 프로듀서로서도 활동하고 있으니 도대체 언제 시간이 나서 연애질을 하고 헤어지고를 반복했는지 짐작할 수 없는 사람이다. 차가 무지하게 좋아서 이동할 때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체질적으로 머리를 어느 곳에 대기만해도 잠이 자는 체질이라는 가정이 성립하지 않는 한 이런 문어발식 영역확장은 불가능한 일이라 본다.

물론 존 메이어가 나중엔 Jay-Z와 함께 작업을 하기도 하고 2009년 스스로 문을 연 Battle Studio에선 또 무슨 작당을 하는지 그의 음반이 나올수록 도대체 "존 메이어는 어떤 놈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 음반에서 그의 색은 분명했다. Neo Folk, Pop Rock, Blues Rock 이 세 장르의 중간 그 어디쯤...(말해놓고도 이상하다. 분명했다는 표현에 중간 그 어디쯤이라니...) 물론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곡은 "No such thing"이고 그 곡이 지금의 존 메이어를 가능하게 한 곡인 것도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이 음반을 내던 시기의 존 메이어에 가장 가까운 음악을 꼽으라 한다면 단연코 Comfortable과 Victoria를 꼽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음악을 좀 들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 음반을 가지고 있지 않을 사람은-최소한 Room for square은 가지고 계시리라.-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냥 차분히 한 번 들어보시고 없으신 분들은 당장이라도 구입하시기 바란다.

*사실 요즘 음악 듣는 것 자체가 싫을 정도로 날씨로 인해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있는 관계로 다음 번 게시물이 언제 올라올지는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도 없고 다음번 게시물이 음악이나 음반과 관련있는 내용이 아닐 것이라는 정도만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2007년처럼 그렇게 무책임하게 블로그를 놔버리는 일은 없으리라는 것 정도?-




rack listing
Original version
No. Title Writer(s) Length
1. "Back to You" John Mayer 4:00
2. "No Such Thing" Mayer, Clay Cook 3:51
3. "My Stupid Mouth" Mayer 4:16
4. "Neon" Mayer, Cook 3:56
5. "Victoria" Mayer 3:49
6. "Love Soon" Mayer, Cook 3:39
7. "Comfortable" Mayer, Cook 5:00
8. "Neon 12:47 AM" Mayer, Cook 2:45
9. "Quiet" Mayer 3:20
Total length: 34:36

Columbia re-release
No. Title Writer(s) Length
8. "Quiet" Mayer 3:20
Total length: 31:51








2010년 9월 7일 화요일

아님 말고 1000곡(120)









듣거나 말거나 1000곡

120. Song to the siren-The chemical brothers(1992? 1995?)-

여러분들께 한가지 심각하게 고백할 이야기가 하나 있다. 사실 이 빌어먹을 아님 말고 때문에 각종 잡스러운 이야기들을 블로그에 늘어놓지 못하게 될 경우가 무지하게 많다. "Jay the garbage!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네가 시작한 일 아닌가?" 그렇게 말씀하시려면 말하는데 돈 드는 것 아니니 하고 싶으면 하시든지... 그런데 심지어는 내게서 그 것을 배우려는 사람조차 있던 예의 그 "냉소적인 개소리들"을 뱉지 못하는 데서 오는 굉장한 스트레스가 있다는 점! 게다가 요즘같이 날씨가 절대로 도와주지 않는 이런 시기엔 욕이라도 실컷하면 조금 나아지려나 싶기도 한데 그러지 못하니 스트레스도 싸이고 "나름의 자기 검열(욕설이 난무하는 이 블로그에 이런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리라.)"을 하다보면 가끔은 신체적인 고통도 따르게 된다.(뭐 못믿으시겠다면 마시고...) 아무튼 투정이라면 투정이고 땡깡이라면 땡깡일진저 상태가 좀 메롱이라는 말씀이다.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싫음 마시고!)

일단 사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면(지난 게시물에서도 그랬다. 관심 없으셔도 나름 게시물의 맥락에서 필요한 이야기이다. 그냥 참아!) 1990년대 아직도 rock음악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믿었던 과거 rock and roll kid임을 자부하며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중반을 힘겹게 보내던 티렉스와 비슷하긴 하나 훨씬 더 쓰레기 같은 녀석들에게 The chemical brothers의 음악에 대해 한참 떠벌이다가 "야! 이 씹쌔야 넌 rock 음악의 renegade야! 이 나쁜 새끼 같으니라고!"라는 이야기를 들었더랬다. 그러던 새끼들이 조금 후에 휠을 잡기 시작했던 Prodigy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먼저 발광을 하더라는 것!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아니라 "남이 하면 배교행위 내가 하면 새로운 음악적 체험의 완성"이 되는 것이 이 동네의 현실이다. 빌어먹을 새끼들! 그러던 새끼들이 지금은 회식날 3차로 간 노래방에서 넥타이를 머리에 메고 송뭐시기 가수의 "네박자" 등등을 구성지게 뽑아대고 계시며 "역시 나이를 먹고 철이 드니 트로트가 좋아"라는 개소리를 지껄이다 티렉스에게 몇 대 맞았다는 사실! 그런데 그런 놈들을 갈겨줘도 풀리지 않는 이 헛헛함이란...

1970년 6월 9일에 태어난 Ed Simon(누구와 같은 날에 태어났다는!)과 Tom Rowlands(이 사람은 1971년 1월 11일에 태어났다.) 두 사람으로 구성된 테크노 듀오인 The chemical brothers(요즘엔 테크노라는 단어 자체를 잘 쓰지 않고 Electronica혹은 Electronic Music이라는 단어를 훠~얼씬 더 많이 쓰긴 하지만)은 그들이 십대 중반에 불과했던 1984년까지 그들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인 경력을 쌓아왔던 팀이다. 그들은 1991년까지는 두 명이 같은 팀을 했던 것도 아니고 애초에 뉴웨이브나 테크노를 했던 것도 아니었으나(이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서로의 음악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고 1984년부터 1991년까지의 이 시기가 지금 대중음악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빼먹어선 안될 90년대 대중음악의 역사로 각인되고 있는 The chemical brothers의 기원이 되었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처음 만난 이후 1992년부터 94년까지는 스스로를 The dust brothers이라 불렀는데 이 명칭은 그들이 독창적으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Beastie Boys의 프로듀서였던 Dust Brothers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아무튼 그들은 1995년에 그들의 정규 독집 앨범을 내기 전까지는 이 명칭을 그들의 팀 명칭으로 사용했고 오늘 타이틀로 걸어놓은 "Song to the Sires"은 이 시기에 싱글로 발매되었다 1995년 출발된 The chemical brothers의 데뷔 앨범인 "Exit planet dust"에 재수록된 곡이다. 이 점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나 유추해보자면 "그들이 이 곡을 특별히 좋아했거나 앨범에 수록할 트랙이 부족했거나 자신들이 첫번째로 정식으로 발표한 곡이었기 때문에 그를 기념하고자 했다거나 등등등..."의 이유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물론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이 재수록한 이유가 아니라 하더라도 내 책임은 아니라는 점! 이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The chemical brothers은 앨범 작업에 있어 대단히 과작을 하기로 유명한 팀이다. 1995년 그들의 데뷔 앨범인 "Exit planet dust"가 발매된 후 꾸준히 음반을 발매했고 심지어 2010년에도 새 앨범인 "Further"을 발매했으나 그들의 정규 앨범은 겨우 일곱장에 불과하다. 그들이 활동했던 기간을 만 17년으로 잡는다면 평균 2.4년에 한 장씩의 앨범을 발매한 것이니 과작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그들의 음악은 곧잘 같은 잉글랜드 출신의 테크노 그룹인 Prodigy와 곧잘 비교되곤 하는데 Prodigy와 그들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점은 프로디지엔 팀에 디제이가 있었다거나 댄서가 있었다거나 하는 팀 구성의 문제 이전에 더 중요한 점이라 할 수 있는 프로디지는 그들을 시작으로 해서-대략 많은 팀들이 그들을 prototype으로 여겼다고 하자.- The chemical brothers의 경우는 90년대 중후반의 (주로 하드코어 테크노나 앰비언트 테크노가 주도하던) 테크노 음악의 전성기의 음악이 그들에 의해 받은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프로디지와 The chemical brothers의 차이라든지 하는 점은 한 개 혹은 그 이상의 게시물로 정리해야할만한 이야기이므로 이 게시물에서 다루지는 않기로 한다.(이런 식으로 따지면 앞으로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한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더라도 나이가 100살이 될 때까지 블로깅만 하고 있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팀의 곡들은 대단히 훌륭하고 그 이전에 테크노 혹은 일렉트로니카라는 큰 바운더리 혹은 그들의 음악적 베이스를 바탕으로 세부적으로 보자면 대단히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들을 발표하고 있으나 역시 그다지 화려하진 않았더라도 그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곡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Song to the Siren을 선택한 것이니 "야 이 새끼야! 이 횽들의 곡들 중엔 더 훌륭한 곡들이 많은데 왜 이 곡이냐? 이 음악도 들을 줄 모르는 새끼야!"라고 이야기하지 말길 바란다. 그래도 따지겠다면 내 답은 이렇다. "야 이 새끼야 늬들이 엄마한테 참고서 산다고 사기친 돈으로 춤추러 다니던 시간에 난 공부도 안하고 음악만 들었어! 닥쳐!"




2010년 9월 3일 금요일

Please make me befuddled Jack!



