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딱딱한 (음악사 교과서에 가까운 그런... )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내가 아는 어떤 놈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결국 그 놈의 이야기라는 뜻이지 않을까? 과거 국민학교라 불리던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에서 6학년으로 넘어가던 겨울방학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조금은 안습적 집안 사정으로 인해 여동생과 단 둘이 매일 집에서 보내야했던 놈이 이야기이다. 아무튼 안습적 집안사정으로 부모님은 하루종일 집에 안 계시고 여섯살이나 많은 누나는 고3이 되는 수험생이라고 매일 새벽같이 가출해서 밤이면 돌아오는 "매일 가출하는" 가출 청소년이었고 당시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후진" 시대였기 때문에 빌어먹을 텔레비전 아침 방송은 10시면 끝나고, 그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보다 더 전엔 아침엔 텔레비전 방송이라는 것을 하지 않던 시질도 있었다. 도대체가 그 놈은 두 살 아래의 여동생과 집을 비우면 당연히 안되는 줄 알았던 그런 상황에서 집안에 틀어박혀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기분이 더러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참 돌아다니며 놀아야할 나이에 집을 비워서는 안 될 상황이라는 것은 그 나이의 아이에겐 일종의 유배생활과 같은 것이었다고 그 놈은 이야기한다. 아무리 오빠의 말을 잘 따르는 여동생이라 할지라도 단 둘이서 집에서 말뚝박기, 땅따먹기, 구슬치기를 하자고 꼬드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얌전하고 착한 그 여동생 역시 그 난관을 어떻게하면 이겨낼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둘은 공식적으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진 않았으나 무언가 놀이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서로 그 것을 찾아내려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남매는 드디어 집안에 있던 보물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 것은 다름아닌 지금 여러분들은 이름조차 생소하실 "AM-FM라디오 겸용 모노 카세트" 남매의 아버지는 그 기계를 통해 라디오 방송의 야구중계를 주로 듣던 그런 기계였으나 남매는 그 기계를 가지고 FM방송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안의 안좋은 일에 대해 슬퍼할 줄도 알았지만 허무하게 날려버릴 기나긴 겨울방학에 대해 서러워 하던 남매에게 그 기계는 일종의 "구세주"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부모님과 아침식사를 하고 남매들의 대장이 나가고 나서 10시까지는 새나라의 모든 어린이들의 방학이 그렇듯, 텔레비전을 열심히 시청해주고 그 후의 시간은-여섯시에 정규방송을 시작하기 전까지-FM방송을 끼고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10시 방송은 지금은 방송을 하지 않고 있는 임국희씨라는 분이 하던 방송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11시엔 클래식 음악 평론가였던 한상우씨라는 분이 하던 문화방송 FM의 유일한 클래식 프로그램이었단다. 12시엔 과거의 유며 개그맨인 고영수라는 사람이 하던 가요 프로그램이었고(이 프로그램이 그 남매가 듣던 유일한 가요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뭐 두시의 데이트니 이런 프로그램들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으셔도 아실테고 부모님이 돌아오신 다음에도 8시부터 황인용의 영팝스를 들을 것인가 박원웅과 함께를 들을 것인가 등등을 고민하며 이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삶으로부터 탈출이 가능하겠다며 남매는 기뻐했다고 그 놈은 말했다.
그 놈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의 말에 의하면 벅스 피즈의 "Makiin' your mind up"을 들으며 "팝송은 가요와는 달리 고무공이 튀는 것같은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기뻤다고 하며 어느날 외가에 가던 도중 택시 안에서 들었던
그의 말에 의하면 그가 처음으로 쓰러질듯한 전율을 느낀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사게 된 Pink Floyd의 "Wish you were here"을 들으면서 였다고 한다. 그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곡도 빼놓지 않고 들은 후 그 녀석은 일주일 이상을 제대로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냥 마냥 무서웠고 이런 무서운 음악들을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알게 되기 전에 "이러한 공포로부터 도망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 때 녀석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후에도 녀석은 Vangelis, Yes, Black Sabbath(이 앨버믜 카세트 테입은 지금은 죽고 없는 녀석의 초등학교 때의 친구로부터 졸업선물로 달라고 협박을 하여 받아낸 것이었다 한다.) Toto,Foreigner, Aerosmith, King Crimson등을 들었다고 하는데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을 들었을 때를 능가하는 전율을 느낀 것은 King Crimson의 "Moon child"을 들었을 때였다고 한다. 무려 12분이 넘는 곡을 들으며 "다른 녀석들이 조용필과 전영록에게 미쳐있을 때 이런 곡을 중학생 주제에 다 듣고 있는 나는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난 좀 짱인듯?"이런 생각도 같이 했다고 한다. 아마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이 느꼈을 우월감에 지나지 않았을테지만 당시엔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다른 아이들이 못알아 듣는 것에 대해 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 때 녀석의 심정은 우월감과 공포감이 병존하는 이상한 그 어떤 것이었다고 한다.
