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4일 월요일

아님 말고 1000곡(38)

38. Blue Suede Shoes-Carl Perkins(1956)-
이 곡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이야기할 것이 하나 있다. 우선 "티렉스는 왜 백인들의 rock and roll과 swing jazz에 대해 비판적인가?"에 대한 답을 분명히 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점에 대해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 이후에 소개될 음악들이나 그와 관련된 게시물들에 대해 "티렉스에겐 일관성이 없다"는 오해를 하실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티렉스는 백인들의 rock and roll과 swing jazz에 대해선 절대 지지하지 않으나 백을의 블루스(일명 white blues라고도 불리는)와 백인들의 소울 음악인 blue eyed soul에 대해선 대단히 긍정ㅈ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스윙재즈나 백인들의 로클론엔 그 음악의 원래 주인인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혹은 흑인들과 그들의 음악과 삶에 대한 존중(존경까지는 아니지만)이 분명히 느껴지고 그런 것들을 뒷받침할만한 논거들이 충분히 존재하나 스윙재즈나 백인들의 rock and roll엔 그러한 존중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흑인들의 음악의 특성을 가장 단순화한 형태로 백인들에게 주목을 끌 정도까지 변형시켰고 그리고 그런 점들을 장점으로 삼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다. 예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2006년 WBC 대회에서 일본이 우승을 하고 공화국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린 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 할 것이다. 상대방들은 일본이나 한국의 야구를 한 수 아래로 보고 상대방에 대한 연구나 상대방의 수준을 높게 평가하여 그들을 대할 때 신중함을 보여주는 플레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티렉스의 앞으로의 게시물에는 백인들의 블루스나 블루 아이드 소울에 대해 긍정적인 내용들이 담겨질 것이나 그 것이 티렉스가 일관성 없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지하셨으면 한다는 이야기이다. 아무튼 오늘의 이야기 시작하겠다.

원체 rocakabliiy라는 음악 자체가 그렇지만, 칼 퍼킨스는 Rhythm nd Blues와 Country and Western을 교묘하게 결합시킨 뮤지션으로 평가받고 있는 로커빌리라는 장르의 영웅들 중 한 명으로 인식되고 있다. 작가인 Charlie Daniels에 의하면 "칼 퍼킨스는 로커빌리의 시대를 자신의 입장에서 개인화한 뮤지션"이란다. 그의 음악은 엘비스 프레슬리와 조니 캐쉬(이 사람은 나중에 충분히 소개해드릴 예정이다.) 심지어 비틀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후대의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오늘 소개해드릴 Blue Suede 라는 곡 하나로(물론 칼 퍼킨스의 히트곡이 이 곡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전세계적인 명사가 되었으며 사후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rock and roll scene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전혀 빠지지 않는 인물이며 절대 빼먹어서는 안될 곡을 남긴 인물로도 평가받는 것이다. 그만큼 Blue Suede Shoes라는 곡이 가졌던 대중성이란 것은 당대에 비교할만한 다른 곡이 몇 곡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할 것이다. 1932년 4월 9일 Carl Lee Perkins라는 이름으로 멤피스가 있는 테네시 주의 Tiptonville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1998년1월 19일에 사망한 그는 단순히 싱어로서 뿐만 아니라 "엄청나다 대단하다 천재적이다"라는 표현을 쓰기는 뭐하지만 기타리스트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평가를 받았고 작곡라고서도 나름대로 확고한 위치를 누렸던 인물이다.