-To the sae(Jack Johnson, June 2010)-

별로 궁금해하지들은 않겠지만 잭 존슨과 티렉스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풀어보겠다. 지금은 Jay and the blues shakers이라는 이름의 밴드이고 사실상 활동중단-사실 활동을 한 적도 별로 없지만- 상테에 있는 팀이지만 과거 이 팀의 이름은 Johnson;s baby lotion이란 애먼 이름의 팀이 될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온몸을 던져 막아내었던 것으로 지상최대의 희극은 미완성작으로 남았지만... 간단하다. 팀의 기타리스트가 잭 존슨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게다가 이 바보같은 자식이 내가 노래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내 음색이 잭 존슨과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다는 점! 하지만 이 팀은 블루스는 마약이라는 의미로 Jay and the blues crackers이 될 수도 있었으나 당시 모 포털 사이트에서 운영하던 본좌의 블로그에서 덧글로 의견을 받은 결과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결성된지 6년 8개월에 공연 단 1회인 우리 팀의 역사는 이렇게 잭 존슨과 끊으라면 끊을 수 있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2006년 잭 존슨은 돌연 잠정적 활동중단을 선언한 적이 있다. 아마 공화국에서였다면 그 길로 매장... 은 아니더라도 더 이상 존재감이 없는 가수가 되었을법한 것이 그가 내세운 이유였는데 잭 존슨은 "그간 음악을 하느라 너무 파도타기(Surfing)을 하지 않아 이제 당분간 서핑에 전념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가족과의 시간을 가지겠다"거나 "재충전을 하겠다"라는 식상하지만 먹고 들어가는 이유가 아닌 서핑을 하기 위해서라니... 물론 다들 아실 것이다. 이 잭 존슨이라는 인간이 음악을 하기 전엔 프로 서퍼였으며 심지어 프로 대회에서 우승을 한 경력까지 있을 정도로 실력있는 서퍼였다는 것을... 그리고 잭 존슨은 하와이가 자신의 고향이기까지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니콜 키드먼의 고향도 하와이다. 물론 그가 호주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호주 태생으로 아시는 분들이 많지만 그는 하와이 출생의 미국인이ㅣ다.) 어떻게 보면 잭이 음악을 떠나 그만의 시간을 갖기로 한 공간이 바다라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당분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이 될 줄은 오로지 잭 존슨만이 알았겠지만 사실 4년의 시간은 좀 길었다. 게다가 요즘 음악을 좀 듣는다거나 취미로든 조금 더 전문적으로든 음악을 한다는 사람들 중 개나 고등어나 입에 달고 사는 단어인 "그루브"라는 단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현역 뮤지션들 중 한 명이 잭 존슨 아니던가? 음악을 좀 더 전문적으로-감상을 하거나 직접 만들거나 하는 경우를 말한다.-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멜로디나 코드 진행 혹은 리프나 프레이즈 등에 대한 감각은 나이를 들어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지만 요즘 개나 고등어나 입술에 딱지가 앉도록 물고 다니는 그루브라는 것은 일단 한 번 감이 떨어질 경우 그루브 횽아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엔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거나 아니면 그 길로 그루브 횽아와는 평생 안녕할 수도 있게 된다. 당연히 그래서 잭 존슨의 새 앨범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가지게 되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결론을 이야기해달라고? 결론은 이미 제목에 나와있다. 네오 포크의 처첨병으로 대중성과 음악성 모두를 잡았던 잭 존슨의 새 앨범은 잭 존슨의 과거 앨범들을 다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혼란스러울만한(이렇게 이 단어를 써버리면 쓸데없이 쉬운 단어가 아니라 어려운 단어를 골라 쓴 보람이 없다. 일명 자폭!)음반이다. 새 앨범들을 이야기할 때 절대로 몇 번 트랙이 좋다 볓 번 트랙은 나쁘다라는 류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실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오늘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물론 다른 분도 그러실 것이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잭 존슨의 곡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정박자로 정직하게 때려주시는 곡"들도 있고 심지어는 70~80년대 공화국의 스탠드바에서나 연주되었을법한 편곡의 곡들도 있다.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라는 문제가 아니라 이제 30대 중반에 들어서는 잭 존슨의 새 음반을 접하면서 잭 존슨의 음악이 풍부해지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조금 더 쉬운 길로 가려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이 앨범을 여덟번 째 듣는 지금까지도 계속 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둘 중 어떤 것인가에 대한 결론은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빌어먹을! 물론 그의 기타는 여전하니 그 점에 대해선 안심해도 괜찮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이 앨범이 빌보드 200 앨범 차트의 정상에까지 올라간만큼 대중적 소구력은 충분한 앨범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앨범이 잭의 앨범들 중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지는 다음 혹은 다음 다음 앨범이 나와봐야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냥 들어봐봐! 그런 후에 같이 토론을 해보든지 해봅시다. 끝!

Post Script
많은 것을 바라지 마시기 바란다. 절대 농담이 아니고 쏟아지는 비 때문에 이 게시물을 쓰는 동안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있었다는 점.... 사실 그런 것들을 극복하려고 일부러 쓰기 시작한 게시물이 독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다. 빌어먹을...

1. You & Your Heart

2. To The Sea

3. No Good With Faces

4. At Or With Me

5. When I Look Up

6. From The Clouds

7. My Little Girl

8. Turn Your Love

9. The Upsetter

10. Red Wine, Mistakes, Mythology

11. Pictures Of People Taking Pictures

12. Anthing But The Truth

13. Only The Ocean

2010년 8월 27일 금요일

쓰레기 더미에서도 꽃은 피어난다?(Soundless Music)









제목 그대로 쓰레기 더미에서도 꽃은 핀다. 실제초 지금은 상암동 서울 월드컵 경기장은 과거 난지도 쓰레기 하치장이라 불리던 곳이었는데, 그 쓰레기 더미에서도 피던 꽃이 있다고 한다.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개인적으로 내가 게을러) 없으나 둥글레차로 유명한 둥글레라는 식물은 쓰레기 더미에서도 생존한다고 업자들이 선전을 하며 그로 인해 그 뛰어난 생명력은 인간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를 가지고 선전을 했으며 그 선전은 굉장한 효과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지금 하려고 하는 이야기에 더 걸맞은 제목은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의외의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다"가 적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또 서론이 존나 긿었으니 이제 본론에 들어가도록 하자.

는 >성과 도시?와는 좀 더 다른 측면에서 공화국의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에 이르는 여성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텔레비전 시리즈다. 한 때는 나 역시도 이 프로그램을 꽤나 열심히 시청했던 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붵 이 시리즈는 순전히 "남여 상열지사"내지는 "오로지 아는 단어라고는 사랑밖엔 없는 머저리들의 찌질한 이야기"가 되면서 Don't touch이라는 요즘 유행하는 국적 불명의 영어가 아닌 "Please turn off your T.V. set for your mental health"라는 충고가 꼭 맞는 프로그램이 된 아쉬움이 있다. 물론 일정 시점을 벗어난 후엔 아쉬울 것도 없을 정도로 그 자체로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시리즈가 되어버렸다. 빌어먹을...

버뜨 그러나!!! 많은 수의 공화국 인민들은 이 시리즈를 통해 "The way I am" "Breakable" "The corner of your heart"이라는 곡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앞서 이야기했던 특정 계층 혹은 그 시리즈의 팬들을 통해 대단히 많은 "어둠의 경로에서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크게 보자면 pop이라는 장르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folk적인 요소들이 가득한 이 곡들은 꽤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국내에서 발매되지도 않았을 뿐더러(만일 발매된 적이 있다면 수정하겠다.) 심지어 공화국의 "Grey's Anatomy"의 팬들은 이 곡을 부른 사람이 동일인이라는 것도 하물며 이 곡들을 부른 사람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고 지나간 경우가 허다하다.

Ingrid Michaelson(잉그리드 마이클슨이라고 한단다.)이라는 북구와 독일계의 냄새가 동시에 나는 이름을 가진 뉴욕을 중심으로 하여 활동하는 Indie Popg혹은 INdie Folk계열의 아티스트로 분류되는 1979년 12월 8일-즉 존 레넌이 죽기 바로 1년 전에 태어난-생의 New York주의 Staten Island출생의 여성이 바로 이 곡들의 주인공이다. 이미 만으로 4세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Dorothy Delson Kuhn Music Institute에서 보컬 트레이너인 Elizabeth Mcollough을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될 계기를 가지게 되었으며 나름대로의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스스로 자신의 곡 작업에서부터 프로듀싱에 이르는 과정에 참여하여 스스로의 음반을 완성하는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절대 대중적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뉴요커들이라면 그의 음악을 다 알고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지닌" 주목할만한 재능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적 명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잉그리드가 전세계적... 은 아니더라도 유럽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2008년도 JAson Mraz의 유럽 투어에 동행하면서 때로는 그의 무대에 오프닝으로 서기도 하고 제이슨의 유일한 여성 보컬과의 듀엣곡인 Lucky을 함께 부르기도 하며 유럽에 이름을 알리며 현재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잉그리드 마이클슨을 모른다고 해서 자괴감 따위를 느끼실 필요는 없다. 그저 "난 잉그리드 마이클슨을 알만한 사람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시면 아무 문제 없다. 그 때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2009년엔 프랑스와 독일 투어를 했고 2010년엔 "Everybody"라는 타이틀의 전미 투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잉그리드에게 발견되는 특이한 점은 "Grey's Anatomy"외에도 다른 수많은 텔레비전 쇼에 자신의 곡이 소개되었고 심지어 농담 삼아 "음반 판매로 그가 얻은 수입보다 텔레비전 방송에서 그의 곡이 등장하면서 그로 인해 받는 인세가 더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을 정도라 한다. 개인적으로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재능을 지닌 아티스트라 오래전부터 이야기를 꺼낸다고 작심하고 있었으나 이제서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 게시물이 속한 카테고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잉그리드의 곡들은 손수 유투브를 통해 찾아보시기 바란다. 그 정도는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싫음 말고!

2010년 8월 24일 화요일

아님 말고 1000곡(119)








듣거나 말거나 1000곡

1. Machine Messiah-(Yes 1980)-

첫번째 뻘소리-Drama는 Yes의 discography속의 재앙인가?
국내에 엄청나게 많은 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엄청난 반대자들도 가지고 있는 밴드 중 하나가 바로 Yes일 것이다. 사실, 이런 현상이 가능한 것은 예스라는 팀의 보컬리스트가 존 앤더슨이기 때문이다. 조금 막말을 하자면 "어떻게 들으면 게이임이 확실하다 생각되는 음색을 가진" 존 앤더슨의 보컬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예스를 거론하느 것 자체를 싫어한다. 좀 심한 경우엔 Emerson Lake and Palmer의 C'est la vie 와 같은 평이한 곡에 엄청난 찬사를 보내다가도 예스의 Roundabout이 방송에서 나온다거나 하면 라디오의 채널을 돌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풍부한 성량과 샤우팅 그리고 무시무시한 고음이 보컬리스트라는 사람이 가져야할 필수덕목이라는 점을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공화국의 상당수 감상자들에게 예스의 보컬리스트이자 예스의 프론트맨이었으며 그 자체로 예스라 할 수 있는 존 앤더슨의 창법과 음색은 대단히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곡이 수록된 1980년 발매된 'Drama'라는 타이틀의 예스의 앨범의 보컬은 존 앤더슨이 아니다.(이 부분에 대해선 이 쓰레기 게시물의 도번째 파트에서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 위에서 입에 게거품을 물고 이야기했듯, 존 앤더슨이 곧 예스이고 예스는 존 앤더슨이었다. 적어도 영미의 팝음악 팬들에겐... 그래서인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나중에 이야기하더라도 존 앤더슨이 빠진 Drama라는 타이틀의 앨범은 예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평단의 최악의 평가"와 "최악의 상업적 실적"을 동시에 얻게 된 앨범이 되었다. 영미시장에서 이 음반에 대한 반감은 "거의 기계적인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존 앤더슨이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하지만 예스의 사운드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 또 한 명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세계적인 건반악기 연주자이자 신서사이저 연주자인(두 가지의 차이가 뭐냐? 너 바보 아냐?라 하실 수 있겠으나, 사실 두 악기는 굉장히 많이 다르다. 키보드를 이용해 소리를 내는 것이 공통점이라는 이유로 같은 취급을 받을 수는 없다.) Rick Wakeman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릭 웨이크먼은 이미 1974년의 앨범인 Relayer의 작업 당시 이미 팀을 떠났더랬다. 그러나 그 때의 반응은 이 정도로 싸늘하지는 않았다. 상대적으로 예스의 팬들은 패트릭 모라즈에 대해선 관대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존 앤더슨의 부재에 대해서 예스의 팬들은 엄청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존 앤더슨이 없는 예스는 예스가 아니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Drama는 예스에게 있어 지우고 싶은 기억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1980년대 중후반을 지나며 이 앨범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는 전문가들이 조금씩 자신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존 앤더슨이 없고 릭 웨이크먼이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상업적으로 처참한 실패를 경험했다는 이유로 이 앨범이 예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존재하는 것이 민폐인 앨범"의 취급을 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다면 예스의 팬들이 가장 많고 그들의 음악이 가장 폭넓게 이해되고 있다는 일본에서 그런 움직임은 오히려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더 활발했다. 국내에서도 지금은 좀 뜸한 S모 형님을 중심으로 한 전문가들이 Drama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재평가를 내리려는 시도에 착수했다고 볼 수 있다. "넌 어떠냐고?" 굳이 대답을 하자면 티렉스의 생각은 "이 앨범은 예스의 앨범 중 베스트 3안에 들어갈 훌륭한 음반"이다.

