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이 73번의 자리는 Big Bill Broonzy의 자리였으나,(핸디 선생은 어쩌고?) 그 위대한 비틀스의 곡들 중에서 하필이면 논란의 소지가 있을법한 곡인 "For no one"을 가장 먼저 소개한 데에 대한 일종의 자책감 같은 것도 있고 해서 비틀스에 관한한 연대기적인(Chronical)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그들이 지금의 위치(해체한 밴드에게 지금의 위치?)에 있게 된 데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곡인 이 두 곡을 여러분들께 전해드리고자 한다. 워낙 비틀스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이 알려져있고, -때론 너무 알려지 있지 않기도 하지만- 그들에 대해 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공화국에서만도 수천만이 될 것이라 생각되기에 되도록이면 딱딱하지 않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들의 이 역사적인 첫번째 "Bluck Burster"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참고적으로 2008년 그 유명한 빌보드지는 자신들이 빌보드 차트를 집계하기 시작한지 5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 Hot 100 Selling Artists라는 호외 혹은 특별 부록 형식의 차트를 하나 발표했는데 당연히 그 차트의 맨 꼭대기엔 비틀스가 있었다.(마이클 잭슨의 팬들은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1> July 6?
이 날은 티렉스의 동갑내기 사촌의 생일이다. 하지만 설마 티렉스가 자신의 사촌의 생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 날을 들먹인 것은 아닐테고 7월 6일 중에서도 1957년 7월 6일은 존 레넌이 Skiffle band인 Quarryman을 결성한 날이다. 많은 비틀스 학자들은 비틀스 역사의 시작을 이 날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1957년 7월 6일이란 날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스키플이 뭐냐고? 스키플이란 1950년대에 미국에서 유행하던 재즈 스타일의 하나였고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 유행했던 기타와 여타의 수제(Hand Made)악기로 편성된 영국 민요조의 곡조를 덧붙여 연주되던 재즈를 의미하는데 미국에선 영국의 스키플을 일컬어 Rent Party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 용어(렌트 파티)는 함부로 사용하시면 곤란하다. 우선 별로 좋지 않은 뜻이 있고(그런 것까지 알려달라고 하지는 마시길...) 그리고 두번째로는 정말 미국인이 아니면 알기 힘든 단어이기 때문에 당신이 영어를 과도하게 잘하는 사람이라 생각하여 무차별적인 대화를 원하는 속사포를 날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비틀스의 역사가 시작된 날은 바로 1957년 7월 6일이다.(K군 자네가 태어난 날은 이보다 훨씬 뒤일세...)
<2> 링고 스타가 가장 비중이 없는 인물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아니다."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비틀스의 전신인 쿼리맨의 드러머는 Colin Hanton이라는 사람이었는데 1959년 팀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처음부터 베이시스트가 아니었던 폴 매카트니(그는 처음 기타를 쳤더랬다.)와 존 레넌은 리듬 기타를 담당했었고 겨우 15세이던 조지 해리슨이 1958년 리허설을 통해 팀에 합류하게 되고 존은 자신의 친구였던 Stuart Sutcliff을 베이시스트로 합류시킨다.(스투어트는 팀이 함부르크로 연주 여행을 떠난 후 독일 여성(Astrid Kirchherr)을 만나 결혼하여 그 곳에 정착하게 되고 그 곳에서 미술가로서의 활동을 하다가 병으로 요절하게 되는데 그의 이야기는
<3> Who is Raymond Jones?
비틀스가 함부르크에서 다시 스투어트를 팀에 합류시켰다가 다시 리버풀로 돌아오면서 스투어트가 완전히 팀을 떠나고 그 유명한 Tavern Club에서 연주를 시작하게 되고 그 클럽에서 그들을 처음 보게 된 Brian Epstein과 1962년에 5년의 계약을 맺게 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NEMS이라는 이름의 굉장히 큰 규모의 음반 매장을 운영하던 사람이었고(그 업체는 그의 가업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Raymond Jones이라는 이름의 소년이 그의 가게로 들어와 함부르크에서 날리고 있는 비틀스라는 팀의 "My Bonnie"의 싱글 음반이 있나요?라고 엡스타인에게 이야기 했고 마침 그 음반이 없었던 브라이언이 "걔들이 누군데?"라고 이야기하게 되고 레이몬드 존스에게 그들의 존재를 들은 브라이언이 비틀스의 연주를 보러 찾아가게 되고 거기서 그들에게 매료되어 그들과 계약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 여지껏 "Rock and Roll"계의 아름다운 전설로 남아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지금은 레이몬드 존스라는 소년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이 정설로 남아있다. 티렉스가 굉장히 오래 전 비틀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 알고 있던 이 전설적인 이야기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비틀스를 전설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처음엔 대단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비틀스에 대한 서적들과 여러 논문들을 찾아보며 이해하게 된 것은 브라이언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해서라도 비틀스를 성공시키고자 했을 정도로 그들을 사랑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나중에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브라이언의 비틀스에 대한 사랑은 거의 헌신을 넘어 집착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뻥이라 하더라도 이른바 "그런 이야기가 아름다운 전설로 전해 내려온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대략 여기까지...)
Please please me
Love me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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