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4일 월요일

아님 말고 1000곡(40)

40. Whole lotta shakin' goin' on-Jerry Lee Lewis(1957)-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오늘의 게시물을 시작하면 많은 분들이 충격에 쓰러지실지도 모를 일이라 당연히 그 폭로로 게시물을 시작하려 한다.(메롱!)애석하게도 이 폭로의 원 출처는 당연히 티렉스가 아니다. 이 말씀을 후대에 전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게 해주실 분은 우리의 Johnny Cash 아저씨이다. 그 아저씨는 제리 리 루이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리 그 자신은 애초에도 그랬고 내가 아는 한 쭉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아마 제리 리 루이스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계시는 분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이실 것이다. 만일 당신이 크리스천이라면 "오! 하나님! 제발 저 빌어먹을 티렉스 새끼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혹시 당신이 종교에 대해 중립적이라면 "푸하하하~"라는 유쾌한 반응을 보이실 것이곡 만일 당신이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시길 즐기시는 분이라면 "거 봐! 개독은 그럴 줄 알았어"라 말씀하실지도 모를 일이다. 티렉스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하고 궁금해 하신다면 위의 세가지 것들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고 그냥 "허~"라는 웃음과 한숨의 중간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고 말씀드린다. 아무튼 이 것이 왜 충격적인 일인지 이해 못하실 많은 분들을 위해 결론만 말씀드린다면 "제리 리 루이스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개신교 신자들은 정신적 패닉에 빠질 정도로 그의 사생활은 그냥 문란한 정도가 아니라 '캐문란'했다"는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무튼 주변의 지인들에 의하면 그는 자신의 "사악한 천성" 때문에 스스로 괴로워했다고 하니 이 쯤에서 그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자.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Waylon Payne이라는 컨트리 싱어 겸 배우는 조니 캐쉬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 Walk the line이라는 영화에 출연하는데 그가 맡은 역이 바로 문제의 제리 리 루이스를 바탕으로 묘사한 인물이라는 것 정도를 미리 알아두신다면 "아주 대~충" 제리 리 루이스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아시게 되실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추가로 소개해드릴 곡들 중 Lewis' Boogie라느 곡이 있는데 그 곡을 들으시면서 혹시 제리 리 루이스가 최초의 부기-우기 스타일 음악을 연주했던 피아니스트라는 생각을 하시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우에서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한 점을 말씀드린다. rock and rol이라는 장르가 블루스, 특히 부기-우기 스타일의 블루스와의 관련성을 배제한다면 절대 논할 수 없는 음악이고 게다가 rockabilly역시 그렇지만 제리 리 루이스는 부기-우기 스타일의 연주자라기 보다는 그로부터 시작해 piano rockabily, piano rock and roll, piano rock이라는 장르가 시작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확한 판단일 것이다. 물론 이런 piano rock의 전통의 직계라 불릴만한 인물들 중 여러분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아실 인물은 물론 엘튼 존이라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기억하셔야 한다. 여기서 또 한가지 이야기하자면 흔히 국내에선 엘튼 존이 이른바 발라드를 주무기(?)로 하는 아티스트로 기억되기 쉬우나 그의 명반들 중 하나라 평가받는 "Goodbye yellow brick road"을 들어보게 되면 엘튼 존의 piano rock이라는 것이 어떤 성격의 음악인지를 자연스럽게 아시게 될 것이고(그 음반들 중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Goodbye yellow brick road"와 "Candle in the wind"이 두 곡은 그 음반에서 얼마나 예외적인 곡인지 알게 될 것이다. 차후에 엘튼 존에 대해 당연히 말씀드리게 되겠지만 그 앨범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하더라도 "Funeral of my friend"와 "Benny and the Jets" 두 곡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엘튼 존을 제외하고는) 피아노라는 악기를 단지 악기가 아니라 연주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연주라는 의미를 뛰어넘는 의미에서)로 보여주는 제리 리 루이스는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라 할 정도로 그와 그의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아티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위에서 이야기한 엘튼 존(Elton John) 빌리 조엘(Billy Joel) 벤 폴즈(Ben Folds) 심지어는 클래시컬 피아니스트인 마이클 니먼(Michael Nyman)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로 인해 주변부에 머무를 수도 있었던 피아노라는 음악이 범 rock music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언젠가 자세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지만-물론 그럴 기회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도 있다.- 이상하리만티 제리 리 루이스는 Chuck Berry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평생 감추지 않았던 인물이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이런 것을 "지나친 자신감"이라 해야할지 모르지만 일반인들이나 언론이 제리 리 루이스와 엘비스와의 관계를 라이벌 관계로 의식했던 것이 비한다면 제리 리 루이스는 엘비스에 대한 라이벌 의식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이다. 그의 사생활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자세히 하지 않기로 했으므로 그의 음악적인 활동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그는 스스로의 곡을 연주한 것만으로는 자신의 활동에 성이 차지 않았는지 상당 수의 Cover Version Son들을 발표했다. 이 게시물들을 계속해서 읽으신 분들은 이 단어가 rock and roll의 초창기 시대에 다른 장르의 기존 곡들을 rock and roll version으로 부른 노래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아시리라. 1957년이라는 해가 그의 최고의 해였다고 한다면 그 후 그는 자신을 대스타로 키워준 Sun Record을 떠나 Smash Records라는 레이블로 자리를 옮겨 rock and roll musician으로서의 새로운 돒파구를 찾게 된다. 스매쉬로 이적하기 전까지의 그의 음악적 커리어는 워낙 다양하고 특유의 방랑벽으로 가득한 것이니 혹시 아~주 나중에 이 사람에 대해서만 긴 게시물을 작성하게 될 경우 그 때 이야기하도록 하자. 그리고 그의 이런 저런 스캔들에 대한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스매쉬에서 낸 첫 앨범은 "Country songs for city folks"라는 타이틀의 음반으로서 1968년 발매된 것이다. 이 앨범에서 시글로 커트된 "Another Place, Another Time"이라는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0위 안에 드는 대성공을 거두고 심지어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는 1위에 오르며 그를 다시 한 번 스타덤에 오르게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혹자는 이런 이야기를 할지도 모를 것이다. "겨우 10위 안? 겨우 컨트리 차트 1위?" 아! 그러나 애석하게도 1980년대 중반 이후의 기록은 살펴보지 않아 지금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전역의 일종의 "장르 전문 지역 FM방송"들에 대한 통계를 보면 컨트리 & 웨스턴을 전문으로 틀어주는 방송이 전체 FM 방송들 중에서 그 비중이 35%가 넘을 정도로 컨트리 음악은 미국 대중음악의 대세인 장르였다. 이 차트에서 1위를 한다는 것은 미국 내에서 그 당시엔 가장 인기있는 곡들 중 하나로 인식된다는 의미이다. 아무튼 그 후 그는 1971년 1977년 1981년... 이런 식으로 자주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꾸준히 음반을 내며 활동을 하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 후두암이 걸려 더 이상 노래를 못하게 되었다는 등의 이상한 이야기를 퍼뜨린 공화국 언론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무튼 나름대로 계속 활동을 하던 그가 갑자기 엄청난 대중의 시선을 다시 받게 된 일이 있었으니 그 것은 그의 초기의 활동상에 대한 일종의 전기 영화라 할 수 있는 라는 그의 곡과 동명의 타이틀의 영화가 1989년에 개봉된 후였다. 영화에선 나름대로 국내에서도 많은 팬들을 가지고 있는 Dennis Quaid이 제리 리의 역할을 맡았더랬다. 그리고 한 때 휠을 잡았던(이 표현 좋지 않다는 것 알면서도 계속 쓴다. 죄송하다.) Winona Ryder이 그의 세번째 부인인 Myra Gale Brown역할을 맡았고 Alec Baldwin은 Jimmy Swaggart의 역할을 맡았더랬다. 어찌 되었든지 제리 리ㅇ[ 데힌 짓[힌 이야기들은 여러분들이 각자 찾아보시기 바란다. 이 게시물에서 티렉스가 하고자 하는 바는 rockabilly scene에 제리 리 루이스가 나타난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름값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제리 리는 수많은 유명 뮤지션들과 같이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는 정도만 알아두도록 하자.

