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You missed a good man Etc. -Tampa Red-
사실 이런 식으로 공화국엔 잘 알려져있지 않으나 음악사적으로나 음악 그 자체로 훌륭한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일은 거의 대부분 반응이 없어 좌절을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어쩌다가 그저 이런 사람들을 소개하는 것이 자족적인 행위가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솔직히 이야기해서 다른 사람들이 이런 짓거리를 하는지 안하는지 관심도 없는데 혼자 아마존에서 외국 서적을 주문하고 해석하고 새벽 서너시까지 이 짓거리를 하는 일이 그다지 보람찬 하루 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가끔 "흘러간 팝송을 올려놓을 거면 설명 같은 것들은 쓰지 말고 포스트에서 직접 음악이 재생되도록 해달라"든지 "이런 잘 모르는 가수나 노래들 말고 잘 알려진 7080 세대를 위한 팝송만 소개해달라"든지 하는 쪽지를 받거나 할 때면 이 빌어먹을 블로그를-그렇다. 벌써 이 블로그는 62개월이나 된 블로그이다.- 갈아 엎어버릴까 생각했던 적이 한 두번도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엎어버릴 각오도 했었고 실제로 며칠 전 블로그를 비공개로 했을 때엔 별 듣보잡의 개소리도 있었지만 이런 이유도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이 짓거리에 대해 굉장히 심하게 회의를 하는 중이기도 하다. 뭐 소개해드리는 아티스트들에 대한 질문이나 그 외의 음악적 질문들까지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 빌어먹을 삼류 저질 블로그가 아무리 나 자신이 이 블로그의 삼류적 특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런 취급을 당하는 데에는 인내심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아무튼 이 부분은 이미 작성된 게시물의 앞 부분에 추가한 것이므로 다음 단락부터는 원래 하려 했던 탐파 레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한다. 줴길...
"The man with the gold guitar"와 "The guitar wizard"라는 두 표현은 모두 오늘 소개시켜드릴 Tampa Red에 대한 대중들의, 그리고 전문가들의 찬사였다. 물론 요즘 계속해서 소개해드리는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오른 아티스트들 중 1800년대 말이나 1900년대 초에 출생한 아티스트들이 중심이 되는 만큼 아직까지 기타의 주법의 발달이나 블루스 음악에서의 기타의 활용도 자체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기타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될 이름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만일 피아노, 혹은 브라스-사실 브라스라 하면 금관악기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주로 트럼펫이나 트럼본을 이야기하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색소폰까지는 브라스라는 범주에 그저 "일상적으로 포함시키는" 관계로 편의상 색소폰도 포함되는 것으로 한다.-가 주가 되었다면 지금 여러분들이 느끼는 것과는 대단히 다른 음악이 되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블루스의 발달 방향이 그런 경로를 밟지는 않았던 관계로 가정이라는 것이 별 의미없는 일이긴 하나, 요즈음 계속해서 소개되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기타라는 악기가 어떻게 블루스 음악에서 메인스트림이 되게 되었고 그 것이 블루스라는 음악의 발달 경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 될 것이며 때론 경이로울 수도 있으며 블루스 음악에 대한 공부를 해보려는 의도를 가지신 분들에게는 더없는 기회가 될 것이라 자신한다. 아무튼 이 기타의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의 이야기이다.
Hudson Whittacker(1904년 1월 8일~1981년 3월 19일)은 조지아 주의 Smithville에서 태어났으며 이 사람이 바로 후대에 Tampa Red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미국의 블루스 기타리스트이며 피아니스트이며 Kazoo라는 악기의 연주자인 동시에 보컬리스트이다. 그가 어린 아이였을 때 그의 양친이 모두 돌아가셨고 그는 그 뒤 플로리다 주 Tampa(탬차라 부르든 탐파라 부르든 아무튼 탬파베이 레이스라는 야구 팀이 있는 도시이다.)로 이주하였고 그래서 그의 이름이 Tampa Red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할머니가 그를 입양하여 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그의 탬파 시절의 경험이 그를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 중에서도 그가 어린 시절 음악을 처음 접하던 시절에 만났던 것으로 전해지는 탬파의 스트릿 뮤지션인 Piccolo Pete는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스트릿 뮤지션으로 알려져 있다. 피콜로 피트는 그에게 블루스 기타의 기타를 가르쳐줬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겐 없지만 그의 연주가 대단했던 것으로 짐작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결국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슬라이드 기타라는 것이 있는데(일렉트릭 기타를 쳐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실 것이다. 검지에 슬라이드 바라는 것을 끼우고 핑거링이나 피킹을 한 후 슬라이드 바를 윗 프레임에서 아래 프레임으로 훑어주거나 그 반대로 움직여 주면 특이한 소리가 난다.)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는 탬파 레드가 바로 이 슬라이드 기타 혹은 슬라이드 주법의 아버지 정도라 생각하시면 될 것이다. 그리고 탬파 레드의 음악을 굳이 장르적으로 구별하자면 시카고 블루스에 해당한다 할 수 있을텐데 이전에 시카고 블루스를 연주하던 아티스트라고 소개시켜드린 아티스트의 연주와 곡 그리고 보컬과 비교해보시면 어떤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실 것이다. 그 것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니 여러분들이 발견해내셔야 한다는 것외에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 이 점 안타깝게 생각한다.