그는 직업적인 뮤지션이 되기 전에 목화를 따는 일을 하기도 했고 Day's Dairy라는 유제품 회사의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그의 형 Jay Perkins와 이곳 저곳의 작은 무대를 찾아-심지어 그는 소규모의 숙박시설에서 투숙객들을 상대로 하는 연주를 하기도 했다. 그와 그의 형제인 Jay(보진 못했지만 멋진 인물일 것임에 분명하다!!!)가 주로 연주했던 곡들은 Country Blues곡들이었고 Rockabilly라는 음악이 정착되기 이전부터 Bill Monroe의 "Blue Moon of Kentucky"을 컨트리 블루스 스타일로 편곡하여 연주하는 등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탄탄한 기본기를 쌓아갔다.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그의 형제인 Jay와 Valda Crider라는 이름의 여성인데, Valda는 칼 퍼킨스와 몇 년간의 교제 후 1953년에 결혼에 이르게 된다. 칼 퍼킨스에게 있어 결혼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자신의 부인이 되는 Valda Criderf로 인해 엘비스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형인 Jay Perkins이 없었더라면 칼 퍼킨스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칼 퍼킨스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일이 되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그와의 특이한 조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위에서 한 그의 아내에 얽힌 이야기) 때는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따끈따근하게 발매된 엘비스의 "Blue moon of Kentucky"를 듣던 Valda가 "이 것 한 번 들어봐봐! 당신들하고 똑같이 연주하네..."라고 칼에게 이야기했고 칼 퍼킨스는 그 음반을 듣고 발다의 이야기에 공감하여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결국 엘비스와 만나 교분을 쌓게 된다는 Pop Scene에 많이 떠돌아 다니는 동화같은 이야기!

칼 퍼킨스의 연대기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다가는 그에 대한 이야기로 세 개 정도의 게시물을 올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 경우 빌어먹을 1000곡이 아니라 빌어먹을 2000곡도 모자를지도 모른다. 이 짓을 10년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튼 그는 1954년 Sun Record의 Sam Phillips의 오디션을 통과하여 그 해 "Movie Magg"와 "Turn around" 두 곡이 실린 싱글을 통해 데뷔하게 되고 그 뒤로 Sun Record의 간판 스타로 활동하던 도중 1956년에 버지니아주의 노포크에서 공연을 마치고 전국에 방송되는 Perry Como Show에 출연하기 위해 뉴욕시로 가던 도중 교통사고를 당하여 한참을 무대를 떠나있다 (그래봤자 대략 몇 개월이다.) 그리고 그의 형과 함께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가 그 후 Sun Record를 떠나고 그 후엔 Johnny Cash에게 곡을 준 것이 계기가 되어 조니 캐쉬는 물론이고 호세 펠리치아노(Jose Feliciano) 멀 트래비스(Merle Travis)등과 교분을 가지게 되고 1969년엔 그 유명한 Bob Dylan의 "Champaign Song"을 밥 딜런과 공동으로 작업하는 등 8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활동하다 1992년 발병 사실을 확인한 후두암으로 인해 긴 투병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그 후 결국 긴 투병생활의 후유증과 암의 합병증으로 인해 1997년 9월 15일 세상을 뜨고 만다. Rockabilly의 3대 수퍼스타라 할 수 있는 칼 퍼킨스와 제리 리 루이스가 엘비스와 다른 점은 "엘비스와는 달리 연주력과 작곡능력을 겸비한 스타"였다는 점이다. 물론 엘비스의 그 엄청난 대중성을 능가할 수는 없었지만, 이른바 "Singer-Song Writer의 시대"가 열리기 전에 이미 그런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북미의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이른바 Singer-Song Writer이 아니었던 대스타는 거의 엘비스가 유일함에도 불구하고 비틀스 이후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을 싱어-송라이터의 시대로 부르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아시게 될 것이다. 아무튼 찾아 들으실 노래는 칼 퍼킨스의 최고 히트곡인 "Blue Suede Shoes"다 짤방에 나와있는 사진이 바로 그 신발을 들고 찍은 사진인데 사진이 흑백이라 상태가 대략 메롱이다.


Blue Suede Shoes-Karl Perkins-
Blue Suede Shoes-Elvis Presley-

오늘은 별다른 추신 사항이 없다. 다만 엘비스와 칼 퍼킨스의 노래를 비교해 들어보시기 바란다. 빌어먹을 하나 더 쓰게 될 뻔 했다. 37이 아니라 38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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