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4일 월요일

아님 말고 1000곡(54)

54. Untold Passion-Schon and Hammer(1982)
80년대, 그 음악적인 스펙트럼의 다양성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당시엔 음악이 70년대에 비해 단순했던 시대라 생각했으나 다시 돌아보며 음악적으로 대단히 역동적인 면이 많던 10년간이었다. 이 것은 단지 지나간 과거는 다 아름다웠다는 식의 수사는 아니다. 흑인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에 있어서는 80년대는 일종의 암흑기에 가까웠을지도 모르지만, 뉴웨이브나 펑크, 포스트 펑크 혹은 기볹거인 Rock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80년대는 더없이 소중한 시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에 일본인들은 예의 그 숫자놀음을 통해 80년대의 대 기타리스트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그리고 그들이 사용한 3이라는 숫자는 다분히 Gary Moore, Yingwie Malmstein, Edward Van Halen을 염두에 둔 수식어였다. 하지만, 80년대에 휠을 잡았던(이 표현 좋지 않다.) 기타리스트들 중 가장 뒤어난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었으며 위에서 말씀드린 이들이 "정말 대단히 잘 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타리스트라면 여러분들이 익히 아실 유명 밴드였던 Journey의 Neal Schon은 전 미국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천재"라는 이야기가 가장 어울리는 기타리스트였다 할 것이다. 그의 천재성이란 것은 아마 내 세대들이 최고의 천재 기타리스트로 기억할 잉베이 말름스틴(그냥 잉위 맘스틴이 편하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린 나이에 인정받은 것이었다.

오클라호마주의 Tinker 공군 기지에서 태어난 닐 션이 기타를 처음 든 것은 겨우 5세 때의 일이다. 그런데 한국 나이로는 7세 정도였으니 엄청나게 빠른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테지만 미국의 거의 모든 음악 저널에서 닐 션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인 Quick learner이라는 수식어는 닐 션을 이야기할 때 가장 적절한 단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겨우 15세의 나이에-고등학교에 채 입학하기도 전이다.- Santana에 참여하게 된다. 그저 한 곡 정도 참여한 것이 아니라, "Santana III"앨범 전체의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천재성은 San Mateo에 위치한 Aragon High School의 졸업장을 얻을 기회를 박탈해버린다. 그의 천재성은 이미 Eric Clapton으로부터 Derek and the dominos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을 정도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산타나에 합류하게 된 것은 당연히 산타나의 제의가 에릭 클랩튼의 제의에 앞섰기 때문인데,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아시워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산타나나 데릭 & 더 도미노스나 닐 션의 스타일에 완전히 합치하진 않으나 굳이 평가하자면 닐 션의 스타일엔 산타나가 조금 더 적합한 팀이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어쨌든간에 그는 1973년에 Journey로 옮기기 전 Azteca에도 참여했을 정도로 20세가 되기 이전(그는 1954년 생이다.) 이미 다른 기타리스트들이 평생을 연주활동을 해도 쌓을까 말까한 커리어를 쌓게 된다. 줴길... 신은 불공평하다. 저니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하도록 하고...(만일 티렉스에게서 저니의 Open arms따위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신다면 맴매 퍼레이드!)

개인적인 취향이라 객관저이라 할 수는 없으나 Fender사의 기타보다는 Gibson사의 기타들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56 Les Paul타입의 기타들에 대한 선호는 가끔은 집요하다 싶을 정도라고 스스로도 인정하는데, 그 기타를 쓰는 유명 기타리스트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로 Neal Schon이다.(레스 폴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닐 션이 쓰는 모델은 '56 Les Paul Goldtop이라는 모델이며 또한 (그보다 더 자주 사용했던 악기는) Gibson ES-335모델이다. 그가 깁슨사의 기타를 썼다는 이야기를 왜 강조하는가하면 깁슨의 모델들을 쓰는 시타리스트들의 대부분이 비브라토 암을 쓰지 않으며 (물론 Flying V 모델을 쓰는 경우엔 암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백인들의 음악" 보다는 "흑인음악의 특색이 드러나는 음악"을 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닐 션 역시 그의 연주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1960년대의 소울 음악이었고, 그 중에서도 아레사 프랭클린과 글래디스 나이트 그리고 B.B. King에게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이었던 Rock band의 기타리스트로서는 조금 어울리지 않게 Rock 음악 보다는 다른 쪽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1980년대 미국엔 체코 슬로바키아에서 망명한 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쳤던 시기가 있었다. 여자 테니스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가 그랬고 남자 테니스의 이반 렌들이 있었으며 정확하게 이름이 기억나진 않지만 당대 최고의 모델이었던 체코 출신의 폴리나 포리츠코바가 있었으며 그리고 또 한 명 텔레비전 시리즈인 Miami Vice의 음악을 담당했던, 그리고 그 음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Jan Hammer(얀 해머라고 읽는다고 한다.)이 있었다. 얀 해머는 작곡가인 동시에 대단한 재능을 지닌 건반주자였으며 심지어는 드러머로서도 수준급의 능력을 갖춘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얀 해머 역시 체코 슬로바키아에서 망명한 인물로서 80년대 중후반 미국을 강타했던 "체코 침공"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신서사이저 연주는 대단히 멜로딕한 측면이 강하여 그 분야에서 최고라 인정받고 있는 인물들인 반겔리스나 장 미셀 자르나 키스 에머슨 보다는 예스 출신의 릭 웨이크먼의 스타일에 조금 더 가까운 음악을 구사한다고 보면 될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 견해이다. 나쁘게 이야기하자면 조금 상업적인 음악이고 조금 순화해서 이야기하자면 실험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닐 션과 얀 해머가 1981년 공동작업으로 음반을 발매했고 그 음반의 이름은 이 곡의 이름과 같은 "Untold Passion"이다. 이 곡은 동명의 음반의 B면의 마지막 곡으로 무려 9분이 넘는 긴 연주시간을 가진 곡으로 이 음반의 백미라 할만한 곡이다. 솔까말 닐 션과 얀 해머의 이 공동 프로젝트가 대단한 음악성을 지닌 음반은 아니었지만, 당대에 최고라 평가받던 두 사람이 모여 작업한 음악은 어떤 으악인지를 한 번 들어보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시간의 낭비는 아닐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 견해이고 당시 스티브 페리라는 최고 수준의 보컬리스트의 그늘에서 입도 한 번 뻥끗하지 못했던 닐 션의 보컬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세대들에겐 다소 생소할지 모르지만 기타를 쳐본 사람들이라면 닐 션 정도의 연주력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새해의 벽두를 여는 음악으로는 약할지 모르지만 이 게시물들이 혹시 "7080 세대를 위한 올드 팝"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한 전초전 정도라 해두면 그 역시 나름의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Untold Passion
I'm talking to you


1.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 그 다음엔 별 드릴 말씀 없지만 "언론노조 파업투쟁"에 힘을!
3. 문화방송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언론관계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는 색히들보다는 도덕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4. 새해의 시작과 함께 거짓말같이 총파업의 열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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