두번째 뻘로시-Drama?
Chris Squire(Bass Guitar), Steve Howe(Guitar) and Alan White(Drums), Trevor Horn(Vocals) and Geoff Downes(Keyboards) of The Buggles(and이라는 접속사를 어느 경우에 쓰는지 당연히 아시리라 믿으며 설명 들어가겠다.) 위에 열거한 인물들이 Drama를 녹음할 당시의 라인업이다. 다 아시는 이야기겠지만 굳이 덧붙이자면 Buggles이라는 팀은 그 유명한 "Video kills the radio star"로 유명한 영국의 테크노 듀오이며 후에 죠프 다운스는 1982년 그 유명한 Asia의 멤버로 참여하게 된다.(이 것도 다 아시겠지만...) 좀 심한 표현을 쓰자면 예스의 기존 팬들으 입장에서 보면 "차포를 다 뗀 예스"라 해도 과언이 아닌 라인업인 것이다. 잘 이해가 가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존 앤더슨과 릭 웨이크먼이 자신들의 솔로 프로젝트 때문에 팀을 떠난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idling away할 시간이 필요했던지 한 명은 자신의 방에 처박혀 나오지 않았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의 주거지 근처의 바를 전전하며 술독에 빠져 있었고 그로 인해 두 명이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 스콰이어는 "예스라는 팀은 존 앤더슨의 팀이 아니라 존과 나의 팀"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머릿속에 각인한 사람이었고 움직이지 않는 이들을 대신하여 버글스의 멤버를 통째로 영입해 새로운 앨범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항상 예스의 스튜디오 앨범의 작업에 핵심 축으로 참여하던 크리스였으나 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면 아무리 크리스 자신이 작업의 핵심에 있었다 하더라도 곡작업엔 존과 릭 역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며-그렇다고 해서 스티브 하우가 곡작업에 있어 한 발 물러선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스티브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는 쇼ㅡ티브는 이 앨범의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예스의 음악엔 크리스의 영향외에도 존과 릭의 영향이 엄청나게 녹아들어가 있었다는 점이다. 존과 릭이 없는 상태에서 크리스와 스티브가 아무리 열심히 작업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예스의 팬들-혹은 팬이 아닌 사람들도-이 이 앨범을 이전의 예스의 앨범과는 이질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 버글스의 음악은 당시 엄청난 유행의 조짐을 본이며 80년대 초반의 대세가 되리라는 예견을 지배적이게 만들었던 장르인 테크노, 뉴웨이브적인 것이었으며 거기에 펑크(punk)적인 요소 또한 다분한 음악이었다. 그에 비해 예스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프로그레시브 혹은 아트 록 계열의 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탄탄한 연주력을 갖추고 엄청난 업비트와 굉장히 헤비한 사운드를 구사하던 팀이었다. 게다가 존 앤더슨과 릭 웨이크먼은 10년에 한 번 나오기도 힘든 수준의 보컬리스트와 건반 연주자 아니던가? 게다가 릭 웨이크먼이 대단히 많이 훈련된 클래식 음악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조프리 다운스(지오프 다운스라고도 한다.)는 릭 웨이크먼 보다는 우히려 장 미셀 자르나 반겔리스처럼 뛰어난 연주력보다는 "신서사이저 사운드의 독창성"에 강점이 있는 건반 연주자 아니던가? 예스의 팬들이 이 음반이 "예스의 명찰만을 단 비(非)예스의 음악"이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더라도 평론가들 역시 수많은 반복 청취를 통해 존 앤더슨과 릭 웨이크에게 단련된 귀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을 이 자리에서 제기해 보고자 한다.

3. 솔직히 The best은 아니지만...
평론가라는 사람들 역시 dogma라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들 때문일 것이다. 예컨데 밥 제임스가 어느날 깨어보니 자신의 몸 안으로 키스 에머슨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치자. 그리고 다음 앨범은 키스 에머슨의 에머슨, 레이크, & 파머의 음악에 근접한 음반이었다면 평론가들의 반응은? 물론 굉장히 새로운 실험이니 하는 반응들이 주를 이루겠지만 이런 커멘트는 당연히 붙을 것이다ㅣ. "다 좋은데... 밥 제임스는 사신의 음악적 색을 잃어버린 듯하다."라는... 분명히 Drama 앨범 역시 비슷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 견해다. 그들이 익숙하지 않은 음악이 그들이 익숙한 "예스"라는 간판으로 게다가 존 앤더슨에 비하면 "듣보잡"에 가까운 트레버 혼의 목소리로...

다들 아시다시피 이후 트레버 혼은 예스의 제작자가 되는데,(중요한 사실 한가지는 2000년 이후에도 트레버 혼과 죠프리 다운스는 '버글스'의 이름으로 한 무대에 굉장히 여러번 섰더랬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더 이상 보컬리스트가 아니길 원했던 이유에 이 앨범이 조금은 기여했다고도 한다. 어쨌거나 절대 예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드라마라는 앨범이 베스트는 아니다.(솔직히 내가 베스트 3안에 든다고 한 것은 약간의 오기가 내재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런저런 외피들을 다 걷고 알맹이만을 본다면 나름 내실을 가지고 있는 앨범이다. 예스를 많이 아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이 앨범을 다시 자세히 들어보라 권해주고 싶다. 계급장 떼고 음악만을 보면 그렇게 후지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존 앤더슨이나 릭 웨이크먼을 대체할만한 다른 인물이 없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레버 혼이나 죠프리 다운스가 마냥 욕만 얻어먹어도 되는 듣보잡은 아닌 탓이다.




2010년 8월 21일 토요일

Scribbling







1. 체력과 지구력의 한계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솔직하게 책이건 다른 종류건 활자가 있는 인쇄물을 본 시간보다 음악을 들은 시간이 훨씬 더 길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런 날양아치의 습성을 주변 사람들이라 해서 모르리라는 법은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어떤 장르의 음악을 듣는가?" "특별히 듣는 장르는 없다.." "그래도 좋아하는 장르가 있을 것이지 않은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좋아하는 장르도 없다." "그럼 음악을 왜 듣는가?" "선호하는 장르가 없느 것이 음악을 들을 때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이런 종류의 허섭한 대화 아니면 "넌 하루 종일 Rock음악만 듣는가?" "절대 아니다." "넌 하루 종일 블루스 음악만 듣는가?" "웃기지 말아라! 그렇지 않다." "재즈만 듣는가?" "지랄하지 말아라! 어떻게 인간이 한 장르의 음악만을 들을 수 있는가? 난 마라톤 선수가 아니다." 그렇다. 한 장르의 음악을 목숨을 걸고 듣기엔 내 지구력은 형편없고 지구력이 형편없는데 체력이 좋을 리 없다. 아시겠수?

2. Dogma
나도 음악을 무지하게 많이 들었다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가끔 하는 질문이 있다. "모짜ㅣ르트나 베토벤이 지금 활동한다면 어떤 음악을 쓸까?"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은 불경스럽다. 베토벤이나 모짜르트가 지금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그 전에 그들의 음악과 같은 음악을 만든 사람이 없었을테고 21세기인 지금 그 음악들이 나왔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고 확신하는가?" "이런 질문을 하는 너의 무식함을 이해할 수 없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는 그렇게 궁금하지 않지만, 고전음악외의 다른 장르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하여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당신들이 미쳐있는 그 장르는 그저 여러 음악들 중 하나의 장르에 불과할 뿐이다." 이 이야기가 불편하다면 아랫 줄부터는 읽지 않아도 좋다.

다시 반복해서 질문을 던져본다. "모짜르트가 지금 태어난다면 과연 어떤 음악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음악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개소리는 빼고 일단 그는 다시 태어나도 음악을 해야만 한다고 가정하자. 이 가정이 왜 중요하냐고? 씨발 모짜르트가 다시 태어나면 음악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도 경우의 수에 포함시킨다면 지금 왜 아까운 전파와 전기를 낭비하면서 이 짓거리를 하겠냐고? 응? 하지만 이런 답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모짜르트가 지금 활동한다면 전혀 다른 개념의 멀티미디어 박스를 발명했을 것"이라는 정도의 답은 충분히 타당하다. 모짜르트는 자신이 태어났을 때, 자신의 환경과 자신의 재능에 의해 18세기 사람들이 간응하닫고 생각했던 것을 뛰어넘는 다른 차원의 어떤 것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그가 지금 활동한다면?

지금 그가 접할 수 있는 악기, 들을 수 있는 음반, 그가 찾아볼 수 있는 공연 이런 음악적인 요소들을 바탕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이 과연 "시대으로 합의된 상상력을 능가하는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 그가 그의 시대에 그의 배경과 그의 재능으로 그런 업적이 가능했다 해서 그 것이 21세기 초에 가능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자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인간이 100% 환경에 좌우되는 동물이 아닐 수는 있겠으나 그를 규정하는 것은 존재이며 그를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변증법적 유물론이나 사적 유물론을 연상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다. 왜 그 것도 설명해 주랴?) 만일 모짜르트가 클래식 음악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수긍할 수 있다면 다음의 이야기도 수긍해야 한다. 물론 하기 싫으면 말고!

지금 어느 누군가들이 그렇게 고귀하고 고상하게 생각하시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당시 지배계급이 좋아하고 그래서 그들의 경제력으로 지원을 받았던 음악ㄱ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은 그 때와 음악을 소비하는 패턴이 다르고 댖우들의 인식고 다르고 더더군다나 음악이라는 것의 사회적인 존재의 형식이나 내용이 다르기때문에 그 때와는 달리 클래식 음악이 주류 장르가 아닌 것이다. 이 것을 두고 21세기의 우매한 대중들 때문에 클래식 음악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거나? 현대인들은 공부를 하기 싫어해 무식한 관계로 클래식 음악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가슴 아파한다면 그냥 그 것은 당신들의 정신건강을 갉아먹는 일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음악학이나 음악 이론에 비추어 높은 완성도를 가지는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서양의 고전음악이 정한 음계가 12음계라 해서 "특정 음정으로 특정 음예가 존재하지 않는 임도의 음악"이 미개하다거나 "반음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의 고전음악 혹은 국악은 그 표현에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한 마디로 "어디 가서 너맡 병신 되는 일"인 것이다. 그래야 어느 특정한 모임에 짚단처럼 구석의 자리를 챙기다가 "클래식을 주로 듣지 않는다"는 말에 상대방이 깜짝 놀라며 침묵의 시간이 흐르다가 "혹시 재즈는 들으세요?"라는 질문에 대해 긍정의 답을 날리면 "아! 그래도 음악을 듣지 않으시는 건 아니네요"라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듣는 불쾌감 따위는 없어질 것 아닌가?

