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ind Faith, Asia, UK, Damn Yankees, Four Play등등 이른바 수퍼밴드라 할 수 있는 팀들은 많이 있다. 그런 팀들이 가지고 있는 화려함을 넘어서는 완벽함이란 재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음악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팀들에겐 몇가지 한계가 따르게 된다. 우선, 이들의 활동이 길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당대의 휠을 잡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모이다보니 가끔은 "서로 죽이지 않고 팀이 해체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긴, 도켄의 보컬리스트인 돈 도켄은 팀의 기타리스트인 조지 린치를 향해 총을 쏘지 않았던가? 다행히 조지 린치가 총알을 몸으로 막진 않았지만... 또 레인보우 시절의 그레함 보닛은 성질 더럽기로는 "네가 두번째야!"라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치아를 모조리 틀니로 만들어버릴 리치 블랙모어와 무대에서 주먹질을 한 후 레인보우를 탈퇴했고 그 후 자신이 속했던 모든 팀에서 기타리스트들과 폭력사고를 일으키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지나치게 강한 그들의 개성과 출중한 실력은 그들에게 단점이 될 경우가 허다하다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들이 가지는 한계는 "그들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크다보니 잘해야 본전 못하면 매장"인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Asia같은 팀은 화려했던 라인업을 상실한 이후에도 팀의 이름을 유지하며 여러장의 앨범을 발매했으나 "안내느니만한 못한 앨범"을 냈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더랬다. 어쟀든지간에 이미 일가를 이룬 아티스트들이 한 팀을 이룬다는 것은 음악애호가들에게도 그들에게도 "마냥 반갑기만한 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애호가들은 수퍼밴드의 탄생을 바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모순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소위 이야기하는 수퍼밴드"를 제외한 팀들 중 가장 완벽한 라인업을 가진 몇 팀들과 그 팀들의 곡들에 대해 살펴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에 대해 몇가지 원칙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선 블라인드 페이스나 UK Four Play Asia등의 "프로젝트성격을 띈 수퍼 밴드"는 제외하기로 했다. 이유는 구차하게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또 한가지 원칙은 "각자의 기량"보다는 팀으로서의 완성도에 기준을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에 중점을 두려 한다. 사실 이 기준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 이야기를 추가로 한 이유는 어트 팀이라고 밝히는 것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라 생가하여 팀의 이름을 거명하진 않으려 하나 실제로 각각의 멤버들은 자신의 포지션에서 대단히 큰 비중을 가지고 있는 멤버들만 모인 팀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팀으로서의 음악"이 과연 그런 수준에 미칠 수 있었던가?에 대해 자문해본다면 부정적인 답을 내릴 수밖에 없는 팀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략 이런 기준에서 몇 팀을 꼽아보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여러분들께서 명심하셔야할 것은 앞으로 몇 차례의 게시물에서 소개할 팀들은 "절대적으로 무순(無順)"이라는 점이다. 먼저 소개하는 팀이 더 뛰어난 것도 가장 덜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저 자료를 먼저 정리한 순서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과연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에릭 클랩튼을 일컬어 "기타의 신"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말은 "세계 3대 기타리스트"니 혹은 "80년대 3대 기타리스트"니 하는 식으로 숫자를 좋아하는 일본의 팝저널들이 사용한 표현이 아니라 미국에서 사용한 표현이었다. 잘 아셔야할 것은 8월 24일자 경향신문의 스포츠면을 보면 우세인 볼트에 대해 "전설"이라는 수사를 하고 있는데 이 것을 보고 "아! 우세인 볼트는 전설과 동의어구나"라는 생각을 하실 분이 계시겠는가? 물론 에릭 클랩튼이 기타를 대단히 잘 친 기타리스트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모든 기타리스트들보다 월등한 기량과 기타라는 악기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음악적 능력이 "인간의 그 것"을 "실제로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수사를 썼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멀리도 갈 필요 없다.) 