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3월 4일에 태어나 2008년 10월 10일에 이 세상을 등진 Zenzile Miriam Makeba라는 분은 Miriam Makeba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으며 그보다 더 익숙한 그의 이름은 Mama Afrika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프로스펙트 타운쉽에서 태어나 1954년부터 프로 뮤지션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2008년 10월 10일 숨을 거두던 그 해까지도 쉬지 않고 무대에 섰던 여지껏 지구라는 별에 태어나 자신의 음반을 남겼던 사람들 중 가장 노래를 잘하는 몇 사람들 중 하나로 꼽힐만한 뮤지션이며 실제로도 정말 노래를 잘 했던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그의 인생은 여섯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나이에 프로뮤지션이 되기위한 트레이닝을 받고 18세에 아마추어 밴드와 함께 투어를 떠나면서 시작하여 남아프리카와 심지어는 아프리카 전체를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성공하기까지의 남아프리카에서의 생활,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를 포함한 여러 복잡한 문제로 인해 남아프리카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망명 생활,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의 붕괴 이후 남아프리카로 돌아간 이후의 세 부분으로 "대단히 간단하게" 나누어 고찰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그런 간단한 분류와는 거리가 대단히 먼 (개인적으로 대단히 싫어하는 류의 수사이긴 하지만) "대단히 슬픈 성공의 인생"을 산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까놓고 이야기해, 대부분의 얼치기들 앞에서 미리엄 마케바 아주머니의 대략의 이야기와 그의 곡들을 몇 곡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당신의 연인 혹은 당신이 작업중인 이성에게 "먹어주는 멘트"를 수십개 날리고도 남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한 축을 잡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 이제부터 그를 진심으로 존경할 준비를 하기 위해 한숨을 한번 크게 쉬고... 한숨을 쉬었다면 그를 존경하게 되는 과정을 티렉스와 함께 시작해보자.
먼저 그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기 위해 알고 있어야할 단어는 Skylark이라는 단어이다. 이 멋진 단어는(설마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모르시는 건 아니리라 생각한다.) 미리엄 마케바 아주머니가 최초로 결성했던 자신의 밴드이다. 50년대의 밴드이고 본격적으로 서구에 진출하기 전의 밴드이므로 자료를 구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재즈와 아프리카 전통의 멜로디를 융합한 대단히 절묘한,때로는 교묘하다 느낄 정도로, 음악을 구사하던 밴드로서 이 밴드는 미리엄 마케바의 음악의 시작인 동시에 전세계에 아프리카의 음악을 알리게 되는 모태가 되는 밴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들이 이 밴드의 이름을 아록있는 정도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밴드이다. 그리고 미리엄 선생은 Skylark와의 활동을 시작하기 이전 Manhattan Brothers와 더불어 직업 음악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한다. 이 때가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대략 1950년대라고 이야기되고 있으며 (각종 인명사전에 의하면 1954년 정도라고 하고는 있다.) 이미 20대에 남아프리카의 음악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1959년 마케바 선생은 후에 남편이 되는 Hugh Masekela와 함께 뮤지컬 King Kong에서 연기(혹은 연주)를 하게 된다. 스튜디오 아티스트로서의 확고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미리엄 선생은 녹음과 관련하여 경제적인 이익은 거의 얻지 못하게 되는데 이 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으로 떠나게 되고 그리고 그 곳에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인 Lionel rogosin가 반 인종차별주의(Anti-Apartheid)를 선전하기 위해 1959년에 제작한
"Makeba My Story"이라는 제목의 책을 들어보신 일이 있으신가? 혹 그렇다면 당신은 마케바 선생에 대해 대단히 큰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 인정해드릴만한 분이라 할 것이다. 남아프리카를 떠난 이후의 마케바 선생의 인생에 대해선 위에서 언급한 마케바 선생의 자서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그 책을 직접 읽어보시는 편이 훨씬 더 정확하리라 생각하지만, 이 게시물을 통해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간단하게 남아프리카를 떠나서의 마케바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풀려고 한다. 마케바 선생의 일생에 있어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을 꼽으라 한다면 누가 뭐라 하더라도 이견의 여지가 없이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를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런던 여행중에 만난 해리 벨라폰테가 아니었다면 미리엄 마케바가 미국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마케바 선생은 "Pata Pata" "The click song"(아프리카 어의 일종인 Xhosa 표기에 의하면"Qongqothwane"라고 하는 곡이다.) "Malaika"등의 자신을 대표할만한 히트곡들을 발매하게 된다. 1966년 마케바는 해리 벨라폰테와 함께 The best flok recording부분의 그래미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래미를 가져다 준 앨범의 타이틀은 An Evening With Belafonte/Makeba이었는데 아파르트헤이트 하의 흑인들이 처해있는 곤경을 주제로 한 앨범으로 마케바를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려놓은과 동시에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제공해주게 되며 넬슨 만델라와 더불어 아파르트헤이트와 그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명사가 되기도 한다. 그 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 행복한 일이었는지 불행한 일이었는지에 대해선 아직 무어라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라 생각한다.