3. 불편한 진실?
정확하게 1993년에서 1995년을 지나가는 동안에 내가 결심하게 된 것은 "더 이상 차트를 신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시 컬럼비아 에픽의 위트니 휴스턴, CBS Sony의 머라이어 캐리, 유니버설의 셀린 디온은 이른바 "세계 최고 레이블들의 대표선수"들이었다. 그 빌어먹을 놈의 최고 레이블들이 대표선수라는 것을 눈에 띄게 밀어준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Hot shot debut"이라는 말들을 심심치 않게 사용하게 되었는데, 말 그대로 빌보드 Hot 100 싱글 차트에 등장하는 첫 주에 1위를 차지하는 일이 빈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1970년 비틀스의 The long and winding road이 첫 주에 6위 둘째 주에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 이후엔 어떤 차트도 밎지 않았다. 물론 일종의 인기투표였던 공화국 지상파 방송국들의 가요차트는 그 이전부터 믿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즘에 D모 라는 이름의 팀의 K모씨가 이야기한 "우리는 회사가 작아서 1위를 못했다"는 발언을 했고 그로 인해 그에 대해 애초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밤의 주둥아리들이 욕질을 해대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항상 이야기하듯, 이런 상황에서 "넌 그런 말을 하면 안 돼!"라는 욕질은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의 윤리적가티를 따지는 것은 차후의 문제이고 그는 그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과거에 사회면에 많이 등장해서 안된다고? 쌈질을 좀 하고 다녀서 입 닥치라고? 다 좆까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불편하겠지만 그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물론 그들도 같은 방식을 썼다. 티저를 올리고 음원 공개일을 미리 밝히고... 하지만, 그들이 1위를 하지 못하게 했던 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항상 Ready to buy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수십만의 팬클럽 회원들과 음원 출시일이면 업무를 중단하고 법인 카드나 법인의 통장을 이용하여 자사 가수의 음원을 사들이는 직원들, 그리고 소매시장에 내기도 전에 미리 회사의 창고에 "도매로 판매된 것으로 정리되어 있는 상태로 다시 일반 소비자들의 주문이 오기를 기다리며 투자용 재고로 활용되고 있는 첫번째 프린트들..."이 미국 뿐 아니라 공화국 가요계의 현실이기도 하다. 불편하지만 사실인 이 문제를 넘어서야 진정 명랑사회가 가까이 올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내가 너무 뻔한 이야기들만 했나? 줴길...

2010년 8월 17일 화요일

아님 말고 1000곡(119)








듣거나 말거나 1000곡

119. West Coast Blues-Arthur(Blind) Blake(1926)-

아서 블레이크, 그의 애칭인 Blind Blake으로 더 유명한 이 아티스트는 초창기의 Ragtime Bles의 대가들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죽은 연도도 확실하지 않고 태어난 연도는 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대중음악사가들 혹은 음악학자들의 추정에 의해 1893년에 태어나 1933년에 사망하지 않았을까?라는 기록들만 잇을 뿐이다. 그의 애칭이 Blind이라면 음악계에서 그를 통칭하는 수사는 "The King of Ragtime Blues Guitar"이라고 한다. 워낙 딴따라판이라는 곳엔 King도 많고 Legend도 많긴 하지만, 지금 얼마 남아있지 않은 그의 도넛판(SP 혹은 75회전 읔반 등 어떻게 불러도 좋다.)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그의 연주는 왜 사람들이 그를 래그타임 블루스 기타의 왕이라 하는가를 짐작하게 해준다.

본디 대가란 짧고 굵게 살다 간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는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대가라 불리거나 ~의 왕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짧고 굵게 왔다 간 경우가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 비해 비례적으로 많다는 것이 그 특징 중 하나일텐데, 이런 경우는 블라인드 블레이크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 지금은 음반사업을 접은 Paramount와 계약을 하고 1926년에서 1932년까지의 기간동안 대략 80개 정도의 트랙을 녹음한 것이 그의 스튜디오 활동의 전부라 하니 얼마나 짧고 굵게 살다 간 사람인지 알 수 잇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출생년도에 대한 추정이 얼추 맞는 것이라 한다면 그는 한국 나이를 기준으로는 30대 중반에야 스튜디오 뮤지션으로서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니 20대에 모든 것을 이룬 사람들이 많은 이 바닥에 대해 열폭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제공해준다 아니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비록 태어난 해와 세상을 뜬 해는 분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기록을 보면 그는 Jacksonville Florida 태생이라 되이있다. 세상에 태어난 곳이 어딘지 아는데 연도도 모른다고? 물론 그의 출생 도시 역시 파라마운트에서 발표한 기록일 뿐 그 것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그의 이름이 본래 Blind이 아니라 Arthur이라는 점까지도 그저 언젠가 그의 지인이 "당신의 진짜 이름이 뭐냐?"라는 질문에 대해 "Arthur"이라 답했다는 말이 전해지는 것외에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 한다. 심지어 그가 굉장히 유명한 기타리스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 남아있는 그의 사진은 단 한장이라 하니 이 사람에 대해 조사하다보면 "블라인드 블레이크는 외계인이거나 파라마운트에서 가상으로 만들어 여러 사람들을 시켜 녹음작업을 했던 인물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가 실존인물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하니 어디 가서 쓰잘데 없이 "미지의 인물인 블라인드 블에이크가 존재했다는 것을 아니?"라는 류의 찌질함을 보이지 마셨으면 한다.

1925년 녹음된 그의 첫 음반은 파라마운트의 예상과 달리 굉장히 좋은 판매실적을 올렸다고 한다. 그의 데뷔 곡은 "Early morning blues"이라는 곡인데 오늘 여러분들이 들으실 "West coast blues"은 이 곡과 같은 싱글의 B 사이드에 수록된 곡이다. 과거 몇 번 링크를 걸었던 곡들- 누구의곡이었는지는 여러분들께 숙제로 남기려 한다. 곡명은 말씀드리지요. "Maple leaf rag"-을 상기하시면서 래그타임(전에 소개했던 곡은 정말 재즈가 본격적으로 그 틀을 가지기 전의 곡이었다.)과 래그타임 블루스가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해선 직접 확인하시기 바란다. 물론 싫음 말고... 블루스에 대한 관심으로 잠을 이룰 수 없다거나 하신 분들잉라면 반드시 들으시고 아닌 분들도 꼭 들으실 곡이라고 주장한다. 듣기 싫으면 말고...






2010년 8월 11일 수요일






듣거나 말거나 1000곡

116. Ain't no sunshine when she's gone(Freddie King)

Frederick Christian, Freddie King은 모두 같은 사람인데 궁극적으로 이 사람은 자신의 본명이나 음반 작업시 혹은 무대에서 활동할 때의 이름보다는 음악 전문가나 팬들은 이 사람을 "The Texas Cannonball"이라 불렀다. 이 Freddie King은 Albert King, B.B. King과 함께 블루스 일렉트릭 기타의 Three Kings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대단히 애석한 것은 그의 업적이나 연주력에 비해 공화국에선 비교적 덜 알려져있다는 점은 대단히 애석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또 이상하게 생각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이 텍사스 출신의 텍사스를 대표할만한 뮤지션 중 하나인 프레디 킹은 가장 뛰어난 시카고 블루스(Chicago Blues) 뮤지션들 중 한 명으로 꼽힌다는 점이다. 물론 이상하지 않으시다면 말고! 아! 한 마디 덧붙이자면 그의 음악사적 위치가 공화국에서 과소평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그의 곡들을 공화국 인민들이 잘 모른다는 말로 착각하시지 마시라!

이 곡은 아마 심야에 나오는 광고들의 CM으로 대단히 여러번 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서 또! 또! 광고에 많이 쓰인 곡을 쓰고 연주한 사람이니 음악이 가볍겠지! 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런 말씀은 말타는 서부에 가서 하시고! 블루스라는 장르가 그렇게 만만하진 않으니 섣부른 판단은 자제해 주시기 바란다. "Have you loved a woman"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계실까? (제발 브라이언 애덤스의 "Have you really loved a woman"과 혼돈하는 바보짓은...)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곡은 정말 한 마디로 "놀라운 블루스 넘버"라 할 수 있는 명곡인데, 그럼 여기서 또 한가지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그 곡이 그렇게 좋다면서 왜 다른 곡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빠졌냐?" 아! 물론 "Have youloved a woman"에 대한 게시물도 있을 것이다. 다만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곡은 "혹시라도 당신들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블루스에 대한 주눅든 마음"을 좀 풀어주기 위함이다. 아무리 명곡이라 하더라도 너무 어려운 곡들만 듣게 되면 "블루스"라는 단어만 들어도 나가 떨어질 수 있고 그 것은 절대 티렉스가 바라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레디 킹이 대단히 돋보이는 인물이라는 점을 여러분들께 부각시키기 위해 프레디에 대한 첫번째 소개의 게시물에서 이 곡을 선택한 것이다. 왜냐고? 프레디는 당연히 최고의 블루스 기타리스트이기도 하지만, 여러분들께서 아시는 것 이상으로-좀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절대 B.B. King에 뒤지지 않는- 보컬리스트로서의 능력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이ㅑ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목적으로 소개하기엔 이 곡만큼 대중적이면서도 보컬리스트로서의 프레디 킹의 장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곡을 찾기도 그다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시거나 하면 알겠지만, 프레디 킹은 일단 외관상으로 "오래 살기 힘든" 외모를 가지고 있다.(나쁜 뜻이 아니라 절대 건강하게 생기지 않은 외모라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는 30대 초반에 세상과 등을 졌고 그의 활동 기간이 20년이나 되지만 그의 데뷔가 빨랐다는 것과 그의 능력들을 감안햇을 때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 할 정도로 "상대적으로" 짧은 커리어를 가지고 잇는 뮤지션이다.