녀석은 "학년이 올라가고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될수록 팝음악과는 거리가 멀어져야만 한다"고 믿었다는데 그 이유는 주변의 이른바 "동네 노는 형"들의 경우 그 형들이 들어간 대학의 배치표에서의 순위와 형들이 가지고 있던 LP음반의 수와는 정비례한다는 것을 알았고(음반의 수가 많을수록 그 형들의 학교의 순위는 "높은 숫자"를 가진 즉 이른바 후진 학교였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자신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음악을 끊어야 한다"는 다짐을 수도 없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즈음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가 그런 다짐이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된 것은... 어느날, 그 녀석은 "오늘 까지만 FM방송을 듣고 내일부터는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물을 훔치며" 독한 마음을 먹고 "황인용의 영팝스"를 틀었을 때, 바로 문제의 이 노래가 나왔다고 한다. 그 때 다른 것은 전혀 들리지 않고 가사의 첫 줄인 "Music was my first love"이라는 부분이었고 그 가사가 계속 머리를 때리더라고 했다 보통 당시엔 "이 노래다!"라는 생각이 들면 다음 번 방송에 나올 때는 반드시 녹음을 하곤 했는데 그 노래는 번번이 그 기회를 놓칠 정도로 노래에 집중했다고 한다. 가사 뿐, 아니라 그 녀석이 그 때까지 들었던 노래들 중, (가사가 아니라 음악적으로) 그렇게 완벽한 서사를 가지고 있는 음악은 처음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 한다.
"줴길! 이 것은 팝음악을 목숨 걸고 들으라는 신의 계시가 분명하구나... 빌어먹을" 그리고 그 녀석은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이 John Miles였다는 것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고 John Mlies라는 사람이 뭐하던 듣보잡인지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햇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하게 그 녀석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빌어먹을 존 마일스의 "뮤직"이 그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다른 것들은 백짓장처럼 완전히 다 잊어버렸어도 오로지 생각나는 것은 그 빌어먹을 노래 때문에 "내 인생은 팝음악으로 인해 꼬이겠구나..."는 것 뿐이었다고 한다. 그 녀석의 이야기는 아직도 그 노래처럼 완전한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오케스트레이션과 "도대체 저렇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까?"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쌩 브라스"(이 단어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단어라고 설명했다.)는 시대를 타지 않을만한 곡이라고 내게 셜명해줬다. 그 녀석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음악이 후지고 삼빡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음악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때리면서 음악을 진지하게 목숨을 걸고 듣는 것에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참동안(혹시 지금까지일지도 모른단다.) 그 녀석은 "Rock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도 했다. 빌어먹을 놈...
Music(BBC Top2)
Music(1985년 실황)
추신>
1. 이 이야기는 특정 인물과 별 관계 없을 줄로 아시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으실 줄로 아룁니다.
2. 짤방은 그 녀석이 다닌 중학교(즉 그 녀석의 모교)의 도서실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녀석의 말로는 그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저런 좋은 시설이 없었다고 한다. 그 녀석은 이랬다. "빌어먹을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한 반에 70명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어!"
3. 그 녀석에 대한 이야기는 가끔 계속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그 빌어먹을 놈이 제게 입을 더 열면 말입니다.)
4. 그 놈의 이야기를 한 것은 삼바에 대해 할 이야기가 남은 것에 대한 의무를 방기하기 위함은 절대 아니라는 점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부록이라 한다.
Music was my first loveAnd it will be my lastMusic of the futureAnd music of the past
To live without my musicWould be impossible to doIn this world of troublesMy music pulls me through
BRIDGE
Music was my first loveAnd it will be my lastMusic of the futureAnd music of the pastAnd music of the pastAnd music of the past
BRIDGE
Music was my first loveAnd it will be my lastMusic of the futureAnd music of the past
To live without my musicWould be impossible to do'Cause in this world of troublesMy music pulls me through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