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4일 월요일

아님 말고 1000곡(74)

74. Hey Hey Etc.-Big Bill Broonzy-

빅 빌에 대한 이야기를 전에 한 적이 있는데 빅 빌 브룬지라는 이름의 아티스트를 이야기할 때 꼭 기억해야 하는 몇 가지의 개념어들과 몇 가지의 키워드들이 있다. 먼저 빅 빌 브룰즈리는 이름을 다음 번에도 기억하기 위해선 핑거스타일 기타라는 단어를 아셔야 한다.(Fingerstyle guitar) 아주 귀한 영상자료가 링크되어있으니 빅 빌의 주법을 보시게 되면 기타를 치셨던 분들이라면 이 것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를 금방 눈치채실 것이다.(빅 빌은 정말 내가 봤던 기타리스트들 중 최고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사람에 대해 아시려면 Country Blues이라는 단어를 아셔야 한다. 컨트리 블루스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드릴 시간이 있을테니 그 때 이야기하기로 하고 빅 빌을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시카고 블루스이다.(Chicago Blues)이 것도 나중에 말씀드릴테니 그 때 가서 또 이야기하기로 하고 정말 의외의 것은 빅 빌을 이야기할 때 꼭 알아야할 단어가 Folk Music이라는 것이다. 간혹 하나 이상의 장르에서 자신의 족적을 남긴 아티스트들이 존재하는데 빅 빌은 그 중에서도 대표격인 인물이라 할 것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임이도 불구하고 포크 음악에서도 자신의 상당한 역량을 발휘한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포크 음악 뿐 아니라 Spirituals, Work Songs, Hokun 그리고 심지어는 Ragtime에 이르기까지 후대의 아티스트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여기서 잠깐 다른 이야기를 두 가지만 하도록 하자. 무려 15년 전쯤의 이야기인데 몇몇 친구들...이라 서로 부르곤 해찌만 과연 친구인지는 의문스러웠던 녀석들과 간단한 악기와 앰프가 준비되어있던 맥주를 팔고 칵테일을 팔던, 물론 양주를 처먹는 놈들이 더 많았던, 강남 모처의 카페에 간 적이 있었더랬다. 연주를 막 끝낸 횽아들이 있길래 그들에게 사정사정하여 우리에게 딱 한 곡만 할 시간을 달라고 협박아닌 협박을 했고 그 횽아들이 그렇다면 딱 한곡만 해보하고 했던 적이 있더랬다. 우리는 기타도 있고 드럼도 있었고 최악의 수준이었지만 피아노를 칠 수 있는 녀석이 있었다. 그 피아노가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 팀의 베이스 횽아에게 베이스를 부탁헸는데 그 때 끄적이던 곡이 "반짝반짝 작은 별"이었더랬다. 재즈를 하는 그 횽아를 무시하고 난 C 코드로 시작하는 12마디 블루스를 연주했더랬다. 상상해보시라.... 반짝반짝 작은별이 블루스라니... 아무튼 그 횽아는 갑자기 12마디 블루스를 쫓아오던 베이스 횽아의 당황하던 모습이란.... 왜 이 이야기를 하냐 하면 이 게시물을 작성하다

우연히 교육방송의 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블루스에 대한 설명을 30초에 끝내는 작가와 진행자의 능력을 보며 기겁을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반짝반짝 작은 별이었던 이유는 과거 텔레비전에서 하던 <영 인디아나 존스>라는 시리즈에서 학생 시절의 존스 박사가 시카고의 한 클럽에서 연주하던 곡이 그 곡이었다는 것! 그런데 왜 이 이야기를 한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초창기 블루스의 대가인 빅 빌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은 제이미 로저스, 블라인드 블레이크, 선 하우스(Son Holuse),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 그리고 후대에 시카고 블루스에서 일가를 이룬 윌리 딕슨과 머디 워터스등 이루 말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롤링 스톤스의 로니 우드 역시 그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그가 결코 백인들을 의식하고 음악을 연주한 것은 절대 아니나 유난히도 그의 연주의 객석엔 백인들이 많았고 그들은 그의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에 환호를 보냈고 백인 청중들을 일부러 의식한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런 그의 사적인 배경은 그가 백인들의 음악이었던 포크 음아에 있어서도 일가를 이루게 되는 데에 대단한 기여를 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어메리컨 모던 포크의 역사에 있어서도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아티스트이다. 또한 그의 이름이 음악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이유는 그가 이른바 시카고 블루스의 개척자인 동시에 일찍이 1942년 경에 블루스에 일렉트릭 인스트루먼트를 도입한 그의 선구자적인 업적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 위에서 왜 저런 이야기를 했는가에 대한 답이 이제야 생각났다. 교육방송의 그 프로그램에서 "블루스를 미국 남부의 음악"이라고 아주 간단히 이야기했지만 블루스가 하나의 장르로서 레코딩 작업들이 진행되기 시작한 이후로는 블루스는 남부의 음악이라기 보다 텍사스 블루스, 시카고 블루스, 피아노 블루스 등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중서부와 서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유행하고 발전된 음악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리 블루스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런 점들은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가 ARC와 CBS에서 발매했던 음반은 후에 Anthology의 형식으로 CBS-Sony에 의해 재발매되었다. 그리고 그가 일렉트릭 기타를 사용하기 훨씬 전의 초창기의-따라서 이 음반들은 블루스 자체의 초창기 음반들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음반들 역시 유럽과 시카고의 레이블들에서 재발매되었으며 스미소니언의 Folkway Records에서는 브룬지가 참여했던 음반들을 재발매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업들은 "British Blues Revival"에 의해 1960년대에 다시 연주되고 녹음되기도 하였으며 그 유명한 Derek and the Dominos의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앨범의 "Key to the highway"이라는 곡은 그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있는 곡이라 할 수 있으며 그의 기념비적인 기타 스타일은 머디 워터스나 멤피스 슬림, 레이 데이비스 등에게 음악적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빅 빌의 "Guitar Shuffle"는 또한 롤링 스톤스의 로니 우드가 "자신이 가장 아끼고 존경해 마지 않는 곡"이라는 찬사를 보낸 바 있다. 왜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 씨부려대느냐고? 그만큼 빅 빌은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블루스의 교과서로 그리고 뒤늦게 블루스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롤 모델로 그리고 블루스라는 강에 합류하기 위해 반드시 익혀두어야 하는 노를 젓는 방법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 사람에 대해 "제대로" 떠들 시간이 오게 되길 바라며 빅 빌의 기념비적인 경이적인 연주를 "닥치고 즐감" 하시기 바란다.







Hey Hey Hey



Guitar Shuffle



Just a Dream



Three Spirituals(이 비디오 클립을 보시면 왜 빅 빌이 포크 음악에서도 중요한 인물인지를 아시게 될 것이다.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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