낙원상가에서나 홍대 앞에서 "에릭 클랩튼을 따라올 자 아묻고 없다."든지 "에릭 클랩튼외의 기타리스트들은 쓰레기다"라고 외친다면 아마 30분 이내에 경찰이 출동해야만 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물론 에릭 클랩튼을 일컬어 "기타의 신"이라는 표현을 미국의 언론에서 사용한 적은 있으나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이 단 한 번 나오듯 에릭 클랩튼을 일컬어 독창적으로 기타의 신이란 표현을 쓴 적은 단 한번이었으며 그 이후의 같은 표현들은 그 것을 인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마치 아담 스미스 이후의 그 어느 사람이 시장에서 가격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그저 아담 스미스의 인용이듯 말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Rock Scene에서 supergroup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었던 최초의 팀을 꼽으라 한다면 당연하다는 듯 크림을 이야기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그 역시 대단히 주관적인 일이긴 하지만 한 때 통설처럼 전해져내려오던 "멤버 각자의 음악적 역량이 가장 뛰어난 팀들은 트리오 밴드를 조직해서 활동한다"는 Rock Scene의 오래된 격언에도 합치하는 팀이기도 하다. 이 대단한 트리오 팀의 최연장자인 동시에 Bluce rock drumming의 교과서라 불릴만한 인물의 이름은 Ginger Baker이라 하는데 1939년 8월 19일-생일 지난지 얼마 안되었다는 이야기임!- 런던 남부의 루이스햄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설마 부모들이 Ginger이라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름을 지었을 이유는 절대 없고 본명은 Peter Edward Baker이다. 예명은 손발이 오그라들고 본명은 rocker으로서는 가오가 심하게 떨어지는 이름이니 국내 최고의 작명가라 불리는 "김X수"씨에게 작명을 부탁했다면 더 멋진 이름을 그에게 선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Graham Bond Organisation(이 철자가 영국식이라는 것을 유의하셨으면 한다. 절대 오타가 아니다.)에서 활동을 시작한 뒤로 1966년 문제의 에릭 클랩튼을 만나 1968년 팀이 해체되기 전까지 크림의 멤버였던 인물이다. 이후로 Blind Faith, John Mauall's Blues Breakers, Ginger Baker's Air Force(아! 이 분의 작명 능력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은 단지 1회성 이벤트가 이니었던 것이다.) 등의 밴드를 거친 역사상 가장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드러머 중 한 명이라 할 것이다. 그 외에 진저 베이커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조금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겠으나 오늘 게시물의 목적은 그 것이 아니므로 일단 이 정도선에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John Symon Asher Bruce이라는 전형적인 스코틀랜드식 이름을 가지고 1943년 5월 14일(비틀스의 조지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스코틀랜드의 이스트 더버턴셔의 비숍릭스라는 곳에서 태어난 후에 잭 브루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인물은 다들 아시겠지만 Cream의 리드보컬리스트이자 베이시스트였다가 아니었다가 다시 크림의 멤버였다가 또 아니었다가 다시 크림의 멤버였다 지금은 또 크림의 멤버가 아니다.(크림이 세 번 해체되고 두 번 재결성되었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유치하게 하는 중이다.) 부모가 둘 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고 이사를 워낙 자주 다녔던 바람에 "도대체 이 사람이 유년기를 보낸 곳을 어디라 이야기핼까?"자체가 하나의 연구대상이 되는 잭 브루스는 무려 열네군데의 학교를 다닌 경력을 가지고 있다. 10대에 이미 재즈 베이스(당연히 더블베이스를 의미한다.)를 접했고 그 덕에 왕립 스코틀랜드 음악, 연극학교에서 첼로를 공부하며 정식 음악교육을 받은 인물이다.(에릭 클랩튼이 철저하게 독학으로 그 것도 상식적으로는 대단히 늦은 나이인 만 15세에 기타를 처음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는 대단한 행운아였다 할 것이다.) 1962년 아직 20세도 되기 전 런던의 블루스 밴드이자 Alexis Korner이 이끌던 Bluse Incorporated의 베이스 주자로서 프로 음악인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바로 그 밴드에서 브루스는 오거니스트인 Graham Bond을 만나게 되고 색소폰을 연주하던 Dick Heckstell-Smith, 드러머 Ginger Baker을 만나게 되고 나중에 본드, 베이커와 John McLaughlin이라는 기타리스트와 Graham Bond Quartet을 결성하여 활동하게 된다. 이 밴드는 비밥 재즈, 블루스와 리듬 & 블루스등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을 연주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일단 잭 브루스에 대한 이야기도 이 정도까지만...
