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4일 월요일

아님 말고 1000곡(62)

62. Invaders must die Etc. -The Prodigy-

*미리 말씀드릴 것이 있다. 프로다지에 대한 소개의 게시물을 두 번 연속으로 올리는 것은 지금 현재 티렉스가 프로디지에 엄청나게 꽂혀있기 때문도 아니요, 티렉스가 최고로 생각하는 밴드가 프로디지이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은 다음 기회에 또..."라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하다보니 도대체 그 "다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고 일단 대충 넘기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스스로 불쾌하여 프로디지에 대한 이야기 하나라도 (앞으로 절대 프로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이 연속 게시물의 이름으로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프로디지에 대한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연속으로 하는 것이니 티렉스의 충심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1980년대의 마지막 해인 1990년은 프로디지가 결성된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사건은 어찌되었든간에 기존에 "Techno"라 불리던 장르에 대단히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 때 휠을 잡았던 신서사이저 키보드 중에 Roland W-40이라는 악기가 있다. The prodigy의 프론트 맨이었던 Liam Howlett은 10곡(track)이 담긴 데모를 오로지 이 Roland W-40이라는 악기 하나만을 사용하여 녹음했고 이 것이 프로디지의 탄생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1990년이라는 단어와 Roland W-40은 The prodigy를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두 개의 개념어가 되게 된다. 물론 개인적인 능력 차이겠지만 누군가는 아무리 Roland W-40을 붙잡고 생쇼를 해보아도 그 정도 수준의 작업이 되지 않았더라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줴길... 아무튼 프로디지의 시작은 그랬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미리 말씀드리는 것 가운데 하나는 오늘 가장 앞에 쓴 곡인 "INVADERS MUST DIE"(일부러 대문자로 쓴 것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는 2008년 그들이 발매한 다섯번째 스튜디오 앨범의 셀프 타이틀 곡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들은 아직도 멋지고 보노소년님의 말씀대로 "괴물"이다. 괴물의 귀환!(써놓고 다시 보니 더럽게 유치하다. 줴길...)



프로디지의 음악적 성과나 그들이 거뒀던 상업적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대단히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만 그들의 성공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연관성을 가지는 단어는 바로 "CLUB"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공식적인 음악 용어는 아니지만 흔히들 뜻은 통하는 단어인 "Euro Techno"라 불리는 음악 역시 클럽을 통해 퍼져나갔고 클럽이라는 것 없이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공통점이 있으나 프로디지의 음악이 소위 유로 테크노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유로 테크노가 주로 DJ들에 의해 주도된 사회적 현상 내지는 음악적 장르라 한다면 프로디지를 위시한 하드코어 계열의 테크노 그룹들에게 있어 그들의 첨병 역할을 했던 것은 DJ이 아니라 MC였다 할 것이다. 프로디지의 무대를 보면 댄서와 MC라는 존재가 어떤 역할을 무대에서 소화하고 그들로 인해 그들의 무대가 얼마나 압도적인 것이 되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실 것이라 확신한다. 그 것은 DJ가 주도하는 댄스클럽의 무대와는 확연한 차이가 나는-제발 여기서 어느 것이 우월한가? 따위의 우문은 피하도록 하자.- 것인지에 대한 이해이며 그에 대한 이해가 과거 댄스용이라 여겨졌던 테크노라는 음악이 어떤 경로를 거쳐 현장의 음악이 되고 감상용 음악이 되어가는가를 알아가는 데에 있어 핵심적인 단서가 될 것이다. 그들이 싱글 Charly의 성공을 바탕으로 첫 앨범을 내게 된 것은 1992년의 일이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적 데뷔 앨범의 타이틀은 "Experience"이다. 이 자리에서 길게 이야기할 것은 아니지만 이 앨범의 상업적 성공과 대중적 파급력은 급기야 영국 하원에서 발의한 법안인 Criminal Justice and Public Order act 1994를 낳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는 몇 가지 사회 현상들 중 하나가 되는데 이 법안의 내용은 "반사회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출판물, 공연물, 영화, 음반 등에 대해 법적인 제제를 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려는 내용이었는데 프로디지의 대중적 파급력이 가히 Sex Pistols가 활동하던 시대의 파급력을 어떤 면에서 보면 능가했다고까지 볼 수 있을 정도였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대단히 주관적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음의 왜곡과 가능한 범위에서의 기존 화성체계의 파괴, 혹은 의도적 무시를 자신의 본분인양 생각해온 프로디지의 음악에 "우리 사회는 아름다워요."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아요!" "당신의 앞날엔 희망만 있을거에요!" "원수를 사랑해요!" 따위의 내용을 담고 있다면 그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여기서 또 시건방지게 티렉스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해보자면 "반사회적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어차피 사후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예컨데 "주위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꾹 참아가면서 살아요!"라는 메시지를 노래에 노골적으로 가사로 표현했을 때, 사람들이 "야! 이 개같은 색히야! 무슨 이런 거지같은 노래를 부르고 지랄이야!"라고 외치며 이 노래로 인해 열받은 사람들이 모여 울분을 삭이다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체제 저항의 도화선이 된다고 하자.(개인적으로 반체제 저항이 나쁜 것이라 생각한 적은 절대 없지만...) 그럴 때 부르주아들을 권력기반으로 하는 지배계급에게 있어 "그들을 절대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내용의 가사를 담았던" 이 노래가 과연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반사회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솔직히 그 점에 대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반사회적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후적으로 판단되어져야할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류의 법은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도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말 아님 말고...



