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1일 금요일

아님 말고 1000곡(32)

32. I don't want your millions Mister-Almanac Singers(1941)-
이미 티렉스는 과거(그리 오래 전도 아니다. 한 20여일 전쯤?)의 게시물에서 American modern folk 혹은 더 나아가 North American folkmusic의 아버지라 불리는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의 노래를 Pete Seeger가 부를 것을 링크시켰던 것도 억하실 것이다. 우리는 우디 거스리와 피트 시거외에 두 명의 인물들을 더 기억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의 이른바 American modern folk의 역사의 한 축을 세울 수 있는 퍼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Almanac Singers의 멤버가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이름은 Lee Hays와 Millard Lampell이라 한다. Millard, Pete, Lee 그리고 Woody는 1940년 혹은 1941년 부터 함께 모여 연주하기 시작했다.(그들의 첫 애앨범이 발매된 연도는 확실히 1941년이나 Almanac Singer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정확히 1940년인지 1941년인지에 대한 기록은 불분명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Pete와 Woody가 처음으로 만난 것은 1940년 3월 Will Geer's Grapes of Wrath Evening이라는 이주 노동자를 위한 자선행사 자리였다. 그 후 피트 시거는 우디 거스리가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에 있는 자신의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떠난 여행에 동행하게 된다. 리 헤이스와 밀러드 램펠이 만나게 된 것은 뉴욕시의 한 아파트먼트를 같이 렌트하면서 이른바 룸메이트가 된 사건이 있으면서였다. 기록에 의하면 그 때가 1940년 10월이었다 한다. 그 당시에도 뉴욕에서 살려면 한 사람이 월세를 내기엔 빠듯했던가 보다.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가 그들의 역사적 만남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뉴욕의 살인적 물가에 축복 있으라! 그리고 공교롭게도 피트 시거는 우디 거스리와의 여행이 끝난 후 그들과 같이 지내게 된다.(이 것이 바로 스케줄의 가호라 할만한 일이다. 한 가지 게시물로 두 가지를 배우게 되는 티렉스의 게시물에도 역시 축복 있으라!) 그들은 자신들의 아파트먼트를 Almanac House라 불렀으며 그들의 아파트먼트는 극좌적 성향의 포크 싱어들과 문화계 인사의 일종의 비밀기지 역할을 했고 1942년엔 그들의 무리에 Sonny Terry와 Brownie McGhee가 합류하게 된다. 이 것이 바로 Almanac Singers의 탄생이다.(마치 무슨 고대 설화를 읽는 느낌 아닌가?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Ed Cray라는 인물의 증언에 의하면 피트 시거와 리 헤이스가 처음으로 돈을 받고 연주를 한 것은 뉴욕 시의 Jade Mountain restaurant에서 열렸던 스페인 내전의 국왕파들을 위한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 파티에서였다고 한다. 또한 Joe Klein이라는 작가의 기록에 의하면 피트와 리 그리고 밀러드가 처음으로 군중 앞에 섰던 것은 워싱턴 DC의 American Youth Congress였다고 하는데 그 시기는 그들이 그들 자신을 Almanac이라 부르기 시작한 직후라 한다. 그리고 이 때는 1941년 2월이었다는 이야기도 기록하고 있다. 이 Almanac이라는 이름에 대한 것이 궁금하실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좋은 이름들을 놔두고 왜 파힐이면 Almanac이라는 이름을 썼는가? 그 이유는 대략 이렇다. 리 헤이스의 고향은 아칸사스라고 하는데 그의 고향집엔 단 두 권의 책이 서가(두 권의 책에 이런 이름을 붙이는 것이 조금 머쓱하긴 하지만)에 꽂혀있었는데 한 권은 다음 생애를 준비하려는 사람들이 보는 Bible(Holy Bible 즉 성경!) 이었고 다른 한 권은 내세에 대한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인 Almanac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리 헤이스가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우리는 Almanac Singers이 아닌 Bible Singers라 불리는 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야 할지도 몰랐을 일이다. Sis Cunningham, (John) Peter Hawes와 그의 형제인 (Baldwin) Butch Hawes, Bess Lomax Hawes (wife of Butch and sister of Alan Lomax), Cisco Houston, Arthur Stern, Josh White, Jackie (Gibson) Alper, 마지막으로 Sam Gary.등이 수차례에 걸쳐 Almanac Singers라 불리는 그룹과 함께 노래를 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을 굳이 그룹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른바 밴드라는 의미를 많이 넘어서는 부분들을 그들이 공유하고 있었으며 그 부분들을 음악이라는 것을 매개로 표현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즉, 단순히 음악만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그 외의 것들도 함께 공유하는 집단이었기 때문에 그룹이라는 명칭이 적당하다는 것이다.