이야기가 또 딴 길로 간다고? 그렇게 보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B.B. King이나 Albert King과 거의 같은 클래스의 블루스 뮤지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절한 사람이기 땜누에 그의 짧은 인생을 굉장히 밀도있게 살펴볼 필요가 잇고 다프레디 킹에 대한 이야기를 할 다음 번 게시물부터는 얼마나 빡센 상태로 게시물들을 작성해야하는지에 대해 미리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의 빠른 데뷔가 가능했던 이유는 그의 어머니인 엘라 메이(Ella Mae)와 그의 숙부가 그가 여섯살 되던 해부터 기타를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던 탓이라 전해진다. 그기로 그는 가족과 함께 그가 15세 되던 해인 1949년에 시카고 근교로-정확하게는 시카고의 서남부로- 자신이 살던 텍사스의 댈러스를 뒤로 하고 이주하게 된다. 그래서 그가 TThe Texas cannonball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음악사전의 Chicago Blues를 소개하는 챕터에 시카고 블루스의 대단히 중요한 뮤지션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1954년에서 1956년 사이에 프레디 킹은 생애 첫 녹음을 하고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데뷔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리고 그의 이름에 관한 일화가 하나 전해지는데 그가 자신의 성을 "King"으로 바꾸게 된 것 역시 이 시기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직업적인 연주가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B.B> King"처럼 성공한 블루스 뮤지션이 되는 것으로 삼았고 그런 자신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 자신의 성(Sur name or family name)을 "King"이라 했다는데 이 역시 내가 직접 들은 말이 아니니 확인할 길은 없으나 미국의 팝저널리스트들이 일부러 뻥을 쳤을 리는 없으니 그냥 믿어보는 것은 어떨지? 일단 프레디 킹에 대한 이야기는 또 하기로 하고 일단은 딱치고 즐감하시기 바란다.















추신>
머디 워터스 할배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멀리 한국까지 가서 너같은 놈의 허섭한 블로그에 자주 나오려니 체력이 달린다. 좀 쉬겠다." 뭐 돌아가신 분의 소원이라 가뿐하게 들어드렸다. 그러니 심하게 불만 가지지 마시기 바란다.

2010년 8월 8일 일요일

아님 말고 1000곡(117)







듣거나 말거나 1000곡

117. Country Blues, I Be's Trouble(Muddy Waters Etc. 1941)

McKinley Morganfield... 이게 뭐냐고? 다 아시면서 내숭을 떠시는건가? 다소 평범하고 영국식의 뉘앙스의 이 이름이 바로 Muddy Waters의 본명이다. 또한 이 것은 거의 확실한 이야기라 전해지는데 그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1915년 생이 아닌 1913년 생이라 한다. 실제 그는 1913년 미시시피주의 Issaquena County 근교의 Jug's Corner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 아! 물론 아님 말고...이런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게 된 것은 그의 사후에 발견된 그에 대한 여러가지 자료들 중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그가 사용하던 결혼신고서와 음악인 협회 회원증의 기록이 발견되면서부터다. 뭐 사실 그가 자신의 생년을 1913년이라 착각했던 것일 수도 있고... 그러니 아님 말고라는 이야기이다. 사실 1913년 생이라는 것조차 확실히 믿을 수 없는 이유로 제시되는 것 중 하나는 1920년대의 미국 인구 총조사(US Popularity Census)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1914년 생이란다. 빌어먹을! 도대체 왜 한 사람의 나이에 대해 이리도 설이 많다는 것인가! 아무튼 그는 출생 후 주로 그의 할머니인 Della Grant에 의해 자랐다고 하는데 당시 그가 가장 좋아하던 놀이가 진흙탕에서 뒹굴며 노는 것이었다 한다. 그가 후에 자신의 이름을 "Muddy"라 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것이었다나 뭐라나...(출생 연도도 확실하지 않은 사람의 애칭에 대한 유례라고 확실할까 싶다.) 즉,흙탕물에서 뒹굴었다고 해서 Muddy Water이고 그의 가족들이 다 그렇다 해서 Waters라는 이야기!!!!(머디 할배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 게시물에선 여기까지만...)

머디 할배가 진지하게 블루스 음악가가 되려는 생각을 가진 후 맨 처음 연주하던 악기는 하모니카였다. 사실, 일렉트릭 기타가 본격적으로 블루스에 들어오기 전엔 하모키가는, 마치 포크 음악에서 그런 것처럼 혹은 일렉트릭 기타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이전에 재즈 음악에서 우클렐레가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처럼, 블루스 음악에서 꽤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악기다. 아마 이 것은 포크 음악의 경우에 많은 보컬리스트들이 하모니카라는 악기를 자신의 노래 중간중간 애들립으로 연주하는 것을 상상해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갈 것이다. 언젠가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하고 없으면 말겠지만 초창기에 블루스 음악과 포크 음악은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여러분들은 머디 워터스가 하모니카를 연주했다ㅓ는 사실을 받아들이기힘드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래서 그는 당황해하실 여러분들을 위해 17세가 되던 해에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 후 그의 기타가 어떠했는지는 머디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굳이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한다. "머디의 기타가 어땠냐고?" 뭐 답은 그렇다. 들어보면 알 것이고, 들어도 왜 그의 기타가 훌륭한지 모르겠다면 네 귀를 수술하든지, 음악을 더 이상 듣지 말든지 하시고...

또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개지만 그는 1932년 대단히 어린 나이에-아무리 나이를 많이 잡아봤자 열아홉이니 얼마나 까진 인간인가?- MAbel Berry(설마 이 이름을 "마벨 베리"라 읽으시는 분은 없으시리라 확신한다.)와 결혼하는데 그의 결혼식 피로연-영화를 보시면 얼겠지만 그들은 조그마한 밴드나 피아노 4중주 혹은 5중주 팀을 초청해서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파티를 하며, 그 것이 동양과는 다른 피로연 문화라 할 수 있다.-에서 Robrtd Nighthawk(로버트 밤매)라는 사람이 밴드의 기타를 치게 되는데 전해지기로는 그 파티가 워낙 와일드했던 나머지 피로연장의 마루가 꺼지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상황은 악몽으로 기억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우리의 머디 선생께서는 그 광경에 크나큰 감동을 받으신 나머지 자신의 일생을 기타에 바치리라는 결심을 하셨다나 무라나... 아무튼, 이 말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을지는 모르겟으나 최소한 그 엄처난 광란으 밤에 결혼식 피로연을 열던 장소의 마루가 주저앉았다는 것만은 fact으로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라 한다. 아! 힘들다...

물론 이 게시물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이 티렉스보다 훨씬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본디 Country Blues이라는 것은 특정한 곡의 명칭이 아니라 19세기 말 미국에서 시작된-이런 줴길, 블루스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이란 단어를 이렇게 고민 없이 쓰다니!- 블루스 음악의 한 형식이다. 즉, 같은 곡명의 곡을 녹음한 사람이 머디 많이 아니라 흔히 자주 쓰는 표현으로 Various Artists이라 할 수 있으며 그들의 곡들이 블루스의 형식으로서의 Country Blues이라는 차원에선 다 같은 곡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역시 같은 논리로-various artists라는 이유?-다 다른 곡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 되시고 돈 되시면 ㅇAmazon U.S에서 Country Blues으로 검색해서 다 구입해서 들어보시고 평가를 하시면 대단히 도움이 되실 것이다. 뭐 음악에 목숨을 걸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으신 분들에겐 절대 권해드리고 싶은 방법은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아주 중요한 한 마디! 하고 싶으면 하고 싫음 말고!

자! 오늘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는 두 곡 모두 그가 본격적으로 성공가도를 향해 치닫기도 훨씬 전인-즉 그가 Chicago로 이주하기 전인-1940년 이전에 녹음된 곡들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오늘 여러분들께-아! 찔린다. 기껏해야 두 세명 들어오는 이 블로그에 "여러분"이라는 단어를 눈썹하나 찡그리지 않고 뱉어대다니- 소개하고 있는 두 곡은 모두가 다 머디 워터스라는 이름으로 흔히들 떠올리는 음악과는 상당히 다른 음악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에겐 전성기 혹은 완숙기의 머디의 음악과는 다소 다른듯한 이 곡들에서 머디 워터스의 음악적 일관성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이 되었든지 간에 이 두 곡을 여러분들이 들어보시는 것은 길고 긴, 그리고 끝없는 재미를 선사할 블루스라는 즐거운 탐험의 길로 가는 데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한 걸음이 될 것이라 장담한다.(아! 씨발! 이 비릿한 멘트느 또 뭐냐!!!!)






2010년 8월 7일 토요일

아님 말고 1000곡(116)







듣거나 말거나 1000곡

116. Will you still love me -Chicago(1987-

일단 웃기지도 않은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이런 곡은 "듣는 이들에겐 무지하게 아름다운 곡"이 될 것이라는 점이 우선이다. 인간으 목소리가 신이 내려준 가장 훌륭한 악기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 곡을 들어보면 그런 신념에 조금 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밴드의 음악도 이런 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수의 밴드가 보컬이 들어간 곡을 한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곡은 밴드의 음악이 감상자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궁극의 보컬라인을 제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 그리고 위에 우선이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가 당연히 힜을텐데 그 이야기는 이 게시물의 말미에 하기로 하자.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Chicago라는 팀이 유명한 이유는 그들이 브라스 록 내지는 빅밴드 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하위 장르의 개척자 내지는 대가라는 이유가 우선일 것이다. 물론 어느 순간에선가부터 팀에서 브라스를 담당하는 멤버들이 정규 멤버가 아니었고-마치 ELO가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브라스가 주가 되던 음악에서 브라스의 위치가 다소 바뀜에 따라 바뀐 팀의 구성처럼 그들이 전체 대중음악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달라졌지만 공화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그들의 82년도 곡인 Hard to say I'm sorry가 수록된 Chicago 16 앨범도 그 곡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곡이 브라스가 곡에서 대단한 위치를 차지할 정도로 그들 음악의 뿌리는 브라스 악기에 있다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을 소개함에 있어 이 곡을 가장 먼저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개념을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린" 일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굉장히 큰 이미지들 사안들 중 하나는 거의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카고라는 팀은 앨범 타이틀을 정하는 데에 있어 고민이 없는 팀이라는 점일 것이다. 아시다시피 시카고는 절대로 특별한 앨범 타이틀을 정하지 않고 그저 그들의 앨범이 발매된 순서에 따라 Chicago-X라는 형식으로 앨범을 발매하며 그 것이 그 팀이 가지는 유명세에 한 몫을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암기력이 나쁜 사람들에게ㄷ 아주 편한 팀 되시겠다. 그들의 첫번째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인 If you leave me now은 Chicago 13에 앞서 이야기한 Hard to say I'm sorry는 Chicago 16에 그리고 이 곡은 Chicago 18에 수록되어있다는 것만 알면 어디 가서 나름 가오 세우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팀에 대해 조금 더 형식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다른 게시물에서 이 팀의 결성이나 초창기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본격적으로 하기로 하ㅗ, 잠시 이 앨범이 발매되고 이 곡이 싱글로 커트될 시점인 1987년의 팀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Peter Cetera라는 이름을 다들 기억하실 것이다. 그리고 Chicago는 이 인물이 팀의 보컬리스트로 있을 때 대중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두던 시기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피터 세트라의 외모가 출중하다고는 볼 수 없었으나 유독 시카고라는 팀 내에서 피터 세트라의인기는 독보적인 것이었다 할 것이다. 사실 그가 팀을 떠나리라는 것은 1982년 Chicago 16의 엄청난 상업적 성공 이후부터 충분히 예견되던 것이었다. 그리고 피터 세트라는 1985년에 솔로 앨범을 발매했으며 그 얼마 후 결국 팀을 떠나게 된다.