그 후 1994년엔 그들에게 Mercury Music Prize을 안겨준 "Music for the jitted generation"을 발표한다.(앨범의 자켓은 위의 짤방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대단히 좋아하는 앨범이지만 대중들에게 더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다음 번의 앨범이다. Music for the jitted generation을 발표한 후 팀에 생긴 가장 큰 변화는 항시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시적으로 팀의 멤버 보강이 이루어졌다는 점인데, 이들이 이 앨범을 발매한 후 본격적으로 무대 활동에 나서면서 기타리스트가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했고-실제로 이 앨범의 "Their law"이나 "Break and enter95"같은 곡들은 실제 기타연주가 필요한 곡들이다- 이러한 멤버의 보강은 그들이 잉글랜드의 무대를 얼마나 심하게 장악해가고 있었는지에 대한 반증도 될 것이다. 이 앨범엔 사실 공화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곡은 없지만 국제적으로 이들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것은 사실 "Music for the jitted generation"앨범이었다. 물론 앨범의 성공도 그들을 국제적인 밴드의 위치로 격상시키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무엇보다도 Lollapalooza Festival에서의 그들의 대단한 활약은 잉글랜드의 프로디지를 전 유럽에서 가장 스타일리쉬한 밴드로 인식하게끔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고, 이전의 테크노 밴드들과는 달리 현장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는 새로운 차원의 테크노를 구사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고속도로로 추정되는 황량한 도로에 대낮에 홀로 옆으로 걸어가고 있는 게의 사진을 자켓 디자인으로 한 "The fat og the land"이라는 앨범이 발매된 1997년 프로디지는 드디어 문자 그대로 세계 최고의 팀들 중 하나가 된다. 국내에서 유난히 인기있는 곡인 "Smack my bitch up"(이 곡의 링크는 두 가지로 올려드릴 참인데 공식 비디오 클립은 그냥 보면 대단히 외설스러우나 맨 마지막 시퀀스까지 보시게 되면 그냥 외설스러운 것이 아니라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제발 중간에 "이거 저질이잖아!"라는 생각을 하시면서 플레이를 멈추시는 우를 범하지 마시길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비디오 클립은 1997년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열렸던 그들의 공연실황인데 이 클립에서 맥심(Maxim)이 무대에서 도대체 어떤 짓을 하는가를 잘 살펴보신다면 이들이 왜 무대 위의 괴물인지를 뼈저리게 느끼실 것이다. 이 표현을 빌려주신 보노소년님께 축복이 함께 하시길...)이 수록되어있는 이 앨범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하자면 하드코어 테크노의 완성된 형태가 어떤 것인지를 정말 눈과 귀로 느끼게 되실 것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엠비언트 테크노의 대명사인 Aphex Twin이나 혹은 RATM이 출현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배경을 이해하시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은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드실 것이다. 에이펙스 트윈이라 하면 1992년에 데뷔하여 1994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했던 밴드가 프로디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그렇다. 당연히 에이펙스 트윈은 프로디지의 영향을 받은 팀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프로디지에게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에이펙스 트윈과 같은 팀들도 대중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RATM에 대해선 비판할 부분도 많고 실제로 대단히 과대평가된 팀이지만 그들이 이른바 한 때 휠을 잡았다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이들이 미국시장에 데뷔하게 된 것은 마돈나가 운영하며 프로듀서로도 활동했던 Maverick 레이블을 통해서였다. 나중에 마돈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그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지만, 마돈나는 프로디지를 미국에 데뷔시킨 것 하나만으로도 RHOF(티렉스는 보통 Rock and roll Hall of Fame을 귀찮은 관계로 이렇게 표현한다.)에 헌액될만한 충분한 자격을 가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마돈나는 자신의 불후의 명작인 "Frozen"을 이들과 함께 하기를 원했던 것도 잘 알려진 일이고 프로디지가 마돈나의 제안을 거부한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아무튼 오늘도 볼륨을 최대한으로 해놓으시고 링크된 세 곡을 들어보시기 바란다.



The Prodigy - Smack My Bitch Up (Uncensored)

http://kr.youtube.com/watch?v=923WFAaXDM0

Prodigy - Their law (live in Moscow 97)

Invaders must die(2008)





피에쑤

오늘 드디어 프로디지 형아들한테 안 미안하다. 흑흑흑...

댓글 없음:

댓글 쓰기

팔로어

블로그 보관함

프로필

내 사진
궁금해? 내가 당신 프로필이 궁금하지 않은 것처럼 당신도 내 프로필을 궁금해하지 마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