Piano rock이라 불릴만한 음악이 제리 리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러한 그의 업적의 부산물로 Rockabilly Hall of Fame에 헌액되기도 했다.(Rockabilly H.O.F이 따로 있는 것을 보면 백인들이 이 장르에 대해 얼마나 많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에서 끝냈으면 너무 평범한 이야기일테고 여기서 우리는 피아노라는 악기가 Rock and roll 음악에 들어온 것으로 인해 음악에 어떤 질적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기타 역시 기타 자체로 리듬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피아노는 기타를 비롯한 다른 현악기와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것은 기본적으로 피아노의 적동원리가 "때린다"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즉, 기타도 그 자체로 리듬을 만들어낼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진 악기지만, 그 것은 피아노와는 상대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의미이다. 예컨데 크게 보아 피아노 블루스의 하위 장르라 볼 수 있는 부기-우기 블루스라는 것이 rock and roll에 편입될 수 있었던 것도 제리 리와 같은 인물이 혜성처럼 나타나 rock and roll-더 정확하게는 rockabilly-에 피아노를 비교적 제약없이 도입하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rock and rolld이라 불리는 장르가 훨씬 더 풍부해졌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제리 리의 굴곡이 많았던 인생과 자식들을 둘이나 잃어야 했던 개인적인 불행 등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안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나 그는 그런 차원에서 평가받는 것보단 음악적 업적에서 평가받아야 될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아무튼 엘비스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몰아서 하기로 하고 일단 Rockabilly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급하게 마무리 하기로 한다. Cover Version을 위시한 본격적인 Rock 의 시대가 열리기 전의 rock and roll의 하위 장르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다음 게시물은 전혀 의외의 게시물이 될지 모르겠다.


Whol lotta shakin' goin' on
Lewis' Boogie

추신>
1. 짤방은 이른바 Million Dollar Quartet이라는 사람들(엘비스 프레슬리, 조니 캐쉬, 제리 리 루이스, 칼 퍼킨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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