사실 Chicago 18은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기대와 그 기대를 압도하는 무게의 우려를 내재하고 발매된 앨범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피터 세트라가 없이도 시카고라는 팀이 얼마나 출중한 본컬 라인업을 가진 팀인가를 확인시켜주는 결정적 역할ㅇ을 했다. 맨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치 최고의 재료로 정성껏 반죽하여 종잇장보다도 더 얇은 두께의 파이를 겹겹이 쌓은 것 같은 명품 페스트리를 감상하는 것과 같은 절대 단순하지 않고 섬세하고 우아한 그와 동시에 화성학의 기본에 절대 어긋나지 않는 유려한 화음을 곡 안에서 들려줌으로써 음악이라는 예술을 하는 데에 있어 인간이 유일하게 신으로부터 받은 가장 소박하지만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선물인 "인간 그 자신"을 어떤 식으로 음악에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교과서적 해답을 보여주는 곡이 오늘 소개하고 있는 Will you still love me이라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자! 그럼 마지막 이야기는 맨 앞에서 이야기한 "우선" 다음의 이야기일 것이다. 밴드를 해 본 사람 특히 밴드에서 보컬 라인업에 해당할만한 위치를 담당하공 있던 사람들이라면 이 정도로 중간음과 고음을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하며 화려한 멜로디 라인을 가지고 있으며 게다가 곡의 시작에서부터 엔딩에 이르기까지 거의 제 마디를 쉬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보컬 파트를 모질게 다루는 이런 곡들은 기피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마 이런 곡을 연주하다가는 곡이 끝날 때 즈음엔 구급차에 실려 산소호흡기를 입에 쓰고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 곡에 대해 제공하고 싶은 tip은 이 곡은 유려한 브라스 악기들 대신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자! 확인들은 알아서들 하시고...







2010년 8월 5일 목요일

아님 말고 1000곡(115)







듣거나 말거나 1000곡
115. They call me Muddy Waters(Muddy Waters. 1971)

시절이 좆같고 세상이 엿같아 응당 가누가 나갔어야 하는 음악 프로그램에 빙상의 여왕씨가 나와 초등학교 학예회 분위기를 만들며 세 곡이나 부른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 그 가수가 "국민 여동생을 건드린 죄"로 빙상의 여왕씨를 그리며 두루마리 휴지를 밤새 애용했을 찌질이들에게 욕을 먹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으니 티렉스라 해서 어찌 키보드를 두드릴 힘이 생기리요? 허나 이런 좆같은 상황일수록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다름 아닌 "음악"이요 그 중에서도 티렉스와 제일 친하다 할 수 있는 "블루스"아니겠는가? 빙상의 여왕씨와 서울방송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어도 음악은 절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씀!

먼저 사적인 이야기 하나 쌔우시겠다. 오늘 말씀드리려는 분과 같은 1915년생인 우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이 빌어먹을 세상에 계시지 않아 가끔 "고아가 된 우리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쌓여가고 있는데 웅리 외할아버지 보다는 24년 외할머니 보다는 무려 26년 씩이나 먼저 저 세상 사람이 디ㅚ셨으나 살아있는 그 어떤 뮤지션들 보다도 후대의 모든 뮤지션들에게 장르 불문하고 수없이 영감을 주셨고 지금도 그러고 계신 분, 어떤 새끼들은 운이 좋은지 실력이 좋은 것인지 20대부터 그래미상을 휩쓸고 개 난리를 치지만 56세 되시던 해인 197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래미 트로피가 어떻게 생겨먹은 물건인지를 육안으로 확인하신 분, 그 이후로는 1970년대에만 다섯 번의 그래미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받으셨던 그 분, 심지어 1993년엔 미국의 우표에까지 얼굴을 내미셨던 그 분이 바로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Muddy Waters 할배 되시겠다.

일단 머디 워터스의 1950년ㄴ에서부터 60년대 말에 이르는 수많은 히트 싱글들을 뒤로 하고 오늘의 이 곡인 "They call me Muddy Waters"을 고른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Rollin' Stone, Rollin and Tumblin, Country Blues, I am your hoochie coaching man 등등등의 수많은 주옥같은 싱글들이 아닌 어찌 보면 전성기가 지난 50대에 발표했던 곡이냐? 우리가 머디 워터스도 모르는 바보로 아느냐?라고 하시더라도 난 꿋꿋이 할 이야기가 있다. "ㄴThey call me Muddy Waters"을 자신의 앨범의 타이틀이자 곡명으로 할만한 개건방을 떨어도 욕을 먹지 않을 정도의 클래스에 있는 뮤지션이 대중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몇 명이나 될 것 같은가? 누가 뭐래도 머디 워터스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인물이고 이런 개건방으로 인해 욕먹지 않아도 될 인간이라는 점 밝히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머디 워터스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지겹게 할 기회가 많을테니 오늘은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해 보도록 하자. "머디 워터스가 왜 수많은 블루스 뮤지션들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문장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당연히 rock and roll이 블루스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만큼 그 어느 클래시컬한 블루스의 대가도 백인들의 음악에 영향을 안미친 경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머디 워터스의 경우는 특별한데 그가 1958년 43세의 나이에 미국을 떠나 잉글랜드에 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잉글랜드에서 대중 앞에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Sonny Terry & Brownie Mcghee Big Bill Broonzy등 어쿠스틱 기타를 사용하던 블루스 혹은 포크 뮤지션들 외에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잉글랜드의 무대에 섰던 "정통 아프리카계 미국인 블루스 뮤지션"으로서는 머디 워터스가 최초였고 그의 공연은 수많은 잉글랜드의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주게 된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의 "백인 믈루스"가 어쩔 수 없는 음악적 환경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장르였다면, 잉글랜등-ㅔ서 "백인 블루스"가 발전하게 된 데에 최우선적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이 머디 워터스 할배라는 사실이 대중음악사에서 그의 위치를 특별하게 하는 "그만이 할 수 있던 음악적 기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혹은 잉글랜드의 "백인 블루스"도, 머디 워터스의 음악과 그의 음반들도 워낙 할 이야기가 많아 오늘은 머디 워터스의 일생에 있어 가장 드람마틱했던 사건들 중 하나로 불리는 일인 그의 1958년 잉글랜드 행에 대한 운을 띄우면서 여러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에서 이 게시물을 마쳐도괜찮을까요? 뭐 괜찮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이 게시물은 내가 끝내고 싶으면 내가 끝내는 것이니 말이다...

2010년 8월 2일 월요일

그들이 돌아왔다.(Soundless Music)







1. 길게 이야기 하지 않겠다.
말 그대로 그들이 돌아왔다. DJ DOC 과거 이 팀의 이름은 DIJ D.O.C.였는데 지금은 그냥 DOC이다. Dream Of Children의 약자임을 굳이 밝힐 필요가 없었을까? 아무튼 그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교실 이데아"가 들어있는 "발해를 꿈꾸며"가 메인 타이틀인 앨범을 가지고 천하를 호령하고 DEUX는 "약한 남자"와 그리고 국민 가요 중 하나인 "여름 안에서"를 가지고 서태지와 아이들과는 다른 곳에서 자신들의 철옹성을 쌓고 있던 1994년 Disco Theque의 DJ 출신들인 이하늘과 김창렬 박정환을 나미와 붐붐과 철이와 미애를 거친 신철이 제작자로 나서 "슈퍼맨의 비애"를 가지고 그 어지러운 해에 등장했던 그들이 무려 만으로 16년이 지난 지금 그리고 Street Life 앨범을 낸지 5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 그냥 한 마디로 그들이 돌아왔다.

2. 10년 전의 기억
그들이 한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방송을 하지 못하고 앨범이 뜸하게 된 2000년 6웡ㄹ경 서태지와 아이들도 없고 듀스도 없었지만, 그 때보다 더 어지러운 시기를 겪고 있던 공화국 가요계였다. 본격적인 아이돌 스타들의 시대가 열리면서 별 같지 않은 이야기들이 논란이 되고 화제가 되던 그런 시기였다. 그리고 그런 아이돌 시대의 도래에 힘입어 "동네 양아치" 출신들이 가요계라는 정글에서 "가수"라는 이름으로 갖은 주접을 떨며 진상을 부리던 20세기의 마지막 해! 그들은 "Run to you"를 들고 나와 한 마디로 당시 어지럽던 가요계를 확실하게 정리해주었다. 길가의 B자 테입을 팔던 리어커에서건 버스에서건 심지어 야구장과 농구장에서건 그들의 "Run to you"는 울려 퍼졌고 쪼그려 뛰기 자세어서 팔을 머리 위로 올렸다가 어깨 높이로 내리는 동작을 반복하던 댄스와 수건을 보고 그들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공화국에선 아무도 없었다.

3. 힙합이건 뽕댄스건...
평론가들이란 사람들 혹은 언론들은 그들의 음악에 힙합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에 전혀 인색하지 않는다. 허나, 팀의 리더이자 프론트맨인 이근배 횽아는 자신들의 음악을 "뽕댄스"라 이야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의 음악을 무엇이라 부르든지 그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음악이 가치를 가지는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음악이 "10대에서 50대까지 모두다가 자신들이 그들의 음악에서 받는 그 feel 그대로 그들의 음악에 미친듯이 흔들어대더라도 다른 세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아마 공화국에서 2010년ㄴ이라는 시기에 오버그라운드를 종횡무진할 수 있는 팀들 중에 "씨발 좆 꼴리면 따라와 아님 말고"라는 식의 음악을 통해 대중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팀은 이들이 유일하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4. 놀자~ 씨발!
하도 반가운 나머지 음악이 어쩌고 하는 시시껍적한 분석 따위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그들의 음악에 우리들은 "그래 씨발 따라 놀지 뭐!"라는 기분을 가지고 지랄맞게 놀면 그만이다. 놀다가 열받으면 부수고 신나면 춤추고 그저 그 뿐이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왜 점점 더 클럽에서의 공연이 공연이라는 이름보다 파티라는 이름에 더 가까운 형태가 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뮤지션이 밥 딜런일 필요도 핑크 플로이드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 한도에서 최고의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음악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DJ DOC는 항상 옳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가끔은 문제를 노출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공화국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앨범을 낼 기회를 가지는 사람들이 극소수라는 점을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씨발 놀자!는 이야기이다.

5. 힘내라 근배 횽아!
아! 지금도 안습인 근배 횽아의 모발 상태에 더 안좋은 소식이 많이 생기고 있다. 그 이야기를 ㅣㅅ시콜콜 할 필요는 없지만, 근배 횽아의 이야기가 옳다거나 그르다거나에 대한 판단을 떠나 "명랑한 사회를 위해 딴따라들이 그 정도의 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든지 용납되어야 한다"는 것이 티렉스의 지극히 꼬장스러운 견해다. 아니! 그보다 더 한 이야기가 나와도 놀라지 않는 세상이어야 한다. 작금의 이근배 횽아를 둘러싼 논란들은 한마디로 웃기고 자빠지면서 좆도까는 일이란 이야기이다. 이근배 횽아의 말이 맞고 아니고는 나중에 따지고 "이 정도의 이야기를 가지고 지랄을 떠는 공화국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니 절대 자신의 말에 후회하지 말지어다. 그대 이!근!배!"