1960년 마케바 선생은 자신의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남아프리카로 돌아가기로 햇으나 자신의 남아프리카 여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었고 1983년엔 UN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의 부당함에 대해 증언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공민권도 남아프리카로 돌아갈 권리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케바는 9개국의 여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10개국에서 마케바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 아무튼 그 후의 결혼이나 1985년 외동딸을 잃은 이야기나 논란이 많았던 그의 첫번째 결혼이나 미국 투어의 취소, 그 후 남미 등지에서의 활동 1974년 자이르에서 개최되었던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과의 경기에 그가 등장했던 일, 등등의 많은 일이 있었으나 누가 뭐래도 그의 또 한차례의 주목할만한 변신이라 할 수 있는 일은 1985년 딸을 잃은 후, 87년 브뤼셀로 이주했다 그 해 폴 사이먼의 Graceland tour에 (다른 사람들은 거의 예상하지 못했으나) 나타나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결국 마케바 선생은 넬슨 만델라의 설득으로 고향인 남아프리카로 드디더 돌아가게 된다. 그 때가 1990년이다. 1991년 마케바 선생은 당시 최고 인기 시트콤이었던 The Cosby Show에 출연했고, 1992년엔 1976년의 Soweto 청년봉기를 소재로 한 영화인
2000년 선생께서는 이미 은퇴를 하셔도 될만한 나이에 "Homeland"라는 타이틀의 새 앨범을 내게 된다. 그 앨범은 (비록 수상엔 실패했지만) 2001년 그래미상의 "The best world music"의 후보로 지명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같은 해 마케바는 그의 "평화와 그에 대한 이해를 위한 국제적인 활동"에 대한 치하의 의미로 the United Nations Association of Germany (DGVN)에서 수여하는 Gold Otto Hahn Peace Medal을 받게 된다. 2002년에는 Sofia Gubaldulina와 더불어 Pola Music Prize을 수상하고 2004년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위대한 인물 100인" 투표에서 38번째에 랭크되기도 한다. 2005년엔 "Farewell tour"라는 타이틀로 전세계 순회연주를 하게 된다. 물론 그 것이 그의 공식적인 은퇴무대가 되었던 것이다. 투어의 도중 그의 대변인은 그에게 "심각한 건강의 이상"이 있음을 발표하게 되고 전 인류가 그의 건강을 걱정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2008년 Camora라는 (죄송하지만 티렉스는 이 단체에 대해 잘 모른다.) 마피아와 유사한 범죄단체에 대항해 싸우는 Roberto Saviano를 지원하기 위해 Castel Volturno에서 개최되었던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되는데 그 때가 그가 죽기 직전인 2008년 11월 9일이다. 이미 밝혔지만 그가 사망한 날은 2008년 11월 10일이다.(11월 10일은 티렉스의 어머님의 생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다음날 심장마비로 "역사상 가장 위대햇던 아프리카의 뮤지션"이라는 평가와 함께 아무나 받을 수 없는 Mama Afrika라는 경의의 칭호를 뒤로하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래도 그를 존경하실 수 없다면 아래의 음악들을 들어보시면 된다. 이런 것을 확인사살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존경심이 생기지 않으신다면 그 것은 마케바의 문제가 아니라 티렉스의 비루한 재주 때문일 것이다.
Miriam Makeba - Amampondo
Miriam Makeba - Pata Pata
Miriam Makeba - The Click Song 196
Miriam Makeba - Khawuleza 1966
피에쑤>
1. 짤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2. 보노소년님! 저 이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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