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Memphis Blues(1909년에 작곡되어 1912년에 악보로 출간됨) -William Christopher Handy-
음악의 아버지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라 했다. William Christopher Handy(W.C. Handy)는 The Father of Blues이라 불린다. 즉 이 사람은 블루스의 아버지라 불린다는 이야기이다. 미국 음악이라 불릴만한 음악을 작곡한 사람들도 많았고 심지어 최초로 악보로 출판된 블루스 곡 역시 핸디의 곡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최초로 악보로 출판된 블루스 곡은 Hart Wands의 "Dallas Blues"이다.) 그는 여태껏 명멸했거나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작곡가들 중에서도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작곡가들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그렇게 꼽을 수 있는 그의 가장 가시적인 업적을 꼽으라면 남부 지역의 삼각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음악"이었던 블루스를 전 미국인들의 음악으로 만든 것을 가장 처음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미국의 "민속음악적 요소"들을 자신이 쓴 곡들에 대단히 활발하게 반영하여 이른바 "미국 음악"이라는 것을 정립시키는 데에 큰 공헌을 했기 때문이라 한다. 미국의 음악학자들이나 음악사가들에 의하면 그가 이런 활발한 음악적인 융합을 시도할 수 있었던 데에 그가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았던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 한다. 게다가 주도면밀한 성격을 가졌던 그는 그의 작업들을 문서화하는 데에 대단히 많은 노력을 들였던 관계로 그 것이 후대의 작곡가나 연주가들의 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아무튼 이 사람을 "블루스의 아버지"라 한다는 것 정도는 외워두시기 바란다. 참고로 1941년 그가 발행한 그의 자서전의 제목 역시 "Father of the Blues"이다.
Alabama주의 Florence에서 1875년 11월 16일에 태어난 W.C Handy의 조부인 Wiliam Wise Handy는 노예해방 이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감리교 감독목사로 재직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의 성장 환경이 대단히 종교적으로 엄숙했을 것임은(모든 목사집안이 엄숙주의의 노예는 아니지만) 대략 어림잡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핸디는 대단히 종교적 신념이 강하고 감리교의 교리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는 점은 자신이 스스로 자서전에서도 밝힌 바가 있다. 그가 받은 유년기의 음악적 영향은 대부분 교회 내에서의 음악활동을 통한 것이었고 당시 대단히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유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그에게 가장 큰 음악적 영감을 준 것은 그 자신의 이야기에 따르면 고향인 Florence의 "자연의 소리"였다고 한다. 자연의 소리라 함은 쉽게 이야기하자면 박쥐가 밤에 활동을 하며 내는 소리라든지, 물총새의 소리라든지, 고향의 시냇물소리나 그 외에 인가의 청력으로 감지할 수 있는 모든 음향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노래하는 새나 교향악의 공통점이 있다면 두 가지 모두 청자들에게 매개물 없이 전달되는 소리라는 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왜 유명하냐?는 질문은 삼가주시기 바란다. "블루스의 아버지가 한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일자무식의 티렉스도 알고있을 정도의 이야기"라면 당연히 유명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흑인 사회에서 전업음악가로서 성공하는 일이란 대단히 경험하기 힘든 일이었던 관계로 그는 성장과 동시에 목공, 제화, 석고공예의 기술 등을 배웠닫고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만 종교와 그의 고향의 아름다운 풍광이 그에게 음악을 할 수 있는 원초적 계기를 제공해준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고향의 밴드의 일원이 된 것은 아직 10대였을 때였는데 그는 일종의 "비밀 멤버"였다. 뭐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고 그가 밴드에 가입하게 되었다는 것을 부모에게 숨겼다는 이야기 되시겠다. 그가 맨 처음 연주했던 악기는 코넷(cornet)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밴드의 멤버로부터 이 악기를 구입하여 "X빠지게 연습했다"고 한다. 그가 고향인 Florence에서 음악을 하던 시기에 그가 속해있던 밴드의 이름은 한국어로 하면 "삽질 여단"이라 할 수 있는 Shovel Brigade라는 이름의 팀이었다고 한다. 이름에서부터 감이 심하게 오시겠지만 그들이 하고자 했던 음악이라는 것이 "알라바마 주의 노동자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음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그의 밴드는 주로 앨라바마의 남부지역의 인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내용을 담은 음악을 연주햇으며 그의 자서전에서도 밝힌 바 있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들은 가능한 모든 도구들을 이용하여 리듬 효과를 내고 그런 효과들을 무대에서도 실연해보았는데 이런 모든 방법을 동원해 연주했던 당시의 음악이 지금(그가 자서전을 쓰던 시기인 1940년대 초반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흔히들 이야기하는 블루스라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고 말이다. 1892년 9월 그는 앨라바마주의 버밍엄에서 교사자격을 위한 시험을 보고 합격하여 한 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금세 그 것을 그만두게 되고 만다. 그 이유는 그 일이 지나치게 박봉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그 것이 "미국의 음악사"의 한 부분을 장식하게 될 계기가 될 것임은 핸디를 포함한 그 어느 누구도 몰랐을 것임은 두 말하면 입아픈 이야기 되시겠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둔 뒤 핸디는 Bessemer근교에서 새로운 일을 하게 된다. 이 시기에 핸디는 소규모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직접 조직하여 연주활동을 했고 다른 연주자들에게 악보를 보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뮤지션들이 악보를 보는 법을 배우다니!! 뭥미?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겠으나 "그러는 너는 악보 잘보냐?"라는 질문을 되돌리기 전에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거의 대부분이 문맹이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악보를 보는 방법을 당연히 배워야할 뮤지션들도 상당수에 달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길 하고 싶다. 그 후, 핸디는 Lauzetta Quartet을 결성하여 시카고 만국박라회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시카고로의 여행은 그들에겐 대단히 길고 힘든 여해이었다 전해진다. 그들은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우스꽝스런 복장을 하고 연주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이 그런 생고생을 하여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마침내 알게 된다. "시카고 만국 박랍회가 1년 연기되었다"는 것을... 이 무슨 싸구려 개그같은 이야기인가 말인가... 아무튼 그들은 엄청난 실망감을 뒤로 하고 세인트루이스로 향하게 되는데 그 곳의 조건은 조금 더 과하게 열악했다고 한다. 이런 빌어먹을 개고생을 다한 후 로제타 쿼텟을 결국 해체를 결정하고 우리의 핸디 선생은 인디애나주의 Evansville으로 향하시게 된다. 여러분들은 아셔야 한다. "~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을 어찌 한 번에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물며 우리 옆집 아저씨에 대해서 옆집 아저씨의 아들이 말한다 하더라도 최소 몇시간은 걸릴텐데 말이다... 핸디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꽤 많이 계속된다. 아! 이 말릴 수 없는 티렉스의 블루스에 대한 편애여...
Jim Hession / Memphis Blues / W.C. Handy
Duke Ellington - Memphis Blues
2009년 9월 1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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