에릭 클랩튼에 대해 더 이상의 소개는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지금 "쪽쪽 뽑아내 버리면" 앞으로 에릭 클랩튼에 대한 이야기를 활용할 기회가 떨어질 것 같은 생각에 크림이라는 팀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간략한 멤버들의 배경에 대한 셜명에서 알 수 있듯, 에릭을 제외한다면 진저나 잭의 경우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대단히 정석적인 과정"을 경험한 사람이며, 굳이 크림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무언가 한 건 했을 사람들이라는 점에 대해 동감하지 않으실 분은 없으시리라 본다. 그들이 활동했던 짧은 기간에 비해 발매한 앨범의 수도 상당히 많고-물론 그 중에선 실황 앨범도 포함되어있지만- 그 이상으로 그들이 이룬 음악적 성과도 대단하다. 일반적인 경우 크림에 대해 "Hard Rock의 선구자" 정도로 이야기하는데 특정 장르가 한 팀에 의해 생겼다기 보다는 크림의 음악에 하드 록의 전형적 요소들이 많이 발견된다는 의미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야기하자면 크림이라는 팀은 멤버들의 전력이 이야기하듯, 블루스와 약간의 재즈적 배경을 바탕으로 당시로서는 굉장히 앞서가는 음악을 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할 것이다. 심지어 서구의 많은 평자들은 Blin Faith이나 Ginger Baker' Air Force, 심지어는 Derek and the Dominos등을 일컬어 Post Cream 음악이라는 범주에 넣어 크림 음악의 연장선상에 넣으려 하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뭐 어찌 되었건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라인업을 가지고 있던 팀들 중 하나인 동시에 가장 화려한 팀중 하나이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1. 크림은 앞으로도 뽑아낼 것이 있는 팀이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2. 다른 좋은 곡도 많으나 오늘은 단 한 곡만 링크하기로 한다.
3. 게시질이 늦어진 것은 정치적 이유라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에 앓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티렉스의 특수한 병 때문인데,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이야기해서 티렉스는 8월 말이 되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대단히 괴로움을 겪는데, 8월이 지나면 여름이 끝난다는 데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8월말엔 농담처럼 정신도 육체도 피폐해지고 컨디션이 땅에 떨어진다. 그리고 엄청나게 depress된다는 사실...
4. 크림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쪽쪽 다 빨아먹을 때까지 계속할테니 걱정하지 마시길...
5. 진지하게 묻습니다. 지금 외국의 블로그 서비스로 사이버 망명을 고려하는 중인데 이 곳의 몇몇 절대 그냥 사라지기 죄송한 이웃분들의 의견을-몇분 안 남기시겠지만- 따르도록 할까 합니다. 제가 네이버에서 옮겨가더라도 기꺼이 찾아주신다면 저도 뭐... 아무튼...
6. 지미나 엘라의 버전을 링크한 이유는 비교해서 들으시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 곡이 얼마나 대단한 인기를 끌었는지에 대한 반증으로서 한 링크이기 때문에 어느 버전이 더 좋다거나 무슨 차이가 있다거나 하는 생각은 접어두시고 그냥 들어주셨으면 한다.
Cream- Sunshine of Your Love
Jimi Hendrix - Sunshine of Your Love - Live Stockholm '69
Ella Fitzgerald, Sunshine of your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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