Almanac의 구성원들은 모두 Popular Front이라 불렸던 자유주의자와 좌파집단 동맹의 일부였다. 그리고 그 집단은 또한 미국 공산당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당시 Earl Browder가 리더로 있던 그들(미국 공산당)의 구호는 "공산주의는 20세기 미국의 사상 그 자체다" 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견해에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인종과 종교적 포용, 그리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저해하는 파시즘에 맞서 투쟁할 것에 동의한 집단이었다.(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런 점이 티렉스가 우디 거스리를 "거의 숭배"하는 이유다.) Almanac Singers가 공감한 것은 자신들의 노래를 통해 이러한 목적들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이전의 컨트리 밴드들의 공연과 같이 활기차고 활력이 넘치는 공연을 기획하고 이런 공연을 무대에 올렸으며 그 이전의 예능인(연예인이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관계로 이런 표현을 쓰니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나이트 클럽에 어울릴법한 의상을 착용하였던 것을 거부하며 범부들이나 착용할법한 이른바 "길거리 의상"들을 입고 다녔다. 그들은 각종의 기금 모금 행사, 정당의 집회, 각종 동맹의 모임 노동자들의 집회, 노조의 집회를 가리지 않고 무대에 섰으며 아칸사스 지방의 사투리로 "hootenannies"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비공식 집회(정확한 내용은 나중에 알려드릳록 하겠다. 즉, 아직 모른다는 이야기이다.)에서도 노래를 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역사적 무대라 할 수 있는 1941년 메이데이(국제 노동절로 5월 1일이며 시카고의 대파업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에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 모인 20000명의 파업 노동자들을 위한 무대에 서서 그 유명한 "Talking Union"을 대중 앞에서 처음으로 발표했다. 또한 Carole Clanning이라 불리는 젊은 여배우의 대단히 극적인 소극(笑劇)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제부터 할 이야기에 대해 미리 말씀드릴 것이 있다. 온라인에서는 자신의 정체를 나타내는 것을 두려워하나 이 게시물들을 꾸준히 지켜보고 있는 지인이 티렉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름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보이나 당신의 그 음악에 대한 평가가 너무 소극적이지 않은가?"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Almanac Singers는 이른바 대중음악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어메리컨 모던 포크음악이라는 것에 눈뜨던 바로 그 시절부터 워낙 무한의 존경을 보내던 집단이라 그들에 대해 객관적 평가를 하기는 어려우나, 단 한가지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공화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포크 뮤지션이며 가장 많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뮤지션이라 평가받는 Bob Dylan은 이들에 비하면 "정말 좋은 시기에 활동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Almanac Singers는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기 전 심지어 케인스적 경제정책을 쓰려(다만)던 루즈벨트의 정책 역시 공산주의적인 것이 아닌가?라는 비난을 받고 그 이전 후버 대통령의 시대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 따위는 공산주의자들이나 쓰는 것"이라는 막말이 난무하던 시기를 거치면서 꾸준히 미국의 진정한 주인은 인민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노래를 무기로 대중들에게 전파하려 노력하던 사람들이다. 음악적 완성도를 떠나 기껏 "박정희 시대의 암울함"이나 "5공 시절의 억압적 분위기"라는 문구로 자신의 글을 시작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아는 공화국의 일부 음악 전문가들에게 "진정한 저항음악"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야만 할 기회를 제공할 몇 안되는 인물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 더 올라간다.


I don't want your millions Mister-Almanac Singers(1941)-Union Song Almanac Singers, Pete Seeger "The Union Maid"(이 곡이 주는 감동은 실로 엄청나다 할 수 있다. 물론 아님 말고... 감동을 못느끼는 사람들은 뭐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I don't want your millions Mister(Jim Hazel Garland)요건 보노소년님의 덧글에 힘입어 보너스로 링크해드리는 것이니 모두들 보노소년님께 감사를...

추신>
1. 로커빌리나 그 외의 다른 Rock and roll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셧다면 죄송
2. 짤방은 당근 Almanac Singers
3. Rockebily와 그 외의 비스무리... 엘비스 뭐 이런 것들... 은 조만간...
4. 또 조만간 이들의 다른 노래들과 음반에 대한 이야기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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