1920년대에 이미 슬라이드 기타의 주법에 대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독창적 경지에 이르게 된 탬파 레드는 일리노이주의 시카고-1920년대에 왜 시카고에서 뮤지션들의 일자리가 많았던가에 대해선 앞으로 설명하게 될 것이다.-로 이주하여 자신의 이름을 "Tampa Red"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자신이 플로리다주 탬파 출신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한다. 1928년 그는 "It's tight like that"이라는 곡으로-당시엔 앨범보다는 싱글이 레코딩의 주류였다는 사실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레코딩 아티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그가 사용하던 기타는 National steel-bodied resonator guitar이라는 제품이었는데 그 기타는 정식으로 기타에 amplification기능이 도입되기 전에 사용되던 기타 중에선 가장 비주얼 적으로도 뛰어나고 무엇보다도 큰 소리를 내던 기타였다고 한다. 증폭기가 없는 상태에서 슬라이드 기타의 혹은 슬라이드 주법의 제대로 된 효과를 내는 것이 어느 정도 힘든 것인지르르 생각해본다면 그가 기타의 마법사라 불리는 것이 결코 어색한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탬파 레드는 이 기타를 사용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1928년 그가 처음 레코딩 뮤지션으로 데뷔했을 즈음 절대 그와 함께 빼놓으면 안되는 그의 파트너는 Thomas A. Dorsey라는 사람이었는데 탬파와 그는 "The Hokun Boys"와 "Tampa Red's Hokun Jug Band"이라는 이름의 팀을 결성하여 거의 45장에 이르는 싱글 음반을 발매하였다고 한다. 혹시 Dorsey에 대해 찾아보고 싶은 분들은 Georgia Tom이라는 이름을 찾아보셔도 된다. 왜냐고? 당근 둘이 동일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1932년 탬파 레드는 Dorsey와 음악적인 동반자의 관계를 청산하고 자신의 녹음은 물론 앞서 말씀드린 멤피스 미니와 John Lee "Sony Boy" Williamson등의 세션으로도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1934녀녀 그는 Victor(축음기 옆에 강아지가 있는 로고로 유명한 음반사)와 계약을 하게 되고 Chicago Five이라는 잉름의 팀을 조직한다. 이 팀은 주로 세션을 위해 조직된 뮤지션들의 모임이었는데 후에 Blue Bird Sound이라 불리는 독특한 음악을 창안하게 된다. 그리고 후대의 음악학자들은 이 팀이 바로 이후 블루스와 rock and roll band들의 전형이 된 팀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탬파 레드는 특히 Big Bill Broonzy와 Big Maceo Merriweather와 대단히 가까운 친구였다고도 전해진다. 그리고 그는 상업적으로 대단히 큰 성공을 거둔 블루스 아티스트들 중 한 명으로 꼽히는데 그저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로 인해 그의 집이 이른바 블루스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블루스 음악계에 끼친 그의 영향력이 대단했던 것과 그의 상업적 성공이 무관하다 할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것이 그가 시카고 블루스에서부터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블루스 음악을 구사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는 1942년에 이르러 드디어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Let me play with your poodle"이라는 곡은 나중에 R&B 차트로 바뀌는 "Harlem hit parade"차트에서 4위까지 오르게 된다. 1949년에 발표했던 "When Things Go Wrong with You (It Hurts Me Too)"이라는 곡은 나중에 R&B계의 유력 뮤지션 중 한 명인 Elmore James에 의해 Cover Version(Remake이 아님을 주의하시기 바란다.)으로도 발표된다. 그리고 1950년대엔 Son House Skip James 등에 의해 그의 음악이 새로이 해석되어 연주되고 녹음되기도 하는데 이를 일컬어 탬파 레드에 대한 1950년대의 Rediscover이라고도 한다. 마지막 문장이 그의 불행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 서글프긴 한데, 1953년 그의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알콜 중독으로 고생하셨으며 77세를 일기로 시카고에서 사망한다.
Tampa Red - You Missed A Good Man
Tampa Red - It Hurts Me Too
Tampa Red - Don't You Lie To Me
Tampa Red & Georgia Tom - You Can't Get That Stuff No More
추신>
맴ㅁ피스 미니나 탬파 레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구의동 살던 시절 같은 동네에 사시던 현철 아저씨나 백남봉 아저씨가 구의동 철이나 구의동 봉이 같은 이름으로 활동했다면 더 인기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님 말고...
2009년 9월 1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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