이거 내가 무슨 DJ DOC의대변인도 아니고 프로모션 담당자도 아니고... 원...

2010년 7월 27일 화요일

As good as possible







이런 입에 발린듯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익숙한 일은 절대 아니지만 이런 경우엔 입에 발린 소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마커스 밀러의 몬테 카를로 재즈 페스티벌 실황 앨범과 같은 음반을 만났을 때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최소한 대가라는 이름을 듣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찬사 외엔 딱히 더 이상 생각나는 표현이 없고 그 이상의 표현을 할 능력도 되지 않음에 혀를 깨물고 죽는 편이 낫다는 생각도 해볼 정도로 이 음반은 재즈 퓨전이라는 장르의 실황 공연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을 때 최고라는 수사를 쓰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될지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 라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1959년 생인 마커스 밀러가 벌써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최고라는 수식어가 절대 아깝지 않을 정도의 활약을 보여온 것ㅇ르 생각하면 어쩌면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라 하고싶은 이들도 있겠지만 이 앨범이 가지는 의미는 여태까지의 마커스의 실력과는 조금 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좀 상관없는 듯한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한다. 항상 주장하기를 "베이스와 드럼은 대중음악에 있어, 특히나 밴드의 음악에서는, 전체 음악의 8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지껏 남들에겐 밝히지 않은 또 다른 소신이 하나 있다. "자니치게 뛰어난 베이시스트는 일종의 계륵과 같은 역할을 한다. 베이시스트의 여량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베이스는 멜로디 파트를 담당하는 악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으의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인물이 바로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마커스 밀러였다. 한마디로 마커스 밀러라는 베이시스트는 잘한다는 단어를 뛰어넘는 위대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누구도 자신과 같이 작업을 하던 마커스 밀러가 어느날 홀연히 사라진다 할지라도 그를 도저히 원망하거나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그가 자신과 함께해준 시간에 대해 뮤즈에게 감사홰야할 따름인 것이다. 그 누구보다 특별한 베이시스트를 대하는 태도는 이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도, 데이빗 샌본도, 루더 밴더로스도 그들의 이름만으로 재즈 퓨전 신이 벌벌 떨지 모르지만 마커스 밀러와 계속해서 함께 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위에 한 이야기는 5일장이나 7일장에 내다 팔아버리시든지 안 사가면 거져 줄 수도 있는 별 것 아닌 이야기라는 점을 참고하시길 바라며 이야기 계속 하겠다. 이 앨범은 몬테 카를로 재즈 페스티벌에서 마커스 밀러가 자신의 밴드와 함께 "재즈를 위한 브라스 팀"이 아닌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던 공연의 실황 앨범이다. 마커스 밀러가 자신의 베이스 연주력만 가지고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 프로듀서로서의 부인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도 그의 장수에 기여했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마커스 밀러가 오케스트레이션에도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엄청난 음반 되시겠다. 참고 삼아 말씀드리면 지금 몬테 카를로 재즈 페스티벌은 이미 휠을 잡고있는 캐나다의 몬테레이 재즈 페스티벌의 수준에 필적할 정도의 수준에 올라와 있으며 몬테 카를로 거주자들이 돈이 많은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스케일 면에서는 몬테 카를로가 몬테레이를 앞선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반드시 구입해서 음반을 들으실 것을 유도하기 위해 자세한 이야기는 되도록 피하는 선에서 음반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스튜디오 앨범이 아니고 실황 앨범인 관계로 트랙 하나의 길이가 대단히 길며 그로 인해 한 장의 음반에 겨우 아홉 곡밖에 수록되어있지 않으나 "이 것이 마커스 밀러의 음악"임을 느끼시는 데엔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째서 편곡자로서의 마커스의 능력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지도 아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아마 이로 인해 엔지니어가 거의 피똥을 쌀만큼 고생을 했으리라 확신하지만) 음질이 스튜디오 앨범에 거의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는 점이다. 아무튼 이 게시물의 제목처럼 As good as possible이라는 표현이 합당한 음반이니 부디 구입 후 들어보시고 좀 더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되길 간곡히 바라나이다.




1. Blast! (Marcus Miller)

2. So What (Miles Davis)

3. State Of Mind (Raul S. Midon)

4. I Loves You Porgy (George & Ira Gershwin)

5. Amandla (Marcus Miller)

6. I'm Glad There Is You (Jimmy Dorsey, Paul Mertz)

7. Medley : O Mio Babbino Caro / Mas Que Nada (Jorge Ben)

8. Your Amazing Grace (Marcus Miller)

9. Strange Fruit (Lewis Allen)

2010년 7월 20일 화요일

명랑사회는 언제쯤이나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당당하게 올 것인가?! (개소리들)

죽으나 사나 명랑사회를 향한 열정 하나로 오늘도 철야로 주무시는 여러분들께 오랜만에 명랑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고자 한다. 안타깝게도 그간 명랑하지 못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있던 바, 그 점에 대해서 왈가왈부 지랄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간 명랑하지 못했던 것은 순전히 내 잘못이고 그걸 가지고 억울하니 마음이 아프니 하고 지랄해대는 것은 전혀 명랑하지 않은 일이기에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분들에게 사과를 드리는 선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뭐 내가 그러겠다는데 뭐라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거니와...

1. K씨는 꼰대가 되려는가?
그렇다. 오늘도 명랑사회의 필수적 전제가 되는 "명랑 뒷다마"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K씨 그는 이른바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블로거가 아니고 설치형 블로거를 사용하는 블로거들 중 가장 유명한 블로거이자 스스로 좌파이며 사회주이자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러나 티렉스는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의 블로그에 가지 않는다. 요즘 나름대로 K씨에 못지 않은 스타 블로거이자 평론가인 J씨와의 설전으로 나름 인터넷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중인데, 좀 과하다 싶은 표현으로 그를 "명랑사회읮 적"들 중 한 명이라는 표현을 써 명랑사회와 유리된 삶을 쓸쓸히 살다가 더욱 더 쓸쓸히 가시길 원하는 이유는 제목처럼 그는 꼰대가 되어가려 노력중이고 자신의 꼰대스러운 노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생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름 자신이 과거 드럼을 쳤었고 지금도 퍼커션을 다루는 것을 굉장한 자부심으로 간직하고 살아가는데 자신이 하비 메이슨급의 드러머로 착각하고 사시는 것은 그의 자유지만 과거 그의 블로그에서 거슬렸던 것은 자신이 대딩때 연주하던 곡들ㅇ티나 70~80년대의 공화국 Rock음악에 대한 애착과 편애가 지나치셔서 그의 그 "선생질"은 "아 씨발 내가 한참 팝송 듣던 때 음악들은 졸라 좋았는데 요즘엔 들을 노래가 없어... 그래서 요즘 음악은 안들어"라고 말씀하시는 미사리파 꼰대들의 그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그가 좋다고 생각하는 음악에 어떤 "절대성"을 부여했다. 나중에 그의 블로그를 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그가 JK 김동욱에 대한 이야기를 한 포스트엔 실소하다못해 이런 쪽팔린 이야기를 아무리 자신의 블로그라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그의 용기를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사고 싶었다.

그가 꼰대가 되어간다는 결정적 증거가 바로 이번 J씨와의 논쟁인데 그는 J씨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논쟁을 하자는데 화를 돋운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K의 결정적 문제는 "진보신당이 어쩔 수 없이 대중들에게 오픈된 대중정당"이라는 점을 낼름 잡아잡숫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진보신당의 정체성이란 것은 "진보신당이 합법적 대중정당이 아닌 정치 결사체"였을 때만이 강력하게 요구되는 정체성이라는 점을 그는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정당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발로 찾는 다양한 대중들을 쫓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진보신당 언저리에 와글대는 (그의 표현을 빌자면)"배타적 자유주의자"들이 아니라 진보신당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에 대한 공개적인 사상투쟁이 벌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부분일 것이다. 진보신당의 정체성은 K씨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당원들이 찾아가야 할 부분이고 어쩔 수 없이 현존 정당중에선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나같은 사람은 이런 과정을ㄹ 통해 찾게될 진보신당의 정체성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진보신당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며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그가 걱정해야할 것은 진보신당의 정체성이 아니라 왜 똑같이 신자유주의자였으며 신자유주의라는 정글에 공화국을 내몬 당사자인 김대중과 노무현을 이평가하는 데 있어 김대중에겐 "한없는 존경심"을 표하고 "노무현을 까대는 데에 있어선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가?"라는 문제로 표면화되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이유로 절대 동의 할 수 없는 이야기까지 서슴지 않으며 그런 이야기로 다른 사람들에게 "선생질"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도 원하는 명랑사회는 이런 어설픈 "선생질"이 통하지도, 그런 선생질을 하는 사람을 용납하지도 않는 사회다. No Thanks! 쓸 데 없는 선생질은~~~ Times up! get the fuck out of here! 아무튼 K씨 누가 성질을 건드리면 가서 주먹질이라도 하시든지! 자신의 지지자들이 찾아올 곳에서 키보드로 뒷다마나 까는 것은 명랑하지 않습니다요!

2. 그냥 "척"하는 것도 그렇게 힘든가?
서론 없이 직접적인 팩트부터 이야기하자. 정말 문제인 것은 성범죄자에게 화학적 거세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성범죄라는 것이 단지 성충동 뿐만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을 모두 단 한 가지 요인인 성적 충동을 유발하는 호르몬을 억제하는 약물투여 만으로 범죄자가 될 가능성으로부터 차단할 수 있다 믿는 것 자체가 하나의 넌센스이다. 자신이 사회에서 억눌려 사는 존재이며 자신은 사회라는 무서운 정글속에 내버려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동안 타인들은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자신보다 물리적으로 약한 여성들을 상대로 자신을 유린했다고 믿는 강자들이 자신에게 했다고 하는 행위들을 쏟아부으려 하고 쥐뿔도 없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남근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강자의 모방"은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들에게 강제적으로 행하는 것이라 믿을 것인데 그들은 단지 성적인 충동을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와 마차낙지로 성과 관련된 인간이 범해선 안될 짓들 중 누가 버더라도 사회적 강자에 의해 저질러지는 일들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성을 성적으로 가볍게 대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에 절대 저항할 수 없는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쾌감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눈치를 채셨겠지만 티렉스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강용석인가 하는 호로새끼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부터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인간에게서 큰 의미의 가식을 뺀다면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한마디로 지옥의 불구덩이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가 보기엔 국회에서 주최하는 토론회에 참석하는 명문대학의 토론 클럽의 학생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나라당을 지지할 것이며 자신처럼 되기를 갈망하는 "공화국의 진정 바른 청년들"이었을 테고 자신이 길거리에 침을 뱉는 것까지 "존나 있는 일"로 볼 아해들이라고...

그 씨발놈은 한마디로 "아닌 척"하는 것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더 어려운 존재로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이 빌어먹을 새끼의 행동이 명랑하지 못한 것은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들은 의외로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하며 자신에게 그런 인내심이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런 인내심을 키우는 노력이 체화되었을 때에 비로소 남들이 자신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망각한 새끼"이기 때문이다. 명랑한 사회는 강용석 같은 새끼가 좆끝과 혀끝을 함부로 놀리는 것이 허용되는 사회가 아니라 그런 새끼를 모두가 쌩까고 영원히 자신의 집 다락방에서 쉴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사회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와 동의어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 새끼의 문제는 그 새끼 개인의 문제 아닌가?라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티렉스는 이야기한다. "그 새끼가 그런 짓거리를 한 배경엔 그의 개짓거리가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다는 그 병신의 믿음이 존재한다."

그 새끼가 한나라당이건 민주당이건 그런 문제는 관심없다. 하지만 그 새끼가 정치판에서 쫓겨난 다음에 그 새끼의 친구들과 나눌 대화들을 상상했을 때가 더 좆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새끼는 아마 자신과 친한 사람들과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아 씨발 별 이야기 아닌 것 가지고 똥 밟았어" 그 새끼의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래 똥 밟았다고 생각해... 너만 그런 것도 아닌데 별 좆같은 것들한테 걸려서..."
"요즘 대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했더니 세상 무서운 것도 모르고 어디서..."
분명히 그는 그의 친구라는 새끼들과 위의 내용과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강남의 룸빵에서 양주를 처먹을 것이다. "척하는 것이 체화되는 것이 명랑사회의 멀고먼 여정의 전제 조건"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새끼들 때문이다.

2010년 7월 13일 화요일

Exile on main St.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들(Soundless Music)

기를 쓰고 꼭 알아야 할 내용은 아니지만 이 게시물을 보시기 전에 대충 칼립소(Calypso Music)이라 불리는 음악 장르에 대해 예습하신다면 훨씬 더 알찬 인터넷질 되실테니 그리 아시기 바란다. 물론 언제나처럼 결론은 싫음 말고! 절대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난번의 게시물에서 이 앨범에 대해 그리고 롤링스톤스에 대해 언급하며 키치라는 말을 썼는데 이 앨범에 대해 그런 표현을 쓴 이유 중 하나가 이 앨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대중음악 장르들 중 다른 장르들은 비교적 여러분들께 친숙한 장르지만 칼립소는 여러분들이 덜 친숙한 장르인 관계로 실제로 이 앨범을 구입해서 음악을 들으려할 경우 칼립소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이 앨범에 대한 이해도가 좌우될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서도 내 이야기는 항상 같다. 싫음 말고!

칼립소에 대한 공부를 조금 하셨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게시물을 읽어주시기 바란다.

일단 먼저 밝혀둘 것은 티렉스가 소장하고 있는 이 음반은 영국과 미국 날짜로 2010년 5월 17일에 발매된 Rerelease 음반이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린다. 이 점을 밝히는 이유는 티렉스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은 본디 2 LP으로 발매되었던 원본을 2CD 버전으로 발매하여 한 장엔 2LP의 원래 곡들을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의 CD엔 보너스 트랙을 수록했기 때문이며 혹시 나중에 왜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겨우 이 것 뿐이지? 야! 이 사기꾼 새끼야!라는 말씀이 나올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아무튼 롤링 스톤스의 오래된 팬들에게 이 음반의 재발매 소식은 지극히 기쁜 일이었음에 분명하다는 점을 들어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자 하니 제발 받아주시기도 바란다.

이 앨범이 다른 롤링 스톤스의 앨범과 구별되는 특이한 점을 간단하게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보통 그들의 작업은 키스 리처드나 믹 재거에 의해 주도되었으나 이 앨범은 특이하게 팀의 베이시스트인 빌 와이먼(Bill Whyman)에 의해 멤버들이 소집되어 1971년 6월 중순부터 그 달 내내 곡 작업을 밤 여덟시부터 끝나는 시간은 어찌되었든 다음날 아침인 강행군을 하게 되었다는 점!

2. 16세기 풍 건축물 중 하나의 명칭인 Nellcôte라 불리는 장소에서 음반의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작업의 진척도가 예상외로 부진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키스 리처드와 믹 재거의 세션 참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사적인 이유들이기 때문에 밝히지 않기로 한다. 참고로 넬꼬떼라는 것은 16개의 방으로 만들어진 16세기 양식의 건축물이라는데 뭐 내가 살아봤어야 알지...

3. 이 앨범은 롤링 스톤스가 영국의 지나치게 높은 세율을 피해 미국에 정착하기로 한 뒤 처음으로 낸 앨범이라는 사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의 잉글랜드는 대단히 높은 소득세율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비틀스의 멤버인 조지 해리슨이 "Taxman"이라는 곡으로 잉글랜드(영국)의 세제를 비판했을 정도로 철저한 누진세율의 원칙을 지키고 있었다.

4. 넬꼬떼에서 녹음 작업이 완성되지 않았던 관계로 나머지 작업은 로스 앤젤리스에서 마무리 되었다 한다. "Rip this Joint", "Shake Your Hips", "Casino Boogie", "Happy", "Rocks Off", "Turd on the Run" and "Ventilator Blues"등의 곡들이 로스 앤젤리스에서의 작업으로 완성된 곡들인데 주목할 점 중 하나가 이 때 세션으로 참가했던 사람들 중엔 비틀스의 "Let it be"앨범에 비틀스의 멤버가 아닌 인물로는 유일하게 앨범 전체에 세션으로 참여했던 빌리 프레스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5. 이 앨범은 Rock and roll외에도 Blues, Country and western, Calypso등의 장르의 음악들을 포괄하고 있는데 지난 번 게시물에서 롤링 스톤스 자체도 그리고 이 앨범도 키치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은 이미 존재하는 장르의 음악들을 가지고 교묘하게 롤링 스톤스의 음악으로 만드는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고로 칼립소에 대해선 수시로 공부하시기 바란다.

6. 직접 사서 들어보시고 판단하시길 바란다. 덧글이나 트랙백으로 올려주시면 감사하겠다. 지금 컨디션이 개판이라 더 길게 쓸 수 없음을 용서해 주시길...

2010년 7월 12일 월요일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월드컵의 역사)







1.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잉글랜드를 강력한 우승후보라 생각하지 않는데 유독 세 곳에서만 예외다. 공화국과 미국 그리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전세계의 남아도는 돈들이 몰리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엄청난 자금력과 영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는 지금 각국의 스타 플레이어들에 대한 초과수요 상태를 이루고 있고 그보다 더한 초과수요는 잉글랜드 선수들에 대해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웨인 루니나 디디에 드록바를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동급으로 놓는 일은 제정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화국에선 그 것이 상식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잉글랜드에 월드 클래스의 선수는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드물며 심지어는 애증의 리버풀 팬인 나 조차도 스티븐 제라드는 일종의 계륵같은 존재라는 점을 인정한다. 파비오 카펠로가 아니라 마르첼로 리피나 루이스 아라고네스가 감독으로 온다 하더라도 잉글랜드를 4강에 올려놓는 일은 힘들 것이다. 하물며 우승은...

2. 이미 티렉스같은 캐병신조차 현대 축구에서의 키플레이어는 플레이 메이커에 해당하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니라 앵커맨에 가까운 수비형 미드필더라고 심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제 공화국의 그나마 개념있는 언론들이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것도 김학범으 입을 빌어... 과거 유로 2008 당시의 스페인보다 이번 월드컵의 스페인이 강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도 세르히오 부스케스가 아직은 비야 레알의 마르코스 세나의 빈자리를 담당하기엔 경험이 부족하고 경가를 읽는 시야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독일이 그 결정적인 준결승에서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팀 전체를 뒤로 물리는 방식으로 나왔던 것 역시 경기를 지배할만한 수비형 미드필더의 부재 때문이었다. 이번 대회 최악의 선수들 중 하나로 이탤리의 겐나로 "링기오" 가투소를 꼽는 이유도 그 것이리라. 링기오는 이탤리어로 "포효하는"이라는 뜻이라는데 가투소는 포효하기는 커녕 상대선수들에게 착실히 공격루트를 양보해 주었던 것이다.

3. 우리의 요한 크루이프 선생께서 자신의 조국인 네덜란드의 축구에 대해 "더러운 안티 풋볼"이라 말씀하셨다. 히딩크 감독으로 인해 대단히 수비적인 포메이션으로 알려진 3-4-3 포메이션은 본디 크루이프 선생께서 바르까의 감독으로 계실 때 당시 유행하던 압박축구, 즉, 3-5-2 포메이션을 좌우 윙 플레이어의 \끊임없는 위치변환을 통해 깨기 위해 만든, 대단히 공격적인 전술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잊고 있었다. 그만큼 크루이프 선생은 공격지향적이다. 그러니 크루이프 선생의 혹평을 조금은 "차감해서 듣"는다 하더라도 절대 앞뒤로는 움직이지 않는 네덜란드의 양쪽 백인 반 브롱크호스트와 반 더 빌은 욕을 먹어 싸다. 그들의 경기는 마치 1994년으로 돌아가 당시 대단히 수비적인 축구로 욕을 먹었으나 우승을 차지했던 브라질 대표팀의 Flat four을 보는 것 같았다. 어쨌든 네덜란드의 이번 대회 전술엔 "안티 풋볼"적인 요소가 어느 정도 있었음을 인정해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4. 위의 3번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지만, 만일 이번 대회에서 네덜란드가 우승했다면 당분간 유럽축구의 대세는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와 플랫 4 의 수비수들을 쓰는 축구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이는 올바르지 못하다 생각하는데, 사실상 1top 체제인 4-3-3이 국제적 주류인 현 상태에서 라이트나 레프트 백들의 오버래핑이 없다면 더 이상 축구는 "이기기 위한 경기"가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한 경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견고한 4백은 수시로 아래위로 움직이며 공격에 가담하는 양쪽 백들의 적극적인 공격 가담 없이는 붕괴시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스페인 스타일의 축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스페인의 우승이 다행이라 여기는 데엔 이런 이유도 있다는 사실!

5. 이제 공화국의 언론이나 푹구 팬들도 알아야할 것이 하나 있다. "축구는 축구공이 골 안으로 들어갔을 때 득점이 된다"는 아주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간 공화국의 언론이나 축구 관계자나 팬들은 "사람이 골 안으로 들어가면 득점"이 되는 줄 알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볼을 어떻게 빨리 움직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는 "더 많이 더 빨리 뛰는 선수들"에만 집착해왔던 것이다. 박지성이 잘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항상 그가 몇 km의 거리를 뛰었는가를 이야기하는 언론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이상 공화국의 축구는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축구의 가장 기본은 빠른 발도 현란한 드리블도 아니라 축구공을 가장 강하고 정확하게 목표한 곳으로 차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패스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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